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인생

in #kr6 years ago (edited)

또 눈을 떴다.

하루는 언제나 그렇게 시작된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아무런 희망도 없이.

언제나 그렇듯 말라비틀어진 식빵을 토스트기에 넣고 언제나 그렇듯 까맣게 태워버린다. 마치 내 마음처럼.

길거리에 나선다.

언제나 그렇듯 내 눈은 바닥을 향하고 언제나 그렇듯 내 발은 종종걸음을 친다. 누군가를 피하기라도 하듯이, 여기를 빠져나가고 싶다는 듯이.

내가 언제 당당하게 앞을 보며 걸었었는지. 언제 배꼽을 잡으며 웃어봤는지. 내 인생에 과연 그런 찬란한 날이 있었었는지 기억조차 가물하다.

사람들에게 기대를 버린지 오래다. 기대는 언제나 실망을 동반한다. 기대를 버리면 상처 받지 않는다는 보물같은 인생의 비밀을 알게 된 후부터 나는 그저 이렇게 삶을 살아간다.
아주 무덤덤하게. 언제나 이래왔던 것처럼.

먹기 위해 사는 것인가 살기 위해 먹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누군가가 던지던데 먹기 위해 사는 사람도, 또 살기 위해 먹는 사람도 모두 그 목적이 있기에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그저 살아있으니 산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사무실에 들어선다.

언제나처럼 사람들은 마치 앞에 있는 모니터에 귀신이라도 들린냥 텅 빈 눈으로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고 서로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인사는 공중에 붕붕 떠오르듯이 한없이 공허하다.

사람들의 공허한 눈. 하지만 올라가 있는 경직된 그들의 입꼬리. 서로가 서로를 안다고 자신하지만 그 누구도 누구를 알지 못 한다.

인간이 인간을 안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이토록 다행스러울 수가 없다. 누군가가 누군가의 마음을 스캔하듯이 다 알아버린다면 우리는 지금 이 정도도 그들과 가까워질 수 없을 것이다. 아무런 비밀이 없다는 것은 그토록 끔찍한 것이다.

9시 땡. 먼지가 소복히 내려앉은 컴퓨터 앞에 앉는다.
6시 땡.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어색하게 있는 힘껏 올린 후 최대한 비굴한 티를 내며 오늘은 일찍 가봐야 한다고 말한다. 내 옆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나를 위아래로 감시하던 그는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전철 안에 있는 그들을 바라본다. 졸고 있는 사람, 그 작은 기계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사람, 번들거리는 화장을 고치는 사람, 언제부터 마셔댄건지 알싸한 술냄새와 함께 안주 냄새까지 풍기는 중년 남자. 노약자석에서 당당하게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이를 향해 레이저를 발사하는 등산 가방을 맨 정정한 할아버지.

서로 다른 듯 보이는 이 사람들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 나처럼, 나처럼 보냈을까. 나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아니면 다 나같은 것일까.

뒷굽이 다 닳아 끽끽소리를 내는 뾰족한 구두를 벗어던지고 쇼파에 털썩 드러눕는다. 등이 왜 이리도 차가운지. 차가운 게 등인지 심장인지 구분이 안 간다.

속이 허하다.

냉장고에는 유통기한 지난 딱딱해진 치즈와 먹다 남은 게맛살, 그리고 공허한 나의 우주를 다 채워버리기라도 작정한 듯한 칸마다 꽉꽉 채워진 맥주들.

언제나처럼 5개들이 라면을 뜯어 반동강 낸 라면이 익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오늘은 면이 통통한 너구리를 먹을 것인가 실패할 확률이 없는 신라면을 먹을 것인가 이다.

무언가가 늘러붙어 잘 떨어지지도 않는 식탁에 오늘도 물 양조절에 실패한 신라면을 냄비째 올려놓은 채 냉장고에서 사놓은 김치를 내놓는다.

언젠가 사 먹는 김치는 맛이 없다고 불평을 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잘 먹기만 한다.

인생이 이렇다. 어떻게든 적응해가는 게 인생이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가장 무서운 지옥은 견딜 만한 지옥이라고 누군가가 그랬던가. 절대 빠져 나올 생각을 안 할테니까.
사람은 견딜 수 없어야 그 곳에서 돌파구를 찾는 법이다.
그리고 인생은 언제나 견딜 만하게 괴롭다.

어떤 중견 탤런트가 자기는 다이어트를 위해서 면만 먹고 국물은 남긴다는 말을 했다. 아직도 뚱뚱한 그를 떠올리며 구름처럼 흐트러진 계란이 동동 떠다니는 국물을 원샷한다. 국물은 언제나처럼 짜고 인생은 언제나처럼 쓰다.

번들거리는 얼굴을 대충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땀에 젖은 발을 샤워기로 쉬이 훑어내고 언제 빨았는지 알 수 없는 꿉꿉해진, 뒤집어진 잠옷을 주섬주섬 입고 침대에 눕는다.

어디서 바람이 들어오는 것일까. 차가운 것이 참을 수 없어 이불을 몇겹 싸매어 보지만 나의 몸은 스르르 떨린다. 차갑고 또 시리다.

움츠린 몸을 이불로 더 움츠린 채 오늘 하루를 회상해본다.

나도 달라질 수 있을까.

내 인생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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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공중에 붕붕 떠오르는 인사라고 생각지 말아주세요 ~^^ 제가 짧은 소설을 읽은건가요? 포스팅을 쭉 읽어봤는데 상당히 인상적이에요

mjelf4835님~
반갑습니다~^^

네! 단편소설이에요 ㅎㅎ

인상깊게 읽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네 ㅎㅎ 붕붕 떠오르지 않는 것이 마음으로 느껴지는 고마운 인사네요 ..^^

별님!
오늘 무슨 일 있으신건 아니죠?
두 천사들과 함께 행복한 연말을 보내고 계실 것이라 생각되는데..

제목과 조금 다른 내용... 제가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라..

지금의 행복을 만끽하세요! :D

제목과 조금 다른 내용인 것은..

‘소설’이라 그렇습니다 ㅎㅎㅎㅎㅎ

회장님 걱정 마세요 제가 창작 투혼을 불태우느라 그래요 ㅎㅎㅎ 홍콩 야경보다 빛나는 별님은 덕분에 요즘 인생 최고로 행복하답니다 ^^

아.. 내심 놀랐습니다.
2017년 마지막 날에 무슨 일이 생기셨나하고.. ㅎㅎ

한해의 맺음을 잘하시고
2018년은 더 행복한 한해가 될 겁니다!!

마지막날을 놓칠새라 창작 투혼을 불태워보았습니다 ㅎㅎㅎ

지누킹이 가끔 원생들 작품을 책자로 만들던데...
요렇게 소설 써주시면 별님 작품 모아서 책 좀 만들어 보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움하하하
(보고 있냐 @jinuking )

네 지누킹님을 닥달해주시길 바랍니다 ㅋㅋ

지루한 일상을 깰 무언가의 자극을 찾거나 아님 지루한 일상을 스스로 긍정적으로 받아드리는 방법
전자는 오래가지 못하고 후자는 너무 힘들고 불가능한일. 저는 행복을 주로 주변 사람들에게서 찾아요. 절 사랑해주는 그들이 있기에 전 정말 행복해요.
2018년 아자아자화이팅.!!

kingyj님~

전자는 오래 가지 못 하고 후자는 너무 힘들고 불가능한 일이란 말씀에 공감합니다~~~

저도 절 사랑해주는 그들이 있기에 행복을 느낍니다^^

메가스포어님 오늘 무슨일 있으셨나요..?글을 읽는 내내 영혼이 빠져나간듯한 공허함이 느껴집니다 ㅠㅠ 라고 작성하려 했는데, 소설이라고 댓글에서 말씀해 주셨군요 ㅎㅎ

스팀잇 초기에 (시작한지 2주도 되지 않았지만)메가스포어님 글을 읽고 위로받았던 기억이 문득 났습니다. 혹시나 무슨 일 있으시면 혼자 앓지 마시고 댓글로, 게시물로 남겨 주세요~! ㅠㅠ 제가 위로받았던 것처럼 저도 똑같이 위로해 드리고 싶습니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잖아요~ ㅎㅎ

스텔라님~~^^

영혼이 빠져나간듯한 공허함을 느껴주셔서 감사해요~~~!!
바로 그걸 노렸는데 바로 그걸 느껴주셨다 하니 이리 기쁠수가 없네요 ㅎㅎㅎㅎㅎ

제가 요즘 창작 투혼을 불태우고 있어서 한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글로 옮겨봤습니다^^

만약 제가 힘든 일이 있으면 말씀대로 혼자 앓지 않고 댓글로 게시물로 꼭 남기겠습니다...!!

스텔라님의 진심이 느껴집니다.. 너무나 고맙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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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진짜 이제는 문단에 등단하셔도 될 듯하시네요. 저는 추억인가 했더니.. 몰입도 있게 읽었네요. 아마도 제 인생에서 그런날도 있었지 않았나 싶어요. 아무런 목적없이 살았던 그런 때 말이죠... 지금은 아이들이 있어 너무 행복하지만요~^^ 누구나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거겠죠~^^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떠올리는 단어 하나...새로움...변신...좋은....
새해가 드디어 밝았습니다. 어제와 별반 다름없는 하루일지언정,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기대를 하기도, 또 소망을 빌기도 합니다. 당장 몇 초 후의 미래를 알 수 없이 살아가지만, 또, 그 몇 초 후, 몇 분 뒤, 내일에 기대를 걸며 힘든 하루를 버텨봅니다.

2018년 힘들었던 지난날을 다 물러내고서라도 희망을 걸어보는 새해가 밝았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진 알수 없지만, 결국엔 이 악물고 지금을 버텨내며 쥐어짜듯 힘을 내어 내일에 희망을 걸어봅니다.

피하고 싶은 것들을 피할수 있다면, 이리도 힘들지 않았을 것을, 그러지 못함을 알기에, 쓰린 속을 다독이며, 서로의 위로를 두 팔벌려 안아봅니다.

새해....그렇게 두 팔벌려 희망과 소망을 가득 안아봅니다.
원하시고 바라시는 모든 일들, megaspore님 품안에 한가득 안겨지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안녕하세요 megaspore 님, 올 해 마지막날 새벽이네요.. 왠지 기분이 허한 날 입니다. 또 한해를 보내는 마음이 그리 기분이 좋지만은 않긴 하네요 ㅎㅎ 새해에는 더 멋진 인생이 펼쳐질 것 이라는 기대감에 또 하루를 살아보네요~~ 편안한 시간 되세요^^

성민님~^^

누구나 그런 허한 마음을 마음 한켠에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땐 성민님이 사랑하는, 성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려보세요..^^ 그리고 내가 이 자리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을 거쳤는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도요..^^ 그러한 노력을 거쳐 드디어 온 것이 바로 지금이라는 순간입니다..^^

짧은 잠을 깨고 일어나 올 해 마지막 날에 처음 보는 megaspore 님의 글 이네요^^ 감사합니다~~
마지막 하루 기분도 좋고 즐겁고 의미도 있는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소설이라고 적어주셨으면 더 편하게 읽었을텐데요ㅠ 으앙 힘내세요 스팀잇에서 작은 위로라도 받을 수 있으시길 바래요..라고 적으려다가 에구ㅎㅎㅎ다른 이웃분들이 적어주신 댓글들을 보고 제가 힘이 나네요. 들리길 잘 한 것 같습니다ㅎㅎ 새해 복, 아니 행복한 한해가 되시길 바래요 스포어님 :)

ㅎㅎ 아침에 일어나서 라이언님 글 보고 놀라서 찾아왔는데 ㅎㅎ
소설이라고 하셔서 다행이네요 ㅎㅎ

소설이라고 하셔도 아무래도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갔지 않았을까 해서 ㅎㅎ

올해 안 좋은 일이 있으셨다면 마지막날 훨훨 털어내시고 새해를 맞아요!

라이언님이 어떤 글을 쓰셨길래 놀라서 이렇게 한걸음에 달려와주셨는지요~~~ㅎㅎ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이제는 과거로 회상하는 시절이지만요~~^^

beoped님께서 올해 자주 찾아와주시고 댓글도 매번 남겨주셔서 저에게 힘이 많이 되었습니다.

감사드리고 무술년 새해 복 다 가져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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