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4] 스티브 잡스의 복귀와 iMac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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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3. 하드웨어 인터페이스경쟁과 델의 혁신
1장2. CPU 전쟁과 인텔 인사이드
1장1. GUI-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모방전략

Prologue2.인터페이스란?
Prologue1.영화적 상상력과 인터페이스


애플을 창업하고 맥킨토시를 개발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쫒겨나게 된다. 이후 NeXT라는 회사를 만들어서 새로운 하드웨어와 OS를 개발을 하지만, 조저한 판매실적으로 소프트웨어 부문만을 남기고 회사를 축소한다. 또한 픽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인 장편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성공시킨다. 스티브 잡스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애플은 리더쉽의 부재로 인해서, 복잡한 제품군과 중복되는 프로젝트들이 늘어남에 따라서 수익성은 악화가 되고 회사가 휘청이게 된다. 이에 애플은 스티브 잡스를 새로운 구원투수로 등장시킨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해서 진행한 일은 성과가 나지 않은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핵심적인 프로젝트 10개만 남기고 나머지 40 여개를 취소시킨 일이다. 또한 복잡한 제품 라인업도 간소화한다. 그 당시 애플은 컴퓨터, 카메라, PDA, 프린터, 모니터 등 40가지가 넘는 제품을 보유하고 있었다. 애플은 같은 컴퓨터 라인업에도 가격과 성능이 다른 수많은 모델을 양산하고 있었고 개별 모델의 차이를 직관적으로 알 수 없어 이를 설명하기 위한 별도의 문서를 제공할 정도였다. 이에 스티브 잡스는 4개의 제품군으로 과감하게 정리해 버린다. 현재까지 애플 제품군의 단숨함과 애플 디자인과 UI의 핵심인 직관적인 단순함이 이 시기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1998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 경영에 복귀한 후에 iMac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파란색 반투명 모니터와 본체가 일체화된 올인원 PC이다. 제품명 iMac에서도 알수 있듯이 인터넷의 i와 맥킨토시의 Mac이 결합된 명칭이다.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보다 인터넷에 초점을 맞춘 PCf로 개발이 되었다. 국내에서는 여러 이유로 iMac이 활발히 보급되지는 않았지만 애플은 iMac의 성공으로 인해서 현재까지 그 지위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에 조나단 아이브 등 애플의 디자인 철학을 완성시킨 디자이너와 재고문제를 해결한 현 애플 CEO 인 팀 쿡 등이 애플의 성공을 이끌어 낸 장본인들이다.

iMac의 성공 요인은 어떤 것이 있을까? 물론 디자인적인 요소를 배제할 수는 없다. 그 동안 업계 관행이던 노란색 본체(대부분의 PC는 비슷한 노란색 또는 검은색 본체를 채용했었다)에서 과감하게 탈피해서 PC가 하나의 인터리어처럼 느끼게 만들어 줬다. 이러한 디자인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을까? 당시 PC가 아무리 가격이 낮아졌다고 해도 예쁜 디자인만으로 성공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애플이 iMac을 출시하면서 강조한 것이 있다. 애플의 광고에서는 그냥 전원선과 인터넷 선만 연결하면 바로 PC와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기존 PC는 구입 후에 본체와 모니터를 연결해야 했으며 각종 장치들을 연결해야만 동작했었다. iMac이야 말로 하드웨어 인터페이스 전쟁의 진정한 승자라고 할 수 있다. 기존에 PC와 모니터를 연결했던 하드웨어 인터페이스를 과감하게 없앴으며, 당연히 올인원 PC 이기 때문에 전원선도 하나면 충분했다. 이외에도 하드웨어 인터페이스를 과감하게 생략해서 일반 사용자가 보다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기존 PC 제조사들은 다양한 하드웨어 인터페이스들이 본체 뒷면을 빼곡히 (가능한한 많이) 채우고 있었다. 전원, 모니터, 프린터를 위한 포트, 시리얼 포트, 마우스, 키보드 포트, 모뎀, 이더넷 포트 그리고 확장성을 위해서 최대한 많은 슬롯들…..PC 제조사들은 일반인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하기보다는 보다 많은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것이 회사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iMac에서는 기존에 존재하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과감하게 삭제해 버렸다. 많은 PC들이 자료를 저장하고 옮기기 위해서 5.25/3.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할 수 있도록 본체 앞면에 제공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모뎀과 이더넷도 자체적으로 내장해서 별도로 구입할 필요성을 제거해버린다. 또한 다양한 외부 장치와의 연결을 USB 포트로 통일해버린다. 당시 USB 기술은 막 도입되어 편리함을 인정받았지만 아직 널리 확산된 인터페이스 규격은 아니었다. iMac 의 성공에 힘입어 USB 규격이 현재와 같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다.

iMac이 등장하기 전에 PC를 사용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학생이나 IT에 관심이 있던 사람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지라도 처음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쉽게 설치해서 쓸 수 있는 기기는 분명 아니었다.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서 새롭게 모뎀이나 네트워크 카드를 구입해야 했고, 본체에 설치하는 작업도 쉽지 않았다. 실제로 구동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 드라이버도 설치해야 했으며 각종 복잡한 세팅을 해야 하는등 부수적으로 해야 하는 작업이 적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최신 사양에 다양한 최신 하드웨어가 구비된 제품을 구매했을지도 모르겠다. 애플 iMac은 일반인들이 하드웨어를 잘 몰라도 인터넷 선과 전원만 연결하면 즉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하드웨어 인터페이스의 승자는 플로피 디스크를 과감하게 삭제해 버리고, 모니터와 본체를 하나로 통합한 애플의 iMac이다. 모니터와 본체를 일체형으로 구성한 것도 하나의 중요한 성공 요인이다. 지금이야 그런 일이 없을지 모르지만, 당시만 해도 모니터와 본체를 연결하지 않거나 모니터의 전원을 연결하지 않고 PC가 동작하지 않는다는 고객 불만이 많이 접수되기도 했다고 한다. 델사는 이에 한장짜리 간단한 안내장을 같이 포장해서 판매함으로써 이러한 고객 불만을 없앨 수 있었다고 한다. 애플의 iMac은 디자인적인 완성도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서 필요한 하드웨어적인 인터페이스를 간소화하고 별도의 설치나 설정이 없이도 즉시 연결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를 구현하여 컴퓨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을 PC 앞으로 끌어들여서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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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플라워파워와 달마시안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기묘해 보였는데 보면 볼수록 정이 가는 모델입니다.
분해 한번 하느라고 애를 먹기도 했었죠.

애플 제품은 분해하기가 쉽지는 않죠. 저는 맥미니 SSD 업글과 아이폰 케이스 자가 교체까지는 해봤습니다.
아이폰 한 대는 거의 사망 직전까지 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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