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 수고했어 오늘도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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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는 가창력을 뽐내거나 기가 막힌 기승전결을 보여주는 노래가 아니다. 바람 불면 꺼질 듯한 가녀린 목소리로 말하듯 잔잔하게 시작해서 잔잔하게 끝나는 노래다. 음악 차트에 화려하게 등장한 것도 아니다. 그저 아는 사람은 아는, 그런 노래 중 하나다. 그렇지만 이 노래에 담긴 감성의 힘은 대단하다.

학급 학예회를 준비하면서 작년에 이어 마지막 합창곡으로 이 노래를 준비했다. 아이들이 다 나와서 부모님을 향해 이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다.

후렴에 이런 가사가 있다.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초등학생이 표현하는 부모님에 대한 고백은 거의 '감사해요'라는 말로 집약된다. (드물게, 용돈 좀 올려줘요. 같은 귀결도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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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기만 한 줄 알았던 열한 살 초등학생 4학년 자녀가 나와서 부모님에게, "수고했어, 엄마의 고단함을, 아빠의 말 못 할 슬픔을, 아무도 몰라주고 세상은 외면해도 난 이해해요. 늘 응원할게요."라고 표현한다면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좀 색다른 고백이 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부분을 (너의) 대신, 1절 (엄마) 2절 (아빠)로 바꿔 부르게 했다. 평소에 까불던 녀석, 왜 이거 해요? 자주 하던 녀석들도 이 노래를 연습할 땐 진지하다. 놀랄 일이다. 이 노래를 통해 전달하려는 진심을 아이들은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연습할 때 그 대목을 나를 향해 부르는데 내가 울컥한다.

내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슬픔이 얼마나 많길래, 난 매년 이 노래를 듣고 가슴이 먹먹한 걸까. 이것이 이 노래의 힘이고 가사가 가진 진심의 힘이다.

이 노래를,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불러주고 싶다. 크리스마스가 원래 그런 날 아닌가. 지금은 산타와 도시의 화려한 불빛이 주인공이 되어 가고 있지만, 세상의 연약한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아기 예수가 온 날 아닌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너의 슬픔과 가난'에 나도 공감하겠다고 신이 더럽고 초라한 말구유에 나신 날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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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도시의 불빛에 지워진 이웃의 슬픔을 좇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위해 축제에서 한 걸음 벗어나 진짜 축제의 의미를 구현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크리스마스'는 진짜가 되는 것이다.

물론 기쁜 날이기에 함께 즐겨야겠지만 크리스마스 상징과 브랜드를 소비하면서도, 가슴 한편에 노래 하나 틀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학예회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피날레를 장식한 이 노래를 끝으로. 눈가를 손가락으로 콕콕 찍어내는 엄마와 아빠들을 보면서 흐뭇했다. 흠, 의도대로 되었군,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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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뜻깊은 학예회가 되었겠네요 좋은 기획자이십니다 ㅎㅎ

헤헤 과찬이십니다. 여러 해 학예회를 하다보면 쌓이는 노하우 정도입니다^^

힐링되는글 감사해요..스티밋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제가 어제 구세군을 돕기위한 길거리 공연을 했는데 영상있으니 심심하실때보시고 가세요~

멋진 일을 직접 행동으로 실천하는 분 보니 가슴이 훈훈합니다^^ 영상 잘 봤습니다~~!

마지막 영상을보면서 글을 읽으니 너무좋네요
잘보고갑니다
'수고했어 오늘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글과 음악이 한 조각 위로가 된다는 것이 참 흐뭇합니다. 자주 뵙겠습니다^^

읽고 난 이후에
어느덧 음미하고 있는 제가 있네요

다른 미사여구없이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잘 보고 가요

읽고 나서 음미하셨다니, 제 글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최고의 격려입니다^^
노래와 글이 님의 수고도 쓰다듬었길 바랍니다. 자주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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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 you for your mention. ^^

평소 즐겨듣는 노래입니다.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으신 것 같아요..

즐겨들으신다니 음악에 대한 공감대가 있을 것 같습니다. ^^ 칭찬 감사합니다. 더 정진하겠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 부모님의 수고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있었나
생각해보게 되네요!
좋아하는 노래라 더 재밌게 읽고 갑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

어쩌면 부모님의 수고를 생각해보지 못하는 게 아이다운 것일 수도 있겠지요~^^ 은근히 이 노래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는 게 반갑네요.ㅎ 메리, 해피 크리스마스입니다!

글을 모두 읽고난 느낌이
왜 이리도 개운한걸까요?
제 잘못은 아니라고 봅니다
ky님이 저를 이렇게 만드셨을뿐.

맘가득 행복감을 담고 감에 고맙습니다~

여기도 tip! 을 불러봅니다

개운한 그 느낌은,, 마치 목욕탕에서 나와 차갑고 상쾌한 공기가 피부에 닿았을 때의 그런 느낌을 말씀하시는 거죠? 제 글을 읽는 동안 목욕탕의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상쾌함을 느끼며 삶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게 글을 쓰는 맛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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