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essay] 불안의 위임

in #kr6 years ago (edited)

Seoul, Apr. 2018, Nexus 5x


나에게 있어 발을 디디는 곳이 흔들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싫은 일이다. 나는 내가 땅에 딛고 서있는 균형과 안정의 느낌을 정말로 좋아하기 때문에, 이러한 느낌이 잘 들지 않는 발판을 밟거나 지나가게 되면 상당히 불안해하는 편이다. 나는 비행기를 탈 때에도 기체가 요동치거나 쑥-하고 내려가는 느낌을 정말로 싫어한다. 좋아하지 않는다보다 싫어한다는 표현이 더 맞다. 위험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예기불안 같은 것이 찾아오곤 한다.

나는 공사장 가건물의 철판을 디디면서 애초에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한다. 물론 내가 발을 내려놓고 난 뒤 약간의 휘청임을 감지하기 하기도 하기에 이러한 다짐은 쉽게 깨어지는 편이다. 특히나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도 같이 서있거나 걷게 되면 불안은 증가한다. 철판의 이음새가 혹시 잘 마무리 되어있지 않을지 걱정한다. 충격량과 공명 진동수를 생각한다. 뉴스에서 간혹 보던 불운한 사고를 떠올린다. 이러한 생각들이 마음속을 휘감으면 나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살금살금 걷기 시작한다. 혹시 나의 몸을 지탱할 수 있는 것은 없나 찾기도 한다. 불안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놀이기구를 타는 것도 나에게는 참 힘든 일이다. 나는 좌우로 움직이는 것들은 잘 타는데, 상하로 움직이는 것들에 대해서는 정말로 어렵다.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으로부터 내가 나를 제어할 수 없다는 불안까지 도달한다. 한번 롤러코스터를 타고 나서, 나는 우주 여행은 가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SF영화에 으레 등장하듯, 원심력을 이용한 가상의 중력을 만든다면야 조금 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위험의 냄새를 맡는 순간 나는 으레 그렇듯이 불안에 휩싸일 것이다.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덜 불행한 사람은, 오로지 자신의 탓만으로 불행해진 사람이라고. 자신의 선택만으로 불행해진 사람이 있다면, 정말로 그는 복받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이라 생각하면 억울할 일도 없는 것이다. 문제는 종종 내가 의도하지 않고 내가 예측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일어나곤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애초에 내가 사회에서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전혀 없는, 그리고 다른 사람이 생성해놓은 결과물을 이용하지 않고 살지 않는 한, 온전한 나의 탓으로 불행해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불안을 어떻게 하면 위임할 수 있을까 고심한다. 사실 너무도 당연하게 내가 가지고 있는 위험의 가능성은 누군가가 이미 먼저 고려했을 것이다. 공사장에서의 가건물에 대한 안전은 내가 아니라 이를 설계하고 구축한 사람들의 몫이다. 비행기 운항에 대한 안전은 비행기를 제작한 제조사와 운항을 책임지는 조종사, 그리고 비행기들의 노선이 엉키지 않도록 조율하는 관제탑의 몫이다. 나는 그들이 역할을 잘 수행해주었기를, 잘 유지해주기를 믿으면 되는 것이다. 믿지 않으면 어찌할 도리가 없기도 하고 말이다.

내 삶의 일부를 그들에게 맡기는 만큼, 그들도 나의 믿음을 잘 알아주기를 기대한다. 우리의 믿음을 소중히 다루어주기를 소망한다. 내가 어떤 사람들의 불안을 대신 다루고 고민하는 만큼, 어떤 사람들도 나의 불안을 잘 다루어주었으면 좋겠다.

Sort:  

오로지 자신의 탓으로만 불행해진 사람...
어쩌면 탓할 누군가가 없어서 더 외롭고 쓸쓸할 것 같아요..
비난할 누군가가 있다면...차라리 위로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조금은 비겁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러게요. 더 외롭고 쓸쓸한 존재란 생각이 드네요.
'비난'하지 않더라도 '탓'을 하면서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살아갈 힘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한 시선도 있을 수 있겠네요. 위로의 측면에서 '탓'이라, 곰곰히 한번 생각해봅니다. 믿음과 탓이라, 어쩌면 불가분의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믿지 않으면 어찌할 도리가 없기도 하고 말이다.

사회적인 믿음은 암묵적인 믿음이란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 암묵적인 믿음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란 생각도 들구요.

저도 말씀 주신 관점에 무척 동의합니다. 이러한 믿음이 깨어지는 여러 사고들이 존재하기도 했고, 이러한 믿음에 대해 불신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아파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믿음과 그에 대한 결과가 너무나 당연해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암묵"의 가치에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됩니다.

자신을 탓하는 사람은 , 자기 책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 자신을 바꾸고 개선하는 사람이고 그러면 나아가는 사람이고...불행해질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잘 읽었습니다 .

주체적 삶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세계가 결국 세상을 대하는 시선이자, 자신의 세계를 스스로 조형하는만큼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결국 모두 성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도 글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같이 성장해야만합니다. 그리스도는 네 이웃을 네몸으로서 사랑하라고 했는데요. 좋은 하루 되세요

땅이 흔들리는 '지진'을 처음 경험했을 때 너무 놀랐어요. 발딛고 있는 존재의 기반이 흔들린다는 느낌은 존재 자체가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져서일까요?

정확히 그러한 느낌인 것 같습니다. 기반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저로서는 상상하기 좀 어렵습니다. 사실 저는 크게 지진을 겪은 적이 없어서, 지진을 심하게 겪으면 어떠한 불안이 엄습해올지 짐작만 할 뿐입니다. (비행기를 탄 상황에서 무척 요동치는 기분일까요.) 엄청 놀라셨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20
TRX 0.15
JST 0.029
BTC 63725.17
ETH 2619.74
USDT 1.00
SBD 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