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는 어디로 갔는가 (1)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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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녀 교육용으로 철학동화라는 것이 부모들 사이에서 유행이라고 한다. 내가 예전에 생각한 개념인가 싶어서 조금 찾아 보았다. 내가 생각한 것은 사상별로 주장하는 바를 세계관에 담아낸 동화인데, 그렇게 쉽게 나왔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물론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통 동화적 요소를 차용해서 새로 쓴 동화가 주를 이루는데, 동화의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배울 점"들을 포인트로 정리한 그런 것들이었다. 또한 이름만 다르지 비슷한 컨셉으로 제작된 동화책들이 넘쳐나는 듯했다. 이름하여 교훈동화라고 해두자.

자녀를 키우지도 않고 키울 생각도 없는 내가 왜 이 사실에 막연한 불편함을 느꼈을까. 이런 동화들을 잠깐 검색하면 대입, 논술 등의 용어가 섞여 있는 후기들이 눈에 띈다.

사진으로 올라와 있는 일부 텍스트를 보면, 막연했던 거부감이 보다 확실해진다.

사실 나는 그들의 자녀 교육이나 대학 입시 준비 방법에는 관심이 없다. 그것 역시 그들의 선택이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동화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 결과 교훈동화로 교육된 아이들이 전부 다 비슷비슷, 고만고만한 사람들로 자라나는 것이다.

교훈동화의 내용, 그리고 짚어주는 교훈들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중 상당수는 아마도 진부하겠지만, 괜찮은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동화, 스토리가 줄 수 있는 모든 장점은 그 여백에 있다는 것이다.

여백이 없이 해설과 교훈이 참고서마냥 딱딱 주어진 책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결과란, 어디서 들은 것만 쌓여가는 멍청한 아이일 뿐이다. 그나마 쌓이는 그것조차, 아이가 본능적으로 더 흥미가 가는 것을 찾는 순간 사라진다.

애초에 왜 다들 본인들이 책을 많이 읽었건 아니건 책 읽기가 좋다고 이야기하고, 권장하는가? 사고력, 상상력, 창의력, 논리력 등 온갖 장점이 책을 통해 생겨나리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는 많이들 하지만,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책을 무조건 읽으면 되는 것일까?

책을 읽으면, 읽는 시간 동안에는 무의미한 TV 시청이나 게임에 몰두하지 못하리라는 점 말고, 책 자체가 어떻게 그 모든 장점들을 길러줄 수 있는가?

답은 이미 이야기했듯이, 그 여백에 있다. 한 책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아이가 텍스트를 일단은 읽어낼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그 책이 남기는 여백에 있다.

책의 내용이 좋게 느껴지건 이상하게 느껴지건 간에 책을 읽으면서, 또는 읽은 후에, 아이 스스로가 풀어나가는 그 시간들에 달려 있다.

그 시간 동안 온갖 생각을 다 해보고 부모에게 질문도 하고, 또래나 형제자매에게 이야기도 하고, 비틀어서 자기 이야기인 것처럼 살짝 거짓말도 해보고, 인상적인 대사를 현실에서 사용해보고는 그 결과를 온전히 감당해내는 것에, 그 아이가 책에서 얼마나 얻게 되느냐의 문제가 달려 있다.

읽자마자 부모가 억지로 대화나 토론을 시켜보는 것도 그다지 좋지 않아 보인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게 좀 내버려둬라. 애초에 책을 쓴 전문 교육가가 의도하는 교훈이 그다지 훌륭하지 못한 것일수도 있고, 부모가 보기에도 이해가 잘 안 갈 수가 있다. 그래서, 아이가 궁금증을 가지고 왔을 때 최대한 진심으로 모르면 모르겠다고 답을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대신 부모의 개인적 생각임을 확실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떤 책에서 무엇을 얻어가야 하는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뭔지 어느 어른들이 다 알려주는 그런 교육은 결코 독서의 경험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그것은 수업이지, 독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철학 동화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고 여기까지 왔다.

애초에 나는 내가 우려하는 점이 무엇인지 밝힌 바 있다. 동화가 사라지는 것이 두렵다고. 다음에 이 주제를 이어나갈 때는 소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전통적 동화가 왜 가장 뛰어난지, 왜 아직도 필요한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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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ieinthedark님 안녕하세요. 써니 입니다. @qrwerq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첨들어봐요~

매번 이름만 바뀌는 학습용 동화인 것 같아요. 거의 유치원인지 초등학교 저학년인지의 나이대를 겨냥하면서 대입 논술 맞춤형이라는 얘기도 있더군요.

스스로의 힘으로 해나가는 힘! 공감합니다....^^ 자율성은 최고의 동기부여니까요!!!

네, 사실 그게 없이 되는 일은 없으니...학교 교육은 주입식이라고 탓하면서 집에서까지 그렇게 하는 것은 딱 특정한 답안에만 신경쓰는 사람을 길러내는 방법인 것 같아요. 그 답안이 다른데서 통하지도 않는데...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셋인데 요 녀석들은 매일 신나게 뛰어노는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책은 뭐...ㅋㅋㅋ
독서는 나중에 때가 되서 하고 싶으면 하라고 둘려고 합니다. ^^

잘 하시는 것 같아요. 선택지는 주되 노는 걸 선택하는건 건강한거죠 ㅎㅎ 사실 책은 좀 늦게 재미를 발견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반면 어릴 때 뛰어노는건 딱 그때만 가능하니깐요.

스팀가격이 떨어지는 절대보팅금액이 줄어드네요...
ㅠㅠ
그래도 같이 힘냅시다!! 화이팅!
후후후 딸기청이나 만들어볼까합니다!
https://steemit.com/kr/@mmcartoon-kr/6jd2ea

와이프분이 만드신 거 아닌가요?후후 감사합니다 ㅋㅋ

철학동화란게 그책을 통해 얻어야할 교훈까지 미리 정해놓고 주입하는 방식이군요..
전 반대하겠습니다!

학습동화라는 게 더 맞겠더라구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전래동화, 창작동화, 이솝우화는 아는데 철학동화 처음 알았네요.^^;

기존의 것을 엮어내서 무한정으로 팔 수도 없고 새로 쓰는 사람도 있으니 별의별 스타일로 다 나오는 것 같아요. 철학 동화는 그중에서도 좀 최근 트렌드 같네요 ㅎㅎ

동의합니다. 여백이 가지고 있는 힘은 셉니다. 여백을 스스로 채워나가는 힘을, 여백이 얼마나 다채롭게 채워질 수 있는지에 대한 아름다움을, 여백 그 자체를 - 놓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네. 뭔가 읽은 내용이 진짜 양분이 된다고 느끼는 때는 상당히 늦게 올 수도 있더라구요!

컨텐츠가 철학이 되든 인문학이 되든 모든지 학습하려한다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아요. 정답이 없는 학문을 가지고 정답같은 교훈을 주는 걸 만들어냈다는 자체가 아이러니네요.
요즘 4차산업혁명 이슈때문에 코딩교육이 열풍이라는 걸 tv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 역시 본질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방과후 1시간씩 주입식으로 배운다고 하더라구요.
동화가 사라지는 세상에서 무슨 철학동화라니요;;

아, 그래서 요즘 뜬금없이 코딩을 배워보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났던 것이었군요! 어쩐지 성향도 전혀 안 맞을 것 같은데 로스쿨 준비해볼까, 공무원 시험 쳐볼까 하는 말과 비슷한 투로 하길래 의아했습니다. ㅎㅎ

지금 보니 리스팀 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요즘 스팀잇 자체의 논란이 슬그머니 또 생겨나는 시기 같던데 그래서 아마 어지간하면 다 묻히겠지만요...통하는 분들을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죠. 팔로우하고 있습니다. 자주 뵈어요!

그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 하는 문제에 대해, 자신의 시각을 아동에게 강요하는건 교육도 아닌 세뇌일 뿐이죠.

글쓴 이(들)의 진짜 개인적 고민을 거친 시각일런지 그것도 사실 회의가 들어요. 동화책인데도 대입, 논술 등이 거론되던데, 그렇다면 글쓴이가 '가져야 하는 시각'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니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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