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의 철학 판타지] 파르메니데스 영감님, 쌍코피 터진 사연^^

in #kr6 years ago (edited)

gate3.jpg


헤르메스가 들려주는 철학 판타지 에피소드 1. 이 이야기는 신이라 불리기도 하고 예수라 불리기도 한 근동의 현자께서 태어나기 500여년 전, 평화로운 필로소피아 땅의 퓌지카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파르메니데스 https://classicalwisdom.com/

어느 여름날, 해질녘 집으로 돌아오는 파르메니데스 영감은 심기가 불편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 영감의 논변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기 떄문이죠.

헤영감의 주장은 간단했습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

세상에! 모든 것이 변한다니! 변치 않는 것이 없다니!

그럴 리 없겠지만 그는 혹시라도 헤영감의 주장이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로 받아들여진다면 큰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도 우정도 믿음도 모두 변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진리로 받아들인다면, 인간은 서로 배신을 일삼는 짐승만도 못한 존재가 될 게 뻔 하니까요.

더구나 매일 같이 느티나무 아래 너럭바위에 모여 앉아 고담준론을 나누던 다른 영감들이 하나둘 헤영감 편에 서는 형국이었으니, 파영감은 더욱 조바심이 날 밖에요. 여기엔 물론 똑똑하기로 이름난 그의 무너진 자존심도 한 몫 했지요.

'이를 어쩐다? 어쩐다지?'

내일 또 헤영감의 기고만장한 얼굴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저녁까지 먹는 중 마는 둥 건너 뛴 파영감은 잠자리에 들 때까지 깊은 수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파르메니데스, 파르메니데스... 파르메니데스..."

어디선가 들려오는 여인의 달콤한 속삭임에 파영감은 퍼뜩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잠기운에 더해 눈부신 광채 때문에 흐려진 시야 속으로 새하얀 옷을 입은 아름다운 형체가 조금씩 들어왔죠. 그녀의 어깨 위에선 하얀 부엉이가 커다란 눈을 껌뻑이고 있었구요.

그렇다면! 이 여인, 아니 이 여신은... 지혜의 여신, 아테네!

예고없는 여신의 강림에 놀란 파영감은 허둥지둥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여신의 발치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Minerva-Mitologia-Romana-Atena-Mitologia-Grega-11.jpg

http://cultura.culturamix.com

"가엾은 파르메니데스... 네가 날 부르지 않았느냐? 나를 불러놓고 잠이 들다니... 영민하던 네가 나이가 든 게로구나..."

여신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아, 아닙니다. 어찌 비천한 제가 감히 여신님을... 저는 그저... 좀 전까지 말못할 고민에 빠져 있었는데..."

"그래, 넌 지혜를 구하고 있었지... 누구도 논박할 수 없는 진리를 말이야... 네 절박함이 나를 이곳에 오게 만든 것이고..."

"아, 예, 예, 그렇군요. 아둔하기 짝이 없는 제 머리로는 도무지... 저 거만한 헤라클레이토스 영감의 허튼 주장을 논파할 방도가 없기에..."

"후후, 그랬구나... 그럼 지금부터 너에게 귀하디 귀한 지혜의 말을 전할 터이니, 잘 듣고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따르거라. 할 수 있겠느냐?"

"예, 예, 물론입죠."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다시 한 번 이르노니, 이 말을 따르면 너는 진리의 길을 따라 무한히 나아갈 것이되, 이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너는 그로부터 영원히 멀어지게 될 것이야..."

아..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그런데, 여신님...!"

알듯 모를 듯한 여신의 신탁에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파영감, 문득 고개를 들어보았으나 여신은 이미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지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아아... 으아악~"

"여보, 여보! 왜 그래요? 악몽이라도 꾼 게로군요."

"으응? 내가 꿈을 꾼 건가? 아냐... 꿈이라기엔 너무나... 여신께서 방금 나에게... 그래, 맞아 ...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라고... 아하, 옳거니! 바로 그거야!"

"아니... 당최 무슨 소린지... 그러게... 허구헌날 너럭바위에 퍼질러 앉아서 사지 멀쩡한 영감탱이들이 쓸모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말꼬리 잡기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시더니... 이 양반이 드뎌 정신이 나갔네, 나갔어... 아이구, 아이구, 내 팔자야...!"

하지만 우리의 파영감, 그 자리에서 춤추듯 옷을 걸쳐 입고 전후 사정을 알 리 없는 아내의 푸념을 뒤로 한 채 동구밖으로 내달립니다.

그리고 한참 후...


헤라클레이토스 https://philosophyforchange.wordpress.com

"여어~ 똑똑이 파르메니데스, 어제는 잘 들어갔나?"

아침부터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이제나 저제나 상대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파르메니데스에게, 팔자 걸음을 걸으며 느지막히 나타난 헤라클레이토스가 인사를 건냅니다.

"어어, 헤 영감... 잘 들어갔지, 그럼 내가 뭐... 흠흠... 그건 됐고... 있는 건 있고 없는 건 없네!"

"응? 뭐라? 그 무슨 뜬금없는...?"

"있는 건 있고 없는 건 없는 것!!! 자네도 이건 논박할 수 없을 거네!"

"오호... 간만에 흥미롭군... 있는 건 있고 없는 건 없다라..."

"나는 파르메니데스, 자네는 헤라클레이토스! 이 너럭바위는 너럭바위, 느티나무는 느티나무! 있는 건 있는 것이고 없는 건 없는 것이지. 어떤가? 내 논변이... 능히 논파할 수 있겠나?"

자존심을 회복할 기회를 잡은 파영감은 숨쉴 틈 없이 몰아댔고, 당황한 헤라클라이토스는 말끝을 흐립니다.

"아니, 뭐... 그건 두 말할 나위없이 너무나 당연한... 어험, 그건 그렇다치고... 그거랑 내가 어저께 말한 논변과는 무슨 상관인가? 혹시 이야기의 물길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는 건가? 그렇다면 내 논변이 반박 불가능하다는 건 인정하는 꼴이 될 터인데..."

두 사람의 갑론을박은 점차 열을 더하고, 너럭바위 주위로 하나 둘 모여든 다른 영감님들도 귀를 쫑긋 세웁니다. 며칠 전, 퓌지카 마을에 이사 온 단 한 사람만 빼고...

"허허, 지금 이 파르메니데스를 어떻게 보고... 지금부터 내 말 잘 듣게. 헤라클레이토스 자네는 모든 것이 변한다고 했지만, 어떤 것이 변한다는 건 곧 다른 것이 된다는 뜻 아니겠나?"

"으음..."

"그런데 말이지. 우리는 이미, 이 느티나무는 느티나무, 너럭바위는 너럭바위라는 걸 인정했단 말이지. 이를테면 자네 말대로 이 너럭바위가 변한다면 그건 너럭바위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된다는 말인데, 그건 이치에 닿지 않은 억견일 뿐이라고..."

"우하하하하. 파르메니데스. 아침부터 나와 있었다더니 더위를 먹은 게로군. 그 무슨 당치않은 궤변, 아켈레우스 뒤꿈치에 화살 맞는 소리인가? 이 느티나무가 지난 겨울에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자네도 알고 있을 터! 그럼 이파리 하나 없이 앙상했던 겨울의 느티나무와 지금 이 푸르디푸른 느티나무가 똑같다는 말인가? 이렇게 우스꽝스런 논변은 처음 들어보는군. 크하하하하하!"

"그럼 자네는 지금 이 느티나무가 느티나무이면서 느티나무가 아니라고 말하는 건가? 그럼 나는 자네를 뭐라 불러야 하나? 헤라클레이토스이면서 헤라클레이토스가 아니기도 한 영감님? 그 잘난 이름 한 번 부르려다 숨넘어가겠네 그려~ 헤라클레이토스이면서 헤라클레이토스가 아니기도한 나의 벗이여, 어서 와서 너럭바위이면서 너럭바위가 아니기도 한 이 곳에 앉아 숨이나 고르시게..."

"거참, 이 영감탱이 쓸데없는 고집하고는..."

"잘 듣게, 자네가 지금 느티나무가 변한다고 느끼는 건, 정신이 아닌 육신의 눈으로 보고 느끼기 때문이야.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의 눈으로 잘 들여다보면 이 느티나무가 항상 변치 않고 언제나 그대로라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그럼에도 자네가 모든 것이 변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건 육신의 눈이 자네의 정신을 흐리고 있다는 증거일 뿐..."

"어허... 파르메니데스, 이 사람, 참..."

말문이 막힌 헤라클레이토스,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다시 입을 엽니다.

"음... 그런데 파르메니데스. 이건 어떤가? 자네가 말하길 있는 건 있고 없는 것 없다 했지?"

"그렇지."

"으흠~ 그렇구만, 그렇다면...!"

"퍽~!!!"

끔찍한 소리와 함께 파르메니데스의 코에선 쌍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솥뚜껑 만한 주먹으로 파르메니데스의 콧잔등을 냅다 후려갈긴 것입니다. 말릴 새도 없이 일어난 일에 주변의 영감님들은 어안이 벙벙해져 있을 뿐...

파영감은 두 손으로 콧잔등을 감싸쥔 채 데굴데굴 구르며 소리칩니다.

"아악, 아니 이 영감이! 헤라클레이토스, 이게 무슨 짓인가? 아무리 내 논박에 약이 올랐기로서니 이런 무지막지한 짓을 해? 아이고 코야, 아이고 내 콧잔등~!!!"

하지만 헤라클라이토스,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고 먼산을 보며 말합니다.

"어허... 무슨 소리? 나는 지금 자네를 치기는커녕, 옴쭉달싹조차 못할 지경인데... 자네 말 대로, 없는 것이 없으니 지금 내 주위는 알 수 없는 존재로 가득 차서, 나는 지금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숨조차 쉬기 어려운 걸...? 파르메니데스, 마음의 눈으로 보게. 자네는 지금 덧없는 육신의 환각에 고통을 받고 있는 거라고!!!"

(철학 판타지, 에피소드 1 끝~~ 이 이야기는 곧 에피소드 2가 이어집니다.^^)



WARNING: 이 이야기는 특정 역사적 사실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헤르메스의 글들^^
경제 판타지
철학이 있는 영문법
마법속 철학
작은 생각
욕망의 정치
욕망의 경제
Sort:  

선생님 작품이세요?
영감님들 대화 흥미롭네요.
다음 이야기 독촉들어갑니다.
작품에서 전달코자 하는 의미가
궁금합니다. 나중에 알겠줘
재밌게 읽어습니다

스팀잇에서도 나눌 겸, 학교 블로그에 올려 아이들한테도 읽힐 겸 쓴 글입니다. 가을학기에는 철학사 강의를 할 생각이라 약간의 낚시성으로다가...^^ 곧 에피소드 2 올려드릴게요~ 항상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능력자 선생님.
전 지금 출장중 기차 기다리고 있네요

요괴들 재밌게 읽겠는데요.
열띤 토론도 기댜되는데요.
아들녀석에게 한번 읽혀줘야 겠네요
다음편 기대합니다^^

출장 중이라시는데 이런 말 좀 그렇지만 기차 여행한지도 꽤 오래네요. 편한 여행되세요~ 감사합니다^^

네 아주 편한자리에서
편하게 왔네요
한번 올릴께요
기차여행(출장)기!!

철학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내셨네요. 제 생각엔 두 영감 생각 다 맞는건 같은데요? 제 자신이 스스로 변화해서 진화한후 완전 다른사람처럼 변해도 저는 제자신이 맞죠. 그런데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모든만물은 시간이 흐를수록 변하죠. 심지어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관도 어떤 영향이나 이유로 인해 변화할수 있는것 처럼 말이죠. 결국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그어떤것도 반드시 옳지는 않은것처럼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네요 :)

네, 맞습니다. 현실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옳다 말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필로소피아(철학) 나라의 퓌지카(자연학/자연철학) 마을 사람들은 자연의 원리에 관한한 조금도 양보할 마음이 없나 봐요. ㅎㅎ

Coin Marketplace

STEEM 0.19
TRX 0.15
JST 0.029
BTC 63220.55
ETH 2560.85
USDT 1.00
SBD 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