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트 / 부지영, 2014

in #movie5 years ago (edited)

언젠가 유럽 여행길에 어떤 나라에서 지하철을 내려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다니던 지하철이 갑자기 운행되지 않고 있었다. 파업 중이라 언제 운행될지 모르니 버스를 이용하라고 했다. 대체 인력도 없었다. 지하철은 아예 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그들에게 파업이란 그냥 당연한 권리같은 것이어서 "뭐 내가 지하철 관계자는 아니지만 할 만 하니까 하는거야”란 반응이었다. 거기에 "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느냐"이런 느낌을 주는 사람들은 없었다. 뭐 물론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도 내가 알아듣지 못했겠지만.

유모차를 힘들게 끌고 계단을 한참 내려온 젊은 엄마들과 헤비급 시장바구니를 양손 가득 든 시민들도 투덜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냥 “아 그래요?”란 반응이었다. 캐리어를 끌고 같은 계단을 내려온 몇몇 해외의 여행객들만이 자신들의 신을 찾으며 (OMG) 탄식하긴 했다. 돌이켜보면 씩씩거리며 누구에게 하는지도 모를 불평을 터뜨리며 가장 열받고 있는 건 바로 나, 그리고 함께 간 친구였던 것 같다.

어느날은 한 때 한국은행 앞 쯤에서 택시를 탔던 기억이 있다. 무슨 곡물값과 관련된 집회였던 것 같은데 한쪽 도로를 점령하고 진행을 하고 있으니 한쪽 차선의 두 개의 차로로 그렇지 않아도 밀리는 차도로를 운행하는 참이었다. 택시기사는 연신 투덜거리며 집회를 할려면 자신이 운행하지 않는 시간에 달리고, 주동자(?)만 대통령을 만나서 담판을 지으면 되지 왜 길거리에서 자동차 운행에 지장을 주느냐고 투덜거리며 연신 “저런 것들 때문에 나라가 이꼴”이라며 우리에게 동의를 구했다.

나는 속으로 "더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 보통사람들의 집회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그저 웃고 말았다. 싸우기도 싫고, 그래봐야 뭐하나 싶고, 사실은 다툴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나와 함께 타고 있던 지인은 참지 않았다. 택시기사님에게 “당신도 이렇게 어렵게 살면서 왜 말하고 싶어서 생업을 중지하고 서울까지 올라와서 집회하는 사람들을 핀잔하느냐, 당신이 힘들고 어려울 때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면 얼마나 억울하겠냐”고 한마디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분이 나빠진 우리는 내려서 걸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같이 싸우지 못했지만 지인의 말에 내심 후련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은 누구나 때로 거대한 벽 앞에서 억울함을 당하지만, 그럴 때 주변을 돌아보면 아무도 그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함께 사는 사람이 주변에 이렇게 많은데도 왜 그들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을까. 귀찬아서이고, 어떻게 도와야할 지 몰라서고, 나도 바빠서고, 또 함께 억울해질까 두려워서겠지. 그래서 점점 더 가족중심이 되고 연고주의적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내 주변 챙기기도 어려운데 사실 누구를 선뜻 돕겠는가. 또 도우라고 종요할 수 있겠으며, 돕지 않는다고 나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카트'란 영화는 해를 넘겨 무려 510일만에 노사가 타결을 보았던 2007년 ‘홈에버 투쟁’을 다룬 영화다. 송곳이란 웹툰과 동명 드라마의 배경도 이 이야기와 동일 사건이다. 노조가 어떻게 결성되고, 서민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실상을 보여주는 영화 카트는 사실 불편한 진실을 다루고 있다. 그냥 모르고, 혹은 무시하고 지나치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땅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각각의 자전적 이야기다.

영화를 본 후에 마트에서 일하는 분들이 남달라 보인다는 평도 있지만, 사실 마트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언제쯤 우리는 내 가족, 내 친구가 아니어도 함께 같은 시간대를 살아가는 이웃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함께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그저 그 막연한 질문만 남긴 영화. 그래서 추천한다.

참, 사족이지만, 이런 거대기업의 횡포에는 각자의 불매운동만큼 무서운 힘도 없다. 자본주의에서 소비자 한 사람의 힘은 의외로 막강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의 장면들은 상당수 연출이겠지만, 저 사건에서 피해를 보고 힘들었을 실제 주인공들의 용기와 고난에 대해 찬사와 공감을 바친다.


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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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영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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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본적인 생활마저 위협하며, 기업의 이윤 극대화를 해오는 자본주의의 민낯은,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네요.
택시업계 역시, 생존권을 주장하며 길을 막고 농성을 벌이는데, 그 기사님,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네요.

송곳, 그리고 영화 카트. 이런 작품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거대한 자본과 권력으로 사회를 통제하고, 말 잘 듣는 노예양성을 위한, 기계화된 교육 시스템이 아닌,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진짜 세상에 대한 통찰을 할 수 있는 그런 작품 말이죠.

네 정말 불편해도 이런 영화들을 통해서 인식조차 못하고 있던 우리 사회의 많은 단면들이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그걸 바라보는 시각은 각자의 몫이지만 최소한 그런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는 있어야 하니까요.

어떤 일이든 사람을 만나지 않는 일이 없어서인지 이제는 대부분 감정노동을 하다보니 모두가 조금씩만 배려하고 이해하면 다같이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텐데 라는 파란마음 하얀마음 이런 생각을 해보네요.
사회전반의 시스템의 문제로 서로 다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

그러게 말입니다. 모두 모두 행복하지는 못해도 억울해서 거대세력과 싸워야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작은 관심이 참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

내 일이 아니니까 그 많은 부담감을 안고 나서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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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잘 사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네 그런 세상을 기대해봅니다.

왜 잘못도 없는 엄마가 철장에 갇혀있어야 하는지...
내심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는 아이들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함께 사는 가족들조차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내 주변에서 잃어나는 일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ㅠㅠ

팥쥐님 영화 보신 것 같군요. 영화 보고 마음이 많이 무거웠어요. ㅠ

우리 사회가 공감하려는 마음이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너무 경쟁 구도로 내몰려서 그런가 봐요.
기회되면 영화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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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경쟁은 더 잘하기 위해 필요한건데 그것에 내몰리는 현실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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