詩 • 든 • 손

in #steemzzang2 months ago

구두 뒷굽을 보면
그 사람의 병을 알 수 있다고
누군가 벗어놓은 신발을 들고
옛날 장터의 약장수처럼 말했다
콧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시큰둥하는 표를 냈다

어느 날부터
자주 옆구리로 손이 가면서
신발을 뒤집어 본다
바깥쪽이 오래 된 주걱처럼 닳아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숨가쁘던 삶이
민달팽이처럼 뿔을 세우고 지나간다

바깥쪽이 먼저 닳으면 신장이 안 좋다던 말이
이불을 들추고 부숙한 얼굴 옆에 눕는다

image.png

뒷굽/ 허형만

구두 뒷굽이 닳아 그믐달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수선집 주인이 뒷굽을 뜯어내며
참 오래도 신으셨네요 하는 말이
참 오래도 사시네요 하는 말로 들렸다가
참 오래도 기울어지셨네요 하는 말로 바뀌어 들렸다
수선집 주인이 좌빨이네요 할까봐 겁났고
우빨이네요 할까봐 더 겁났다
구두 뒷굽을 새로 갈 때마다 나는
돌고 도는 지구의 모퉁이만 밟고 살아가는 게 아닌지
순수의 영혼이 한쪽으로만 쏠리고 있는 건 아닌지
한사코 한쪽으로만 비스듬히 닳아 기울어가는
그 이유가 그지없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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