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사람들 1
3월 10일은 티베트 민중봉기일이다. 1959년 3월 10일, 중국의 점령하에 자유와 독립을 외치는 티베트 사람들의 목소리가 거리로 쏟아져나왔던 그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티베트는 여전히 점령지이고, 그들의 투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기 때문에 '기념'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겠다.
올해 티베트 로싸(losar 티베트의 설날)에 중국 정부가 라싸 조캉 사원의 화재 사건을 빌미로 대규모 병력을 사원 내부에 배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가오는 민중봉기일을 앞두고, 모든 정치적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할 구실을 만들기 위해 중국 정부가 수를 썼다고 티베트 사람들은 믿고 있다. 티베트를 여행한 다음 해,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있던 2008년의 봄, 목숨을 걸고 자유를 외치던 많은 티베트 사람들이 거리에서 죽어 나가는 모습을 TV에서, 인터넷에서 보았다. 티베트를 여행하는 동안 스쳐 갔던 얼굴들을 떠올리며 처음엔 슬펐고, 나중엔 분노했다.
이 여행기는 그 후로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쓴 것이지만, 다시 3월 10일이 돌아왔고, 나는 마침 다람살라에 있으니, 그 겨울을 떠올리며 다시 이곳에 올려본다.
내일, 거리로 나가봐야겠다.
아직 어둠이 물러나지 않은 이른 새벽, 호텔 건물을 빠져나와 있는 힘을 다해 숨을 들이마셨다. 어둡고 차가운 공기가 한꺼번에 가슴속으로 훅 빨려 들어왔다. 온몸이 한차례 진동하더니 오랜 시간 멈춰있던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듯했다. 시가체로 이동하기 전 라싸에 며칠 머무르는 동안 고도에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뇌는 여전히 아침마다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베이징에서 라싸로 이동하는 칭짱열차 안에서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초코파이 봉지를 보고 깔깔 웃으면서도 내 몸 역시 그 초코파이 봉지와 같은 상태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해발 3000미터라는 수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지 못한 채로 티베트 여행을 시작했으니, 그 무모함의 대가치고는 가벼운 편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이 여행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몸의 모든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그놈의 두통은 사라지질 않았다. 아침마다 찾아오는 두통은 티베트에 대한 두려움도 호기심도 집어삼켜 버렸다.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구걸을 하는 거리의 아이들을 뿌리치며 길을 걷는 일도, 중국어 간판으로 뒤덮인 상점들을 바라보며 밥 먹을 장소를 고르는 일도, 아주 기본적인 여행의 과정들조차도 힘들게 느껴졌다.
평소와 같았다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상황을 파악하느라 분주했을 테지만 타야 할 버스가 어떤 모양인지, 운전기사를 비롯한 다른 일행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었다. 무언가를 살피고 있는듯한 모양새는 애초에 보이지 않는 편이 좋았다. 시가체에서 장무로 이동하기 위해 선택한 버스는 현지인만이 이용할 수 있는 버스였기 때문이다. 라싸에서 만난 한 한국인 아저씨가 중국말을 제법 할 줄 알았는데 그가 중국인 행세를 하고 우리의 표까지 대신 사준 일을 계기로 일행이 되어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버스에 타기 전 아저씨는 버스 안에서는 웬만하면 말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나. 이미 이토록 이방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입 다물고 있는다고 수가 있겠는가 싶었지만, 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버스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보고, 듣고, 생각하는 일 따위가 버거웠다. 이 버스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든 이곳보다는 나은 곳일 것이라고 믿고 있을 뿐이었다.
버스 안에서는 내내 꿈을 꾸고 있었지만, 꿈속에서도 깎아지른 절벽 위에 난 길을 위태롭게 지나고 있었다. 가장 분명한 정신이 가끔 찾아올 때는 무거운 머리를 간신히 들어 올려 창밖의 풍경을 확인하곤 했다. 창밖은 언제나 하얀색이었다. 눈길 위에 종종 바퀴가 헛돌거나 미끄러졌다. 눈길에 미끄러져 버스가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추락해버리는 모습을 떠올리고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버스가 길 위에서 휘청거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며 외마디 비명을 질러대는 내게 아저씨는 유난 떨지 말라며 핀잔을 주었다. 버스 안에서 한국말을 내뱉지 말라고 그렇게 주의를 주더니 한국말로 내게 소리를 지르는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는 좀 별난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여행을 한 탓만으로 돌리기에는 행색이 너무 누추해서 다가가 말을 거는 것조차 망설여질 정도였다. 입 주변과 턱을 뒤덮은 수염 위엔 먼지가 앉아있었고 말을 할 때는 수염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 입술이 쉴 새 없이 달싹거렸다. 곱실거리는 머리카락은 이마에 찰싹 달라붙어 기괴한 낙서처럼 보였다.
실눈을 뜨고 버스 안을 둘러보다가 커다란 자루 안에 담긴 양인지, 염소인지 모를 동물의 뒷다리를 보았다. 털로 뒤덮인 동물은 자루 안에 머리부터 거꾸로 처박혀 허공에 다리 한 짝을 뻗고 있었다. 자루 끝을 꼭 쥐고 있는 노인의 손은 돌덩이처럼 보였다. 이건 꿈인가? 졸리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뇌가 쪼그라들고 있다.
눈 덮인 산길 위를 불안하게 내달리던 버스는 결국 멈춰 섰다. 눈 속에 버스의 뒷바퀴가 파묻혀버린 것이다. 버스는 몇 번이나 거친 엔진 소리를 내며 마지막 힘을 쥐어짜 보았지만 허사였다. 이런 일에는 이력이 난 듯 운전사와 차장(?)과 같은 역할을 하던 여자는 밖으로 나가 뒷바퀴에 쇠사슬을 감기 시작했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승객들도 모두 밖으로 나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 또한 그들을 따랐다. 승객 중 몇몇이 그들의 작업을 돕는 동안 버스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 없는 길을 만들며 달려오고 있었군. 벌게진 두 손을 비비는 운전사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구름처럼 뿜어져 나왔다. 사람들이 눈 속에 처박힌 바퀴와 씨름하는 모습을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던 내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사진이라도 찍어놔요. 이것도 나중엔 좋은 추억이 되겠죠.”
영어로 말을 걸어왔기 때문에 그가 중국사람인지 티베트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추억이 된다는 것일까. 나는 별다른 대답 없이 어색하게 웃어 보이고는 가방 속에 있던 카메라를 꺼내어 아무렇게나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는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싶어 하는 듯했지만 나는 돌아서서 버스에 올라타 버렸다.
자루 속 동물의 뒷다리가 보였다. 머릿속에 남았던 그 장면은 꿈이 아니었다. 자루의 주인인 노인의 표정은 어두웠다. 자루 속의 죽은 동물은 노인에게 아주 의미 있는 것임이 분명하다. 내일 있을 막내딸 결혼 잔치 음식으로 쓰일 동물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막내딸은 이 버스의 종착지인 장무에 살고 있을 테지. 이내 눈 속을 빠져나온 버스는 당분간 앞으로 나아가는 듯 보였다. 버스와 함께 흔들거리며 자루 속 동물의 마지막에 대하여 계속 생각했다. 죽은 동물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계곡 건너편으로 연결된 다리를 건넜고, 버스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버스 안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도착한 마을은 우리의 목적지가 아닌 것 같았다. 승객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리에 앉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한국인 아저씨는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더니 이내 버스 안으로 올라와 우리에게 말했다.
"여긴 니알람이라는 마을인데 버스가 더 갈 수 없다는군. 장무가 코 앞인데 말이야. 길 위의 눈을 치울 때까지는 이곳에 머무르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어."
배낭들은 이미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선뜻 배낭을 집어 들 수가 없었다. 이 상황을 군소리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짧은 순간 고민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배낭을 들어 올렸다. 버스에서 내려 바라본 마을은 눈으로 뒤덮여 한 걸음을 내딛기도 힘들었다. 골목 어귀에 야크 몇 마리만이 눈 속에 얼굴을 파묻고 가만히 주둥이를 오물거리고 있었다.
이 거대한 네발짐승의 몸뚱이에서 움직이는 것은 주둥이뿐이었기 때문에 살아있는 짐승이라기보다는 박제된 동물처럼 보였다. 야크의 커다란 몸집과 양쪽 귀 아래 달린 거대한 뿔이 위협적이었지만 아주 온순한 동물이라는 말을 들었기에 옆에 다가가 서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차가운 공기 덕분에 새빨개진 뺨 옆에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고 있는 사진 속 우리의 모습을 보며 그제야 이곳 ‘니알람’이라는 공간에 대해 실감했다. 생각해보면 산속에 덩그러니 놓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새 어디로 흩어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국인 아저씨는 마을 사람을 붙잡고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누더니 우리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가 찾아낸 숙소의 주인아주머니는 커다란 덩치에 여장부처럼 보이는 강인한 인상을 갖고 있었다. 티베트 전통의상을 입고 있었는데, 추위 때문에 겹겹이 옷을 껴입어 실제보다 훨씬 더 몸이 커 보이는 듯했다. 그녀는 티베트말로, 우리는 한국말로 열심히 떠들어댔지만, 대부분의 의사소통은 표정과 손짓 발짓으로 이루어졌다. 건물의 위층은 주인집 가족의 공간이었고 손님이 지내는 아래층에 마련된 세 개의 방에는 각각 네다섯 개의 침대가 놓여 있었다. 꼬질꼬질 때가 탄 담요와 이불이 침대 위에 쌓여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퀴퀴한 먼지 냄새가 났다. 과연 오늘 밤 이 침대 위에 맘 편히 몸을 뉠 수 있을까 싶었지만 다른 수는 없었다. 티베트를 여행하는 동안 줄곧 나를 지치게 했던 것은 매 순간 ‘별다른 수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덕분에 고민과 선택의 수고를 덜고 있었으니 다행인 일인지도 몰랐다.
주인아주머니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우리의 뜻을 전달하고는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짐을 풀어놓고 밖으로 나갔다.
동네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모든 것이 억지로 숨죽이고 있는듯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마을 중심을 지나는 길거리 곳곳을 일없이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없었지만, 자세히 보면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거리를 따라 늘어선 낮은 콘크리트 건물들이 이 마을의 분위기를 더욱 칙칙하게 만들고 있었다. 창문을 장식한 알록달록한 천들이 바람에 나부꼈다. 자그마한 상점들이 몇 개 보였지만 겉으로 봐서는 무엇을 팔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같은 버스에 타고 있었던 남자가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몸을 잔뜩 웅크리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다가와 말을 걸었다.
“머무를 곳은 찾았어요?”
“네, 저 쪽에.”
“방은 괜찮아요?”
“뭐 그럭저럭.”
“차나 마시러 갈래요?”
“네, 그래요.”
그가 우리를 데리고 들어간 곳 역시 정체불명의 상점 중 하나였다. 플라스틱 의자 위에 쭈그리고 앉아 차를 홀짝이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는 차를 주문했고, 역시나 겹겹이 옷을 껴입어 얼굴의 크기에 비해 몸집이 어마어마하게 커 보이는 티베트 아주머니가 쟁반 위에 차를 내왔다. 우리는 별다른 말 없이 조용히 차를 마셨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벌어진 것에 대하여 짜증을 내거나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체념하고 있었다기보다는 다음 날이면 버스를 타고 눈이 말끔하게 치워진 길 위를 내달려 장무로 향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벽면에 붙어있던 포탈라 궁전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라싸에서 저기 가봤어요.”
그때까지도 중국인인지 티베트인인지 알 수 없었던 그 남자는 깜짝 놀라 두 손을 저으며 말했다.
"손가락으로 그렇게 가리키면 안 돼요. 이렇게 손바닥으로. 신성한 곳이니까."
그는 티베트 사람이었다. 이름은 카르마. 우리는 다시 말이 없었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밖으로 나갔다. 거리 곳곳에 배낭을 짊어진 여행자들 몇 명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우리보다 더 일찍부터 이곳에 고립되어 있던 여행자들이었다.
“버스 왔어요? 언제 출발한대요?”
“아니요. 버스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내일은 꼭 출발할 수 있을 거라고 하긴 하는데......”
“그런데 당신들은 어디로 가려는 거예요?”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내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요. 걸어서라도 가야죠. 별수가 없어요.”
‘별수가 없는 것은 당신들도 마찬가지군요.’라고 생각하고는.
“그래요? 장무까지 걸어서 얼마나 걸리죠?”
“30km 정도. 여기 사람들 말로는 네다섯 시간이면 간다고 하는데......”
“이곳 사람들이야 거의 전문 산악인이니까 하는 말이겠죠. 그냥 길도 아니고 저런 눈길을 어떻게......”
“중간에라도 차가 다닌다면 좋겠지만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죠. 날씨가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고. 그래도 방법이 없어요. 정해진 일정이 있거든요.”
그렇게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별다른 고민 없이 우리도 마을을 떠나기로 하고는 바로 짐을 챙겨 길을 나섰다. 마을을 벗어나 산길에 접어들자 저 멀리 산 중턱에 걸린 구름이 보였다.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구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구름이 아니라 눈보라였다. 절대로 걸어서 장무까지 갈 수 없겠구나. 그런데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걸음을 멈출 의지조차도 없었다. 내 두발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무기력이었다. 그 어떤 고민도, 결정도 유예하고 싶은 무기력 말이다. 그 모든 것이 귀찮았기 때문에 계속 걷고 있을 뿐이었다. 나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인지 뒤따라 오던 아저씨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돌아가자. 이대로 걷는 것은 무리야.”
“괜찮아요. 더 가봐요. 얼마나 걸었다고 벌써 돌아가요? 네다섯 시간이면 도착한다잖아요.”
“여기엔 눈이 내리고 있지 않지만 저길 봐. 눈보라 치는 거 안 보여?”
“그 외국인 무리도 아까 출발한 거 보셨잖아요.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건 계속 걷고 있다는 뜻이겠죠.”
‘별다른 수가 없다’는 사실에 반항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오기를 부리는 내게 그는 버럭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정신 차려! 산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그리고는 우리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말했다.
“내가 장담하지. 한 시간 안에 그 친구들도 다시 마을로 돌아오게 될 거야.”
그리고 30분도 채 더 걷지 못하고 우리는 다시 마을로 돌아와야만 했다. 우리보다 먼저 출발했던 일행들도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저씨 말대로 산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니알람에 ‘진짜로’ 고립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대충 양치질만 하고는 마을 골목으로 나가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오늘은 버스가 출발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오늘 낮에는 갈 수 있을 거래요. 짐 싸놓고 준비하고 있어요.”
아침마다 짐을 쌌고, 그 이후엔 하염없는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주인집 꼬맹이와 시시덕거리거나 눈 덮인 마을 길을 어슬렁거리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아침밥을 먹고, 점심밥을 먹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동네 꼬마들에게 한참 장난을 걸다 돌아와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마을 식당에서는 ‘영어’로 쓰인 ‘여행자를 위한’ 메뉴판을 제공했다. 현지인들의 메뉴판에 적힌 가격보다 비싼 가격이 적혀있는 것 같았지만 쓰여있는 대로 돈을 낼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카르마 씨는 자신이 아는 식당으로 우리를 데려가 ‘달밧’이라는 네팔 음식을 사주기도 했다. 숙소 주인아주머니는 매일 밤 우리를 불러 차를 대접했다. 주인 부부와는 여전히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좁은 방 안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는 그 시간이 좋았다. 일없이 보내는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주인 부부 역시 같은 마음인 것 같았다. 카르마 씨에게 배운 몇 마디 티베트말을 건네면 그들은 깔깔 웃으며 기뻐했다.
닷새째 되는 날 아침, 우리는 어김없이 찻집에 모여 돌아오지 않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샤워는커녕 몇 날 며칠 고양이 세수만 겨우 해오고 있던 우리의 몰골은 이미 봐줄 수 없는 지경이었다. 꼬질꼬질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앞다투어 각자의 바람을 이야기했다.
"카트만두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뜨거운 물로 오래도록 샤워를 해야지."
"하루 세끼 모두 근사한 식당에 가서 먹자."
"카트만두의 태양은 뜨거울 거야. 이 지긋지긋한 눈도, 추위도 곧 안녕이야."
"난 오늘 장무까지 걸어가겠다. 내일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무사히 장무까지 도착한 줄로 알고, 너희들도 출발하도록 해."
고개를 떨구고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던 아저씨의 갑작스러운 선언이었다.
"뭐라고요?"
"바로 짐 챙겨서 떠날 생각이다."
함께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를 말렸다. 그의 결정이 무모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무엇보다도 우리들은 그의 도전이 성공하더라도 절대로 그 뒤를 따르고 싶지 않았다. 곧 버스를 타고 편안하게 장무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한결같은 희망을 이미 저버린 이는 그를 제외하고는 한 명도 없었다.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떠났고, 다음날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엄청 고생하셨네요...
안녕하세요. 계도님! 이렇게 읽는 것이 맞나요? :-) 진짜 고생한 이야기는 다음편에 이어진답니다... 후후...
"계도" 맞아요, 아저씨는 장무에 도착하셨을 지, 일행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지 다음편이 너무 기다려지네요 ^^
내일 다람살라 뉴스와 함께 2편을 올리겠습니당! 들러주세요! :-)
소설 읽는 기분입니다. 항상 재밌게 잘 읽고 있어요.
항상 잊지 않고 들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요. :-D
짱짱맨 태그 사용에 감사드립니다^^
존버앤캘리 이번편은 왠지 찡함..^^
https://steemit.com/kr/@mmcartoon-kr/20180307
[골든티켓x짱짱맨x워니프레임] 10차 옴팡이 이모티콘 증정
https://steemkr.com/kr/@goldenticket/x-x-10-100
항상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치님. :-)
글이 묘한 힘이 있어요.
빠져들게 하네요.
다 읽고 나서도 남은 부분이 또 있나 했을 정도로
팔로우 & 보팅합니다.
안녕하세요, 제이제이님! :-) 제게 강렬한 기억이었던 만큼 글을 통해 제이제이님께 오롯이 전달되었나 봅니다. 전해드릴 수 있어서 정말 기뻐요. 자주 뵈어요. :-)
원원님!
처음으로 불러보네요. 라운드라운드님으로 부르긴 너무 길어요.^^
둥글둥글인가요?
@ystory 님이 꼬옥 가서 보고 친해지길 권해서 왔습니다.
님의 글 보고 느끼는 동안 흉골이 더워지면서 자르르 떨려오네요.
길게 이 마을에서 함께 하고픈 분이군요.
타타님! 타타 원원 입에 짝짝 붙는 것이 아주 좋은데요...? 타타님 마음대로 불러주시면 됩니다. :-) 꼭 붙어있을 마음으로 이 마을에 들어왔으니 자주 뵈어요! 그나저나 어서 와이스토리님께 들러보아야겠네요! :-D
고산병은 금새 적응되었나보지요? 청전스님의 여행기를 읽는 느낌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