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시(詩)에 대한 상념 - 대학시절

in #kr7 years ago (edited)


나의 대학시절에는
낭만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모두들 꿈과 사랑을 외쳤고
나는 어딘지 동떨어진 세계의 사람 같았다.

내가 이 나날들 동안 배운게 있다면
포근함 대신 외로움을
설렘 대신 그리움을
그리고 그들을 잘 견디어 내는 방법.

그동안 난 무얼 찾고 있었을까.
마음에 지독하게 스며드는 상실감은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새겨놓지 않은 채 스쳐보낸 어떤 존재가 있었나 보다.
기다림을 뒤로한 채 눈을 감아버린 어떤 때가 있었나 보다.

나는 무엇을 잃어버린걸까.


오래전에 적었던 글 하나를 들추어보았다. 지금 다시 보기에는 사실 좀 부끄러운 글이지만, 나는 그 당시에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그렇게 밝게 생활했던 녀석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의 대학 시절을 떠올리면, 그 나이대의 어설픔과 풋풋함도 물론 지니고 있었겠지만 (정말 그랬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잿빛 같았던 이방인의 삶이 먼저 떠오르곤 한다.


나는 기형도 선생님의 시(詩) 중에서 대학시절 이라는 시를 참 좋아한다. 기형도 선생님을 생각하면, 무릇 질투는 나의 힘이나 먼지 투성이의 푸른 종이에서의 유명한 문구가 떠오르는 것이 당연할테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선생님의 시 "질투는 나의 힘" 중에서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기형도 선생님의 시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중에서

이렇게 강렬한 문구들이 시선을 사로잡기도 한다. 젊은 나이에 요절하신 것이 무척 안타까운 선생님이기도 하다.


여하튼, 나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형도 선생님의 시를 말하라 하면, 단연코 대학시절을 이야기할 것이다. 80년대의 사회상이 지금의 사회상과는 다를지라도, 버려진 책들이 가득한 숲 속에서 플라톤을 읽을 때마다 총성이 울곤 했다는 문구에, 은백양의 숲은 사실 잿빛 숲이었고 눈 앞에서 실체화되지 않았지만 나를 에워싼 총성은 무릇 사회와 현실의 무게로부터 오는 파열음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그 것이 파열음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했었지만.

나의 이십대 초반의 기억은 마치 박제된 스무살과 같은 것이어서, 막막함과 먹먹함 사이쯤 마음이 치달았었다. 햇살이 가득한 4월, 학교 식당 한 구석에서 꾸역꾸역 밥을 먹으면서, 그래도 사람이니 배고프면 밥은 넘어가는구나 하며 숨을 죽이곤 했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학교 캠퍼스에 들러 밝은 웃음을 짓고 있는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밝은 웃음 뒤에 숨어 있는 쳐진 어깨나, 눈 앞에 보이는 그들을 넘어서서 투명 인간과 같이 잘 드러나지 않는 다른 친구들의 존재를 상상하고 떠올리곤 한다. 내가 상상하는 그들을 대학에서 볼 수 있든 그렇지 못하든 말이다.

이제 나이를 조금 먹은 지금에 있어서는, 그 때의 그 시절들을 드디어 웃으면서 떠올리며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넘길 수 있게 되었지만, 답답한 허공에서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던 이십대의 생채기를 기억하며, 지독하게 치열한 통과의례를 겪고 있을 수많은 이십대 - 과거의 나 자신을 포함하여 - 위로와 박수를 보낸다.

기형도 선생님의 빈집의 문구를 인용하며, 이 두서없는 글을 마치고자 한다. 오늘따라 잿빛 하늘과 함께 비가 오기에 그냥 한번 적어보고 싶었다. 어딘지 침잠하는 기분이 흡사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나에게 대학시절과 이십대는 뗄레야 뗄수가 없었기에.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기형도 선생님의 시, 빈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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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한 번만 적어보고 갈게요.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종종 좋은 시를 그대로 필사(筆寫)해보고나 소리내어 읽어보곤 합니다. 꼭꼭 씹어 삼키는 느낌이 들어서 좋을 때가 있습니다. 이십대 초반을 겪어보니, 내려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음을, 그리고 지금에서야 내려놓음이 다행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Upvoted ☝ Have a great day!

기형도 시인의 빈집..
제가 자주 떠올리는 시인데 이곳에서 만나니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잿빛 대학시절을 건너
qrwerq님 지금은 어떤 색의 삶을 살아가고 계신가요?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라며 다소 강하게 시작하는 이 시는 너무도 애틋합니다. 이 시가 선생님께서 남긴 마지막 시였다는 것에 저로서는 - 누구나 죽음을 예감하지는 못했겠지만 - "빈집"이 가진 무게가 좀 더 절절하게 다가오곤 합니다.

제가 스스로 바라보는 지금, 여기의 삶의 색깔은 보라색인 것 같습니다. 동이 트기 전의 새벽이거나, 달이 비추기 전의 어스름 저녁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삶의 색을 물어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스로 한번 돌아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저에게도 참 와닿는 시구네요. 조심스럽게 댓글을 달게 되네요. 스무살이란 시도
넘어가 읽어보았어요. 이십대 초반 막막함과 먹먹함 사이에 머무는 마음에 공감하지만 어설픈 말이 실례가 될까 싶어 말들을 삼킵니다

저도 그 문구를 매우 좋아합니다. 기형도 선생님의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사실 버릴 것이 없습니다. 시가 어렵게 느껴지신다는 분들도 아마 좀 더 쉽게 접하실 수 있으면서도 그 것은 정말 그 것이다 우리가 그동한 보지 못하였을 뿐이라는 단순한 울림이 강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여백이, 여러 단어의 말보다 더 가까이 닿는 경우가 있습니다. 찬찬히 깊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읽고 스무살 때의 저를 되짚어봤어요. 그때의 저는... 점점 사회를 알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남들이 보는 저를 의식하기 시작했고, 제가 원하는 삶의 모습과 제가 얻지 못할 삶의 모습을 알아가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움츠러들었어요. 물론 그러한 제 모습을 감추기 위해 겉으로는 더 밝고 당당하게 행동했지만... 음 모르겠어요. 제가 기억하는 제 모습이 진짜인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나는 종종 학교 캠퍼스에 들러 밝은 웃음을 짓고 있는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밝은 웃음 뒤에 숨어 있는 쳐진 어깨나, 눈 앞에 보이는 그들을 넘어서서 투명 인간과 같이 잘 드러나지 않는 다른 친구들의 존재를 상상하고 떠올리곤 한다.

여기서 나오는 '친구들'이 저를 지칭하는 것 같아서 움찔하게 됩니다 ^^;

스무살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울타리를 벗어나 시작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나이 숫자로서의 스무살이 아니라, 세상의 충격을 차츰 받아들이고 견디어내야하는 단계로서의 스무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가지의 모습이 모두 진짜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누구나 각자의 다양한 페르소나(persona)를 가지고 있고, 그건 견고하게 직조된 사회적 관계에서 생존하는 데에 필수적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페르소나가 너무도 팽창하여 자아를 잠식하는 경우도 있어랬습니다. 버리는 연습은 언제나 익숙하지 않더군요. 스무살을 종종 사람들은 꿈과 희망과 청춘의 시작으로 지칭하곤 하지만, 한 겹 벗겨내고 나면, 날 것을 들여다보면 항상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젊을 때가 좋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니라는 이야기를 건네는 것에 대해 상당히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종종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일 수 있으며, 그 것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채워나가는 데에 무척 힘이 들 것이라는 것 또한 짐작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짐작이라고 적은 이유는, 저로서는 모든 개별적 삶을 오롯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

저도 종종 스스로 움찔합니다. 회상과 기억이 그래서 무섭습니다.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입’은 한국 집 어딘가에 아직도 있을거에요. 갈 때마다 찾아본다는게 잊고 오고 하네요. 저도 너무 좋아했어요 그 시들... 제 대학시절이 생각이 나네요...

기형도 선생님의 시는 언제나 얼핏보면 감상적이지만 힘이 있는 울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선생님의 시집이 한 권만 세상에 나온지라 너무 아쉽기도 합니다. 사실 이 작품들은 요즈음의 젊은 시인들의 세계에도 아마 상당히 영향을 끼쳤을겁니다. 그 당시에도 워낙 센세이셔널 했을테니까요.

그와 별개로, 친구에게 처음 접하고 제 대학 시절 내내 제 머릿속을 지배했던 세계이기도 합니다. 종종 꺼내어보고 읽고 떠올리곤 합니다. 저에게는 거울 같은 문장들입니다.

리스팀을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정말 멋있는 분이였군요.
감사합니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것 같은 글입니다.

제가 그렇게 엄청 멋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냥 하루하루 평범에 가깝게 살아가고자 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전에는 정말 멋있게 살고 싶었는데, 요즘에는 평범하게 살아내기도 어려운 나날들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말이지요. 저는 사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더욱 좋습니다. 하지만 아플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덜 아픈 것이 그나마 낫겠지요. 대신 아파해줄 수는 없겠지만, 혼자만 아픈 건 아니었다는 말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감성들, 그리고 이런 감성이 닮긴 글을 정말 오랜만에 읽습니다. 팔로우합니다.

감성들이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겪어온 시기에 대해 그냥 눈을 감으려고 하지는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와 같은 이야기로 비추어지지 않도록 항상 조심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겪은 삶과 상대방이 겪은 (겪을) 삶은 애초에 다를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겪은 삶의 일부와, 상대방이 겪은 (겪을) 삶의 일부의 접점을 찾고자 합니다. 그리고 저의 경험을 단지 이야기할 뿐입니다. 저로서는, 상대방을 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종종 들르겠습니다.

무엇이든 밝은 모습만 앞으로 내어놓았던 저의 대학시절이 떠오르네요. 어둡고 쳐진모습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걸 잎으로 드러내고 마주하면 아플 것 같은 두려움이었던 것 같네요.
너무 가라앉지는 마시길..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

조금더 머리가 굵어진 지금에도, 직면하는 것은 저에게 언제나 힘든 일입니다. 저도 대학시절에는 밝은 면을 보여야 제 자신이 스스로 밝아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허나 마음 속 대극은 심화되었던 것 같습니다.

침잠하다보면 언젠가 떠오를 날이 있다고 믿습니다. 마음의 바닥에 닿으면 힘 주어 박차 오를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아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의 저 문구... 제 삶과는 완전 대척점에 있네요... 그래서 운문에 감응하지 못하나 봅니다.

옛날에 융 선생님께서 이르시길, 대극(opposition)은 통한다고 하였으니 언젠가 한번쯤은 닿지 않으실까 하고 조심스레 짐작해봅니다. 저도 어떨 때는 철저하게 분석적으로 사고하곤 해서요 :)

그리고 아마 (상당히 난해하긴 하지만) 이상(李箱) 선생님의 방향을 좀 더 재미있어 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음.... 한번쯤 푹 여유를 가지고 빠져보고 싶긴 하군요... 사실 어린 시절 문학을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된다고 쪼이는 바람에 자발적으로 멀리한 케이스라ㅠㅠ

어떤 시(詩)들은 정말로 비문학처럼 분석적으로 읽어내야하기도 합니다. (문학/비문학으로 어떤 글을 가르는 게 참 이상하긴 한데, 여튼 우선은 이렇게 적어둡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떠한 작품이나 글이든, 결국 누가 어떻게 읽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입장이긴 합니다.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게다가 쓰는 순간 텍스트에 대한 해석은 작가로부터도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서요
여튼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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