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스톤의 느끼는 산사 이야기) 동학사 가는길에 있는 관음전을 아시나요 ?

in #oldstone6 years ago

계룡산에는 유명한 절들이 몇몇 있다. 남매탑의 전설을 담고 있는 동학사가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알려진 갑사가 있다. 예전에 내가 학교 다닐때 국어교과서에 갑사가는 길이라는 수필이 있었다. 그 수필을 읽고 언젠가 한번 갑사가는 길을 가보리라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 10년은 지나서 갑사가는 길을 따라가 보았다. 그때는 겨울이라 황량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남매탑의 전설이 생각나서 계룡산을 넘었다. 한겨울에 구두를 신고 넘었으니 젊음이 좋았다.

그리고 25년쯤 지나서 동학사 주변을 편안하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팔자좋은 시절을 맞이할 수 있었다. 아마 내 인생의 황금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시간이 나면 동학사로 걸어 다녔다. 계룡산 입구에서 동학사 까지 걸어가는 길이 좋았다. 봄이면 봄이라서, 여름이면 여름이라서 그리고 가을이면 가을이라서 좋았고 겨울이면 겨울이라서 좋았다. 그리 큰 절도 아니었지만 그냥 산속으로 걸어가는 그리 멀지 않은 길이 좋았다.

그렇게 계룡산 구경을 다니면서 우연히 길가에 서 있는 암자같은 절집들을 보게 되었다. 동학사만 있으면 되지 왜 그리 절들이 많이 지었을까 하면서 다녔다. 몇개월간을 그 길가의 절집에 눈을 두지 않았다. 겨울이었다. 갑자기 산기슭에 있는 절집에 눈이 간 것은. 단청이 검은 색으로 칠해진 듯한 절집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살펴보니 검은색과 금색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단청이란 붉고 파란 것인데 전혀 다른 색이었다. 단청이 오래되어서 저렇게 변했구나 하는 측은한 생각에 그동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여 발길을 돌렸다.

조금 가까이 가서 보고 깜짝 놀랐다. 검은색이 아니라 갈색이었고 황금빛 단청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를 찍었다. 절안에서는 비구니의 낭랑한 염불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보는 단청이었다. 염불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스님에게 왜 이런 단청인지를 여쭤 보았다. 그랬더니 스님 말씀이 원래 신라시대의 단청을 재생한 것이란다. 신라시대의 단청을 재생한 고집스런 단청장인이 있어 이절의 단청을 신라식으로 칠했다는 것이다.

절 안팎의 단청을 둘러보면서 너무 아름다워 놀라 자빠질뻔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단청이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다니 하면서 흥분하기도 했다.

단청의 기하학적 무늬도 너무나 신기했다. 페르시아식 아라베스크식 문양이 절집에 장식되어 있었다. 신라의 처용이 서역에서 온사람이라는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신라와 서역이 서로 교역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었다. 그런데 신라의 절들이 이런 문양과 색깔의 단청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몰랐다.

관음전의 단청뿐만 아니라 탱화를 보고도 놀랐다. 관음전의 탱화는 다른 절과 달리 흰색으로 그려져 있었다. 보통의 절들에 있는 탱화는 붉은색이 기본이다. 그런데 관음전의 탱화는 흰색이었다. 탱화에서 초현실주의적인 느낌을 받았다. 20여년전에 러시아의 어느 정교회 성당에 간적이 있다. 러시아 정교회에는 성인들을 그린 이콘이라는 그림이 있다. 그때 모스크바 주변의 수즈달이라는 유명한 정교회의 중심지에서 하얀 색으로 그린 이콘을 본적이 있다. 갑자기 그 이콘이 떠올랐다. 그때 난 피카소가 러시아 정교회의 이콘을 보고 표절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관음전의 하얀색 탱화는 날 일상의 평범함에서 깨어나게 해주는 것 같았다. 마치 수즈달의 러시아 정교회 성당에 걸린 이콘을 보고 느낀 것과 같은 감동을 주었다.

하얀색 탱화에서 느낀 초현실주의적 느낌을 절집앞의 샘터에 있는 돌로된 부처상에서 다시 느꼈다. 얇은 돌판을 여러장 쌓아서 부처님을 만들었다. 세밀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거칠게 표현한 부처상이 부처가 무엇인가를 더욱 웅변적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 특별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그 부처상은 제자리에 있어서 더욱 빛나는 것 같았다.

관음전에서 보는 경치도 아름다웠다. 관음전 앞쪽 입구의 작은 창문에서 보이는 경치는 마치 선경과 같았다. 스님이 아르켜 주었다. 겨울이어서 그런지 투명한 공기는 창문너머 보이는 문수봉을 더욱 가깝게 해주었다.

참 관음전 뒤에 샘터가 있다. 겨울 햇볕을 머뭄고 있는 관음전 뒤의 샘터는 무척 아름답다. 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만들어낸 파장을 겨울 햇볕이 마술같은 여운을 만들고 있었다. 관음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그 전에는 전혀 알지도 못했고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냥 우연히 고개를 들어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찾아간 절이었다. 우리 인생도 그런듯하다. 전혀 기대하지도 알지도 못했는데 그것이 우리 삶에 여운을 깊게 남기는 경우가 있다. 관음전이 그랬다. 올봄에 다시 찾아 가보았더니 부속건물을 짓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 공사가 다 끝났으리라.

언제 시간나면 다시 한번 들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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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처음으로 산을 탄 곳이 계룡산이었는데~ 계곡이 말라서 멋진 폭포를 보지 못해 아쉬웠던 기억이 나네요~
한국에는 산마다 자리잡고 있는 절들이 있어 더욱 운치 있어보이는듯 합니다~

그렇지요 한국 산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관음전 몰러유~ㅎㅎ
불상이 특별하네요
직접 보고 싶어 집니다
덕분에 잘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

한번 들러서 보시면 좋아 하실 겁니다

동학사가 동학농민 운동과 관련있는 곳 맞지요?

아닌 것 같은데요

글을 읽다보니 수영하는듯 온화하고, 정갈 해지네요 .
글이 가진 힘이 쓴 사람의 기분까지 전해지는거 오랜만에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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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찬의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본 안목이 있으니까
보게 되는 거겠지요^^

그저 어쩌다가 대어를 낚았지요

마치 정원 같습니다...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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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정원보다 훨씬 아름답지요

예전에 오래도록 선도仙道 수련하신 분에게 들었는데요. 동학사가는 길과 갑사가는 길의 땅의 기운이 다르다고 합니다. 동학사 가는 길에는 점집들이 유난히 많지요.(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네요.) 갑사가는 길이 아름다운 것은 선비들이 도포자락을 휘날리는 형상의 지기라고 합니다.

가치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동학사가는 길은 대중적인 지기가 흐르고 갑사 가는 길은 수도자들의 고상한 기운이 흐르는 차이가 있는 것도 같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지가 벌써 20년이 다 되가기 때문에 지기地氣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겠네요. 그 속에 사는 수행자들의 삶과 연관되니까요.

아마도 백의관음전인가 보내요. 관음觀音이란 수행법 자체가 대중속에 파고든 염불법문이지요. 그래서 수도修道의 형태가 대중적인 것인가 봅니다. 활발한 교역 문화를 나타내 주는 문양들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도 같습니다.

그렇군요. 좋은 코멘트 감사합니다

절은 다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세심하게 보면 절마다 차별화된 것들이 있군요
앞으로 절에 갈때 좀 세심하게 들여다 봐야 겠습니다^^

비슷한 듯 해도 다 다릅니다
그런 차이를 감상하는 것도 좋습니다

소위 말하는 ‘전통’적인 양식과 차이가 엄청나네요. 고려시대에는 신라시대 양식을 고전적이라 불렀겠죠? 크리스트교 계열도 갈라져 나간 시기와 지역에 따라 양식이 달라지는 걸 보면 큰 줄기를 제외하면 그냥 문화적 차이로 읽히기도 하더라구요.

결국 다양성이 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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