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직업이 되면] #3. 처음 한국을 떠나

in #kr7 years ago (edited)

“우리 학교도 어학연수가 생겼더라. 한번 가볼까?”

학교생활에 익숙해질 때쯤,
친구 한 놈이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그때 당시 대학생활의 트렌드 중 하나가 바로 어학연수였다.
영어는 무조건 공부해야 한다는 사회분위기에 전국의 대학생들이 휩싸여 한번쯤은 다녀오는 게 평준화되었고 실로 전공에 따라 취업에도 영향을 주었다. 학비와 체류비용이 들긴 했지만 학점 대체가 가능하여 한 학기를 해외에서 이수할 수 있는 큰 메리트가 우릴 유혹했다. 더군다나 아직 한국을 떠나본 적이 없었기에 설렐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학과에 머물렀다면 영어공부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 같지만 관광학과에선 외국어가 필수가 아닌가! 조금 양념이 더해진 자기합리화는 어학연수를 결정하는데 한몫했다. 단기간의 여행이 아닌 반년 가까이를 낯선 이국땅에서 살아가며 영어공부까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눈뜨고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한껏 부푼 마음과 함께 날아간 곳은
필리핀의 네그로스 섬에 있는

바콜로드라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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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사람들의 생활만족도가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평온하고 범죄가 적은 교육도시다.
타지에서 처음 보냈던 하루의 느낌은 뭐랄까. 일단 평생 느껴보지 못한 더위와 20년 이상 익숙했던 음식에서 벗어나 필리핀 음식을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몸이 거부하여 며칠은 정말 고생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정말 며칠만 고생했다.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 마냥, 더위도 음식도 일상까지 너무나도 쉽게 익숙해져 버렸다. 그 과정의 중심에 호기심이 없었더라면 익숙해지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평소에도 집에 가만히 있는 것보단 활동적인 걸 좋아해서 집 밖이라도 자주 산책을 하곤 하는데 해외라고 예외는 없었다. 틈만 나면 기숙사 밖으로 나가 싸돌아다녔다.

슈퍼에도 가고,
약국에도 가고,
현지 식당도 가고,
백화점, 수영장, 재래시장, 공원까지
눈에 보이는 건 한번쯤은 다 발도장을 찍었다.
걷다가 지칠 때쯤이면 택시를 타고 기숙사로 복귀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같이 생활하는 현지인처럼 자연스럽게 일상에 녹아져 있었다.


타지의 일상을 여행하다 어느덧 나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머릿속에 도시의 모든 것이 그려지기 시작했을 때쯤 조금 더 멀리 여행을 가보기로 했다. 지금은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졌지만 현지에 있을 때만 해도 그저 평범한 섬이었던 보홀(Bohol). 아직도 여행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숨은 휴양지인 시팔라이(Sipalay)는 여행이기에 자유로울 수 있음을 한 층 더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여행지였다.

어학연수를 끝마치며 나 자신에게 되물었다.
연수과정에서 어떤 경험이 가장 도움이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한 끝에 돌아온 건,
현지인의 일상을 내 것처럼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라는 대답이었다.

옛 말에

"어학연수 가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놀아?"
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핀잔이 아니다.

오히려 "어학연수 가면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공부해라"
라는 말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현지인의 일상에 자신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외국어도 부쩍 늘어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스파르타식 교육보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교육 커리큘럼을 선택하는 걸 개인적으로 선호한다. 만약 외국어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결국은 전자가 후자보다, 삶에 필요한 견문을 넓히기에 도움이 된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아무런 걱정 없이 행복했던 바콜로드의 일상.

가끔 그리워 사진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그곳.

이 글을 쓰는 오늘은 그때의 그리움을 여행하며 하루를 보낼 것만 같다.



[여행이 직업이 되면]


#1. 나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https://steemit.com/venti/@munhwan/6fdtqr
#2. 관광 학도가 되기로 결심하다.
https://steemit.com/kr/@munhwan/36mmzq
#3. 처음 한국을 떠나
https://steemit.com/kr/@munhwa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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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콜로드 그립네요 2년전에 잠시 어학연수로 갔었는데 정말 잘 놀다 온 기억이 ㅎㅎ

오옷. 바콜로드를 다녀오셨다니! 전 9년전인데 2년전의 바콜로드의 모습이 궁금해지네요^^

저도 필리핀으로 인턴다녀왔는데 바랐던 영어공부보다는 다른 경험들을 더 많이 하고 돌아온 것 같아요 마닐라로 갔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열악해서 놀랐지만 사람들이 참 좋고 따뜻했던 기억이 나요 ㅎㅎ 바다나 섬들도 참 좋았고요!:)

그럼요! 어학연수는 영어말고도 배울 게 너무나 많죠. 물론 개인이 취하는 자세에 따라 다르다고 봅니다. 필리핀의 관광자원은 아직도 무긍무진하다고 봐요.

맞는 말씀이네요. 해외를 다녀오면 그게 어떤 목적이었든 견문을 넓힐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안녕하세요~ @jaykim99님 놀러오셨네요~ 앞으로 자주 봬요! 말씀대로 여행은 견문을 넓히게 해줍니다. 요즘엔 반복된 일상으로 인한 지친 피곤함에 탈피구로 인식이 잡혀있는게 다소 아쉽게 느껴집니다. 여행 자체만으로의 의미가 정말 다양한데 말이죠.

맞아요. 어느 순간부터는 여행이 하나의 도피처가 되어버린 느낌? 혹은 스트레스 발산을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것 같습니다!
저 커버곡 하나 올렸는데, 한 번 들으러 와주세요. dtube로 우여곡절 끝에 한 번 올려봤습니다!^^

새로 올리셨군요~ 지금은 밖이라 듣기가 어려워서 좀있다가 방문할게요! ^^

네, 추운데 조심하세요!

항상 잘읽고 있습니다ㅎ
munhwan님의 글을 읽기만 하면 여행이 떠나고 싶어져요ㅠㅜ

감사합니다~! 주말에 가까운 곳이라도 잠시 나가보시죠^^

다다음주에 제주도 여행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가까운곳으로 혼자 시간되면 가보려구여ㅎㅎ

좋죠! 다른 분 블로그보니 벌써 유채꽃이 한 가득+_+ 여행기 기대할게요!

세계일주가 아직도 꿈인 사람인지라그런지
여행 작가님이시라하니 더욱 눈길이 갑니다.
고맙습니다.

저 또한 항상 세계일주를 꿈꿉니다^^ 언젠가 그런날이 오겠죠? 앞으로 더 좋은 여행이야기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일상속에 녹아들었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에어비엔비 슬로건 같기도하고 ㅋㅋ 관광은 가능하지만 일상 속에 들어가는 것은 참 힘든 것 같더라구요.

여행은 살아보는거야!! ㅎ 맞습니다. 하지만 여행이 일상이 되어버리면 여행의 본질을 잃어버리죠 ㅋ 어차피 여행은 다시 돌아오기위한 행위입니다 ^^

역시, 관록있는 작가시군요. 글이 술술 읽힙니다.

과찬이십니다^^; 앞으로 자주 봬요^^

정말 공부만 하는 것 보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안되는 말도 해보고, 이것저것 경험도 하다보면 영어가 더 느는 것 같습니다ㅎㅎㅎ 저도 제가 지냈던 도시 사진을 보면 뭉클한게.. 공감이 가네요^^

안녕하세요~ 조르바님~! 정말 그리울땐 사진을 보면서 저를 위로하곤 합니다 ^^; 그때 왜 사진을 이것밖에 안찍어놨을까하는 아쉬움이 가득해요..

친한지인에게 필리핀 어학연수에서 행복했던 얘기들을 자주 전해들은지라 @munhwan님의 필리핀에서의 생활이 좀 더 가깝게 와닿네요! 제 지인도 그 때를 그리워 하기에 자주 얘기하는 거겠지요~? 저도 여행을 하는 것도 정말 좋아하지만 잠시라도 외국에 살아 보고 싶은 꿈이 있어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룰 수 있는 꿈이라고 생각하며 현재를 달려봅니다~:) 아자!

좋은 경험이죠! 특히 젊을땐 아무 걱정없이 그냥 현재에만 집중해서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니 지금 생각하면 그때만큼 마음편하게 즐겼던 것이 없었거든요

유럽 여행 막바지에 친구가 연수를 와서 그 집에 얻어잤었는데,
그 친구는 보내준 부모님 돈을 헛되이 쓰지 않겠다 해서
밖에 거의 나가지 않고 공부만 했는데

....
의도는 좋은데 과연 자신한테 진정 도움이 되었을 지 모르겠어요
오히려 놀자판으로 다닌 분이 더 많이 배웠을 것 같아서..

어떤 게 정답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새로운 환경을 이용하여 습득하는 경험은 무시할 수 없는 건 사실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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