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19 꿈과 음악 사이 어딘가]'나의 드라마, 나의 아저씨'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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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

평소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는다. 때문에 주로 종영 후 다시 찾아 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 늘 어떤 계기가 필요했다. 그게 별 볼일 없는 계기라 해도 말이다. 내가 놓친 좋은 드라마들도 많을 거고 추천받은 좋은 드라마들도 많았지만 그렇게 별 볼일 없는 계기로 만난 모두가 예외없이 다 인생 드라마가 되었다. '네 멋대로 해라'가 그랬고, '연애시대'가 그랬다. 드라마도 인연이 있는 것이다.

반듯하면서 말끔한 이미지의 정해인은 '건축학개론'의 이제훈을 떠오르게 했고 손예진은 내게 '연애시대'의 은호 이후 정극배우로 기억되는 배우. 한창 꽁냥꽁냥대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인기가 화제가 되면서 상대적으로 '나의 아저씨'는 얘기가 많이 오가지 않는 모양새였다. 그렇게 대세를 따라 클립영상을 통해 '밥 잘 얻어먹는 예쁜 누나'를 섭렵해 나가던 중 마주친 댓글고백.

"정해인보다 '나의 아저씨' 이선균이 훨씬 좋아요."

개인의 취향이야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정해인같은 남자스타일을 호감형으로 보는데 주저하지 않을거란 생각과 게다가 아저씨인데?라며 갸웃거리기를 잠시, 언제 한번 '나의 아저씨'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넘어갔었다. (정작 '밥 사주는 누나'는 공식적인 연애를 시작하면서 흥미를 잃어버렸다)

16화를 정주행한 후, 엄마 손을 놓쳐버린 세살짜리 어린 아이가 된 듯 계속해서 장면장면들을 다시금 재생하며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던 엄마를 찾는 심정. 이 드라마에서 받은 위로와 안도가 얼마나 큰 것인지 보여주는 반증이다. 이만큼이나 상실감이 크다니. 신기할 노릇. 여운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여러번을 다시 플레이해봐도 '나의 아저씨'만큼 더 좋은 제목을 찾지 못하겠다. '나의'에 담겨 있는 대상에 대한 애정과 사랑은 다른 어떤 말로도 대체될 수 없으니. 어린 시절 한번쯤은 다들 그려보았을 그림. 세모와 네모를 붙인 집에 창문을 그리고 뜨문뜨문 초록색 잔디를 그리고 엄마, 아빠, 동생을 그린다. 그림은 완성되었고 그림의 제목은 '나의 가족'

아이유.jpg

상속 포기를 몰라 어머니가 이곳저곳에 진 빚을 그대로 물려받은 아이유의 본명(이지은)과 비슷한 이름의 '이지안'은 유독 지독하게 지안과 지안의 할머니를 괴롭히던 한 사채업자가 어김없이 할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어느 날, 그를 살해하고 만다. 정당방위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법은 그 아이에게 죄가 없다 공표해도 그 사실을 들은 어떤 사람도 '지안'과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렇게 누구도 4번 이상 도와주는 일 없이 기초수급자로써 요양병원비까지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음에도 사채빚과 요양병원비까지 버느라 뼈가 부셔질 듯 일만하는 '지안'.

까뮈의 '이방인'에서 '실존주의'니 뭐니 어려운 말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건 수많은 편견과 맞서 싸워나가는 현장이고 문학과 마찬가지로 드라마도 그런 세상과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지 않을까. 사람들은 어느새 뫼르소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죄목보다 어떻게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그리 무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잣대를 들이대고 그로인해 그를 사형시켜야할 인간으로 단정 짓는다. 강렬한 햇살 때문에 방아쇠를 당겼다 하여 그가 극악한 살인마가 아니듯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에 대해 슬픔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았다고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선균1.jpg

삼형제 중 유일하게 직장생활을 이어나가며 형에게 어머니 장례식에 올 손님들을 위해 절대 회사를 나와서는 안된다는 얘기를 듣는 '박동훈'. 회사 대표이사가 자신을 짤라내기 위한 계략을 세워도, 와이프가 바람을 피는 사실을 알게 되도 불평, 불만 한마디 없이 어머니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기 위해 미련스러울 만큼 묵묵히 가정과 직장을 지킨다. 그런 둘째가 유독 더 신경이 쓰이는 어머니는 다른 형제들이 시기할만큼 둘째를 챙긴다. 심신이 지칠 때면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간 절친 상원을 찾는 것과 후계조기축구회 회원들과 술을 마시는 것이 유일한 낙인 남자.

'나의 아저씨'는 24살이나 어린 '지안'이 자신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많은 '나의 아저씨' '동훈'이 안스러워 동훈의 행복을 위해 동훈에게 닥쳐오는 모든 시련들을 온 몸으로 막아내는 드라마다. '지안'에게 '동훈'은 태어나 처음으로 '지안'을 살아 있게 해준 사람이자 유일하게 4번 이상 그녀를 도와준 사람이다. '동훈'에게 '지안'은 죽어 살아가는 동훈을 살려준 사람이자 유일하게 함께 밥과 술을 먹는 여자사람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불쌍히 여겨 건네는 위로와 응원 가운데 두 사람은 누구 하나가 행복하지 않은 것을 견딜 수 없을 만큼 마음 아파하는 사이가 된다. 그런 두사람을 지켜보는 정작 위로 받는 건 우리들.

https://tv.naver.com/v/3230036

'내가 행복하게 사는 걸 보여주지 못하면 넌 계속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할거고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너 생각하면 나도 마음 아파 못살거고.
그러니까 봐. 어? 봐, 내가 어떻게 행복하게 사나 꼭 봐.
다 아무것도 아니야.
쪽팔린거? 인생 망가졌다고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거?
다 아무것도 아니야.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나 안 망가져. 행복할거야. 행복할께.

'아저씨가 정말로 행복했으면 했어요.'

'어. 행복할께.'

엔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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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angjjangman 태그 사용시 댓글을 남깁니다.)
호출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계기야 막상 접하게 되면
'뭐였더라..?'싶을 만큼 단순한 경우가 많이 있죠..
저도 그렇고요..

신문으로 얼핏 소개된 듯 되지 않은 듯한
스쳐지나가면서 알게 된 드라마인데..

이렇게 님의 글을 통해서 알아가네요...

사람하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것도
사람이고 그런 와중에서도 구사일생하게 만드는것도
사람이구나 라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 하네요;;;

결국에는 다 사람때문에 울고 웃는거겠죠. 못 보셨으면 한번 꼭 보시길 권해드리고 싶네요.^^

드라마와의 인연이라.. 정말 그런거 같아요ㅎㅎ 저는 신사의 품격이 아직도 안 잊혀지네요ㅋㅋㅋ

신사의 품격도 추천받았었는데 인연이 안 닿았네요.ㅎㅎ

주저없이 올해의 드라마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나의 아저씨' ^^
골목길에서 '술한잔 사죠' 하는 지안을 마주칠것 같습니다 ㅎ

인생 드라마로 등극입니다!ㅎㅎ

이거 아직 못봤는데,,
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아직 못 보고 있네요..ㅠ
우리 아이유 봐야 하는데 ㅋㅋ

저도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결국 멈추지 못하고 쭉~ 정주행했네요.ㅎㅎ

저도 드라마 잘 안보는데 나의 아저씨는 정말 잘.봤.습.니.다. 제 포스팅에도 여러번 언급할 정도로 최고의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네멋대로 해라도 좋아했는데. 연애시대는 본다본다 하고 아직도 못 봤네요. 드라마 리뷰를 담담한 어조로 굉장히 잘 써주셔서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습니다.

연애시대도 강추입니다!^^

지금 1화 시작했어요! 오호! 시작이 산뜻하니 재밌네요 ㅎㅎ

"나의 아저씨" 제목 때문에 말이 많아 안봤었는데
친구의 추천으로 시작하게 되어 끝까지 달린 명품 드라마.
정말 안봤으면 어쩔뻔했어!! 싶은 드라마.
어느 캐릭터 하나 버릴 수 없는 드라마.
저도 여운이 참 길었는데..
드라마보면서 "좋은 어른"이 된다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많이 깨닫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글 읽으니 다시 생각나네요 😊

동감입니다. 좋은 사람, 좋은 어른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들더라구요.^^

힐링드라마라는건 나의 아저씨같은 드라마를 두고 하는 말이죠. 저도 보면서 참 많은 위안을 받았습니다. 이상한 드라마들도 많지만 이렇게 잘 만든 '작품' 때문에 드라마를 아마도 끊을 수 없는가 봅니다.

한동안은 계속 돌려보게 될 거 같아요. 더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네요.^^

짱짱맨 호출로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스티미언분들 나의 아저씨 후기를 찾아다니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넘 좋네요 ^^
글도 넘 잘 쓰셔서 정말 잘봤습니다. 저에게도 인생드라마이고 평생 기억에 남을 거 같아요..그 만큼 많이 보기도 했구.ㅎㅎ

생방이 끝나고 한발 늦게 시청해 공감할 사람이 없었는데 이렇게들 같이 공감해주셔서 감동이 배가 되는 듯 하네요.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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