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인과 연」 - 세계관의 확장에 긍정적 평가를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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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셜록 홈즈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는 50편이 넘는다. 그중에는 수작이라 부를 수 없는 것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셜록 홈즈의 매력이 줄어들었던 것은 아니다. 원전으로서 존재하는 훌륭한 컨텐츠를 각색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늘 의미가 있다고 본다.

나는 주호민 작가의 웹툰 <신과 함께>를 높게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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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15년 전 해리포터가 나왔을 때, 왜 아시아에도 몽환적인 신화가 차고 넘치게 많은데 왜 이런 세계관을 만들어내지 못했냐는 글을 쓴 걸 본적이 있다. 내가 보았을 때 <신과 함께>는 그 자체로 즐길거리가 넘치는 세계관을 제시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수작이다. 좀 과장을 더한다면 주호민 작가가 일생을 이 세계관을 더 확립하고 그에 파생되는 연대기적 스토리를 끊임 없이 생산해낸다면 그는 아시아의 톨킨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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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세계관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순수문학과 장르문학, ‘하루키 좋아하는 멍청한 대학생들’이라는 일갈과, 주제 의식이라는 명목 하에 서사를 죽었다는 젊은 세대의 비판 사이에서, 한국의 전통 설화를 배경으로 장르적 재미와 시대 의식이 섞여 있는 이 작품은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다.

특히나 관객이 1,400만이 넘어야 손익분기점이 넘는 영화라는 것은 제작자로서도 분명 어떤 모험을 한 것이다. <신과 함께>를 표절한 뮤지컬 퍼펙트맨이나 서울예대 졸업생들이 작가의 허락 없이 이를 연극화한 사례들을 보면, 적어도 이 영화는 작가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았나. 그것이 주호민 작가에게 보다 더 많은 여유와 동기를 제공하고 저승과 이승, 그리고 신화를 넘나다는 작가의 세계관이 웅대하게 확장되길 희망한다.

그래서 짤막하게 결론을 말하면, 나는 '첫번째 영상화'로서 영화 <신과 함께>를 응원하는 입장이다.



개그와 액션의 적절한 조화



액션이나 장대한 배경에서 비롯되는 시각적인 재미는 여전하다. 최근 여행을 갔다가 한국 관광객과 전혀 관계 없는 비행기 편에서, 탑승객들이 기내식 이후 관람 영화로 대부분 <신과 함께>를 선택하는 것을 직접 보았다(물론 1편 이야기다). 할리우드의 블록 버스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여하간 이 영화 시리즈의 액션씬은 결코 혹평할 수준이 아니라는 두 눈으로 직접 본 증거 쯤 되려나.

장면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볼거리가 있다. 지난 편에 등장한 지옥이 다시 등장해서 반갑기도 하지만, 지난 편에는 그냥 지나갔던 지옥이 좀 더 보강되서 나오기도 한다. 스펙타클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괴기스럽지도 않고 대부분 연령이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게 지옥을 잘 묘사해놨다. 그런 점에서 대중적이며, '대중적'이다라는 것은 <신과 함께>라는 블록버스터 영화에 있어 어떤 점에서든 나쁜 표현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호불호가 좀 갈리는 장면으로 알고 있지만, 배신지옥에서 강림도령이 김수홍에게 무엇이 가장 무서운지를 묻고 그것이 등장하는 장면은, 영상의 시각적 즐거움과 개그 측면에서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판단한다. 한국의 지옥에 갑자기 그런 물체들이 등장했다면 아무리 CG가 그럴듯했다고 해도 한숨이 나왔을지 모르지만, 이 장면을 등장시키기 위해 미리 깔아놓은 떡밥이 있었으니 말이다. 개그와 액션의 훌륭한 조합이었다고 본다. 김용화 감독이 직접 밝힌, 한국 영화에도 이런 물체들이 등장할 수 있다는 그 자신감이 영화의 영상 속에 생생히 드러났다. 나쁘지 않았다. 나는 호평한다.

아래 감독의 인터뷰를 담았는데 스포가 우려되면 열어보지 말 것!

http://m.hankookilbo.com/News/Read/201807241745777381

개그 장면도 나쁘지 않았다. 염라 대왕을 ‘걔’라고 부르는 카리스마 넘치는 성주신(마동석 분)이 재테크 지식을 줄줄 읊으며 빚을 내서 투자하지만 망한다는 것은 이 영화에서 가장 웃긴 유머 코드다. 주식은 염라 대왕도 몰라서 안 한다거나 비트코인을 샀어야 했다는 깨알 같은 말을 덤. 그 외에도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기 위해 공무원을 속이려다가 실패하는 등, 웃음 포인트는 많다.

1편의 신파를 좀 덜어내고 여기 유머가 들어가서 훨씬 좋았다.



칭찬해주고 싶은 배우들



사실 연기라기보다는 분장을 칭찬하고 싶다.

1998년 몽골과 중국이 합작으로 만든 <징기스칸>과 2011년 러시아가 제작한 영화 <몽골> 등 북쪽 유목민 스타일의 털모자를 쓴 여배우는 상당히 많이 본 것 같지만 <신과 함께>의 김향기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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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실제 몽골이나 티벳 소녀들처럼, 얼굴의 홍조와 기미를 잘 살린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김향기와 호흡을 맞춘 주지훈 역시, 액션과 분장 모두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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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하고 광활한 대륙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는 몽환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어느 나라 신화에든 한번쯤은 등장할만한 얼핏 흔하지만 또 아름다운 로맨스적 서사(둘 사이의 직접적인 로맨스는 나오지 않아서 '로맨스적'이라고 썼다)도 결코 유치하다고 폄하하고 싶지 않다. 가문의 다툼이라는 어두운 배경에서 두 연인의 죽음으로 끝나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극으로 분류하지 않는 것처럼, 불행한 사건에서 시작해 불행하게 끝나는 해원맥과 덕춘의 이야기는 슬프기도 하지만 그보다 우선 아름답다.

사족이지만, 이런 것을 보면 굳이 하폴로 그룹 상 가깝지도 않은 몽골을 같은 뿌리라고 우긴다거나, 실체도 애매한 동이족이나 환단고기 같은 데 매달리는 것보다, 우리도 과감하게 인종적 위화감 없는 몽골이나 만주의 역사들을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미국은 성서 속 이스라엘 왕국이든, 로마 제국이든, 프랑스나 러시아의 황실이든 간에 비백인이 등장해야 하는 영화가 아니라면 그냥 배우들이 영어를 쓰며 연기를 하지 않는가? 한국도 그것을 못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한 번 징기스칸 일대기나 누가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이 둘 이외에, 관심사병 역할에 분한 도경수의 연기와 사주신 마동석의 연기도 좋았다.



부정적 평가



다만 모든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특히 아래 두 캐릭터에 대해서는 악평을 몇 글자 달고 싶다.

일단 김수홍의 캐릭터가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다. 위에 언급한 배반지옥에서의 캐릭터는 옹호하고 싶지만 그 이외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 투성이다. 다혈질에다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당돌한 성격을 살려보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는 알겠다만 이 캐릭터는 처음 죽어서 간 지옥에서 상식을 완전히 초월할 정도로 당차다. 죽어서 염라 대왕 앞에 산 망자가 자기가 사시 공부를 했노라며 뜬금 없이 자국의 국회법 제 93조를 외치며 뻐팅길 수 있을까? 자신을 영겁의 지옥으로 보낼 수 있는 그 심판관 앞에? 전 지구에 사는 사람이 70억 명이 다 제각각이겠다만 나는 진심으로 그 70억 명 중 그런 행동을 할 사람은 단 하나도 없을 것 같다. 쿨해보이는 그 캐릭터는 환생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그 대사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진하게 캐릭터를 드러낼 필요가 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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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염라 대왕 연기에도 좋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다. 실은 이정재는 대배우이며 한국 영화계에 그가 많은 공헌을 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또한 한편으로 그에게는 오래 기간 연기력 논란이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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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연기력 논란을 잠재운 <신세계>에서 그의 캐릭터와 그가 읊은 대사는 모두 훌륭했지만 한편으로는 애시당초 그와 어울리는 것들이기도 했다. 어쩌면 <신세계>에서 이정재의 연기가 매우 훌륭했던 것도 조직에 잠입한 말을 아껴야 하는 스파이로서, 가장 어색하면서도 가장 친밀한 장청과의 그 관계가 섬세하지 않은 발성에서 오히려 더 잘 드러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이정재의 캐릭터는 검은 야심을 숨기고 있는 <수양대군>이나 배신자로 등장한 <암살>에서도 훌륭하게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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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신과 함께>만 보아서는 다시 연기력 논란이 일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감독이 이정재의 사용법을 잘 모른 것은 아닌가 싶다. 이정재의 마스크와 발성은 신파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하정우, 주지훈, 김향기로 이어지는 저승 3차사는 비교적 무난하게 잘 어울리지만, 중간에 회상하는 과거에 대한 호평과 달리, 그 과거를 받아들이는 현재의 주지훈과 김향기의 반응은 다소 길고 지루하다. 각 이야기 별로 반전이 있기에 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치지만, 그 과거 이야기의 휴식점을 그렇게 길게 가져갈 필요가 있었는가는 의문이 있다.

그 외에도, 개별 캐릭터들의 연기는 나쁘지 않지만 전반적으로 그게 잘 융화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다소 겉도는 느낌이 드는 장면이 몇 있었다. 물론 주관적인 평가일 수도 있다.



중립적으로 평가하는 부분



나쁜 사람은 없다는 성주신의 말...... 결국 인간의 모든 악행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고, 1,000년이 지나도 사과한다고 말하지 못하면 그 죄책감을 안고만 살아야 하는 선한 존재로 인간을 묘사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한 관점으로 그냥 넘어가고 싶다.

주호민 작가도 말했듯, 지옥을 다룬 작품에서 권선징악의 플롯을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보다는, 모호하게 각자의 사정을 설명한 뒤 인간은 원래 선하다라는 결론으로 가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래서 그 관점의 필연성을 인정하며 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총평



서문에 쓴 것과 같다. 영화 <신과 함께>를 영화 <반지의 제왕>처럼 제작 당시 기술력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분명 후대에도 명작으로 남을 수준으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다만 진행형으로서 주호민 작가의 집필과 <신과 함께>의 영상화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신과 함께> 1편에는 50년 같은 5년이라는 언어유희가 등장하는데, 비슷하게 별 다섯 개 같은 네 개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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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 me steem dollar
스달 구다사이

전 개인적으로 김향기 씨 연기가 무척 인상깊더군요. 그리고 중국어 발음도 한국 배우가 중국어 연기한 것 중 최고였구요.

이정재 씨는 저도 좀... 아쉬웠습니다. 적어도 이번 작에서는 캐릭터의 입체감을 살려주지 못했어요.
왜 이 대사에서 이런 톤으로 말하지? 싶은 결정적 장면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좀 컸던 것 같기도 하구요... (스포) 난 너에게 기회를 준 것이야 라는 대사였나?

저도 그 톤으로 말한 게 제일 거슬렸던 거 같아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마 같은 걸 이야기하고 계실 겁니다 ㅎㅎ

와우, 영화 전문가시군요.

시간 낭비 전문가입니다 ㅋㅋㅋㅋㅋ

1편도 재미있게 봤는데, 웹툰이 원작이었군요^^. 원작부터 찾아봐야겠어요~~

ㅎㅎㅎㅎ 유명한 웹툰이죠 ^^;
시간은 좀 걸리지만 스토리의 개연성만으로는 영화보다 위인거 같아요

Nothing is impossible, the word itself says "I'm possible!"

yeah! its possible!
please give me steemdollar, its strongly possible!

당장 보러 가고 싶은 영화입니다. 역시 만화가 영화로 만들어 지면 히트치는 경우가 많더군요.

게임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보다는 훌륭한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ㅎㅎ 게임은 단순히 세계관만 차용하는 것에 반해 만화는 아무래도 탄탄한 스토리가 이미 베이스가 되어 있으니까요

곧 태국에서도 개봉하는 것 같던데! 이 글을 읽고나니 더욱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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