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in #kr7 years ago (edited)

새파란 하늘에 손으로 찢어놓은 듯한 솜사탕 같은 새하얀 구름을 보며 생각한다.

‘저렇게 나를 매혹하지만 막상 저 속에 폭 안기면 나는 끝도 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겠지..’

비에 젖어 아직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축축한 벤치에 누워 마냥 하늘만 바라보다 드디어 결심이 선 듯 핸드폰을 꺼내 든다.

“예약 좀 하려구요.. 네.. 그 시간 좋아요.. 네.. 알겠습니다..”

오랫동안 미뤄왔던, 하지만 오랫동안 바래왔던 그것.

나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

언젠가 독립을 하면 내가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나도 나의 과거를 치유하리라. 남들이 꾸지 않는 이런 꿈이나 꾸고 있던 나는 드디어 꿈을 향해 한발을 내딛었다.

“안녕하세요..”

하얀 가운을 입고 살짝 헝크러진 매력적인 머리칼을 하나로 묶은, 옅은 미소를 지며 나에게 손짓하는 그녀..

이제 나의 과거를 그녀에게 낱낱이 고백하고 나는 모든 상처를 치유하고 훨훨 날 것만 같은 자유를 얻을 수 있겠지.이러한 기대를 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간다.

“제가 어릴 때 상처가 좀 많아요.. 외로웠고.. 항상 혼자였어요.. 사랑을 받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표현하지 못 했어요.. 집에 들어가면 아무도 없는 쇼파에 누워 혼자 동화책 테이프를 틀어 듣곤 했어요..

조금 더 크고 나선 집이 무서워졌어요.. 벨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쿵쾅거렸어요..

마음 속으로는 이 모든 걸 다 해결해 버리고 싶은데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덩치 큰 어린아이였어요.. 바보 같이..”

나에게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녀를 마주보고있자니 지난 세월을 다 토해내기라도 할 것처럼 나도 모르게 말문이 터져나왔다.

그녀를 알게 된 것은 내 운명인 것일까. 그녀와 함께 있으면 지나간 세월도, 내가 겪었던 아픔들도 모두 오늘 그녀를 만나기 위해 거쳐야 했던 과정이었을까. 혼자 피식 웃어본다.

말수가 적지만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있는 헝크러진 머리칼의 수수한 그녀가 좋다. 그녀는 언제나 내 말을 들어주고 내 마음을 바라본다.

그녀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내 내면의 세계로 더 깊이, 아주 더 깊이 빠져든다. 그녀는 나를 살게 한다. 이제 나는 그녀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녀를 알기 전에 나는 혼자였다. 나는 언제나 이런 사랑을 꿈꿨다. 둘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하나 같은 둘. 둘 같은 하나. 너가 있기에 내가 존재하고 내가 너를 있게 한다. 나는 항상 너를 바라본다.

그녀가 가끔 우울해 보일 때 나는 사랑하는 그녀를 위로하려 실없는 농담을 던진다. 그녀는 가끔 찡그리기도 또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나는 그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라면 모든지 할 수 있다. 그녀는 이제 내 전부다.

그녀를 알게 된지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이제 외롭지 않다. 힘들었던 과거도 이제 어느 소설 속에서 본듯이 띄엄띄엄 내 기억의 저편을 조그맣게 차지할 뿐이다. 그녀와 나는 영혼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이제 하나다.

그녀를 또 만나고 싶다.
요즘엔 그녀가 나를 만나주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기라도 한걸까. 마음이 조급해진다. 나는 그녀 없이는 안 되는데..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벤치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다 결심이 선 듯 핸드폰을 꺼낸다.

“저기, 예약 좀 하려고요.. 네.. 그 시간 좋아요.. 네.. 알겠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오늘은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저기 xx 선생님 계시죠? 저는 xx인데요. 제가 왔다고 좀 알려주세요.”

건성으로 흘깃 나를 본체만체 하는,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에게 말을 건넨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한다.

“뭐라구요?”

“네.. xx선생님 지금 계시나요? xx가 찾아왔다고 말씀 드리면 아실 거예요..”

여자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자기가 무언가를 잘못 들은 것처럼 다시금 나에게 묻는다.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아니, 방금 말씀 드렸잖아요.. xx선생님 찾는다구요.. 저 쭉 여기 다녔어요.. xx라고 말씀 드리면 아신다니까요..”

“… 그런 분 여기 없어요.”

“네?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제가 여기 다닌지 벌써 얼마나 됐는데..”

“여기 그런 분 없다니까요. 그리고 여긴 남자 선생님 한분밖에 진료 안 보세요. 그리고 뭔가 착각하신 것 같은데 지금 말씀하시는 분도 여기 오신 적 없어요. 진료 기록을 찾을 수가 없네요.”

머리가 멍해진다. 그럴리가 없다.
이 여자가 일 하기 싫어 나한테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사랑하는 그녀가 나를 피해 저 먼 곳으로 세상 끝으로 도망이라도 친 것일까..

저 쪽에서 배가 나온, 기름진 머리에 입꼬리를 한껏 올리고 방으로 들어가는 흰 가운을 입은 한 남자가 보인다.

여자가 이제는 정말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볼일 끝났으면 이제 가보세요. 저희도 점심시간 다 됐어요.”

갑자기 한기가 느껴진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나의 머릿속 모든 기억들이 제자리를 못 찾는 모양이다.

나의 모든 시간이 정지됐다.

불현듯 묻고 싶은 게 생겼다.

“저기 오늘 날짜가.. 오늘 몇월 몇일이죠?”

이제 저 여자의 눈엔 무언가 두려움이 서려 있다.

“x월 x일이요. 근데 왜 그러세요..?”

머리가 아득해져 온다.

새파란 하늘에 손으로 찢은 듯한 새하얀 구름..
나를 매혹하는 그것에 안기면 끝도 없이 추락하겠지..

모든 것이 거꾸로 보인다. 아득하게 들리는 사람들의 분주한 발소리. 새하얀 것이 내 눈을 덮고 내 몸은 새파란 하늘 위로, 새하얀 구름 위로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안긴다.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으로 추락한다..

Sort:  

메가님 안뵌사이 별일 없었지요?
사실 제가 많이 걱정을 했답니다
깊은....

혹시 아무도 없는 바닷가가 가깝다면
그곳에 가서 소리를 지르기를 해보세요
단순한 악~소리가 아닌 온몸 온 마음으로
소리를 내질러 보는 거예요
백퍼 혼신을 다해
그러다 보면 어느순간 통곡이 터지고
인생에서 가장 큰 상처 받은 순간들이 떠오르면 내가 그때 얼마나 아팠는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말로 다 쏟아 내는 거예요
울음은 참지 마시고요

이방법이 가능하시다면 추천 드립니다
영혼깊은 곳에서 나오는 그곳에 존재하는
아이같이
어떤 존재에게 솔직히 털어놔 보세요
무슨 말이라도 거침없이
그의 사랑이 그 상처를 어른만져 줄것입니다 상처는 치료되지 않으면 두고 두고
그 상처를 통해 더큰 아픔이 들어온다고 생각을 합니다
짧은 생각이지만 혹여 도움이 되실까..하고

jsj님~~

오늘 포스팅 소설인데 혹시 진짜로 오해하시고 걱정을 하신건 아닌지..ㅜㅜ

헉 ㅎㅎㅎ
소설 주인공에게 꼭 전해 주세요
제가 그러더라고~~ㅋㅋㅋ
메가님이 넘 잘쓰신게 문제라니까요
진짜같이~~~!^^
덕분에 유쾌하게 웃어요 제가 ㅎㅎㅎㅋㅋㅋ

역시나 오해하신거였군요....ㅎㅎㅎㅎㅎㅎ

정말 제가 진료실에 가서 구름 속에 폭 안긴걸로...ㅎㅎㅎㅎㅎ

ㅋㅋㅋ에잇~♥
글쟁이 메가님 ^^
굿나잇~~😴

Loading...

한 때
우울증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어요.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1년 이상 해아
한다고 대학병원에서 말했지요
약물치료선생님과 상담치료선생님이
달랐는데 저는 결국 상담치료는 포기했어요 자신의 일을 고백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그래서 어릴적 상처와 살면서의 상처가
아직 남아 있어 그것이 제 삶에 분명 영향을 주겠지만 스스로 극복한 편이예요

저 이야기를 처음 읽을 때는
님의 이야긴가 보다 했는데
아래로 내려올수록 소설인 걸 눈치 채면서
다행이다 싶었어요

왜나면
어떻게 무슨 위로를 해 드려야 햘 지
솔직히 막막했거든요

그리고
힘들 땐 말의 위로가 성가스러울 때도
있구요

메가님의 두번째 소설이군요! 아마 많은 분들의 염려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옵니다.... (하고 보니 이미...걱정 한가득인 분들 보이시고..)

그는 이미 추락한 것일까요.. 그녀는 어디로 간 건지.. 허상인지.. 아니면 그 자신인지... ㅠㅠ (결국 나도 걱정 한가득..)

<아니면 그 자신인지... ㅠㅠ>

역쉬.......

소설도 쓰세요? 오~~

얼마 전에 보았던 영화에서 이런 내용의 대사가 나와요.
(영화 제목 생각 안나요..ㅠㅠ)

"사람들은 자신이 날고 있다고 생각해, 추락하고 있는 건데 말이야."

대충 이런 대사였던 것 같은데,
오늘 m님의 소설을 보니 딱 그 말인 것 같네요.

소설로 컴백하시죠?ㅋㅋㅋㅋ

암튼, 놀라고 갑니다~^^

m님.gif

<소설도 쓰세요? 오~~>

네.. 사실 제가 알고보면 만능 엔터테이너입니다..ㅎㅎ

뒤늦게 메가의 매력에 푹 빠지신 칼님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ㅋㅋ

20180304_021327.jpg

아....

루돌프님...ㅠㅠ

루돌프님의 정성 어린 손수 써주신 글씨...

이 밤에 흐뭇하고 뿌듯해서 씨익(혼자 씩..왠지 무서운 느낌..) 웃게 되는 댓글이네요....^^

오늘은 <커피숍에서 혼자 커피 마시는 글>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도 어딘가에서(비에 젖은 벤치라던지..)혼자 있는 느낌이죠..?

오늘 루돌프님의 온기가 전해져오는 손글씨 댓글
너무나 감동입니다...

스팀잇 한지 일년 넘었는데 손글씨로 댓글 내용을 써주신 분 처음이에요... 감동 또 감동 받았습니다..

이 밤에 홀로 씨익 웃어봅니다...^^

이렇게 정성 어린 대댓글을 달아주시다니, 감사합니다. ㅠㅠ 따뜻한 온기로 댓글 남기려다 단순하게...쓰자!가 되었어요^^

못난 글씨 정성어린 글로 봐주셔서, 무한 감사합니다. 제가 가끔은 메가님에게 글로 댓글을 달아드려야겠군요!

'드립'으로 다음에는 웃게 해드리겠습니다. ㅎ 새벽 2시 언저리에는 저도 '드립'이 생각이 안나네요.ㅋㅋ

메가님 엄청나게 센시티브 하신 분 이라는걸 오늘 또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혼자" 인게 마음이 이상하게도 쓰입니다...^^

좋은 밤. 좋은 잠자리 되세요^^

그러게요..

웃는 것도 혼자 (한밤에 씩..) 웃고.. ㅜㅜ

메가님~하이루ㅋㅋ
이건 소설을 빙자한 메가님 고백의 글 아닌가요?ㅋ 전 메가님이 소설을 올릴때마다 자판연습하시는 줄알고 어떤 소설인가 궁금했는데..
직접 쓰신거군요?@.@대단~
작가의 길로 가시는건가요~
전 메가 어르신 소설을 볼때마다 왠지 한강 작가의 느낌이 들었어요~어둡지만 메가님만이 낼수 있는 그런매력이 보이네요~^^

하이루 ㅋㅋㅋㅋㅋㅋ

자판연습 ㅍㅎㅎㅎㅎㅎ

아.. 자판연습...

역시 밤잠이 없으신 메가님ㅋㅋ

아니 왜 아직까지도 안 자고 자판연습하는겁니까...

스팀잇에 문안인사하러 들어왔는데
메가님이 눈뜨고 계셔서
차마 못본척 갈수가 없었네요ㅋㅋ

아까 소설 자판연습에 뿜었네요..

자판연습 혼자 할 것이지 굳이 포스팅하고...

혼자 할것이지ㅋㅋ

거울을 보며 쓴 소설같아요~

별님을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별님의 팬으로써 소설이 또 다른 시각에서 보이는듯한 느낌이... 저만의 느낌입니다. ㅎㅎ

휴~ 회장님~

많은 분들이 제가 정말 심리 치료 받고 구름 속에 폭 안긴걸로.....

소설의 주인공에서 그간 별님의 모습들이 살짝 살짝 비춰서 그렇게 생각하시나 봅니다.

구름 속에 폭 안기면 어떤 기분일까요~? :-)

추락하는 기분..

kr-novel 없었으면 한참을 방황할뻔 했네요. ^^;;;;;;
읽으면서 소설인가? 맞는거 같은데.. 아닌가?? 이러면서 읽었어요. 이런 치명적인 글 같으니...
얼마전에 읽었던 오직 두사람이란 책이 떠오르네요.
느낌이 비슷해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메가님 글은 늘 반가운것.

리자님!!

새벽에 올리면 매번 금새 답글을 달아주셔서 왠지 반가운 이 기분..^^ (새벽에도 댓글은 달린다.)

오직 두사람 예전에 책 광고를 보고 읽고 싶었는데 임신 출산 육아로 아직까지도 못 읽어봤네요><

김영하 소설가를 좋아하는데 분위기가 비슷하다니 왠지 기분 좋네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저는 치명적인매력맘인 것 같습니다.

오늘도 우연히 따끈따끈한 글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안자고 있길 잘했어요.

오직 두사람 책은 금방 읽히더라구요. 아마 메가님도 훅~ 읽으실겁니다.

소설 연재를 하시는 건가요
소설이 메가님을 너무 닮은듯...

월드콘님 찾아와주셨군요..^^

소설은 두번째인데 다들 걱정을...

걱정 유발 소설인가봐요...

<즐거운 인생>편 참고.
https://steemit.com/kr/@megaspore/2tjlg1

Coin Marketplace

STEEM 0.20
TRX 0.26
JST 0.039
BTC 100331.97
ETH 3646.26
USDT 1.00
SBD 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