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숲] 무엇이 비정상인가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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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대나무숲


어제 나의 좋은 이웃 @thelump님이 일기를 썼다.

그래서 플래너를 샀다. 프랭클린 플래너. 비싸더라. 저번 주에 만난 친구가 11년째 이걸 쓰고 있다고 해서 당장 샀다. [...] 그리고 빈 칸에는 짤막한 일기를 몇번 써 봤다. 그런데 이거 해방이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될 유치찬란하고 오글거리는 짤막한 글쓰기가 이렇게 좋은 것일 줄이야. 여기가 대나무숲이네. 당분간, 아니 오래오래 플래너를 쓸 것만 같다.

그래, 나도 대나무숲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thelump님처럼 플래너에 내 언어를 해방시키기에는, 손이 둔해 펜을 쥐고 종이에 글을 적는 행위가 무척이나 번거롭다. 그리고 어느정도는 관심 종자의 기질이 있기 때문에 누구도 아무도 보지 않는 글은 무언가 싱겁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나는 이 스팀잇 블로그 공간을 대나무숲 삼아 글을 하나 끄적여 볼까 한다. 어차피 @thelump님 같이 거의 실명을 공개하고 쓰는 블로그도 아니고, 익명으로 활동하는 곳인데, 내 마음을 조금 쏟아낸들 어떠하랴. 본래 나는 내 블로그에 잡다한 주제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정도는 예외로 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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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 그놈의 빨갱이


이제 내가 소리칠 내용은 다분히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나는 그동안 여러모로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어왔고, 친구들과 자조적으로 서로 빨갱이라 부르기도 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 당연히 스팀잇에도 나를 빨갱이라는 원색적인, 말그대로 원색적인 비난을 할 사람들이 있으리라. 어제 올라온 @noctisk님의 에서도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었다.

어디선가 스팀잇은 '좌파들의 블록체인'이라며 '능력도 없고 할 것도 없는 이들이 남탓 하며 좌빨질 하는 곳'이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들의 기준에서라면 나는 곧 '좌빨질'을 시작할 것이다. 이 선언은 글을 쓰는 이가 글을 읽는 이에게 보내는 일종의 배려이다. 뻔히 보는 빨간 글이라고 생각하는 이에게 더 이상 읽지 않고 뒤로 돌아갈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반발의 감정이 끓어오르기 전에 여러분은 여기에서 멈출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는 스스로를 빨갱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나는 어떤 급진적인 사회를 희망하는 혁명가였던 적이 없다. 부르주아를 때려잡아 프롤레타리아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고, 누군가를 적으로 규정해 축출해 내야한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다. 다만 사회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닳고 닳아 무뎌진 감수성을 아직은 가지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아직은 조금씩 앞으로 더 이상(理想)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믿을 뿐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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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오크러시


2006년 개봉한 코미디 영화 『이디오크러시』는 사회풍자적 내용으로 유명하다. 주인공인 조 바우어(루크 윌슨 扮)는 모든 지표가 평균적인 인간으로서 냉동 수면 실험에 참가하게 되고, 이 실험이 잘못되면서 500년 뒤에 깨어난다. 똑똑한 사람은 아이를 낳지 않고, 멍청한 사람은 아이를 많이 낳으며, 500년 뒤의 인류는 지적으로 퇴행한 상태였다. 조 바우어는 일약 인류를 구원할 천재로 떠오른다.

그리고 미국의 대통령은 조 바우어에게 토지의 황폐화와 그에 따른 식량난 문제를 맡긴다. 그는 백악관에서 탈출하여 도망가던 중 이 식량난의 원인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식물에게 물이 아닌, 브라운도라는 이온음료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황당한 이 광경에 바우어는 장관이 되어 토양에 물을 줄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이디오크러시』의 해학이 등장한다. 바우어의 정책에 수많은 군중이 모여 반대 집회를 시작한다. 브라운도를 생산하는 기업은 미국 사회를 떠받히는 독점 대기업이었고, 바우어의 조치에 기업의 주가가 하락하며 수많은 실직자가 양산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계속하여 브라운도로 작물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화는 결국 주인공이 옳았음이 증명되며 사람들의 호응을 받으며 마무리 되지만, 정상과 비정상의 대립이 보여주는 아찔함은 우리의 현실을 절묘하게 풍자한다.

무엇이 비정상인가


그제는 @oldstone님이 적은 요즘 경제 돌아가는 상황을 들었다라는 글을 보았다. 후배와 나눈 대화를 일기처럼 적은 글이었다.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등장한다.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최악의 상황이라고 한다. 신문에서 본 이야기지만 실제 사업을 하는 친구에게 들으니 더욱 실감이 갔다.

원인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최저임금 때문이라고 한다.

최저 임금이 올라가면서 아르바이트를 쓰는 가게들이 매우 어려워졌단다. 그래서 고용하는 사람의 숫자를 줄이고 고용시간도 단축한다고 한다. 식당의 경우 점심때 문을 열었다가 다시 몇시간 동안 문을 닫고 다시 저녁에 문을 여는 식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24시간 편의점들도 이제는 야간에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 늘어나고 있단다. 예전에는 본사에서 24시간 영업을 요구했으나 이제는 편의점들이 사정상 하기 어렵다고 하면 받아 준다고 한다. 인건비가 비싸서 잘못하다가는 폐업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

지금까지의 최저임금인상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받은 계층은 개인사업자들이었단다. 그다음에는 아르바이트 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개인사업자들은 3명하던 아르바이트를 2명으로 줄이고 10시간 쓰던 것을 4시간씩 두번 나누어 고용한단다. 그래서 그런지 4시쯤 갑자기 김밥먹고 싶어서 나갔더니 문을 닫았다.

결국 최저임금인상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후배의 결론이었다. 저는 과거에 최저임금 좀 올리라고 핏대를 세웠던 적이 있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주변에 이러한 생각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 상승이 가져오는 효과에 대하여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들이 주장하는 직접적인 수익성의 타격이 실재한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주장에서 『이디오크러시』의 반대 집회 장면이 겹쳐 보인다. 과연 무엇이 비정상인가? 농지에 물이 아닌 이온음료를 부어 작물을 망치는 것이 비정상인가, 아니면 이온음료의 용수를 막아 이온음료 사업에 얽힌 수익성을 망치는 것이 비정상인가?

물가상승률을 따르지 못하는 임금상승률로 심화된 부의 양극화와 너도나도 뛰어든 자영업으로 갈라진 파이 조각, 노동자가 아닌 임대업자가 꿈이 된 세태, 낮은 인건비로 쉽게 24시 운영이 가능한 것이 비정상인가, 아니면 최저임금이 올라 자영업자의 수익이 줄어드는 것이 비정상인가?

원인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최저임금 때문이 아닌 높은 임대료와 비정상적으로 많은 자영엽 경쟁자 때문이라고 말해야 옳지 않은가. 왜 자신이 착취하는 개인은 조정 가능한 변수로 취급하면서 자신을 착취하는 개인은 변화시키면 안되는 상수로 취급하려 하는가.

나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으로 이에 대비하기 어려운 소상공인의 피해를 최소화 해야하며, 부동산 가격의 연착륙와 아울러 조화롭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같은 목적 의식을 공유하는 사람으로서 적극 공감할 수 있지만, 다짜고짜 최저임금의 상승을 문제로 지적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정상을 심화시키는데 일조하는 사람들의 주장에는 결코 공감할 수 없다.

대체 무엇이 비정상인가. 우리는 이 비정상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면 안되는걸까.

지금 나는 대나무숲 안에서 나의 목청을 높이고 있다. 나는 소리만 지르고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 대나무를 깎아 죽창을 만들 것인가. 여기서 하나의 새로운 고민을 남기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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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근무 처럼.조금씩.정착해.나가야.하는데

그렇네요. 주5일제도 사실 당연한게 아니었죠. 너무 급하게만 안갔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경기 좋다최저임금을 올려주었던가? 생각해 보면 그런 적은 없고 연례행사로 10%대 이상을 올리고(그것도 민주정부시절) 노동력을 최대한 적게 주려고 하는 국회의원들은 그들이 임금은 최고로 받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국민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라고 하고 그들의 힘든 생활은 그들의 최저임금에라도 매달려 살아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고 뒷짐을 지고 그들의 삶을 보면서 즐기는 군상들이 대부분입니다. 국회의원들의 임금을 국민이 개입하여야 겠습니다.

올바른 정치 참여와 올바른 투표로 조금씩 사회를 개선시켜 나갈 수 있다고 믿어 봅니다.

우리가 참여하여 조금씩 바꾸어야합니다.

어려운 길이지만 죽창을 만들어야죠..스팀에서 활동하는 것도 죽창을 만드는 방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 용기있고, 자기 확신이 강하지 않아서 걱정입니다ㅎㅎ

죽창 만들어 휘둘러두시죠.(죽창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헉시 지대넓얇 애청자셨나요?) 저는 맨 앞에서 활개치는 아방가르드는 못되어도, 뒤에 숨어서 크게 소리는 지를 수 있습니다 ㅎㅎ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이 이렇게 많고, 초딩의 꿈(뿐만이겠습니까..)이 건물주라는 사실만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지대넓얇은 보지 못했습니다. 대나무숲에서 연상된 비유일 뿐입니다ㅎㅎ

비정상을 인식하고 해결해나가야겠지요
생각해보면 문제는 간단한데 다른걸로 문제로 치부하는 불편한 진실..

생각해보면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또 생각해보면 매우 복잡하기도 하고 그러네요ㅎㅎ

같은 문제를 어떻게(어디에 중점을 더 두고) 보느냐를 결정하는 성향은 어느 정도 결정된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적어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보는 성향이 좀 다르리라 생각이 되는데, 뭐 어떤 경우에도 솔직한 토로는 필요하고 또 보기도 좋다고 생각하기에 응원합니다. ㅎㅎ

감사합니다ㅎㅎ 실제로 만나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서로의 의견에 잘 공감하고 인정하고 조율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어느것 하나를 꼭찝어 누군가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대화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건비 안 나가는 자영업자가 많고 그것도 임대비나 카드수수료 등이 더 큰 부담일텐데, 만만한 인건비를 트집잡는 것 같습니다.
죽창을 마련하긴 해야 할텐데 어렵네요...

정말 어려운 문제죠ㅎㅎ

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노동자의 임금만 가지고 논하는것은 문제가 있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참 어려운것 같습니다ㅠㅠ

맞습니다. 그 또한 문제겠지만 그것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일자리가 적으니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아질 수 밖에 없고, 그 문제를 해소하려면 국가 경제 전반을 살펴야 하죠. 단순히 최저임금을 올리는건,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 합니다.

동의합니다. 최저임금인상이 모든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키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부도 전반적인 조율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하나 건드리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 소득 격차의 해소 차원에서 시도해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편협한 시각으로 보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또 이해합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에 대한 다른 논리적 해석을 제시하면 그에 대해 고민해보는 자세도 필요하겠지요. 비정상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 끝없이 분석하고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

원인에 대한 고민과 논의는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애초에 문제의식이 다른 경우에는 대화가 조금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저는 문제의식이 다를 경우에도 서로 대화를 통해 그 접점을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언급하신 분이 그런 분인지 아닌지 저는 잘 모르는 분이라... 대화가 통했으면 좋겠어요. sleeprince 님은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하시는 분이니 대화가 잘 통할텐데 말이죠 :)

대부분은 잘 통합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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