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잃지 않고 싶은 것은 지금껏 해 온 것처럼 예민하고, 더 예민하게 질문하기.

in #kr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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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려가는 앰뷸런스 소리로 잠을 깬 아침. 집 근처에 SAMU 가 있어 급하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멀어지는 이 상황은 자주 일어나는 편이다. 달갑지 않은 우중충한 회색빛의 아침. 이런 날, 곱씹어왔던 몇마디 말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 평소 보고, 듣고, 느끼고, 공부하고 읽는 나의 모든 경험에서 우려져 나오는 찝찝함과 우려가 커졌다.

    내 자신에게 유독 검열의 잣대를 들이대고 성찰을 하려는 노력들이 가끔은 허망하게 느껴지는 요즘. 한국에서부터 자주 들어왔고, 미국에서 자주 뵙던 내가 존경하는 교수님들 마저도 자주 하시던, 그리고 어디에서나, 누구나 쉽게 말하는 '여자는 여자의 적이다' 라는 구절에 대하여 정리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여성의 적은 여성' 이라는 말은, 여/남 사이의 신뢰 관계가 깨진 상황에서도 여성은 남성을 탓할 게 아니라, 다른 여성을 탓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사회적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집안의 대표적인 예만 들더라도 시누이, 시어머니의 적대적 관계만 보면 알 수 있는 일.

연구(스탠더드앤드푸어스의 1500개 기업을 20년간 연구한 결과)와 통계를 바탕으로 여성이 고위직으로 올라가는 데 있어 그 승진을 가로막는 것은 먼저 승진한 여성이 아니라 남성 최고 지위자라고 설명한다. 또 남성이 기업의 최고 지위자일 때보다 여성이 기업의 최고 지위자일 때 여성이 관리직이 될 가능성이 더 컸다고 분석한다.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동일한 갈등이 발생했을 때 남성들끼리의 논쟁은 건강한 토론으로, 여성들끼리의 논쟁은 '여자들끼리의 싸움(catfight)'으로 치부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 유명한 캣파잇이란 용어는 미국에서부터 느껴온 여성혐오로서, 단순히 '한국' '내 주위'에서만 해당되는 일이 아닌, 반복되는 악순환의 역사와 전세계에 해당됨을 깨달은지 몇년 되지 않았다.

    물론 무한 경쟁의 시대인 지금 여성들도 자유로울 순 없다는 말에 동의하는데, 이유로는 생각보다 차별과 혐오구조는 촘촘하고 깊숙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남성들과 같이 여성들 또한 질투하고 경쟁하고 갈등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사람들은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는데, 그들이 '여성'이라서 그런 것이라고 대충 보이는대로만 후려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소리다.

흔히 다른 여성 후배나 동료를 배제하고 소위 '명예 남성'으로 군림하는 여성을 '여왕벌'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기고문은 남성 지배적인 구조 안에서 유일한 여성인 그 '여왕벌'은 어쩌면 불평등의 '이유'가 아니라 불평등의 '결과'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당연하지만 남자가 여자들을 상대로 주로 쓴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 여성 전체를 폄훼하는 말이 될 수 있다. 동성간의 적대 행위와 질투는 여자만의 것이 아니다. "남자는 다 막무가내고 폭력적이야."라며 싸잡아 매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공격을 직접적으로 해서 우열을 가리는게 불가능한 사회적 상황에서 주로 나타날 뿐, 반드시 여성의 소유물이라 할 순 없다. 단지 사회가 여기까지 오면서 남성들은 좀 더 직접적으로 공격한다는 이미지가 강화되고, 여성들은 간접적으로 공격하는 이미지가 좀 더 강해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1] 여성들 사이에 뿐만 아니라 남성들 사이에서도 수도 없이 일어나는 재력과 권력층에 있는 남성을 깎아내리거나 정치적인 상대편(정적)을 비하하려는 시도들을 생각해보자. 곱상한 외모를 지닌 남성 연예인을 게이라고 치부하는가 하면 아직 군대도 안 간 놈이 사회를 알겠냐며 몰아세우는 경우 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그들에게도 '남적남'이라는 용어를 갖다 붙이는가?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경쟁심을 느끼게 되는 상황이 모두 같지는 않다는 점을 대부분이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기사에 동감한다.

    여기서도 '왜' 질문을 던져야 하는 부분은, "그렇다면 왜 여성이나 남성이나 비슷한데, 왜 유독 사람들이 여성에게만 과장해서 반응하는 걸까?"가 되겠다.

    몇 연구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여성의 미덕은 '화합', '친목'과 같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꼽히는데, 만약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태클을 걸거나 경쟁을 하면 이때는 여성의 미덕을 위배한 것이므로 '흠.. 뭔가 이상하네?' 하고 뇌리에 강하게 남는다.

    [2] 전통적으로 중요시 되어온 여자의 온화한 미덕과 달리, 남성의 미덕은 '경쟁'하고 '대결'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동성에게 태클을 거는 것은 '남자라면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지만, '여성이라면 그럴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더욱 부정적으로 보고 '여적여' 용어를 갖다붙이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는데는 사실 어렵지 않은데, 그건 내가 여성이라 그런걸까? 라고 아직까지는 믿고있다. '남성'으로 '여성'보다 비교적 이런 상황을 마주하는 '위치'가 한참이나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부하고, 사회관습에 질문을 던지는 현명한 남성들은 아직도 많지 않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3] 예를 들어, 보이는 것과 속이 다른 '나쁜 캐릭터'인 남성을 다른 남성이 견제하며 여자들은 이런 남자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느끼거나 주의를 주는 행동은 남성 집단에서는 정당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드라마속에서도 남자가 하는 이 '순전히 미덕에서 우러나오는 행동' 같은 일을 종종 그리곤 하고. 그러나 비슷한 종류의 말을 여성이 하면, 그 말을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정당한 비판이 아니라 여성이 이유도 없이 단순히 '질투' 때문에 같은 여성을 공격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고로 상황을 멋대로 해석해서 "여적여"를 외치는 고정관념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이 현재와 비교해 더욱이 활발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규모가 큰 조직이 기본적으로 남초였으므로 조직 내에서 갈등이 있었다면 자연히 남자끼리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었다. 즉, 남자끼리라 싸운다기보다는 남자들끼리만 있으니 싸울 대상이 같은 남자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약에 조직 내에 등급이 동등한 남녀가 경쟁하고 있음에도 남자끼리만 싸운다면 이는 남적남으로 해석될 수 있겠으나, 일반적으로는 삼각관계가 아닌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한 마디로 남성끼리 겨루는 스포츠 종목을 동성 대결로 해석하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이는 여성 스포츠의 경우도 마찬가지. 예를 들어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경쟁은 여자 피겨 종목에 대한 국가 간 자존심 대결로 해석되지 이걸 여성 간 질투심이라고 얘기하는 멍청한 기레기는 없다. (나무위키)

    [4] 흔한 사극에서도 여자의 적은 여자로 그려지는 씬이 자주 등장함을 알것이다. 너무나 적나라하게 궁궐 내에서 궁녀들끼리 암투를 벌이는거야 대표적이고, 자기 남편의 출세를 위해 정적의 아내에게 친한 척 접근하거나 뒷공작을 꾸며 그 정적까지 파멸시키게 의도하는 것도 대표적 클리셰다.

    이러한 미디어등의 영향으로 편견이 생겨나고 강화되는 악순환이 생기는 것이 심각한 문제고, 또한 그 반향으로 생기는 모든 의도적인 '여성'을 향한 불편한 잣대라는 일을 깨닫지 못하는것은 더더욱이 심각한 문제인 셈이다.

"네가 여성들만 모여 있는 곳에서 적응할 수 있겠어? 힘들지 않겠어?"

    여성들이 모인 곳엔 질투와 경쟁이 난무할 거라는 생각, 이 말에서 감춰진 의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생각을 심어주고 키워온 사회적 관습과 분위기를 이제는 파악할 때가 되지 않았나. 내가 겪어온, 내가 보아온 모든 일들이 다 그렇게 짜여진 이유가 있다는 것, 이 간단한 원리를 가장 쉽게 버리지 않고 파악조차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한번은 깊게 생각해보아야 할것이다. [1]-[4] 참조 여성단체 활동가 김미리내님

    ‘남초 사회’가 뭔지 잘 모르겠다면 '술'집이라는 공간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여성'은 처음 본 손님 앞에서도 예쁘고 상냥한 태도로 주는 술을 잘 받아 마셔야 하는 위치에 '남자'가 서 있는 점을 잘 생각해보자. 난 고기집 또는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은 없지만 주위 20대 초반이었던 서빙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자친구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백이면 백, 최소 한번은 겪어본 불미스러운 일들이 허다했다. 이것이 고기집에서 서빙하는 사람들만 겪는 일인것 같은가? 온 사회가 여혐을 외쳐대고 있다. 사회 전체가 거대한 룸쌀롱이라는 말, 흔히 듣지만 거부하고 싶고 아니라고 외치고 싶은 이유는 이것이 사실임을 알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난 '남자라서' 또는 '여자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아서' 이라며 외면하는 사람들은 미디어가 창조해낸 여vs남 구도대결의 덫에 너무나 쉽게 걸려들게 된다.

    이러한 점들을 골고루 생각해보면, 애초 여자들이 외모를 질투한다는 주장 자체가 사회적 학습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왜 그렇게 예뻐~어머 눈썹했네~?” “지지배 너무 예쁘다~” 이 말들이 연대와 칭찬의 공통적인 좋은 경험에 의한 말이 아니라는 것은 알 것이다. 나또한 다른 여성들에게 “예쁘다” 라는 ‘칭찬이라고 생각하는 말’을 한참 비꼬아 질투아닌 질투를 드러내며 쉽게 내뱉었던 적이 물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쉽게 누구에게 외모 칭찬을 하지도, 폄훼하지도 않으려 노력한다. 여성을 봄으로서 '외모'가 제일 중시되는 이 사회에, 나마저 그 여성혐오 물결에 몸을 맡길수는 없으니까. 그 사람의 겉모습만이 아닌 다른면을 봐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고? '여적여' 프레임은 여성의 연대를 가로막고, 끊임없이 경쟁을 부추기는 통념이다. '여적여'를 유지시키려는 건 여자들이 아니다. 남성 지배적인 구조와 가부장제를 천년만년 이어가려는 바로 ‘그들’이다.

    '고로 일상 속에서 잃지 않고 싶은 것은 지금껏 해 온 것처럼 예민하고, 더 예민하게 질문하기'는 감사하게도 나에게 던져진 큰 숙제인 셈이다. 수많은 여성단체 활동가, 교수님, 페미니스트, 친구, 엄마, 할머니, 언니들이 나에게 그리고 그들 자신에게 내주는 숙제일것이라고 생각한다.


    상황 파악은 본인들이 해야하고, 떠먹여 주는 공부는 부끄러워 해야할 일임을 모르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이 당연한 말이 사회적으로는 먹히는데, 유독 ‘여성의 일’이라 간주하며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인 사회에서 이런 분위기는 무디면 무디다고 할 수 있고 예민하면 예민하다고 받아들여지는것이 흔하다.

    어떤 일에 대하여 그건 이렇더라- 도 아닌, 이건 그래, 라고 단정 짓게 되는 수많은 일들에 대하여 잘 생각해보면 ‘그저 사회에서 학습된, 보고 자란, ‘권력층’ 또는 ‘대다수’의 잘 지어진 경험에 의거해 만들어진 일임을 알 수 있다. 왜’ 라는 질문을 붙여보자.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너무나 다양하고 촘촘한 차별과 폭력의 구조속에서 우리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보고싶은 것만, 나에게 주어진 일만, 내가 여태 들어왔고 들어야 할 일들만 취향처럼 골라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신이 뱉은 ‘혐오’의 말들이 결국엔 당신을 갉아먹고 파괴하는 일이 될 것임을 난 확신한다. 그래서 끝없는 자아검열, 자아성찰은 모두에게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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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라님 생각을 잘 읽고 갑니다. 제가 느끼는것들 그리고 몰랐던 부분들을 알게되네요 😃

저도 매일 공부하는 내용입니다. 정리겸 기록차 생각을 더해 올렸어요 🙃 알게되셨다니 다행이고 감사하네요.

프랑스에서도 여적여 같은 말들이 존재한다는 말이군요. 여성을 향한 사회적 시선이 한국보다는 더 수준이 높을거라 생각하는 것은 그냥 제 편견이었던 걸까요.

유토피아는 없지만 나라간의 여성 지위적 차이는 분명 존재하는것 같아요. 인간의 기본값은 '맨'으로 지정해놓은 부분이 사회에 뿌리내린 그 깊이가 어느정도이며 차별, 혐오, 폭력 등이 전반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가가 수준을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해외에 사는 제 친구들과 동시에 나누는 이야기기도 한데, 외국 들어가고 나올때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여성혐오가 유독 한국에서만 명확하게 보인다고요. 럼프님이 갖고 계신 생각도 무리는 아닌것 같아요. 🙃

제가 나이가 들었나 봐요. 예쁜 사람들 보면 그냥 예뻐요. 레일라님도 예쁘고. 가끔 부럽긴 해도 그것도 자연스러운 감정이니까요.
전 오히려 나이들수록 더 외모 칭찬을 하게 돼요. 진짜로 예뻐서. 다른 좋은 면을 알게 되면 물론 그것도 칭찬하고요. 하지만 처음 눈에 띄는 건 어쩔 수 없이 외모니까.

의견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눈에 먼저 보이는 것은 외모지만 다른 능력이 아닌 외모로'만' 여자의 지위를 정해버리는 사회의 여러 면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어요. 자연스럽게 드는 브리님의 좋은 마음이 잘못된건 아니라고 믿어요. 오히려 여성의 '미덕'이라고 정해온 프레임으로 여성과 여성의 연대와 관계를 비꼬아 잘못 생각하고 부추기는 사회적 문제 (가스라이팅, 후려치기) 등으로 수 없이 많고 심각한 피해를 받는 현실에서 '좋은 마음으로' 마주하는 세상이 녹록치 않은 것이라는 관점으로 보고 있어요.🙃 나이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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