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 글쓰기 –번외편] 글쓰기의 절대 고수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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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절대 고수로 태어난 한 사람이 있다. 고수의 자질이 드러난 적도 없고, 누구도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는 고수의 품격과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그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한 무리의 말단 회원이다. 그는 나쁜 심부름이나 하면서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그가 어느 날 나쁜 지령을 받고 어떤 마을을 찾아간다. 속마음은 여리고 동정심이 많지만, 건달처럼 거들먹거리며 사람들을 위협하지만 되레 동네 사람들에게 호되게 당하고 돌아온다. 그 마을엔 알려지지 않은 고수가 살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후, 마을에 살던 고수가 그 조직을 찾아온다. 그 조직이 언젠가는 그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취할 거라 판단해서다. 마을의 고수는 조직에서 의뢰한 또 다른 고수와 실력을 겨룬다. 수많은 합이 오고 간다. 주변은 쑥대밭이 되고, 고수들을 화려한 권법을 주고받는다. 마을 고수는 패배 직전에 필살기로 승기를 잡는다. 하지만, 조직을 설득하기 위해 자비를 보이다가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되어 생명을 위협받기에 이른다. 조직의 고수는 무자비했다. 조직의 고수가 마을의 고수를 죽이려는 찰나, 조직의 말단이었던 주인공이 나선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주인공은 그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건 옳지 않다!’는 외침 말이다. 주인공은 자신도 모르게, 쓰러진 마을 고수의 앞을 막아서게 된다. 오래 전부터 그 순간을 위해 기다려온 듯이 말이다.

 주인공은 콧방귀를 뀌는 조직의 고수에게 곤죽이 되도록 얻어맞는다.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쥐어 터지고,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다. 모두가 주인공이 죽었다고 생각한 그 순간, 마을의 고수와 주인공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마을의 고수는 주인공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회복을 위한 처치를 한다. 주인공은 빠르게 몸을 회복하고, 그 와중에 조직은 모든 전력을 총동원하여 마을로 쳐들어온다. 조직의 고수가 마을로 살기등등하게 걸어올 때, 주인공이 나타난다. 주인공의 등 뒤에서 마을의 고수는, 주인공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린다.

 “절대 고수였어. 죽도록 얻어맞으면서, 막혔던 기가 뚫려 고수의 자질이 나타나게 되었어.”

 결말은 보통의 스토리와 다르지 않다. 주인공은 조직과 나쁜 고수를 물리치고 마을의 평화를 지켜준다.

상상과 현실

 앞의 이야기가 낯익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주성치 주연의 영화, <쿵푸 허슬>을 재구성한 이야기다. 웃음기를 쏙 빼니, 은둔의 고수가 등장하는 많은 무협 영화 스토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이야기가 되었다.

쿵푸허슬.jpg

 예전에, 이 영화를 보며 떠올렸던 상상이 생각났다.

 ‘난 글쓰기 고수가 되고 싶다. 내 안에 숱한 이야기가 있고 글로 쏟아낼 많은 생각들이 있는데, 어딘지 막혀서 나오질 않는다. 문장들은 내 안에 갇혀 폭발할 것 같은데 난 그것들을 표현할 수가 없구나. 나의 막힌 혈은 어떻게 뚫지? 나도 누군가에게 흠씬 두들겨 맞으면 될까.’

 과거에 써둔 이 짧은 감상을 읽으며, 난 코웃음이 났다. 난 나를 숨은 고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막힌 혈을 한 방에 뚫으면, 손끝에서 이야기가 철철 쏟아져 내릴 거라고 생각했었다. 문장 하나 제대로 꺼내 쓰지 못했을 때, 어떤 자신감으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난 과거의 나를 마음껏 비웃었지만, 한편으로 과거의 내가 전혀 무지하지는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막힌 혈을 한 방에 뚫는 방법은 없어도, 조금씩 뚫는 방법은 있었던 것이다. 글 쓰는 사람들은 저마다 바늘을 하나씩 갖고 있다. 머리를 감싸 쥐고 고민하고, 백지의 공포를 이겨내며, 하나의 글을 완성할 때마다 그 바늘은 막힌 혈을 한 번 찌른다. 처음에는 혈을 막고 있는 것에 아무런 위협도 주지 못한다. 하지만, 그 바늘이 수십 번, 수백 번 찔러 들어갈 때마다, 막힌 혈에선 작은 이야기가 하나씩 맺혔다가, 그 다음에는 좁은 통로가 생겨 쫄쫄쫄 흘러나오다가, 급기야는 새로 심은 수도관처럼 이야기를 흘려내는 것이다.

 내가 쥔 바늘을 쓰지 않고, 답답한 마음으로 글의 언저리를 맴돌면서 한숨만 쉬었다면, 난 영원히, 내가 은둔하고 있는 절대 고수라는 착각 속에서 살다가 어떤 조직의 고수를 만나 겁 없이 그 앞을 막아섰다가 장렬히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내 손은 뭉개지고, 얼굴은 형체를 알아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난 안도한다. 내가 작디작은 바늘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과, 오늘도 그 바늘을 들고 막힌 혈의 언저리를 한 번 더, 찌르고 있다는 것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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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어머 이거 꼭 중국영화 같아~ 하면서 내려갔어요 ㅋㅋ
꼭 퀴즈 맞춘것 같아서 마냥 혼자 기분 좋아짐 ^^
잘 읽고 갑니당~~
좋은 주말 되세요~~

무림의 기운을 느끼셨군요!^^
퀴즈를 맞히신 자신에게 상을 주시기 바랍니다ㅎ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바늘로 콕콕 쑤셔가면서 막힌혈을 뚫어서 100보팅 받는그날까지 !!!!!!!!!

쉬지 않고 찌르면 혈이 뚫리는 시간이 조금 줄어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즈아~~ㅎㅎ

쿵푸허슬, 예전에 엄청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네요.

네. 가끔 케이블에서 재방송하는데 지금 봐도 재밌더라구요~^^

깊이 공감가는 글이예요.
전 매일 상상하죠. 매일 글쓰기를 하는 과정이 챠트의 삼각수렴이 진행되는 것이고 그 끝에서 장대양봉이 솟아나는 것을 봅니다. 그 시점이 언제인지는 결코 알 수 없죠^^ 쏠메이트님 다음 글도 기대할게요!

와 차트에 비유하다니, 멋진 표현이네요.ㅋ
그 장대양봉 저도 바래봅니다. 작전주처럼 크게 터지길 기대합니다. 거래량 잔뜩 실린 채로요. 글쓰기 작전주, 작전 들어갑시다ㅋ

오늘도 한 수 배우고 갑니다~ 가즈앗!!

배우고 가즈앗~~ 하신 튜터조님 감사합니다ㅎ

아얏! 따끔!

ㅎㅎㅎ 귀여운 댓글들에 지나가던 행인 미소짓고 갑니다 :-)

쿵푸 허슬 정말 좋아하는 영화라 반갑네요!
글쓰기는 언어 공부와 비슷한 것 같아요. 당장은 열심히 공부해도 영 실력이 늘지 않지만 어느 순간 귀가 뚫리고 뇌가 말랑해지면서 언어가 습득이 되듯 계단식 성장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러고는 또 벽을 만나고, 또 얼마간 용을 쓰면서 글을 쓰면 다시 한번에 쑥 올라가는 구간이 나오고, 다시 벽을 만나 성장이 지체되고...

중요한 건 멈추지 않고 계속 써나가는 것 같아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쓴다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요. 이렇게 댓글을 단 저는 막상 벽을 만나 오늘 하루 쓰지 않고 쉬었지만요ㅎㅎㅎ 내일은 저도 꼭 바늘을 들고 막힌 혈을 뚫어보려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계단식 상승~~ 공감합니다ㅎ 오늘 글 하나 썼다고 능력치가 확 상승하진 않죠. 그래도 그 글 하나가 다음 글을 있게 하고, 또 계속 이어지는 거죠. 그러다보면 어느 새 전고점을 넘어 서 있는 겁니다^^
글쓰기 정복을 위해 함께 출정합시다!! 두둥~~
자 바늘 준비하시고요!!

고수 아니신가요? 저는 고수이신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

북치는 고수라면, 네 가끔 치니까 인정하겠습니다ㅋ

뭐든 꾸준히 하면 늘지 않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이미 잘 쓰고 계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드림님, 꿈 함께 나눠요. 팔로우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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