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5] 노키아의 전철을 밟은 블랙베리

in #kr6 years ago

국내에서는 일부 사용자를 확보하는데 그쳤지만, 캐나다 스마트폰 제조사 RIM의 블랙베리(차후 회사명 자체도 블랙베리로 개명한다.)는 한때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오바마폰'으로 불리며 북미 스마트폰 시장을 지배했었다. 1999년 첫 선을 보인 블랙베리는 2009년까지 북미 스마트폰 시장의 51%를 차지하며 미래가 보장된 회사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뒤 5년 후에는 시가총액이 1/20으로 떨어지고 결국 북미지역에서 진행된 정보통신 부문 인수합병(M&A) 중 기록적인 헐값이라는 수모를 겪으며 매각하게 된다. 노키아가 휴대폰 시장에서 그랬듯이 RIM의 블랙베리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동일한 몰락을 겪게 된다. 양사의 실패 사례는 터치 인터페이스가 가져올 파괴적 혁신에 대해서 지나치게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터치 인터페이스 자체만으로 시장에서 커다란 파괴력을 가졌다고 볼 수는 없다. 터치 인터페이스와 기반이 되는 스마트폰 OS, 그리고 이를 이용하게 만드는 수많은 앱들의 접점인 앱스토어라는 인터페이스가 등장하면서 그 파급력이 거대해졌다.

블랙베리는 PC에서 사용하는 자판과 동일한 배치의 쿼티 키보드 하드웨어를 내장하고 이메일, 메시징 앱 등이 내장되어 있었다. 일반 휴대폰도 점차 기술이 발전하면서 WAP(Wireless Application Protocol)이라는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텍스트와 저용량의 이미지로 구현된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또한 심비안 같은 휴대폰 OS와 다른 OS들이 등장하면서 메일 어플리케이션이 내장되어 메일을 확인하고 작성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메일을 작성하거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전화를 걸기 위해 마련된 숫자키 기반의 인터페이스로는 충분하지 못했다. 이에 착안하여 블랙베리는 익숙한 키보드(비록 크기가 작았지만)를 축소시켜 휴대폰 하단에 장착함으로써 보다 빠르고 쉽게 타이핑이 가능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해줬다. 이를 통해서 직장인들 사이에는 쉽고 빠르게 회사 메일을 확인하고 답장을 보낼 수 있었으며, 뛰어난 메시징 앱을 통해서 어디서나 쉽게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전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편리한 기능과 뛰어난 보안성을 이유로 블랙베리를 사용하면서 블랙베리는 직장인들이 빠른 업무처리를 위해서 가지고 다니게 되면서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잡게 된다.

블랙베리는 이메일, 인터넷, 메시징 등 스마트폰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기능들을 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창기 스마트폰으로 분류가 되며,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50%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그 후 5년만에 매각되기 까지 블랙베리는 하드웨어에 집중하는 전략을 취한다. 블랙베리의 공동 창업자인 짐 발리시와 마이크 라자리디스는 아이폰을 장난감으로 표현하며 조롱하기도 했다. 이는 노키아도 비슷했다. 당시에 휴대폰 시장과 스마트폰 시장의 선두기업들은 아이폰이 하드웨어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며 일종의 장난감으로, 취미 생활로 즐기는 일부의 사람만이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화면 전체가 터치 스크린으로 떨어지면 깨지기 쉽고, 이미 핸드폰과 블랙베리에 익숙한 사람들이 결코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스티브 잡스조차도 아이폰 출시 시에 그렇게 폭발적인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아이폰의 성공과 앱스토어의 등장으로 블랙베리는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여기에 더해서 안드로이드가 무료를 무기로 핸드폰 개발사에 보급되면서 안드로이드 진영이 성장하면서 블랙베리의 OS는 스마트폰 OS로서 생명이 꺼져가는 상태였다. 당시에 블랙베리는 지나치게 하드웨어 중심의 전략으로 스마트폰 시장이 터치 인터페이스 중심의 소프트웨어 시대로 넘어가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물론 블랙베리에게 기회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의사결정자들이 잘못된 판단으로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블랙베리는 노키아와 마찬가지로 자사의 OS를 지나치게 오랜시간 동안 시장에 안착시키려고 노력을 한다. 스마트폰 OS가 핸드폰 OS처럼 쉽게 빠르게 개발할 수 없었다는 점을 인지했다면 블랙베리의 전략은 바뀌었을 수도 있다. 애플의 iOS는 애플의 정책이 그렇듯이 다른 회사가 라이센스해서 사용할 수 없었다. 이에 반해서 구글의 안드로이드는 어느 회사나 라이센스해서 스마트폰을 제조할 수 있도록 오픈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국내의 삼성과 LG의 사례를 생각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삼성은 핸드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시장이 개편되는 것을 인식하면서 빠르게 자사의 OS 개발과 동시에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채용하여 갤럭시라는 브랜드로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어서 세계 1위의 스마트폰 제조사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에 반해서 LG는 노키아나 블랙베리처럼 기존에 성공에 만족하고 스마트폰 시장에 늦게 뛰어들면서 현재는 몇 년간 적자가 누적되어 사업의 존립자체가 위협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노키아나 블랙베리가 삼성과 같은 전략을 취했다면 현재 어떤 위치에 있었을까?

블랙베리의 실수 중 하나는 자신의 강점인 하드웨어 쿼티 키보드 인터페이스를 너무 쉽게 포기한 점도 있다. 애플은 미국 거대 통신사인 AT&T와 독점적으로 아이폰을 공급하고 있었다. 이에 경쟁사인 버라이존은 터치 인터페이스를 내장한 블랙베리 출시를 요청하여 블랙베리 OS를 멀티터치가 가능하도록 업그레이드하여 출시하게 된다. 당시의 블랙베리의 명성은 편리한 키보드 인터페이스로 인한 것이었는데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블랙베리의 충성 고객들마저 등을 돌리게 만들어 버린다. 뿐만 아니라 아이폰을 모방하여 급하게 블랙베리 OS에 추가한 멀티터치 기능은 많은 버그를 일으키며 버라이즌에서 반품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블랙베리는 자사의 강점인 하드웨어 인터페이스도 살리지 못하고, 멀티 터치를 지원하는 터치 인터페이스도 블랙베리 OS의 버그로 인해서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게 되면서 시장에서 완전히 외면받게 된다.

2011년 블랙베리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짐 바실리는 블랙베리의 강점 중 하나인 실시간 메신저 BBM (BlackBerry Messenger)를 다른 기기에 개방하는 것을 구상한다. BBM은 카카오톡이나 라인, 왓츠앱과 같은 모바일 앱의 초기 버전과 같은 제품이다. 이를 외부에 공개한다는 것은 BBM을 다른 제조사에게 제공하고 인터페이스함으로써 거대한 메신저 연합군을 만드는 것과 같다. BBM은 카카오톡이나 라인처럼 사용하기 쉽고 안정성과 보안성도 높았다. 블랙베리에 있어서는 킬러앱과 같은 존재였으며 유료로 서비스 하고 있었다. 블랙베리는 BBM을 통해서 1천억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으며 이익률은 무려 90%에 달했다. 바실리는 당시에 메신저 시장이 성장 가능성을 예측하고, 이통사와 제휴하여 BBM을 무료로 전환하고 이통사와는 데이터 요금 등의 수익을 나누는 전략을 취하고자 했다. SMS의 서비스를 대체하여 BBM으로 메시지 서비스 2.0을 등장시키고자 노력을 한 것으로 일부 이통사에는 이에 동의를 했다. 그렇지만 블랙베리 내부에서는 수익성이 포기할 수 없다는 경영진의 의견과 공동창업자인 라자리디스의 하드웨어 중심 전략에 따라서 결국 이사회에서 승인을 얻지 못하게 된다. 짐 바실리는 이 사건이후로 블랙베리의 주식을 전량 매각하고 회사를 떠나고 만다.

블랙베리는 자사의 OS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2013년 블랙베리 10이라는 자사의 OS에 전면 터치 인터페이스를 내장한 제품을 출시한다. 기능적인 면이나 OS적인 면이나 그리 나쁘지 않은 제품이었지만, 시장에서는 외변받고 블랙베리의 약 1조에 달하는 적자를 안겨주는 제품이 되고 만다. 분석가들은 블랙베리 10이 2011년 정도에 출시 되었다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출시가 늦어진 2013년에는 iOS와 안드로이드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BBM 도 같은 전철을 밟게 된다. BBM을 iOS와 안드로이드 앱으로 출시하여 시장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지만 이미 시장은 왓츠앱과 같은 메신저 앱들이 시장을 선점한 상태였으며 안정성마저 블랙베리에서 실행되던 것과는 차이가 있어 점차로 잊혀져 가는 앱이 되고 만다. 카카오톡이나 라인과 같이 메신저 앱이 성공을 생각해보면, BBM 인터페이스를 외부에 공개하고 무료로 전환하여 많은 사람이 이용하게 하겠다는 생각은 분명 뛰어난 아이디어였다. 만일 짐 바실리의 의견이 받아들야졌다면, 카카오톡 같은 앱은 스마트폰 시대에 생겨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블랙베리 입장에서는 하드웨어 중심 전략과 BBM의 수익성을 포기하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블랙베리는 BBM 인터페이스 공유를 통해서 부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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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립니다~~~~많은 분들이 보팅과 팔로우해주셨네요.

@shinss61님 안녕하세요. 겨울이 입니다. @floridasnail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홍보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 많이 올릴께요~~~

저도 애용 하던 폰이였는데.. 아쉬웠습니다....

저는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터치보다는 편할 것 같긴 해보였습니다.

알마전까지 클래식과 프리브 직구해서 사용했었지요..
디자인과 쿼티자판이 참 좋았는데..
액정 파손으로 as부분이 안좋아 돌아섰어요.
이제 안드로이드 기반으로 나오니 좋기는 한데..
예전에는 참 답답했지요 ㅎㅎ

지금 디자인과 쿼티 자판은 괜찮은 인터페이스같습니다.
아이폰만 사용해서 아직 구매까지 이어지지는 않네요...

오! IT기업 이야기 너무 재밌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계속 연재할 예정입니다. 5장까지 집필했는데, 내용 수정하면서 올릴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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