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 사이에서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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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한 달 전쯤,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대학교 동기였다. 결혼을 한다며 웨딩 사진을 부탁했다. 평생 한 번인 웨딩 촬영이기에 부담스러워 거절했지만 거듭 부탁하기에 수락했다. 나름 촬영을 준비하기 위해 이것저것 찾아보고 계획을 짰다. 그리고 촬영을 사흘 앞둔 저녁, 전화가 왔다. 이틀이었던 촬영 일정을 사흘로 늘리고 싶다 했다. 일정에 관한 얘기를 하다 이전까지 쭉 없었던 화제를 용기내어 말을 꺼냈다.

"넌 페이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데?"

"난 니가 친구니까 수고비 명목으로 xx만원 정도 생각했는데?"

잠깐 망설였다. 내 하루 촬영비로도 빠듯한 금액이었다. 그리고 평소에 내가 받는 금액을 얘기해주며 어렵게 입을 뗐다. 친구는 잠시 말이 없다가 너무 비싸다며 그럼 자기가 제주도 스냅 촬영 비용을 알아본 것과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럼 너는 싸게 촬영을 하려고 날 찾은 거야?"

친구는 내가 사진 찍는걸 좋아하니까 이 정도로 부탁하면 될 줄 알았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난 직업으로 사진을 찍는다. 이전에 가끔 통화할 때도 프리랜서로 일을 한다고 얘기했기에 몰랐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면 잊어버렸거나.

"그 정도면 나도 촬영은 못하겠다. 미리 좀 얘기해주지."

난 촬영을 부탁하는 쪽이 먼저 얘기를 꺼냈어야 하는 문제 아니냐고, 하도 얘기가 없길래 내가 먼저 말을 꺼낸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럼 예산에 맞춰서 하루라도 찍어줄 수는 있다고 얘기하니 그 친구가 말했다.

"아니야, 이미 의가 상해버렸는데 어떻게 그래."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결국 취소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의'가 상했다고..? 친구가 생각하는 '의'는 무엇이었을까. 친구가 사진을 찍으면 싼값에, 혹은 돈을 받지 않고 사진을 찍어줘야 하고, 친구가 디자인을 하면 간단한 것들 좀 부탁한다며 공짜로 의뢰해도 들어주는게 '의'일까. 문득 궁금해져서 '의'를 검색해봤다.

'사람으로서 지키고 행하여야 할 바른 도리.'

난 친구 사이의 도리를 저버린 것일까. 그게 '의'라면 조금 슬퍼질 것 같다. '친구는 싼값을 원했던 만큼 나를 싼 인연으로 생각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나를 위로했다.

02


목포에 내려온지 2년이 되어간다. 원래는 이렇게까지 오래 머물 생각은 아니었고 밖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단계로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렀다. 본래 느긋한 성격이라 물 흐르는 대로 살아왔다. 다만 그 물이 역류도 했다가 멀리 돌아나가기도 했다가 우여곡절이 많을 뿐.

그런데 이제는 내 뒤에 거대한 폭포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두렵고 무서운 느낌. 프리랜서일을 하다 보니 일이 없을 때도 종종 있어 수입은 불규칙하고, 고정적인 일을 찾자니 나이의 문턱에 걸려 만만치 않다. 지방이라 더 어려운 듯하다.

03


목포에 내려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사람이다. 정말 좋은 일을 하는 동생들을 알게 됐고 이곳을 떠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이 친구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지방의 청년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일이다. 당장 돈이 나오지는 않지만,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단체 티의 뒷면에는 '니 맘대로 해'라는 문구가 박혀있다. 앞으로 어떤 일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지만 여전히 현실의 문제는 코앞에 닥쳐있다. 결국, 문제는 '돈'으로 수렴한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을 하고 싶지만 반대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마음도 강해졌다. 둘을 모두 충족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당장은 어렵다. 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돈이라는 것의 가치는 무시할 수 없으니까. 지난겨울 일이 뚝 끊긴 시기에 스팀잇에 들어온 이유도 처음엔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유였다.

지울 수 없는 불안감은 아직도 존재지만 바라보기 싫어 눈을 가렸다. 나를 자주 봐온 사람들은 새벽에 글을 쓴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불안감으로 인한 불면증의 산물인지, 아니면 내가 쌓아온 생활방식의 일부인지 이제는 모르겠다. 창밖에 다시 해가 뜨고 있다. 억지로라도 눈을 붙여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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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1번 글에 격한 반응을 ㅎㅎ 저도 예전엔 그런 일이 많았던 것 같네요. 요즘은 친구도 없을 뿐더러, 확실하게 맺고 끊음이 가능해졌지요. 씁쓸한 이야기입니다.

청년 문화를 활성화시키는 것. 누군가는 꼭 해야할 일이지만 애로사항도 참 많겠죠. 그럼에도 응원합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일들도 언젠가 포스팅으로 소개해드릴게요 :)

그 '의'라는 것을 저도 지난주 오래도록 생각해봤습니다.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셨네요. 회사를 옮기고 실적을 만들어야한다며 전화해서 보험을 들라던 친구... 저는 친구니까 당연히 들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더라구요. 뭐가 이런건지...

친구라는 관계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것 같아요.. 씁쓸하게도요

아니 그 친구분 참...통상적인 촬영비용을 알아보고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그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을 생각했다면 먼저 조심스레 얘기했어야죠. 그냥 일찍 알게 되어 다행이네요.

그러게요.. 그 전화가 아니었다면 제주도에서 혼자 뻘짓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저는 동창과 친구를 구분해서 관계를 유지 합니다
이기적이지만 서로가 편한것이 더 만은거 같더라구요
세상에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절대적인것인가봅니다 때론 사람보다 돈때문에 상처를 받는경우가 만으니 말입니다
돈이 웬수네요

동창과 친구.. 친구라고 생각했기에 더 상처를 받은 것 같아요. 결국 문제는 돈입니다. 제길!

음.
그래퍼님이 먼저 찍어준다고 했으면 모를까.... 부탁하는 입장에서 의가 상했다고 이야기하는건 좀.....
촬영가격을 알고 있었으면서... 미리 이야기 하지 않고 부탁하는것도 좀....
그렇네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친구가 아닌경우도 종종 벌어지더라구요. 그래서 안그래도 없는 친구 더 없어져갑니다. ^^;;;

저도 지방에 사는데... 전 일할 수 있는 직장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페이는 넘 적네요.

언제나 페이문제는 아이러니하죠ㅠ.. 결국 떨어져나갈 인연이었다고 애써 생각해보려구요

내가하고싶은것의 독보적능력을갖게되면 하고싶은걸 하면서도 돈도 벌 수 있게되는 것이라고 하는데 .... 참 그게어렵지요 ㅠㅠ 그리고 사실 하고싶은것에 돈이 연결되었을때 온전한 나의 자유가 생기는지도 좀 의문이생깁니다 ㅠㅠ 저도 비슷한고민을 너무 많이하고있어서 공감되네요 ㅠㅠ

어렵습니다 ㅠㅠ.. 작년부터 이어지는 저의 최대 고민입니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으면 갖게되는 불안감은 당연한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시간의 자유가 있는것의 몇 배에 해당하는 불안감이죠.. 저도 나름 많이 겪어봐서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 친구분이 참 말씀을... 저희 남편도 며칠전에 비슷한일을 겪어서 제가 위로해 주느라 힘들었는데, 그래퍼님께도 위로의 말씀이라도 전하고 싶네요. 어쩌면 다른분들 말씀대로 조금이라도 빨리 알게된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듭니다. 기운내세요!! :)

위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프리랜서 생활은 좋지만 통장을 보면 한숨만 나오네요 :(

저도 요즘 몇달째 반백수라 탈출좀 해볼려는데 방해세력이 많고 괴롭히는 기분이라 기운없네요.
그래퍼님 으쌰으쌰 지역 분들과 진행하는 재미난 일이 뭔가 돌파구가 되길 기원할게요. 힘내세요!!^^

감사해요!! 씽키님도 얼른 털고 일어나셔서 같이 탈출해봐요!! ㅎㅎㅎㅎ

네 그래퍼님!! :D

(근데 혹시 저 위에 사진찍는 멋진 청년의 사진은 그래퍼님의 모습인가요? ^^)

앗.. 정답입니다ㅎㅎ 주로 카메라를 들고 찍은 셀피가 많아요 ㅎㅎ

네 저렇게 카메라로 얼굴을 가리시니 더 멋있어 보이고 개인정보 보호되고.. 일석이조네요 ^^

친구 좋은게 뭐냐
싶은 생각을 님께 시전하였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네요...

돈이 뭔가
싶기도 하면서...
씁쓸하네요..

그러게요.. 결국 돈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 걸까요.
웃겼다가 울렸다가 밀당하고 아주 요망한 녀석입니다

친구니까 더 챙겨줘야한다는 생각은 못했는지! 그런 가시 박힌 말을 해야만 했을까.. 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선 결국 돈이 필요하다는 말씀에도 공감해요. 저도 요즘 돈돈돈을 눈과 입과 마음과 머리에 달고 사는데... 돈 앞에 작아지는 것 같아 속상한 마음도 있지만, 인정한 순간 제 상황을 좀 더 명확히 보게 되었어요.

2번 마음에 더없이 공감합니다. 저도 물 흐르는대로 살아오다 얼마전까진 호수처럼 잔잔했는데 어느새 급류에 휘말린 것을 보니 폭포가 코앞인 것 같은 기분. 저도 생활비를 위해 스팀잇을 시작했고요. 눈을 감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없는데.. 불안함도 두려움도 보기 싫어서 그런걸까요. 우리가 밤에 깨어있는 이유 말예요 ㅎㅎㅎ :)

다시 해가 뜰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ㅎㅎ 몇 시간 자다가 사무실로 나가야겠어요

어.... 그 친구분이 부탁할 때 조심스럽게
'페이는 어느정도 생각해?'라고 물어봤어야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이 드네요....

결국 이렇게 될 것을... 다른 분들이 말씀해주신대로 더 늦지 않아 다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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