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ay @jjy의 샘이 깊은 물 - 엄마 시계, 딸 시계

in #kr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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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시계, 딸 시계 @jjy

시계가 죽었다. 무심히 지날 땐 가는지 섰는지 몰랐는데 갑자기 시계바늘이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다는 걸 알았다. 매일 그 자리에 있으니 눈길도 주지 않고 무관심하게 지나는 동안 밥도 한 번 주지 않아 굶겨 죽인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 같으면 시계는 귀중품이었다. 손목시계도 누구나 다 있는 것도 아니고 대청마루 한쪽 벽에 커다란 괘종시계가 턱 하니 자리하고 있으면 그 집은 살림이 넉넉한 집에 속했다. 그렇게 시계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친구를 따라 친구오빠가 일하는 시계방에 우연히 들렀다. 진열장 안은 유리창에 쓰인 그대로 금 은 보석 시계가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진열장에 붙어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오빠가 귀찮을 정도로 값을 물어봤다. 그러다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오빠의 설명에 의하면 일제 세이코 시계로 그 당시만 해도 명품이었다. 그 날 이후로 내 마음 안에 들어와 박힌 시계는 떠날 줄을 몰랐다. 자나 깨나 시계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애들은 중학교를 가니까 소리 나는 거를 사더라고스무고개 같은 말을 하는 딸을 보며 영문을 물으신 어머니께서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며칠 후 시계가 내 팔에 채워진 날의 감격은 잊을 수가 없었다. 학교에 가면 상급생들도 나를 보면서 시계 좋다고 하고 친구들은 대 놓고 한 번만 차보자고 했다.

농촌의 하루는 동이 트는 새벽부터 시작된다. 부모님께서는 워낙 부지런한 분들이라 일찍부터 일을 하셨고 아침을 먹고 나면 그 당시 유명한 한글학자 한갑수 선생이 진행하는 바른말 고운 말을 듣고 내용을 요약하고 집을 나섰다. 시계를 보지 않으셔도 일을 하시다가 댓돌에 해가 걸치면 점심 준비를 하셨고 한나절이 지나고 해가 퍼지며 오그리고 있던 분꽃이 다시 벙긋거리기 시작하면 저녁 지을 준비를 하셨다.

겨울이 오면 해가 짧아지고 농촌의 일손도 조금 한가해 진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쉬는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새끼 꼬는 기계를 밟으시며 헛간 처마에 닿도록 새끼를 꼬아 쌓아 두셨고
이른 봄이면 한 둘레씩 팔려나갔다. 아버지께서 햇볕이 걸터앉은 툇마루 앞에 새끼를 한 둘레 놓으시고 이발 기구가 들어있는 상자를 꺼내오셨다. 아버지께서는 나무 손잡이가 달린 이발기를 두 손으로 움직이시며 머리를 깎아드렸다. 아침을 드시고 모여 오신 어른들은 차례로 새끼 둘레에 앉으셨고 아버지나 할아버지를 따라온 아이들은 바깥마당에서 놀면서 차례를 기다렸다. 아버지의 발밑은 잘려 나온 머리카락이 까맣게 깔렸다. 해는 어느새 건넌방 문지방 앞에 다다르고 점심 드시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마당을 건너왔다.

아이들은 제일 긴 고드름을 따서 칼싸움을 했다. 서로 칼을 몇 번을 부딪치며 겨루다 어느 쪽 칼이 부러지면 칼싸움은 끝나고 그 순간 칼은 얼음과자로 변신한다. 우두둑 소리가 나게 고드름을 씹으며 뛰어놀았다. 눈이 쌓인 다음날에는 남자애들 눈싸움 하는 틈에 끼었다 맞고 울기도 하고 여자애들끼리 눈사람도 만들고 눈 위에 발자국으로 국화꽃이나 월계수를 만들면서 서로 자기가 더 잘 만들었다고 우기기도 했고 고드름으로 칼싸움을 하는 대신 일찌감치 눈을 치운 마당에 금을 긋고 사방치기를 했다. 동글납작한 돌을 발끝으로 차면서 한 칸씩 앞으로 나가는 놀이였는데 돌이 금에 닿거나 밖으로 나가면 죽었다고 해서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하루를 다닌 해가 용투골과 범바위 사이에서 곤한 발을 쉬면 어김없이 굴뚝을 빠져나온 저녁연기가 지붕을 넘었다.

그렇게 한동안 나를 으스대게 하던 시계는 새 시계가 생기면서 언제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시계는 더 이상 귀중품으로 대우를 받지 못한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별 아쉬울 것도 없는 물건이 되었다. 물론 돈 자랑 하고 싶은 사람들이 예물로 주고받는 모양이긴 하다. 세월이 흐르고 내가 그 시절의 어머니 연세를 지나갈 정도로 나이가 든 지금도 분꽃을 만난다. 외래종 꽃이 주종을 이루는 지금 뜰 앞에 분꽃이 핀 집을 보면 어머니가 못 견디게 그리워지고 시계 대신 꽃을 가꾸시던 어머니는 어느새 꽃이 되어 나를 향해 웃고 계시다.


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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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thank you
have a nice day

시계에 담긴 뜻과 그리고 글 잘보고 갑니다 ㅎ

감사합니다.
이제는 귀한 취급도 못 받지만
그래도 없으면 아쉽지요.
팔로우합니다.

그리고 보니 처음으로 나와 조우한 시계가 생각납니다.
그때 참 행복 했었는데...

감사합니다.
추억을 길어 주셔서...

한 때는 시계에도 감동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질이 풍요로우면 더 행복할 줄 알았는데
왜 모두들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는지요.
감사합니다.

어린 시절 추억이 참 좋습니다. ^^

예전에는 사발시계라고 하는 탁상시계가 필수품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야광으로 된 동그란 시계
자명종 시계라고도 했지요.
머리맡에 놓고 시간을 맞춰놓고 자면 아침에 깨워주는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감사합니다.

시계에 대한 아주 귀중한 추억을 가지고 계신것 같아요. 요즘엔 저조차도 핸드폰 가지고 다니니 시계가 짐이 되어 버렸네요. 물론 집에 있는 시계도 곧잘 굶겨 죽인답니다.^^

사람 팔자 시간 문제라더니
시계 팔자도 시간 문제인가요.
굶어 죽는 시계가 어디 한 두 개뿐이겠습니까
시간을 나타내는 시계도 시간을 피해 갈 수 없나봅니다.
감사합니다.

시계를 통한 추억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보고 갑니다^^

사람이 만든 시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장 나고 나중엔 버리게 되는데
하느님이 만든 시계는 날이 가도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