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삶보다는 우리의 삶으로

in #kr6 years ago (edited)

#1
언제부터인가 '타인에 대한 호의'는 일상적이기보다 이색적인 것이 되었다.

(서로 신상을 전혀 모르고 안면만 있는) 이웃 간에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오지랖이 심하게 넓지 않으시다면) 택시 기사 아저씨의 이야기에 호응도 좀 해주고
(시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이에게 (운전자 입장에서) 먼저 가라는 눈짓도 좀 주고

위의 행동들은 누군가가 매일 실천하는 것들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필요한 과잉 친절로 여겨지기도 하는 것들이다. (꼭 하는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받는 입장에서도 호의라고 꼭 고맙거나 필요할 이유는 없다.) 엉뚱해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자연스러운 호의가 특별한 대접을 받게 된 원인이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있는 것 같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삶 정도가 보편적인 도덕의 기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충분한 것.' 호의를 베푸는 일은 필요 이상의 행위인 것이다.

#2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명제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은 당연히 자신도 남에게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감각은 호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호의를 받을 이유가 없고 나 역시 베풀 명분이 없다. 내 영역과 너의 영역은 아주 분명해지고 흔한 상황은 아니겠지만 너가 먼저 인사를 하지 않는데, 내가 먼저 인사를 하는 일조차 '호의를 베푸는' 행위로 여겨질수도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가정이 낯선 이들은 나의 단정 대상이 아니다.)

반대로 나는 인사 나눌 생각이 없는데 상대방이 인사를 한 상황을 부담스러워 하기도 한다. '나는 인사 같은 거 하기도 싫고 받기도 싫은데..' 사람에 따라서 이 순간이 불편할 수도 있다.

#3
나는 모든 이가 타인에 대한 양보심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호의'를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자는 주장도 아니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의식이 분명히 '선(善)'을 실천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출발한 것 같지만 이 것이 간혹 '나 역시도 누구에게 피해를 입으면 안 된다'로 발전하고, '호의든 피해든 자연스럽게 주고 받을 대상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도달하면 인간들의 관계에서 최초의 명제('누구에게도 피해를 주면 안 된다')가 개인화를 더 심화 시키는 촉매역할을 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이 명제가 야기하는 결과가 늘 옳은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가정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 싶다.

나는 각 개인이 타자에게 보이는 무색무취의 의식과 태도에 긍정하는 입장이 아님을 밝힌다. 꼭 얽히고 설켜야 옳은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지만 예전에 여러 글에서 밝혔듯이 서로에 대한 관심이 화합과 상생의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4
나는 남에게 내가 피해를 좀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대신 나도 손해를 볼 수 있다. 아래층 아저씨가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땀 냄새를 풍긴다고 인상쓰지 않는다. 어느 날 혼자 들기에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이가 그 사람일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급하지 않다면사실은 웬만큼 급한 것까지는 내가 여섯 걸음 가는 동안 한 걸음 걸으시는 할머니를 열림 버튼 누르고 기다려 드린다. 언젠가 나만의 사정으로 눈물 흘릴 때 내 등을 두드려 주실 분이 그 할머니 이실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타인과 관계를 맺고 서로 간 경계의 날카로움을 조금 무디게 만들어보면 어떨까. 내가 그은 선 밖의 사람과 교류하는 일도 나쁘지 않다. 스팀잇에서 보지 않는가? 완전한 타인이 지인이 되어가고 서로의 교류가 유의미해지는 과정을..'내가 손해를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호구가 된다’가 아니고 나의 삶이 우리의 삶이 된다. 나는 우리의 삶이 나만의 삶보다 온도가 높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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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욱.들렸다가요

네, 저도 가서 미나리 쭈삼을 보고 왔더니..상당히 허기가 집니다..^^; 반갑습니다!! (지난 번에 이어 두 번째 이시지만~~!)

흐음.... 역시 '호이가 계속되면 둘리가 된다 '는.. 진실인 것일까요? ^^
둘리가 좀 되는 건 또 어떨려나요...
차선을 착각하여 내가 얌체 껴들기 하는 것은 차선을 착각한 불쌍한 나이니까 용서 받을 수 있고, 줄서 있는 내앞으로 끼어드는 차는 차선을 착각했거나 초행길의 실수가 아니라 질서를 모르는 불학무식한인것...
사는게 그런 것이겠죠 ^^

음.. 삶이란 뭐라고 간단히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겠죠? 저 역시도 타인의 얘기처럼 쉽게 하지만 제 스스로의 행동은 잘못된 것 투성이입니다. 그래도 이야기 할 수 있고 생각을 나눌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제 글을 읽어주셔서 요즘 늘 감사합니다..^^!

남한테 폐 끼치는 걸 누구보다 싫어하는 사람 여기 있어요. 그런데 그거시 꼭 나도 누군가 때문에 피해보는게 싫다 와 같은 뜻은 아니에요 저같은 경우는. 예를 들어 애들을 태우고 바쁜 출근 시간에 가는 중에 망고파는 아저씨가 하필은 내 차 앞에서 서두르다가 망고 리어카에서 망고를 주르르 쏟았는데, 내가 차를 내려서 그걸 다 주워 준 적이 있어요. 영문도 모르던 뒷차들이 빵빵거리고 난리도 아니었죠. 화가 나 내린 뒷 차 아저씨도 그 뒷차 아저씨도 다같이 와서 망고를 다 주워서 그날 아침 그 자리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주제곡으로 흐르는 듯 했죠. 망고아저씨가 고맙다고 망고를 막 챙겨주는데 never mind 하고 얼른 차를 몰고 가던 길을 갔어요. 저도 그렇고 뒷차 그 뒷차 사람들이 길을 막고 안가는 나를 보며 불이익이 오는거 같아 화가 치밀었겠지만, 막상 와서 보니 망고 아저씨를 돕고 있으니, 저들의 선의가 같이 발동을 했고, 누구도 그 망고 아저씨를 탓하지 않았고 다같이 이 난관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거죠. 그리고 망고 아저씨는 우리 모든 운전자들에 폐를 끼쳤지만 우리 모두의 선의 속에 기쁘게 돌아갔죠. 그 아저씨는 피햬를 준걸까요? 우리는 그아저씨 때문에 피해를 봤을까요?? 스티밋 속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끼리 보상이라는 매력적인 시스템에 혹해서 와보니 생각보다 사람들도 좋고 글도 좋고(저같은 경우는)... 그런데 우연치 않게 어떤 분들 때문에 기분이 상해요. 그만의 이유는 있겠지만 모든 노력을 다해 그사람을 찾아가고 대하고 했는데 나만 철저히 배제당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어 이제 나도 안가야지... 다짐했어요. 뭐 그럴 수도 있겠는데... 내가 맘이 상했지만 그사람이 나한테 폐를 끼친걸까요?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그렇다 말할 수 없어여. ... 아... 뭐라고 말하고 끝내지? ㅜㅜㅜ
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남한테 폐께치는게 싫은 사람인데... 타인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부담스런 존재가 되기싫은 마음일 분이고... 그렇지 않을 어떤 상황에서도, 이유가 불분명할 경우에, 내가 불이익 보기위해 철창을 치는건 아니라는 내 변명을 하는거네요. 결론은, 다 니네들 잘못이야~~~!

누님, 망고를 줍는 사람들 사이로

이 노래가 흘렀을 것 같습니다. 저는 누님의 고백을 믿습니다.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이 싫다'와 '나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를 동일시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 분이 누님을 배제했다고 느꼈다면 누님은 배제 당하신 겁니다. 저는 그러한 상황에서 결과를 중요시 하거든요. 그 사람은 배제를 하지 않았어도 누님이 그렇게 느꼈다면 배제한 것입니다. 짝사랑은 하지 마셔요. 누님같이 솔직한 분들은 감당 못 하십니다. (누님의 저력을 얕보는 것은 아니고 누님이 괴로우실까봐 그렇습니다) 저는 누님의 모습들이 거의 다 좋습니다. 매일 기승전 고백이라서 죄송하지만, 다른 모든 것보다도 솔직하셔서 좋습니다. 저는 분명히 누님보다 덜 솔직합니다. 그래서 늘 누님의 글을 보고 싶습니다. 오래 볼 수 있겠죠! ㅋㅋㅋ^^

ps. 누님의 조카는 분명히 잘 생겼을 것 같아요. 저와 동명이인이라는 그 아이..!

딸입니다ㅋㅋ 그리고 못생겼어요. 우리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 제일 못생겼어요. 기승전 고백... 이 없는 건조한 댓글은 이제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Ps.. 음악... 진부합니다

누님..도입부부터 망고 줍는 씬에 어울리는 강렬한 노래가 많지 않습니다ㅜㅜ
진부한 노래를 골랐으니..사죄의 의미로 제 최애 노래 중 하나를 선물합니다!

ㅎㅎ Edith Piaff도 좋았고, 이노래도 좋아요... 대학 때 불문과 행사할 때 La vie en rose를 우리 학년들이 불렀던 기억이 나네요. 롤러코스터라 해서 이상순의 롤러코스터인줄 ㅎㅎ

제가 가장 좋아하는 롤러코스터 노래는 바로 '숨길 수 없어요' 입니다..! 하하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있는 것 같다.
경계의 날카로움을 조금 무디게 만드는 건 어떨까.

ㅎㅎㅎ 인정! 가즈아!
고뇌의 과정이 알알이 묻어나네요.ㅎ
아주 한 번쯤은 머리를 잠시 비우고 그냥 마음가는대로 해보시는 것도. . .저는 좋더라구요.

윽..티가든님..오늘 티가든님의 포스팅에서..제가 큰 잘못을..죄송합니다ㅜㅜ! 앞으로 꼭 잘못을 만회해 나가겠습니다..!! 헤헤..오늘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멋진생각👍지나가다 들림요~~~~~

앗..제가 여행을 좀 다녀 오느라고 3일동안 제대로 감시를 하지 못 했습니다. 오늘부터 바로 시아버지 모드로 돌입합니다~~! ㅋㅋㅋ ^^

제가 아는 어떤 사람 이야기인줄 알았네요. 너무나 완벽한 예절을 바라는 사람. 타인의 잣대를 그대로 자신에게 대어보니 제가 보기엔 그마저도 완벽한 사람... 휴! 좀 피곤하다랄까요... 좀 무뎌지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무뎌지는 것을 자신이 흐트러지고 무너지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종종 있더라구요. 알고 보면 매우 따뜻할 수도 있는 이들이 너무 자신을 정제하고 절제만 하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있습니다. 에너자이져님 주변에도 그런 분이 계시군요..! 댓글이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

살짝 베풀고 받아주면서 서로 잘지내는 능력이
실은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능력이죠.
호구는 무슨요 ㅎㅎㅎ

헤헤, 그렇게 생각하시는 @raah님이 정말 좋은 분이신거죠~~! 늘 좋은 글+그림 잘 보고 있습니다..^^

서유럽 사회가 4번과 같습니다. 한국은 서양의 개인주의를 상당히 오해하며, 절대 민폐를 끼쳐선 안 된다는 일본 사회의 강박으로 나아가고 있죠. 많은 사람이 그게 유토피아를 보장해 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오히려 디스토피아로 가는 길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유럽을 가본 적은 없지만, 소위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서유럽의 시민들이 그런 의식을 갖추고 있다니 참 부럽습니다. 한국 사람들도 본인과 가족들'만' 잘 사는 사회가 아니라 다함께 잘 지낼 수 있는 사회를 추구하면 좋겠습니다. PEN클럽 대회때문에 너무 행복했습니다. 댓글이 늦었지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종종 교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나는 솔직히 생각해보니 피해 받기 싫고 그래서 끼치는 것도 싫은 나쁜 사람인데, 해도 내게 피해 안 오는 배려는 예의의 범주로 보기 때문에 해줌!

윽..아직도 너에게 미안한 마음이 다 가시지 않았어. 그 동안 위화감을 주었던 이상한 짓들을 만회해 볼게..될 지 모르겠지만..ㅋㅋㅋㅋㅋ

10년 넘게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인사하는데 나중엔 내가 오기를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이젠 아무 생각없이 인사합니다. 받아주면 좋고 안받아도 뭐 할 수 없죠. ^^*

맞습니다! 인사를 하는 입장은 오히려 편합니다~ 저도 그런 편입니다^^ @elecpole님과 통하는 게 있는 듯 하여 늘 댓글이 반갑습니다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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