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나올 때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심심한 <곤지암> - 한국판 페이크 다큐멘터리, 새롭지만 아쉽다

in #kr6 years ago (edited)

저는 돈을 지불하고 놀이기구를 타는 행위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어지러움을 전혀 즐기지 못하는 제 세계에서는 돈을 받고 타는게 오히려 더 합리적이죠. 비슷한 이유로 저는 공포 영화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기 돈을 내고 심장에 무리를 줘야한다니 맙소사.

하지만 영화에 어떤 흥미로운 주제가 있다면, 그 힘든 시각적 자극에도 불구하고 종종은 공포 영화를 관람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나홍진 감독의 <곡성>, 인간의 나약함과 불신, 그 위에 방관하는 신(악마 또는 운명)이라는 주제가 너무 매혹적이라 관람 당일 악몽을 꿀 것이 뻔했음에도 불구하고(실제로 그랬습니다), 굳이 영화관을 찾았죠.

또 새로운 시도가 있는 공포 영화라면 기꺼이 티켓 값을 지불하곤 합니다. 흥행에는 실패했습니다만 한국 최초의 열차 호러물이었던 10년 전 영화 <레드아이>가 그랬죠.

영화 <곤지암>을 관람한 것은, 저 두 가지 이유를 모두 충족시켜 주지 않을까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일단 근대화라는 미명 하에, 정신병동에 사람들을 난폭하게 감금하던 그 시절에 대한 어떤 주제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또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흔한 연출 기법입니다만 파운드 푸티지, 페이크 다큐멘터리형 영화가 한국에서 시도된 것 자체에 일단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죠.

일단 영화 자체는 나쁘지는 않습니다. 재밌었습니다. 다만 공포 영화를 잘 못 보는, 행여 여자 친구에게 들킬까봐 두 손으로 얼굴은 못 가려도 조용히 실눈을 뜨곤 하는 제가 한 번도 눈을 감지 않고 맨 정신으로 끝까지 영화를 감상한 것으로 보아서는 그렇게까지 무서운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각 등장인물들이 자기들 얼굴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곤지암 정신병원에 입장하는 장면을 보았을 때, 머리 속으로 ‘이거 대박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마치 <곡성>이나 <강남스타일>이 그랬던 것처럼, 한 해를 관통하는, 즉 2018년을 대표하는 어떤 키워드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까지 생기더군요. 다만 영화 감상을 끝낸 지금은, 흥행에는 성공할 수 있겠지만, 이를 넘어서는 어떤 명작으로 남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유는 크게 아래 두 가지 때문입니다.


아주 무서운 영화는 아니었던 이유 – 클라이막스 이후가 없다.



이 영화에서 가장 튀는 캐릭터, CNN이 선정한 전 세계의 기괴한 장소를 이미 제법 가본 재미교포 샬롯이 4번째(죽음을 나타내는 숫자 4를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로 방문한 곤지암 정신병원에서 겪게 되는 심경 변화를 보는 것은 상당히 공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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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원 씨라는 분이 분하셨네요. 그 전에 본 적이 없는 배우인데 다른 배우들에 비해 연기가 매우 훌륭합니다. 샬롯은 이목을 끌려는 의도가 보이는 짙은 화장과 가슴이 파이는 의상, 게다가 하이힐까지 신고 이 정신병원에 입장하죠. 특유의 허세를 부리다가, 눈물 콧물에 화장이 다 번지고 겁에 질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얼어 붙는 장면은 정말 연기 같지가 않습니다. 스포일러라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샬롯이 같이 간 동료가 빙의되고 겪게 되는 일련의 씬은 실로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라 할 만 합니다. 무섭습니다. 이 장면에 한해서는, 여타 굵직한 공포 영화들에 뒤지지 않아요. 다만 솔직히 말하면 이 장면 이후로는 약간은 심심한 것도 사실입니다.

마치 세트 메뉴를 시킨 음식점에서, 다소 심심한 에피타이저가 길게 나오다가 드디어 훌륭한 메인 디쉬가 나왔는데, 그 이후 나온 음식들이 다시 심심하게 돌아간 느낌입니다.

영화가 곤지암 정신병원을 '다양하게' 묘사하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어지간한 공포영화보다 훨씬 기괴했던 국산 게임 명작 <화이트데이>를 보면, 학교라는 공간의 각 장소가 참으로 다채로운 방식으로 섬뜩하게 표현됩니다. 일제시대 건물을 연상시키는 구 교사(校舍)와 신식 건물인 신 교사의 분위기 차이, 각 과목별로 제공된 음악실, 실험실, 경비실, 화장실 등 각각의 방식으로 플레이어의 심장을 공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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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곤지암 정신병원은, 실험실, 샤워실, 그리고 의문의 402호 등의 공간들이 사실 그렇게까지 명확한 구별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공간 표현을 좀 더 다양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CNN 선정 세계 7대 기괴한 건물인 곤지암은 그 자체로 좋은 장소적 소재이긴 합니다. 어둡고 더러운 폐쇄적인 공간에 불을 켜고 카메라를 장착한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매우 공포스럽죠. 하지만 이 장면만을 지속시키는 것만으로는 관객의 긴장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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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명확한 메시지 있었더라면



이 영화에서 과거를 묘사한 흑백 사진과 영상은 상당히 기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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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마지막 장면을 통해, 이 공간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이 많은 것을 유추해볼 수도 있죠. 다만 이 영화에서 원장이 어떤 행위를 했는지, 과거에 여기 감금되어 있던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원혼들이 사람을 죽이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물론 끝까지 이유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다른 여타 훌륭한 공포 영화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알 포인트>의 경우, 군인들을 죽이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영화 마지막까지 잘 드러나지 않죠. 고전 영화 <샤이닝>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 공간이 저주 받았는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습니다(인디언 학살로 원혼이 발생했다는 다수의 해석이 있긴 합니다만 이 역시도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 이 공간이 왜 저주 받았는지 밝히지 않은 것은 감독의 재량으로, 일개 관람자에 불과한 저는 당연히 이를 존중해야겠지요. 다만 과거에 있었던 끔찍한 일과 현재의 사건의 인과 관계, 목을 매 자살했다는 원장과 그녀의 실험실이 간직했던 비밀, 여기에 더해 어떤 반전까지 더해졌다면 더 훌륭한 영화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특히 아연의 캐릭터, 관객으로 하여금 어떤 반전이나 또는 특별함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 캐릭터를 전혀 살리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제윤과 아연 간의 관계에서 초반부의 살짝 장난스러운 티격태격함을 제외하고는 아무 갈등도 집어넣지 않았습니다. 402호라는 가장 중요한 공간에 이 둘을 밀어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별다른 클라이맥스를 보여주지 않고 종전에 처리한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장면을 넘기는 것은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일단 젊은이들의 탐욕이 그들을 사지에 몰아넣는다는 건 약간은 진부합니다만 그 자체로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 하나로 영화 전체를 끌어가기에는 좀 서사가 부족한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 마디만 첨언하자면 어쩌면 '주제'를 넣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콘텐츠에 시대정신이나 어떤 주제 의식이 들어가야만 수작이라는 생각을 혐오합니다. 영화는 재밌는 게 우선이죠. 공포영화라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가 제일 중요할 것이고요. 다만 그 자체만으로도 기괴한 1970, 80년대 흑백 영상과 사진, 얼마 전 탄핵된 대통령의 젊은 모습이 나오는 장면을 봤을 때는 어떤 주제 의식을 넣으려고 했다면 매우 훌륭하게 집어 넣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영화 <살인의 추억> 같은 경우 미제의 살인 사건이 주제입니다만, 당시 민주화 시위를 막는 데 많은 경찰력을 동원해야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슬쩍 집어넣어 실은 그 시대 자체도 공범이라는 그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줬습니다. <곤지암>도 그랬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 조금은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무난히 흥행에 성공할 것으로 평가합니다.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다는 리뷰이지, 좋은 작품이 아니라는 리뷰는 아니니까요. 전작 <기담> 같은 경우 흥행에 성공하지 못해 비운의 명작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번 작품의 경우 흥행에 성공해서 다음 작품은 좀 더 감독이 여유를 가지고 더 훌륭한 수작으로 돌아올 수 있길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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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방금보고왔는데 빙의되기전까지 무난하게 흘러가는시간동안 뭔가 내용이 더 채워졌으면하는 생각이들더라구요. 그리고 돈 조금 더준다고 계속하는부분이.. 좀 웃기기도하던ㅋㅋ
그래도 극장내 관객들의 반응을보니.. 즐기기엔 꽤나 괜찮은영화같아요.

사실 리뷰니까 좀 톤을 죽였지만... 댓글로 좀 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막판에는 좀 많이 지루했다는 ㅋㅋㅋㅋ 그래도 뭐 기본빵 이상은 됐다고 생각합니다 ㅋㅋ 관객들 반응이 정말 나쁘지 않더군요 ^^;

굉장히 디테일한 리뷰에요 ㅎㅎ저는 이 영화보면 예전에 화이트데이인가? 공포게임이 생각나더라구요.

저도 비슷한걸 느꼈습니다.... 불법복제로 망한 비운의 명작... ㅋㅋ 개인적인 판단입니다만 화이트데이가 세 수는 위인 것 같습니다

오잉???? 기담이 흥행에 실패했나요?... 유튜브로 씨나락까먹는소리 첨들었을때 와 대박이다 했는데...ㅜㅠ

네 흥행에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ㅎㅎ 역시 다 사람마다 공포를 느끼는 부분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전 랩귀신이 뭔가 처음부터 안 무섭.... (?)

공포영화 영화관에서 보니까 정말 오줌쌀정도라서 저는 공포영화 끊었습니다.. ㅜㅜ

건강에는 확실히 안 좋죠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저도 실눈뜨며 봤었는데.. ㅎㅎㅎ 빙의 이후의 장면들이 너무 이어지다보니 마지막엔 배우의 분장이 보일 정도로 몰입감이 떨어지더라구요.. 그 이후를 무섭게 더 잘 살렸더라면 어땠을까 싶네요. 스토리적인 부분은 인지하지 못했는데 이 리뷰를 읽고 나니 확실히 아쉬웠던 부분이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저는 기담도 한번 찾아보려구요 ㅎㅎ

리뷰가 아니라 댓글로 좀 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그 빙의 이후로는 좀 지루했고 402호도 똑같이 처리한게 많이 아쉬웠습니다... 뭔가 가능성이 더 보였기 때문에 더 아쉬웠다는...

그래도 근래 한국 공포영화 중에서는 가장 나은 것 같기도 합니다 ㅎㅎ

리뷰를 엄청 잘쓰셔서 괜히 보고싶어지는 영화네요ㅎㅎ

ㅎㅎㅎ 과찬이십니다^^

며칠전 유튜브 봤는데여 원장 살아있다는대요? 어디병원에서 과장으로 일하신다던데 ㅋㅋ 허위가 많다네요. 소문들이

ㅎㅎ 외국으로 가셨고 편안히 자연사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원장과는 전혀 다른 인물로 보아야...

아 그러면 이거일 수도 있겠네요. 원장이 1대부터 현재까지 계속 있었을테니 19님이 알고 있는 원장은 초대 원장일 수도 있겠네요! 현재 마지막으로 관리를 맞았던 원장은 제가 봤던 방송에서 과장으로 일한다고 어디병원에 있다고 하던방송이니까 . 다른 인물일 수도 있겠네요!

아 그게 아니라, 물론 실제 존재하는 곤지암 정신병원을 모티브로 하긴 했지만, 영화 속의 원장과 현실의 원장은 별도의 인물로 보아야 한다 그런 취지였습니다 ㅎㅎ

실제로는 아주 무난한 원장님이셨던 걸로...

아 그래요?아핰ㅋㅋㅋ 전 실제 등장인물에 대한 내용들도 있는 줄 알았네요.

돌아가신 원장님 유족들이 가처분까지 했어요 ㅋㅋㅋ

문득 원혼이라는 게 왜 그렇게 무서울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양 호러물은 끔찍하기만 한데 동양 호러물은 그 원혼이라는 게 오싹한.. 위력으로 보자면 좀비만도 못한데 말이죠..

어떤 분이 한 명언이 있습니다 ㅎㅎ 원혼이 사람을 죽이면 죽인 사람도 원혼이 되는데 저승에서 서로 마주치면 얼마나 민망하겠느냐고 ㅋㅋㅋㅋ

젊은 사람들의 놀이문화(?)로 유행하는 영화로 여기고 있었는데 풍류님 리뷰를 보니 심도있는 내용을 담을 수 있었겠군요! 아직 영화는 보지 않았습니다만 소모적인 이미지로 덧칠된 영화라니 조금은 기대치를 낮춰야겠습니다 ㅠ

오랜만에 뵙습니다 ㅎㅎ 생업에 종사하느라 스팀잇을 자주 못해서 ㅠㅠㅠ

리뷰보다 더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많이 낮추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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