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 나는 어쩌다 베트남에 왔을까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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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베트남에 갔니라는 댓글에 답을 하려고 했어요.

근데 이거 포스팅거리 하나가 생각지도 않게 뚝 떨어진 거거든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얼씨구나 워드 파일을 열었습니다.

많은 일들, 많은 사연이 있었죠.
에피소드를 활용해서 소설 형식을 빌려와 연재를 할 수도 있고, 대여섯 편은 나오겠다 싶습니다. 혹은 논리적인 척 이유를 하나하나 열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한인 사회라는 것이 굉장히 좁습니다. 약간의 clue 만으로도 대번에 누군지 알아낼 수가 있어요. 업무 얘기를 두리뭉실하게 쓸 수밖에 없네요.

게다가 와잎느님께서 제 스티밋을 즐겨 보십니다.
한동안 포스팅을 안 했는데, 며칠 전 간만에 업데이트했다고 신나서 나 포스팅 해쪄! 자랑을 이미 했단 말이죠. 그래서 와잎느님께서 다시 보고 계실 거에요. 이러면 또 덜어내야 하는 내용이 꽤 됩니다. 라면 세 개 같이 끓여서 이건 니 거, 이만큼은 니 거~ 덜어주고 나니 막상 먹을 게 별로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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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을 갔었어요.
원래는 일주일 예정이었습니다. 로컬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러자 이런저런 핑계로 업무가 하나, 둘 날아왔죠. 2주에서 한 달로 그리고 석 달로 출장 기간이 늘어나네요. 시발 사람을 하나 더 보내든가. 혼잣말을 하며 출장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출장은 초기만 바쁜 법이죠.
초기에 방향 잡고 부지런히 디렉션을 내리면 그 후로는 flow 만 체크하면 됩니다. 한숨 돌리는 페이스에 맞춰 관심을 돌리니 로컬이 눈에 들어왔어요. 절대 부유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돈들이 쉴 새 없이 돌아다녔어요. 무려 캐시가 잠시도 머물러 있지를 않았습니다. 오늘만 사는 건지, 저축은 쌀국수에 말아먹고 버는 족족 쓰고 있더란 말입니다.

대졸 초임이 30만원인데 계속 쏟아지는 사회 초년생들이 곧 150을 받고, 카드까지 만들어서 미래 급여까지 남김없이 끌어다 쓰면 어떻게 될까에 생각이 다다랐습니다.

쉽게 암산해도 4천만 명이 25세 이하인데, 얘들이 애를 낳으면 인구가 몇 명이 될 것이며, 돈 아끼자며 18평 집에 4-5명씩 낑겨 사는 애들이 하나 둘 제자리 찾아 나가기 시작하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될까도 A4 에 끄적여 보긴 개뿔 그냥 눈앞에 그려졌어요.

베트남은 뭔가 끓고 있어서 살짝살짝 넘치는 중입니다.
아직 넉넉하지 못한 경제적 이유든 사회 제도적 문제가 되었든 무언가에 살-짝 눌려있는 느낌이에요. 근데 조금만 들쑤시면 끓어넘치던 에너지가 그냥 터져 나올 것 같습니다. 호치민 시내를 나가면 평일이고 주말이고 그냥 정신이 없습니다. 사람에 개발에 관광에 도시가 터져 나가는 중이에요.

자주 서울에 갑니다.
5시간이면 도착하니까요. 베트남 가며 동생에게 주고 간 차를 타고 나오면서 길거리를 바라봅니다. 그거 아세요? 죽은 나라 같아요. 일부 핫 플레이스와 도로만 미어터지지 길가에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 손 놓칠까 가슴 졸이며 걷던 길거리가 아니에요. 숫자에 국한된 얘기가 아닙니다. 극도로 활기가 떨어졌어요. 에너지는 어디로 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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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랬습니다.
9 to 4 에서 운 좋은 날은 9 to 12 로 회사에서 consume 당했었어요. 퇴근 후는 차치하고 주말에도 에너지가 바닥났어요. 저처럼 극단적인 예가 많지는 않겠죠. 근데 집에 일찍들 들어가세요? 몸에 활기가 돈다 느껴본 적이 언젠지 곱씹어 보세요. 걱정이 많이 됩니다. 개개인 모두의 능력이 모자라 건강을 담보로 잠재력까지 끌어다 강제로 투입하고 있어요. 한 가정이 위기 상황에 대처할 또 하나의 비상 노동력도 맞벌이에 이미 동원된 사회에요. 외부 충격이 있으면 우리들 보금자리인 가정은 그걸 어떻게 견뎌 낼까요.

내가 덜 원할게.
내가 삶의 기대치를 낮출 테니 제발 시간을 달라고 아우성이죠. 워라벨. 워라벨. 착취를 허할 테니, 저녁이라도 달라. 그렇게 허우적대다 베트남에 왔더니 10시면 세상부터 잠듭니다. 도시가 잠들고, 자영업자가 잠드니, 나도 잘 수밖에요. 10시면 늦은 시간이니, 8시면 집에 있어야죠. 6시면 슬슬 퇴근합니다.

1년이 52 주고 일주일에 대충 2권을 읽으면 1년에 100권 언저리로 책을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직장 생활을 하면서 1년에 서른 권을 보기가 벅찼습니다. 씻고 밥 먹고 음악 들으며 몸을 뉘여 책을 뒤적거릴 시간만 부족했을까요. 몸 뉘일 곳 마련할 통장 잔고가 부족해 몇 십 년을 일해야 할지 감도 안 잡혔죠.

그런데 2년 일하면 집이 하나 생기고, 4년 일하면 번듯한 집을 마련할 수 있고, 6년 일하면 메이드 방까지 딸린 집 대문 비밀번호를 정할 수 있어요. 저녁 7시면 누르게 될 비밀번호 말이죠. 그 집에서 밥해 먹고 와잎느님이랑 수다 떨다 책 보며 일찍 잠들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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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는.
생글생글.
잠 좀 자고 싶어서 베트남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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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생활이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유쾌하고 경쾌하게 써주신 것 같아 재밌게 읽었어요ㅎㅎ
저희 아빠도 한달에 반은 호치민에 계세요.
한국보다 뭐든 할 게 더 많다 하시더라고요 ㅎㅎ

우리나라 80년대를 어떤 식으로라도 경험하신 분들은 여기서 그 때와의 공통점을 많이 발견하시나 봐요. 굳이 비즈니스가 아니더라도 북적대고 활기찬 분위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이 오시는 것 같습니다. :D

해외 생활은 음.
적응을 잘해서 그런지 크게 어려운 점은 없네요.ㅎㅎㅎ

글 너무 재밌게봤어ㅎㅎ 베트남 정착하시기 힘드셨을거같은데 대단하세요!

재밌게 봐주시니 감사하네요.
떠밀려 온 게 아니라 오고 싶어 왔더니 크게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D

(jjangjjangman 태그 사용시 댓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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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차에 도전하세요

그리고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감사합니다. :D

오...오....오... 이렇게 베트남을 가시게 되셨군요.^^
뭔가 다 걸러냈지만 그 나름대로 재미가 있네요.~~

2년 일하면 집이 하나 생기고, 4년 일하면 번듯한 집을 마련할 수 있고, 6년 일하면 메이드 방까지 딸린 집 대문 비밀번호를 정할 수 있어요.

베트남이 지금 그렇다는거죠??? 오 좋네요 좋아요~

네. 지금은 그런데..
빠르게 오르네요.ㅠ

일상의 당연한 여유들이 참 지켜내기 어려운 것이 되는 것 같네요. 한국살이 그리고 서울살이는 오늘내일 다른 집값에 사람을 허덕이게 만들죠. 베트남에서 원하시는 여유를 찾으셨으니 부럽네요. :)

그래서인지 가끔은 이 나라가 좀 더디게 발전했으면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빠르게 성장해서 떡고물 좀 얻고 싶고 복잡합니다.ㅎㅎㅎ 여유 생긴 거 하나는 정말 좋네요. :))

한인 사회가 좁다는 말 완전 공감합니다. 그래서 제 이야기는 올려도 언제부터인가 제가 사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안 쓰게 됐어요.

퇴근시간은 이곳과 비슷하지만 그렇게 빨리 집장만이 가득한 건 정말 부러워요. 마슐랭님 글을 보면 마치 당장 베트남에 가야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쓰고 싶은 대로 못쓰고 항상 자체 검열을 좀 해야 하다보니 꼭 이래야 하나 싶다가도, 근무 중에 살짝 살짝 하려면 어쩔 수 없지...합니다.ㅠㅠ

하나 더 살까...재고 있습니다. 살까말까살까말까.

글만 읽어도 활기 넘치는 그곳의 모습이 조금 상상이 됩니다. 친구도 베트남에 있던데 가서 끓는 베트남 보고 싶네요. 리스팀 해갑니닷ㅎㅎ

오세요~~
복잡해서 호불호가 갈리지만, 성향 맞으시면 정말 재밌답니다. 그리고..
맛집이 정말 많아요 !!! xD

예전에 호치민에 맛있는 쌀국수를 먹고 커피를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ㅎㅎ 다시 먹으로 가고 싶네요 팔로우 할께요^^

괜찮았지요? ㅎㅎㅎㅎ
첨 뵙습니다. 앞으로 자주 찾아볼게요.
즐거운 스티밋 되세요. :D

저에게는 꽤나 근 길인데 진짜 너무 재밌게 그리고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저는 지금 태국에 살고 있습니다. 태국에 온 이유를 설명하라 하면 님께서 설명하신 에너지 측면 일것 같네요. 여기서 느꼈던.. 그리고 말씀하신데로 여유까지도.. 그런데 식당을 하다보니, 그리고 또다른 일을 찾겠다고 발악하다보니.. 책한권 읽을 여유를 또 다시 버리고 사네요... 뭐가 중헌지 많이 느끼고 팔로우도 하고 갑니다. :)

첨 뵙습니다 !
태국도 참 살기 좋은 것 같던데요? :))
물론 여행자의 시간이 교민의 시간과는 많이 다르겠지만요. 조금이라도 여유를 가지고 꾸준히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조금은 여유를 찾아가야 할것 같은 생각이 요즘 많이 드네요. :)

베트남 생활이 많이 좋아보이시네요.
마지막 냥이 사진이 모든걸 말해주것같아영.

선택 했으면 즐겨야죠.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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