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인 척]불만분자 연대기-(1)기자가 되던 순간

in #kr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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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shiho입니다. 요즘 이벤트 기사 쓰는 재미에 빠져 허덕이고 있습니다. 저는 그냥 평소 먹고사는대로 작업을 하는데 스티머 여러분 반응이 너무 좋아서 신이 나네요. 지금까지 6꼭지 중 2꼭지를 썼고, @lovehm1223님의 사연을 받아 조금 추가내용을 요청한
상태이며, @kmlee님이 내 준 '도전과제'를 받아 놓은 상태입니다. 두 분 남아있어요. 천천히 주셔요.
오늘은 오랜만에 이벤트를 잠깐 쉬고 '기자인 척' 좀 해보려고 합니다.(흠님 기사를 오늘 올릴 수도 있어요)


처음 기자가 됐던 순간은 초단위로 기억이 난다. 설렁설렁 시험을 보러 다니던 기간이 1년이 넘어가고 집에선 일반 기업에도 원서를 넣어보라며 조금씩 조바심을 내기 시작하던 즈음, 처음으로 필기를 통과해 최종면접까지 갔던 이 회사. 합격하면 입사를 할 것인지, 조금 더 공부를 해볼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합격자 발표날엔 심장이 쪼그라들어 죽을 것 같았다.

언론 지망생 카페에서 보통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발표가 난다는 얘길 보고 아침부터 회사 홈페이지를 얼마나 새로고침했던지... 홈페이지에 합격자는 공고하지 않고 개별 통보 한다는 공지가 떴고 나는 집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왔다 갔다 어쩔줄을 몰랐다. 그걸 보다 못한 어머니는 동생과 함께 나가서 바람이나 쐬라고 하셨다.

동생과 동네 야구연습장에서 거기 있는 모든 공을 아작낼 것처럼 배트를 휘둘러 댔다. 주머니 가득 절그렁거리던 동전이 바닥날 때쯤 동생의 제안으로 마을버스를 타고 동네를 빙빙 돌았다. 발표 시간은 아직 되지 않았지만 초가 지나가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내려 또 거길 뱅뱅 돌았다. 또 잔돈을 바꿔서 오락실에 들어가 미친듯이 게임을 했다. 그러다 발표 예정 시간이 다가왔다.

건물 밖에 나가 담배를 피웠던 걸로 기억한다. 휴대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발표 시간이 됐지만 전화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인사부에 전화를 했다. "발표 난 거지요?" 탈락 사실이라도 빨리 확인해서 이 초조한 시간을 끝내고 싶었다. 그러나 인사부 직원은 "심사가 늦어지고 있어 아직 발표하지 못 했다"고 말했다. 이런 구멍가게 같으니. 이 때 회사 싹수를 보고 입사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지금 번뜩 머리를 스친다. 어쨌든 초조의 시간은 연장됐다. 이렇게 긴장한 적이 있었을까.

정말 1분이 한 시간 같았다. 전화기는 울리지 않았다. 혹시 문자가 왔나 싶어 뒤적여 봤지만 새 메시지는 없었다. 예정됐던 발표 시간을 30분쯤 넘겼을 때 다시 인사부에 전화를 걸었다. 떨어진 게 분명하니 그거라도 확인하자는 생각이었다.

인사부 직원은 "음 문자 통보를 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럼 그렇지. "나는 아무갠데 명단에 없는 게 맞지요?"라고 물었다. 인사부 직원은 "확인해보겠습니다"라고 하더니 명단에서 한 참 내 이름을 찾았다. 또 초시계 소리가 들렸다.

"아, 축하드립니다. 최종합격되셨습니다. 왜 문자가 안 갔을까요?"

뜻밖의 소식에 의식이 흔들렸다. 뭐라고요? 그 사람이 날 합격시켜준 것도 아닌데 그런 것처럼 고맙단 말을 연신 했다. 길바닥에서 동생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고생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나 좋았나보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도 엉엉 울었다. 내가
뭔가 잘 안 되면 그게 될 때까지 잠을 못 주무시는 어머니는 분명 술 먹으러 다니고 연애도 하며 시험을 본 나보다 고생이 많았을 거다. 축하를 받을 어머니가 눈물이 가득한 목소리로 축하를 했다. 회사에서 전화를 받은 아버지도 축하한다면서 말을 잊지 못하셨다. 내가 눈물이 많은 건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를 닮아서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집에 돌아와서 다시 어머니를 끌어안고 감격을 나눴다. 어머니는 그 새 클리넥스를 한 통 다 썼다. 어머니의 눈물엔 감격과 기쁨보다
복받치는 뭔가가 있었다. 그렇게 고생이 많으셨나요.

합격 전의 고민 같은 건 다 잊어버렸다. 합격을 하고 나니 다른 데 시험 볼 생각도 없어졌다. 빨리 취준생 딱지를 떼고 돈을 벌고 싶었다. 후회되는 부분 중 하나지만 타사 필기시험장에서 정말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고 나왔다.

아버지는 비싼 서류가방을 사주셨다. 새 정장도 얻어 입었다. 신입사원 교육을 받으며 기자라는 자부심과 뽕이 가슴에 가득 찼다.

@corn113님의 '취업기'를 읽고 입사하던 순간을 떠올려 봤다. 그 땐 그렇게 좋았는데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이 조직을 좋아하지 않게 됐을까? 왜 이렇게 선배들을 잘 치받기로 유명한 놈이 돼 버렸을까?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며, 내 불평과 불만, 반항의 연대기를 써보려고 한다. 길지 않은 시리즈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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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많은 사람들이 이 포스팅에 관심을 갖고 있나봐요!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shiho The online market place is a wonderful industry for truth of the matter and lies. Now it is actually quite challenging to acknowledge where by the reality is.

시호님의 기자 합격 소식에 집안 식구 모두가 이렇게 기뻐하는 모습이 왠지 뭉클하네요. 저도 모르게 축하 드려요~ 하고 말할 뻔 했네요.ㅎㅎ
그러고 보니 저 취직했을 때는 우리 식구들은 왜 다들 어 그래 하고 말았을 까요.==;;

축하드려요~ ㅋㅋㅋ 맞아요 이미 과거 회상이 분명한걸 아는데도 저도 조마조마 하면서 읽었어요 ㅎㅎ 아마군님은 워낙 능력이 출중하셔서 당연히 붙을줄 아신걸까요? :)

하하.. 그럴리가요. 그만큼 몰입해서 읽은 것 같습니다.^^

헉 그정도로 몰입해주셨다니 ㅋㅋ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박세계님도요 ㅋㅋㅋ

읽다보니, 저도 예전 첫 직장의 입사때가 생각이 나네요~~

ㅋ 전 현 직장이 첫 직장인데.. 첫직장이 끝직장이 될 것인지...

설마 전화로 확인을 안 했다면 그냥 넘어가지는 않았겠지요? 정말 감동이었겠습니다.

절대 못 넘어가죠. ㅋㅋㅋ 근데 아마 떨어졌어도 탈락 문자 왔겠죠?

정말 그 때는 면접도 너무 떨렸고, 긴장해서 버벅댔던 기억이 납니다.
'회사'라는 곳에서 왜 나를 뽑았을까도 생각해 보았던.. ㅎㅎ
그 순간의 떨림을 생각하니 기분이 새롭네요. : )

저는 면접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ㅋㅋㅋㅋ

ㅎㅎㅎㅎㅎ 재미있어요. 요즘 기자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많다는데, 왠지 드라마 주인공 같아요!

긴장과 설렘으로 시작한 어리바리 신입기자는 어느덧 선배들을 치받는 사고뭉치가 돼가는데...

라는 식의 드라마? 절대로 시호기자님이 그렇다는 게 아닙니다! 절대로 절대로 아닙니드아아아! ^^;;

드라마 속 주인공, 현실은 살찌고 늙은 아저씨...

아 ㅎㅎ 그때의 초초함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정말 처음의 감격대로 회사일을 꾸준하게 할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을까요 ㅋㅋ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직장은 없겠죠...

네 ㅎㅎ 맞습니다 ^^ 즐거운 불금 보내세요~~

@shiho I've recognized that when it appears to be like terrible, just stepping absent for your moment would make all the primary difference on the earth.

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벤트 하시느라 고생 많으세요 (토닥토닥) ㅎㅎㅎ
그렇지 않아도 아까 메일 보내고 시호님 기자가 된 이야기 듣고 싶었는데..
오늘 이렇게 올려주셨네요. ㅎㅎㅎㅎㅎㅎ
텔레파시가 통한듯 합니다. ㅎㅎㅎㅎㅎㅎ
시호님이 아버님을 닮아 눈물이 많으셧군요..
어쩐지 댓글에 눈가 촉촉한 이야기를 많이 들은거 같아요.
시호님 기자 이야기는 늘 애정하는 이야기 입니다. ~!!! 오늘도 잘듣고 갑니다.!!!!

ㅋㅋ 오늘 야근이라 기사를 써보려고 했는데 낮에 너무 시달려서 방전이 돼버렸네요. 컨디션 만땅 채워서 써 드릴게요

시호님 너무 무리 하시지 마시구 천천히 써주세여 ~오늘은 불금이니 미뤄 두시구여😁

넹넹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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