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ay @jjy의 샘이 깊은 물 -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in #kr6 years ago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jjy

잠시 쉬는 시간에 가게에서 대녀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누군가 가게 안을 기웃거리는 눈치에도 모르는 척 하고 얘기를 하고
있자니 그림자는 계속 어른거리고 떠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 문을 여니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들고 웃으시는
얼굴이 신축건물에 새로 입주하시는 빵집 사장님이시다. 내가 한 짓이
있어 찔리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에 커피만 받아들고
얼른 뿔을 건드린 달팽이처럼 쏙 들어온다.

주신 커피를 대녀와 둘이 나누어 마시고 잠시 찾아뵈었다.
빵을 만드는 기계와 커피머신이 좁은 가게 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얼른 일어나셔서 잠시 앉으라고 자리를 권하신다. 그냥 서서 인사만
드리려고 했지만 박절하게 뿌리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잠시
자리를 했다.

연세도 많으신 분들이 어떻게 가게를 하시게 되셨느냐고 여쭈어 보니
대기업에서 근무를 하시다 퇴직하시고 꿈꾸던 전원생활을 위해 그동안
보아 온 지역을 찾아 다니셨다.

그러다 친하게 지내던 분이 사시는 곳에 놀러 오셨다 마음에 드는 땅이
있어 매입을 결정하셨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아드님이 서양화전공을
하고 벨기에서 박사과정에 있어 나중에 아들이 작품 활동을 하기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즉시 결정하셨다.

집을 짓고 이사를 하고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별을 보며 잠이 들고
맑은 하늘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삶이 처음 한 동안은 꿈처럼 흘렀다.
그러나 막상 귀촌을 하고보니 꿈꾸던 전원생활이 아닌 거주지가 시골로
바뀐 대가로 무료하거나 무의미한 노동이 이어졌다.

워낙 부지런하신 분들께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상이었다.
무엇인가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주변을 살피기 시작하고
지자체에서 하는 각종 교육으로 눈을 돌렸다.

된장 담그기를 배우고 된장제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커피 바리스타 과정에 참여 하고 건강에 좋은 효소 빵도 열심히
배워 강사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준비하는 동안 10년 세월을 건너뛰었다. 그리고 된장이나 빵 체험을
특화 프로그램으로 개설하면서 남는 방을 팬션으로 운영했다.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도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빵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 서울에 유명한
장인을 찾아다녔다. 열정을 기울인 결과 성공적인 귀촌을 하고 전원생활에
안착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는 곳에서 아픔의 싹이 움을 틔웠다.
벨기에에 있는 아들이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고 다리를 절단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연락을 받고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아들을 지켜달라고 눈물로
기도하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들은 예상보다 치료가 잘 되어
지금은 유심히 보지 않으면 식별이 안 될 정도의 후유증으로 이삼년 정도
잘 견디면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반가운 소견을 들었다.

그동안 배운 빵과 아들의 요양을 위해 조그만 가게를 열기로 마음먹었다.
아들도 틈나는 대로 일손을 도우며 가게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특히
미술전공자답게 가게를 예쁘게 꾸미기로 하면서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으로 채워졌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왜 오픈 안하느냐고 하지만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하나하나 천천히 준비하면서 아버지와 아들이
구상하는 대로 가게가 완성되면 오픈하기로 했다.

된장과 효소 빵이 발효되기까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맛을 내는 것처럼
그렇게 천천히 간다고 하시는 말씀이 미소처럼 푸근하다.

대문을 그려 주신 @cheongpyeongyull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Sort:  

참 따뜻한 공간일것 같아요~~ ^^

네 아주 따뜻하면서
든든하기까지 합니다.

서둘러서 좋을건 없겠죠.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죠.

그 분들을 통해서 많은 걸 배웁니다.
무엇이나 열심히 하기만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열심히에 충분한 기다림도 필요함을 배웁니다.

요즘처럼 금새 후다닥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많은 부분 속에서 참 느림이 느껴지는 분이네요~
그런분의 빵은 어떤 맛일지 궁금해요^^

오늘도 오븐에서 꺼낸 따뜻한 빵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마음도
빵이 전해주는 부드럽고 구수한 맛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23일 맛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안에 오픈을 하면 좋은데
어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러면 좋겠다고 기다리긴 하는데

오............................전해주신 글만으로도 그 분의 성품이 느껴지고 맛이 느껴지고 향이 퍼져가네요. 그런 분이라면-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눠도 시간이 빛날 것 같아요.

연세도 많으신 분들께서
배움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정이
젊은이 못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가게 오픈하면 아주 잘 될거 같았어요.

궁금하네요
유명하신가 봐요🤔

현재는 유명하지 않으시지만
금방 유명해지실 것 같아요.
워낙 열정적이신 분들이라

된장과 효소빵이라, 무언가 느긋하게 익어가는 느낌이네요.

서두르지 않고 느릿 느릿
그러나 방향을 잃지 않는 분들

아...저 이 분들이 만든 빵 먹어봤어요
오픈 준비하신다는 소식도 들었는데..
이런 사연이 있었군요
마카롱도 배우셨다고 하던데 가서 또 사먹어야 겠어요^-^

이니 벌써?
디디엘엘님 은근 마당발이시네요.
커피도 맛있어요.
연세 드신 분들이라 좋은 말씀도 해 주시고

세상 흐름을 거슬러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응원하고
저도 다시 돌아봅니다.

천천히 발효를 기다리고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고
두분의 호흡이 잘 맞아요.
잘 어울리시고

다리를 잃은 아픔을 인공다리 연구하는것으로써 장점으로 탈바꿈한 휴 헤르 (제가 올린글에도 있음) 처럼 불행을 행복으로 바꾼 멋진 실화네요.

그래도 아드님 많이 회복해서
치료 잘 하면 이삼년 후에는 마라톤도 할 수 있답니다.
다행이지요.

Coin Marketplace

STEEM 0.30
TRX 0.12
JST 0.033
BTC 64513.89
ETH 3155.04
USDT 1.00
SBD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