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werq, photo] 용산 전자상가

in #kr6 years ago

한 때 헐리우드 키드 사이언스 키드의 생애와 같은 글을 읽으며 키즈와 같은 BBS에서 비비질을 할 때가 있었다. 이렇게 적어놓으니 정말로 고루한 세대인 것 같지만, 그 당시 사용 연령 기준으로 보았을 때 나는 무척 어렸을 것이다. WWW가 어느정도 대중화된 이후에도 투박한 텔넷(telnet)화면이 주는 정갈한 느낌은 잊기 어려웠기에 가끔씩 종종 접속하곤 했다. 하지만 어느샌가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더이상 신경쓸 여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칠 시점을 정하지 못한 채 그만 두게 되었다.

용산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웹이 널리 보급되기 전, 용산은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의 던전 장이었다. 발품을 팔수록 부품이나 패키지 게임 등을 더 좋은 조건에 구매할 수 있었고 잡지에서만 보던 장비나 소프트웨어를 실제로 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물론 세진컴퓨터랜드 같은 백화점식 깔끔한 매장이 존재하기도 했지만 용산의 그 거친(?) 환경에 숨겨져 있는 다양한 재미 포인트들을 생각해보았을 때, 직접 발로 뛰어다니지 않아도 되는 매장은 편리함만을 제공해주었을 뿐 발견과 노고에 대한 과실의 가치를 가르치지는 못했던 것이다.





Seoul, Aug. 2018, Nexus 5x.


지금은 크고 거대한 호텔이 되어 연결도 편리해졌으나, 예전 터미널 전자상가 쪽은 나진이나 선인상가와 다르게 좀 더 깊숙하게 숨겨진 느낌이 들었었다. 나는 용산관광버스터미널 세대는 아니어서, 터미널 전자상가 이전의 터미널의 모습은 잘 상상이 되지 않지만 용산의 예전 분위기를 생각해봤을 때 무척 복작거리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Seoul, Aug. 2018, Nexus 5x.


최근에는 용산을 직접 들러서 부품을 구매할 일이 거의 없다. 그런 경향이 지속된지는 사실 상당히 오래되었다. 인터넷과 택배 서비스가 잘 발달되어서 (너무나 빠르게 주문을 받고 배송하는 시스템에 익숙해져버려서) 별일 없다면 굳이 오프라인으로 들를 이유가 없다. 상점들도 이걸 잘 알아서 예전보다 호객행위는 많이 줄어들었다. (애초에 사람이 줄어들었으니 뭐.)





Seoul, Aug. 2018, Nexus 5x.


신용산역에서 용산 전자상가쪽으로 나오는 굴다리 안에는 가판이 즐비했었다. 그것도 벌써 10년이 더 된 이야기.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었다"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越えたら、そこは雪國だった) 와 같은 문장은 "긴 굴다리를 빠져나오니, 용산이었다" 정도로 느껴졌을만큼 어둡고 침침한 굴다리를 지나면서 걸을 때에는 설렘 반 기묘함 반 이었다. 그 때 무수히 지나다녔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더이상 걷고 둘러볼 필요가 없어진 세상에서, 반복하는 건 과거 자신의 행동 양식 뿐일지도 모른다.


하긴 땡비가 떠난지도 이젠 15년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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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형 2400mnp 모뎀에 ISDN으로 하던 BBS 시절도 아련하죠^^;

집이 맨날 통화중이었다지요. 카랑카랑한 접속음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정액제에서 종량제로 전화요금 제도에 변화가 있던 어느날, 아버지께서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이야기를 좀 해보라는데, .... 전화요금 폭탄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었던 ....

예전에 3일정도 전화 불통을 만들어놨던 것을 생각하면 (...)ㅎㅎ

제 친구는 얼마전 다시 용산으로 돌아왔어요 ㅎ

아. 그러시군요. 삭막해진 지금이 오히려 이제는 기회의 땅이려나요?ㅎ 최근에 보니 이런 기사도 눈에 띠기는 하네요- 열기가 식었을 때 사실 단단해지는 법이라...

무슨 총질하는 게임인가 순간 생각을...사실 지금도 비비질이 정확히 뭐인지는ㅎㅎ

텍스트 창 기반으로 전자 게시판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BBS + 질의 합성어로 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직도 선인상가랑 뒤쪽 골목골목 돌아보면 예전 모습이 보이긴하지만, 용산역에서 나가자마자 앞쪽에 도깨비시장이랑 나머지 던전들이 죽은 걸 보면.. 확실히 변하긴 많이 변했어요.
랜드시네마도 지금은 롯데시네마가 됐고..

그렇게 북적북적대던 용산이 지금처럼 변할줄 누가 알았겠습니까ㅠ 어느샌가부터 주말에는 평일보다 더 한산해졌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정말로 던전 느낌이 났었는데 말이에요. (저는 상인들 이외에도, 삥뜯기는 것도 조심해야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긴 선인이나 나진 상가 건물을 보면, 그 입지에 이제는 꽤 낮고 허름한 건물들이 되었기는 하지요.

세진컴퓨터랜드도 오랜만에 기억하게 되는 이름입니다.
너무나 빨리 모든 것이 명멸하는 시대....

잊혀진 이름과 회사가 상당히 많아졌죠. 생애도 빨리 지나쳐가지 않도록 꼭 붙잡고 싶은 요즘입니다.

머드게임을 처음봤을때의 충격이 떠오릅니다...
안좋은 쪽으로요-ㅅ-ㅋㅋㅋㅋ
오락실 게임을 주로 해서
글자만 쭉쭉 올라오는 게임에 충격을 적잖이 받았었죠.

이게 게임이라고?!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사실 충격이긴 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래픽머드와 같은 바람의 나라 정도면 할만 했던 것 같습니다. :)

제가 처음 본 머드는 쥬라기 공원이었던 것 같은데...
바람의 나라와는 꽤 시차가 있었죠? ㅎㅎ

그정도면 좀 더 과거이긴 하네요ㅎ 저는 쥬라기공원 말고 단땅이 좀 더 친숙하긴 합니다ㅋ

세진이라는 이름 오랜만이네요. 어릴땐 동네마다 하나씩 지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과거의 용산을 향유한 세대는 아니지만, 과거의 용산전자상가의 역할이 지금과는 조금 다른 듯 해요. 지금은 그 역할을 세운상가 같은 곳에서 새롭게 시도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하고요.

문어발식 확장의 대명사였죠. 경영 측면에서는 외부로 공격적이긴 했으나 내부로는 그리 좋지 못했던 듯 합니다. 아마 여러 전자상가들에게는 새로운 역할이 기대되는 시대가 될 것 같습니다. 세운상가가 과연 과거 청계천 고가도로 상점들의 명성을 찾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다른 종류의 명성을 추구해야할까요? 저도 사실 잘 모르겠네요.

상업적인 측면에서 세운상가를 이야기한 것은 아니에요 ㅎㅎ 전혀 다른 형태를 띄고 있으니까요. 뭔가 그 시절의 무어든 만들어낼법했던 로망들이 만들어는 과적같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비교를 한 것인데, 형태나 행보가 전혀 달라서 비유가 좀 애매할 수 있겠네요 ㅎㅎ;;

무슨 의미로 말씀주신건지 이해합니다ㅎ 제가 기술한 방식에서, 두 가지 (세진, 용산) 이야기가 짧게 섞여 있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세운상가는 일종의 혁신의 아이콘으로 기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을지로 주변은 매우 많이 변화할 것 같습니다.

첫 문단은 아예 이해가 안 가요. 애들한테 맨날 '이거 정말 몰라???'하며 놀라다가 이 글을 보니 젊어진 기분이 들어요. ㅎㅎ

어렸을 땐 지방에 살았기 때문에, 낙원상가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검색 한 번으로 찾을 수 있던 시기가 아니어서, 그 환상은 끝없이 커졌어요. '음악 하는 사람은 낙원상가에 가야 해'라는 말을 들었고, 그래서 낙원상가에 가면 세상 모든 기타가 다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리고선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가보게 되었죠. 호객이 가득했던 낙원상가는 제 생각보다 훨씬 더 초라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용산에 대한 기억을 공유할 순 없었지만, 글을 읽으며 그 기억이 문득 떠올랐어요.

다행인가요? :) 대중적인 문화는 아니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왠지 @ab7b13 님께서 낙원상가에 가지고 계신 느낌이, 제가 용산 전자상가에 가지고 있는 느낌과 비슷한 지점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초라함 이라는 것은 성장의 이면에 있는 감정 같아요. 성장하고 있지 않으면 별 것 아니게 된 것들에 대해 초라함을 느끼기는 쉽지 않을테니까요-

또 오랜만입니다 :)
굴다리를 지나면서 걸을 때의 설렘. 저는 전자기판 들고 세운상가 오가던 때가 생각나네요.

궤적과 자취가 녹아있다는 것은 언제나 신기한 일입니다. 가끔은 거리에 카메라를 놓고 그 궤적들을 샅샅하게 기록해두고 싶은 감정이 들 때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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