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 욕망의 정치] 합리성이 아닌 ''합당성'' - 스팀 리퍼블릭/비지배 자유로 가는 길목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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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토요일 이 시간대라면 헤르메스는 원래 야구장에 있어야 하지만, 상대팀 사정으로 갑자기 취소되는 바람에 거실 소파 밑에 담요 깔고 뒹굴링(?) 중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합정동 스팀시티 행사장이라도 가보는게 나았나 싶기도 한데, 몇 주 동안 달고 있는 후두염도 다스릴 겸 이번 주말은 집에서 그냥 쉬려고...
  2. 덕분에 오랫동안 방치해뒀던 페북에 접속했더니 소소하지만 재밌는 뉴스가 있네. 연말 연초 블록체인/암호화폐에 대해 가루가 되도록 앞장서서 비판하던 경영학자 페친 한 분이 블록체인 토큰 관련 스타트업 기업에 취업하셨다는 글이 열흘 전에 올라왔었군. 사실을 고백하며 스스로를 생육신(변절자?) 중의 하나인 신숙주에 빗대기까지 하시는걸? ㅋㅋ 학자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은데 꽤나 쿨한 양반이다 싶어. 작은 일이지만 암호화폐 경제의 미래에 대해 뭔가 암시하는 바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3. 스팀잇에 가입한 지 벌써 다섯 달. 그 전에는 암호화폐는커녕 주식투자에도 관심 없던 내가 가끔이지만 코인 시세 그래프를 들여다 보고 있는 걸 보면 이걸 괄목상대라 해야 할지, 격세지감이라 해야 할지.ㅋㅋ 오늘도 고팍스 기준 1400원대에서 횡보하는 걸 보며 소액이지만 또 스파업을 할까 생각 중이야. 스팀파워 랑, 애픽스, 소액의 이오스까지 포함하면, 자유적금 넣듯 해온 게 꽤 쌓였어. 본격적인 투자자 형들이 보면 새 발의 피겠지만.ㅎ
  4. 한 동안 쉬었던 이야기를 이어가 볼까 해. 우선 오랜 만이니 복습부터...^^ 이전 글에서 소극적 자유, 적극적 자유, 비지배 자유, 그리고 '정치'에 관해 이야기했던 것 기억나지? 정치철학자 이사야 벌린의 이야기를 빌려, 소극적 자유는 간섭받지 않을 자유. 적극적 자유는 어떤 가치를 지향할 자유라고 했었지. 소극적 자유는 '자유의지'를 인간의 본질적 속성이라 여기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개인의 자유'에, 적극적 자유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맥락에서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참여'에 강조점을 둔다고 했었어.
  5. 문제는 이 두 가지가 서로 충돌할 때인데, '셀프 보팅' 혹은 '어뷰징' 이슈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겠지. 소극적 자유를 강조하는 측은 이 또한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일이니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입장에, 적극적 자유를 강조하는 측은 공동체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로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규제를 가해야 한다는 입장에 가까울 거야.
  6. 나는 이렇게 두 가지 자유가 서로 충돌하는 지점에서 '정치'가 출현한다고 봤어. 교과서에 나오는 '합리적 갈등 조정'으로서의 정치 말야. 그리고 우선 밝히자면 나는 '정치'의 맥락에서는 '합리적'이 'rational' 보다는 'reasonable'의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야. 앞의 글에서 말한대로 ratio(비/비례)라는 말에 어원을 두고 있고 따라서 근원적으로 '수량적 비례에 맞는'이라는 뜻을 가진 'rational'은 '기준이 명확하고 객관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공동체 내부의 갈등이 원초적으로 '욕망의 충돌'이라는 점에서는 이러한 장점은 곧 단점이 되기도 해. 각자의 욕망을 수, 양, 비례로 환원하거나 측정할 방법이 과연 있겠냐는 거지.
  7. 지금부터는 표현을 구분해서 사용해볼게. 편의상, rational/-ity는 합리적/합리성으로, reasonable/-ness는 합당한/합당성으로 옮겨 쓰려고... 그러면 헤르메스가 생각하는 정치는 '(사회적 희소가치의 배분을 둘러싼) 갈등을 합당하게 조정하는 활동'으로 다시 정의될 수 있겠지.
  8. 그러한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할 형들도 있을 거야. 말 장난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그런 형들은 이렇게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9. 한 예로 5명의 스티미언들이 있다고 쳐. 각자 적당한 스팀파워를 보유하고 있지. 이들은 각자 글을 올릴 때마다 서로 풀보팅을 해주고 있어. 올리는 글이라고는 제3자가 보기엔 별 거 아닌 사진 뿐이야. 이거 어뷰징일까 아닐까?
  10. 어뷰징(권한 남용)에서 쟁점이 되는 것은 '어떤 행위가 기준에 부합하느냐 아니냐' 아니겠어? 따라서 '합리성'을 기준으로 삼게 되면 수량적 비례가 쟁점이 될 수밖에 없어. 다시 말해 그 사진을 찍어 게시하기까지의 노력, 거기 담긴 창의성 등의 가치를 수량적인 지표, 즉 화폐 가치로 환원해서 측정, 판단하려 들 테고, 이렇게 되면 양 갈래로 나뉜 논쟁은 피할 수 없게 되지.
  11. 한편에서는 그런 가치는 성격상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가 없는 주관적인 것이니 어뷰징 여부를 판단할 수 없고 어디까지나 개인들이 판단할 영역이므로 간섭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할 테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러한 행위를 방치하게되면 가치 있는 게시글을 생산하는 창작자들의 의욕이 꺾이고 그러면 스팀 공동체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게 될 것이므로 규제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할 거야. 다들 알다시피 이게 지금까지의 논쟁 구도였어. 합리성이 개입되는 순간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는 거야.
  12. 그럼 합리성이 아닌 '합당성'을 놓고 보면 어떨까? 어떤 단일한 원칙이나 기준을 문제삼는 합리성과 달리, 어떤 행위가 합당하냐 아니냐를 판단할 때는 그 행위가 일어날 때의 상황, 맥락, 행위 주체와 대상의 관계등을 감안해서 그 행위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게 돼. 이를 역으로 표현하면 내가 말하는 '합당성'이란 '합법성', '정당성'처럼 집단적 합의, 관습, 법률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맥락, 구체적인 상황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는 점에 유의해 줬으면 좋겠어.
  13. 앞서 말한, 다섯 사람으로 이루어진 '보팅풀'(?)을 예로 들어 보자구. 그 사람들이 모두 사진가들이고 각자의 사진 작품을 통해 기술적이고 미적인 정보 교환이나 교감을 나누는 표상으로서 보팅을 하고 있다면 그들의 행위는 어뷰징은커녕 합당한(훌륭한) 창작 및 큐레이팅 행위로 인정받을 거야. 하지만, 아무 의미 없는 사진을 복붙하면서 '스팀 채굴'만 하고 있다면 어뷰징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겠지.
  14. 정리하자면 합리성이 기준이 될 경우, 그것을 받아들이는(적극적 자유를 옹호하는) 측은 개인 행위에 대한 과도한 규제(속박)와 전체주의(집중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소극적 자유를 옹호하는) 측은 공동체의 분열(개별화)과 강자의 지배(초집중화)를 각각 리스크로 떠안게 돼. 하지만 행위가 이루어지는 구체적 상황과 맥락 그리고 주체와 대상의 관계에 기반한 '합당성'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조건만 실현된다면 이러한 리스크의 상당 부분이 사라지게 되지. 그게 바로 비지배 자유, 참된 의미의 탈집중화(=욕망의 공화정, 그리고 그것이 구체화된 스팀 리퍼블릭)이라는 전망이야.
  15. 참 쉽지? ㅋㅋ 맞아, 말은 쉬워. 문제는 말이 아닌 실제고, 인생은 실전이라는 거지. 게다가 이런 비판도 가능해. '합당성'이라는 것도 결국은 자기들끼리의 '주관성'에 불과한 거 아냐? 앞서 말한 사진가들끼리의 큐레이팅이랑 어뷰징을 '합당성 여부'로 구별할 수 있다손치더라도, 어뷰징 행위 자체에 대해 영향을 끼칠 수 없다면, 방임하는 거랑 뭐가 다르냔 말이지...
  16. 반대 쪽에선 이렇게 비판할 수도 있을 거야. '합당성'이 '합리성'이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 그것 또한 '다수의 합의'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행위를 규제하는 거잖아. 그 또한 결국 전체주의로 흐를 뿐이야...라고.
  17. 이런 비판과 더불어 실현 가능성도 문제가 되겠지. '합당성'에 근거한 가치 배분과 갈등 조정이 이루어지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이제부터는 '합리성'이 아니라 '합당성'으로 판단해 주세요."라고 캠페인을 벌이면 되나? 자발성에 호소한다는 점에서 좋은 방법이지만 그리 효과적인 방법은 아닌 듯... 아니면, 예상 가능한 상황, 맥락, 관계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짜서 시스템에 반영시키면 어떨까? 더할 나위 없는 방법이지만 문제는 '불가능'하다는 거...ㅋㅋ

오늘은 여기까지... 갖가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 나 역시 그래. 하지만 굿 뉴~스는 "해답의 실마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질문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는 거!!!

다음 글부터는 합당성의 문제가 '비지배 자유'로 연결되는 고리에서 출발해서, 보팅, 보상, 평가, 커뮤니티 등 좀더 구체적인 주제를 다루게 될 거 같아.

형들 중에는 벌써 내 이야기의 전개를 예측하고 있는 능력자들, 센스쟁이들이 분명 있어. 난 알아. ㅋㅋ 댓글로 많은 의견 나누기를 부탁할게. 다음 글에서 만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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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합리성 어렵군.
도덕성을 맥락, 관계 포괄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짜려는 노력은 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햇다고 봐.
인간은 80% 원숭이와 20% 꿀벌이란 그을 봣어

이기심과 단체를 위해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섞여 있고,,,,
모든 단체나 비단들은 모두 제각각의 마음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정리가 될까?
개인의 자유와 집단우선주의는 사실 이중적 양면이라서 ㅋㅋ
기대되네 ㅎㅎ

동의해. 누가 인간의 본성, 마음, 욕망을 정의할 수 있겠어? 정의할 수 없는 건 정의하지 말아야지. 정의할 수 없는 것을 정의하려는 시도 자체에 문제의 씨앗이 있지 않을까? 역으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을 정의하지 않는 것이 해결의 실마리는 아닐까? 대충 생각은 이렇게 이어지는데 말이지...^^

어려워. 소극적 적극적 자유중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할래라는 질문에서부터 막히잖아. 합리와 합당의 차이까지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어. 난 요즘 무엇이든 기준이 없는 것 같아. 생각이 없는 건가? 물에술탔냐술에물탔냐!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중에서 어떤 걸 꼭 선택할 필요는 없어. 오히려 그러지 말자는게 이 글의 취지인 걸? ㅋㅋ 합리성과 합당성도 마찬가지야. 어떤 행위를 판단하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을 '합리성'이라고 한다면, '합당성'은 개별적인 상황과 구체적인 맥락에서 행위의 의미를 해석하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어. 제시카 형이 요즘 기준이 없다고는 말하지만, 스스로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지. 물에 술을 타든 술에 물을 타든 맛있으면 그만 아니냐고~ 이렇게 말하니 갑자기 진토닉이 땡기네... ㅋㅋ

난 와인 마시고 있어. 요즘의 나는 그냥 모호함이야 ㅠㅠ 이런 내가 답답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그냥 흐르듯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할때도 있어. 이런거 늙는건가 싶기도 하고 ㅠㅠ

물 흐르는 듯 사는 게 좋은 거 아닌가? 그런 게 늙는 거라면 늙는 건 좋은 거라구~~ㅋㅋ (냉장고에 페일에일 포장해온 게 있는데 1000cc 짜리 캔이라 차마 딸 수가 없넹 ㅠㅠ)

전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ㅋ
술기운이 확 올라옵니다. ㅋ
많은 의견은 눈팅하겠습니다.

(jjangjjangman 태그 사용시 댓글을 남깁니다.)
호출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합리성과 합당성의 차이가 그렇게 구분되어서 적용될 수도 있는 것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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