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diary] 증명사진을 찍는 일

in #kr6 years ago


원서 접수를 하거나 서류를 만들 일이 있을 때 증명 사진을 찍게 된다. 증명사진을 찍으면 대체로 6-8장 정도는 인화해서 주는 것이 기본이어서, 증명사진이 필요한 다른 일이 일어날 때마다 항상 증명사진을 찍는 것은 아니고, 증명 사진을 다 소진해버렸거나 1-2장 정도만 남게 되었을 때에 새로 찍는다.

나는 사실 증명 사진을 찍는 걸 참 좋아한다. 이건 1-2년에 한번 있는 이벤트이기도 하지만, 조금씩 나이드는 모습을 기록해 놓는 것이 좋다. 나이 드는 게 뭐가 좋냐고 물어본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나이 드는 것보다 그냥 시간의 흐름을 기록한다는 행위 자체가 좋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편할 것이다.

증명사진은 셀카와는 다른 맛이 있다. 셀카는 최대 100 cm 내에서 자신의 고개를 잘 조절하며 렌즈를 바라봐야한다면, 증명사진은 좀 더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지긋하게 응시만 하면 된다. 물론 나는 디옵터 기준으로 상당히 시력이 나쁜편에 속하므로, 눈이 풀린 채 멍한 표정을 짓는 단점이 있지만 아무래도 괜찮다. 사람의 인상이 중요하고, 기록이면 더 할까 싶지만,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 나오는 편을 선호하므로 왠만하면 대충 알아서 해주세요 라는 입장을 취하는 편이다.

심지어 이번에는 그냥 후드티를 입고 찍었다. 머리를 정리하거나 굳이 꾸미지 않았다. 무슨 증명사진에 후드티 같은 걸 입느냐고 하겠지만, 그냥 일상 그대로를 담고 싶었다. 증명 사진이라고 해서 항상 과하게 꾸미고 나보다 나의 200%를 보여주어야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니 짐짓 과장하거나 진짜가 아닌 걸 기록해둔다면 처음에는 보기 좋을지 몰라도 나중에서는 왠지 후회하게 될 것만 같았다. 나는 사진이 찍고 싶은 날 우연히 후드티를 입었던 것 뿐이고 그래서 찍은 것 뿐이기에.

잡히지 않는 흐름이 아쉬워, 흔적이라도 열심히 기록한다고 한다면 그 흔적은 최소한 자신 스스로에게 진실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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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진짜 모습을 담으셨군요! 멋지십니다~

사실 저도 저를 잘 모릅니다 (...)

저도 증명사진 찍는 게 참 좋더라구요. 필요한 일이 없는한 일부러 찾아 찍진 않지만... 그래도 예전 사진을 우연히 볼 때면 여러 생각에 잠기게 되죠.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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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잡히는 사진 감촉을 좋아합니다. 백업-남아있는 느낌이 들어요.

상당히 의미있는 이벤트네요.. 생각치도 못한..ㅎ
요샌 증명사진도 파일로 저장해놓고 쓰는 바람에 전 10년전꺼를 아직도 쓰고 있는데..
세월의 흔적을 자연스런 모습의 증명사진으로 남기는 거 정말 의미있어 보여요.
가득이나 셀카도 안 찍고 어디가서 제 사진도 안 찍으니..ㅎ

나와 관련없는 타인의 객관적인 시선으로의 내 모습을 보게 됩니다. (물론 포토샵이 들어가면 낭패입니다...)

아우 저도 증명사진 찍은지 진짜 오래됐네요~
곧 한번 찍어야겠어요~

주기적으로 찍어두면 괜찮더라고요. 모으는 재미가 있습니다.

qrwerq님 스스로에게 진실한 시작 활동 하고 계신가요~ 새로 쓰신 시가 있을까 해 오랜만에 접속하자마자 들어와봤어요. 자주 들여다보려고 했는데 또 잊고 지내다보면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 어느새 한 해가 끝나가네요.ㅠㅠ

시작은 아직도 제대로 시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를 여기에 올리지는 않기에, 저번 끄적거림 하나 정도는 남아있네요.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많아질수록, 가끔은 날카로움이 뭉뚝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떤 시기에 잡을 수 있는 느낌들이 날아가기 전에, 그 어떤 시기마저 날아가버리기 전에 뭔가를 적어야한다는 압박을 받곤 합니다.

요즘, 쓰기는 잘 되고 계신가요? 항상 응원합니다.

앗 너무나도 공감해요. 어떤 시기에만 잡을 수 있는 느낌이 날아가 버릴까, 종종 애가 타요.
그러거나 말거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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