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2011년 맨부커상을 받은 줄리언 반스의 경장편 소설이다. 단 한 글자도 빠짐 없이 시간과 기억이라는 주제안에서 의문과 미스터리를 던진다. 이 책에는 무수한 삶과 시간과 기억과 왜곡에 대한 정의가 쏟아져 나온다. 뭔가 정의를 내림에 있어 함축적 혹은 문맥적 의미가 있었으리라는 기대감에 번역본이 아닌 영문원서로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 최초의 책이다. 옮긴이에 의하지 않고 순수하게 작가에게 묻고 답을 얻어 이해하고 싶어서이다. 던져진 의문에 현혹되지 않고 좀더 빠르게 답을 찾을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과 함께 밤을 지새워 책을 끝냈다. 그리고 어느정도 답을 찾은것 같다.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 시간은 우리를 붙들어, 우리에게 형태를 부여한다. 그러나 시간을 정말로 잘 안다고 느꼈던 적은 한번도 없다. (중략) 시간에 박차를 가하는 감정이 있고 한편으로 그것을 더디게 하는 감정이 있다. 그리고 가끔, 시간은 사라져 버린것처럼 느껴지기도한다. 그것이 정말로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마지막 순간까지도."
러셀과 비트켄슈타인을 읽는 알렉스,
카뮈와 니체를 읽는 에이드리언,
보들레리와 도스토옙스키를 읽는 콜린,
조지 오웰과 올더스 헉슬리를 읽는 나.
성적 관계의 부진한 진도와 사회적 계급과 취향의 차이로 헤어지게 된 첫사랑 베로니카,
철학자 친구의 자살과 그로 인한 의문들,
죽은 친구가 남긴 일기장과 편지.
"넌 똑똑한 아이야. 하지만 자살을 할만큼 똑똑하지 않아."
자살이 모든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임이 철학적으로 자명하다고 말하는 허세덩어리 친구들과의 기억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에게 첫사랑은 삶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삶의 권리를 지지하는 실체가 이곳에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으로 기억되어진다. 푸딩이 나오지만 그 다음부턴 맛없는 음식만 나오는 식사라는 결혼생활도 기억해 본다.
누구에게든 인생이 다 그런것 아니겠는가. 세월이 흐르면서 기억에 뭔가, 뭔가 다른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40년전 친구에게 보낸 편지가 여태 살아온 전체 인생에 대해 자기연민과 자기혐오사이의 총체적인 후회를 불러 온다. 평균치의 삶에서 적당한 진실과 윤리로 무장한 삶이 통채로 왜곡되었음을 알게 된다. 마치 거짓말처럼.
나이가 들면 유독 나에게만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일까.
시간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마흔은 아무것도 아니야. 쉰 살은 돼야 인생의 절정을 맛보는 거지. 예순은 새로운 마흔이야...... 시간에 대해 내가 아는 건 이 정도다. 객관적인 시간도 있다. 그리고 주관적인 시간도 있다. 가령, 손목의 요골동맥 바로 옆에 시계의 앞면이 오도록 차는 경우, 이런 사적인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시간이며, 기억과 맺는 관계 속에서 측정될 수 있다. 그래서 이 기묘한 일이 일어났을 때 - 새로운 기억이 느닷없이 나를 엄습했을 때 - 는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른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마치 강물이 역류한 것 같았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가깝다'고 한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합의되고 결정된 과거의 역사보다 현재의 시간 속에 살며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는 역사가 가지는 가변의 의미를 강조하기도 한다. 결국 역사란 곧 내다볼수 있는 미래에 대해 배워가는 일련의 과정인 것이다. 미래의 한 지점에서 다시 과거를 돌아보는 것 또한 누구도 예감할수 없다라는 것을 말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부정확한 기억과 불충분한 증거가 만들어내는 단편들의 기록이다. 그것은 작가의 말처럼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한 가지를 쳐내는 과정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사람들이 나를 기억할것이고 나를 증명해 주겠지만 이 모든 것은 나를 위한 기록이자 나에게 말하는 행위일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는 결국 나자신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내 삶의 결과의 옳고 그름은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다.
뜨거운 레몬글라스차의 달달함과 함께 북리뷰를 쓰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이 맛이 이제는 시간과 시간이 만나면서 익숙하고 편안해졌다. 이렇게 하나씩 쌓아가며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도 참 좋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평균치의 삶을 사는 나는 나의 시간의 어디쯤에 와 있는 것일까. 나의 기억은 온전한 것일까.
인생의 절정기에 있다고 믿는 이에게, 인생은 놀랄일이 더는 없다라고 믿는 이에게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특히 '모든 날이 일요일'이기를 바라는 이는 꼭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2017년에 영화로도 나왔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자꾸 떠오르는 장면의 편린들이 혹 기시감인가 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예전에 영화를 보았던 것이다. 언젠가부터 영화를 보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쁜 습관이 생겼다. 책을 끝냄과 동시에 영화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아주 편안하게 잘수 있었다. 마치 일을 제대로 끝낸 것처럼.
나이를 들면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이 느껴지는 건... 아이들을 보면서 더욱 실감하는 것 같아요~ 아들 나이에 얼마를 더해야 내 나이가 나오는가.. 이런 계산도 나오네요..ㅋㅋㅋㅋ 제 나이를 아는 것도 힘든 나이인가요 ^^;;
맞아요! 나이를 잊고 산지 꽤 된것 같아요. 내나이를 묻지 마세요~~ㅋㅋㅋ
꼭 읽어야지 하면서 매번 순위에서 밀리고 마는 책이에요. 리뷰 읽고서 순위를 좀 앞당겼네요. 인용된 부분이 정말 좋아요. 저는 책을 읽은 후 영화를 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저는.. 영화를 보나 책을 보나 기록해 놓지 않으면, 안 본 거나 마찬가지로 싸그리 잊고 말아요. 어찌 그런가 했더니 살면서 단 한 번 겪는 일들은 금세 잊기 마련인 것 같아요. 그래서 봤던 걸 또 보고 그래서 더 넓어질 수가 없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혀 있어요 ㅎㅎ
저는 오랜만에 참 좋구나하는 책이었어요. 한구절도 놓치기 싫을 만큼요. ㅎㅎㅎ 영화는 왜 점점 기억에 넣기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ㅠㅠ
시간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이예요
그냥 흐르는 것...말고는요
요즘 저에겐 모든 날이 일요일같아서...
그래서 더 읽어보고 싶어요
그간의 뜰님을 보면 이 책 좋아하실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ㅎㅎ
와 인용하신 글이 너무 좋네요
도서관에 있다면 한번 빌려봐야겠어요!
네! 꼭 봐보세요~ 책을 후루룩 보게 되시길~ ㅎ
전 이 책에서
이 문구가 아직 기억에 남아있네요. 후반부의 반전과 의문이 풀리는 부분도 인상적이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도 흥미진진했어요. ㅎ
아! 제가 리뷰를 써 놓고 마음에 안들어 했는데 줄거리를 추가할까 하다가 말았어요. 사실 전 줄거리보다는 그냥 시간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가 더 좋았거든요. 근데 왜 리뷰 쓰기가 점점 어려워질까요? 스팀잇하고 눈만 높아졌나봐요. 책임지세요! ㅋㅋㅋㅋ
근데...소울메이트님! 제가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작가는 왜 이런 결론을 내렸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반전이라고 하기엔 너무 황당하지 않나요? 물론 복선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어서 그닥 놀라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결론이 가지는 의미를 잘 모르겠어요... 혹시 소설가의 입장에서 설명해주실수 있나요?
위의 문구가 결론에 도달하는데 하나의 키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큰 거 같아요.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이 말은 역사학자가 한 말이 아니고 작가가 지은 말이라고 알고 있어요.
개인의 역사 안에서도 부정확한 기억- 어쩌면 자신이 한 일에 대한 합리화나 의식적인 망각-이 존재하고 내가 기억하지 않더라도 내가 저지른 일은 큰 파급력을 갖고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 게 아닐까 싶네요. 의식적인 망각, 책임의 회피, 합리화 등이 일어나려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비윤리적이고 말도 안되는 일을 저질러야 하죠. 작가는 말도 안되는, 주인공이 부정확한 기억을 갖고 살고 싶을 정도의 비윤리적인 일이 무얼까 생각했겠죠. 그래서 그런 결과가?ㅋ 상쾌하거나 유쾌하지 않은 결말이지만요.
어디까지나 같은 독자의 입장에서 의견을 드린 거구요,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어느 날 말도 안되는 불륜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 주인공은 그렇고 그런 짓을 한다 -> 자 이제 이것에 의미를 부여해보자. 아, 지난 번에 써두었던 역사의 정의와 한 번 결합해보는 건 어떨까,,ㅋ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런 구상의 과정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소설은 대부분 서사(이야기)를 먼저 떠올리고 거기에 의미를 담고 얼개를 짜가는 식으로 구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어떤 때는 소설가가 생각하지도 못한 의미들을 독자나 비평가가 찾아내고 만들어내기도 하지요ㅎ
정성스러운 답변 감사드립니다. 제 평생 이렇게 작가님들과 질문 답변의 시간을 가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이거 꿈만 같습니다. ㅎㅎㅎ 서사적인 구성으로 보면 이야기는 재밌게 전달된건 맞는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조금 과하지 않았나 했는데, 오히려 영화에서는 그 부분을 편안하게 풀어냈더군요.... 아! 학생이 된것 같아요. 배움의 기쁨! ㅎㅎㅎ
작가님과 질문 답변이라니요~~ㅋㅋ 스티밋 작가끼리 대화 아닌가요~ 아니라면 아주 민망해집니다. ㅎㅎ
잘 지내셨나요 에빵님~~~~
에빵님이 추천해주시니.. 저두 왠지 원어로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그래두 한글부터 읽어야겠죠?ㅋㅋ 영어도 못하니.ㅋㅋ
한 잔의 차와 책이라.. 행복하시는 게 보여서 넘 좋네요 ^^
여행을 가면 시간이 흐르면서 왜곡이 되는게 싫어서 일기를 쓰긴 하는데.
그래두 좋게 왜곡되는 것도 좋아해서..(사실 게을러서.ㅋ)
오랜만에 에빵님 글 보니 넘 좋아요!!!
아머! 벚꽃이 만발한 계절에 어디 계시는건가요? 미술관님! 보고 싶었어요. 언제 컴백하시나요? 현대미술관 가기로 한거 잊으신건지...ㅋ 중요하진 않지만요 ㅋㅋㅋ 부디 모쪼록 몸 건강히 잘 다녀와서 이야기 보따리 풀어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께요 ㅎㅎㅎㅎㅎ
컴백 했습니다.^^ 귀국해서 글 쓰고 있는 거에요 ^^
이제 또 스팀잇에서 재밌게 놀아야죠 ㅎㅎ
조만간에 과천가서 보고 싶어하셨던 벚꽃 사진 찍어서 올려드릴게요 ^^
와!! ㅎㅎㅎㅎㅎㅎㅎ
어려운 책 같네요. 엄청 철학적인 책 같습니다.^_^
아니예요. 흥미진진 술술 넘어가요. 어떤분은 스릴러라고도 하던걸요 ㅎㅎㅎ 제가 리뷰를 잘못썼나보네요 ㅠㅠ
제가 소설책을 잘 못봐요.ㅎㅎ 판타지 소설 정도만 겨우 봅니다.ㅋ
저도 영화 두번 보는 경우가 있어요. ㅎ
이 이야기는 영화를 먼저 보고 싶네요.^^
영화도 충분히 좋은데 저는 책이 훨씬 좋았어요! 둘다 추천! ㅎㅎㅎ
전 나중에 영화부터 접해봐야겠어요. 최근 몇년 전부터 이런 류의 글들이 책으로는 잘 안읽히더라고요. ㅠㅠ 아.. 이러면 안되는데... 이래서 감성이 사막이 되어가나봐요. 맨날 기술과 관련된 것들만 보다보니... ㅠㅠ
잠 실컷 주무시고 난 후에 영화를 보셔야 합니다. ㅋㅋㅋ 왜 사막에서 살고 계세요. 오아시스라도 찾아보세요 ㅋㅋㅋ 어떤 기술책을 보실지 궁금해졌어요. 전 IT쪽인데요...
에빵님은 디자인 아니면 개발쪽이실 것 같아요. ㅎㅎㅎ(이렇게 얘기하면 대충 다 맞더라고요).
근데 진짜 솔직히 디자인 아니면 개발 쪽이 맞으실 것 같아요. 디자인은 그림 그리시는 실력보고 느꼈고, 개발자라고 느낀 것은... 에빵님 글들을 보고 느꼈는데... 제가 잘못 느꼈을 수도 있어요. ^^;
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ㅎㅎㅎ
응? 제가 맞춘건가요? 개발자?
땡! ㅋ개발자가 되고 싶은 일반인...
IT업계에서 일한다면서요. 일반인은 또 뭐예용? ㅎㅎㅎ
뭐긴 뭐예요.. 신비주의죠 ㅋㅋㅋ
실상은 능력딸려서... 우리 애가 저한테 1980년대 테크놀로지라고 놀린답니다 ㅠㅠ
퇴근없이 일하는 그대여 힘내세요! 댓글은 본문과 무관합니다!!
ㅋㅋㅋ 오늘도 출퇴근 무!!!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