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生日)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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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언을 구할 일이 있어 가까운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야기가 어느 정도 일단락돼 전화를 끊으려는 와중에 지인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했다. 곧 내 생일이 돌아오니, 조만간 만나서 밥이나 먹자는 말이었다. 심지어 그 '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였다.

생일을 기억하는 사이가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았다. 가족과 유일한 친구 한 명의 생일이 떠올랐다. 그 친구의 생일은 5월 12일이 아니면 5월 31일인데, 몇 년째 그걸 확인하질 못했다. 게으름을 핑계로 그 친구에게 몇 년간 생일 축하 문자 하나 보내지 않았다.

나도 옛날에는 몇몇 이들의 생일을 기억했다. 기억했다기보다는, 챙겼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일에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함께 했다. 선물을 받으면, 선물을 준 사람의 생일을 챙겨야만 한다는 의무감.

나에게도 서프라이즈 이벤트와 같은 즐거운 생일의 기억도 몇 있다. 어쩌다 보니, 그때 내 생일을 챙겨주던 누군가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거나, 연락이 닿지 않게 된 일이 더러 있다. 그 당시 그들에게 받은 축하는 어떤 한때를 같이 보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어떤 이의 생일을 기억한다는 것이 내게는 못내 감동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서 되돌아보니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던 지인은 어느새 십년지기가 되어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가 어떤 달에 태어났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우리는 편하지만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기에, 정말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심지어 내 생일은 이미 잡힌 일정으로 가득했지만 굳이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지인의 생일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괜히 캘린더에 등록해놓고 1년 반복 버튼을 누르고 싶지도 않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태어난 계절 정도는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생일이 아니더라도, 내 나름의 생일 선물을 생일이 아닌 어떤 때에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내 생일 언저리에 그를 만나게 된다면, 그래서 그와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먹게 된다면, 아무렇지 않은 척 어느 계절에 태어났는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가 태어난 계절 안에서, 그가 세상에 나와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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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미리 생일 축하드려요!

계도님! 축하 감사합니다:)

나를 기억해주는 누군가는 참 소중합니다.
나도 소중한 이가 되어야겠는데
왜 이리 마음이 폭폭할까요.

폭폭하다는 말이 정겹게 느껴져요. 제 고향에서 쓰는 말이거든요. ㅎㅎ 왜 마음이 폭폭하실까요. 이미 @dozam님은 누군가에게 소중한 이일 텐데요:) 저도 앞으로 @dozam님을 기억할게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전 가족외에는 생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네요.
딱 그 날을 기억하지는 않아도 그 계절이 되면 그 달이 되면 그 가 기억나는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계절과 달 동안은 계속 그 사람을 기억할테니까요 ㅎ

생일을 챙기려고 보니, 그날이 지나면 의미가 없어지더라고요. 날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한 해에 한 번 그 사람을 생각하는 때 정도로 받아들여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리 생일 축하합니다~

브라이언님! 일본 간 소식만 듣고 한참 못 찾아뵀네요. 아차 싶어서 오랜만에 찾아가 가장 최근 글 읽고 왔어요. 즐거운 시간 보내고 오신 거죠? 며칠 전 마트에 갔는데 레고 코너에서 한참 서성였답니다. 브라이언님 덕분인 것 같아요:) 축하 감사합니다.

잡생각이 많아서 집중력이 떨어질 때 작은 제품 하나 만들어 보세요. 많이 도움이 될 겁니다 ^^

인기쟁이셨군요
지인분이 생일도 챙겨주시고
생일축하드려요

인기쟁이라고 해야 할 진 모르겠지만...!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지긴 했어요. 축하도 미리 감사합니다:)

저도 생일을 참 기억 못하는 편입니다. 많은 사람들한테 미안하네요.

프린스님은 무척 잘 기억하실 것 같은데 의외에요. 그런 걸 보면 캘린더에 등록이라도 해놓아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최소한의 예의인 것 같기도 하고 참 어렵네요. ㅎㅎ

학교 다닐때야 뭐 매일같이 보니까 그게 어렵지만은 않은 일인데,
서로 사회 나오고나서도 내 생일 기억해주는 사람들은 진짜 잘 챙겨야 하지 싶더라구요.

사회에 나와서는 누군가의 생일을 챙겨 본 기억이 없는... 제가 무심한 건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저도 어릴때는 기억했었는데 어른이 되면서 잊어버린
생일들이 많네요..
그래도 가까운 지인들은 카스 친구 등록 되어있어서
알람이 오면 알게되긴 해요.

요즘 카카오톡에 들어가면 생일인 친구들을 알려주더라고요. 그런 기술의 힘을 빌려 축하 글이라도 남겨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글 왜케 잘쓰시냐구요...ㅠㅠㅠㅠ

그가 태어난 계절을 챙겨준다는 것은 상대방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네요. 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아이디어네요. 참신해요!

특정한 날을 챙겨야 한다는 게 저는 좀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꼼수를 부려봤어요. ㅋㅋㅋ 계절을 기억하는 거 괜찮죠? 토렉스님은 어떤 계절에 태어나셨는지?

6월에 태어나셨군요.^^ 미리 축하드립니다.

네. 옛날에는 생일을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요즘은 여름에 내가 태어났구나' 하면서 의미부여를 해보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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