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탄 지 35시간만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in #kr-travel7 years ago (edited)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칠레 산티아고까지 약 2시간 30분, 산티아고에서 미국 로스 앤젤레스까지 약 12시간, LA에서 한국 인천까지 약 14시간. 이것만도 28시간이 넘는데 경유하며 공항에서 대기한 것과 한국행 비행기가 지연되었던 것을 포함하면, 아르헨티나 땅에서 한국 땅 밟는데 35시간이 걸렸네요.

중간중간 공항에서 인터넷 접속을 시도했지만, 남들은 다 이용하는 무료 와이파이를 무슨 이유인지 저는 이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 문물에 대해 워낙 무지한 지라 그럼 그렇지 하고 얼른 납득했습니다. 덕분에 @floridasnail 님의 미국오면 꼭 연락해~~! 이벤트와 @noah326 님의 사관학교 원생모집 이벤트는 포기. 그 와중에 스팀잇할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지금도 그래요. 한국 왔냐는 지인들 카톡에 답장 안하고 스팀잇에 글부터 쓰고 있네요.

한국 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지요. 그런데 떠나는 날까지도 짐을 싸고, 마지막으로 룸메를 위해 요리를 하며 수선을 떨고, 아르헨티나 공항에서는 미국비자가 없다며 체크인을 못하는 해프닝에, 칠레발 비행기에서는 한국어로 계속 욕을 하는 두 한국인(제가 한국인인 걸 몰랐습니다..), 미국발 비행기에서는 단 10분도 멈추지 않고 울던 아기(걱정이 되어 짜증도 나지 않더군요..), 한국 도착해서는 민망하게도 다 부서져서 나온 캐리어..

별로 슬플 틈이 없었습니다.

마중나온 가족과 코스트코에 가서 회 사다가 먹었어요. 누구 하나 아르헨티나 생활은 어땠니 라고 묻지 않는 우리가족의 쿨함. 다들 얼마나 외로웠던 건지, 저에게 동시에 하는 각자의 말들을 내내 듣고만 있었네요. 듣는 사람이 없으니 외로웠을 수 밖에요. 외국에서도 통하던 대화가 한국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 신비로움을 느꼈습니다. 제가 왜 혼자서 그리 글을 써왔는지도 기억이 났지요.

집에 오니 옛날 할머니댁에 가면 나던 냄새가 나요. 오랜만에 보는 전기밥솥에는 지은 지 85시간이 된 밥이 남아 있길래 먹지 않았어요. 이래뵈도 그때그때 냄비밥 해먹던 여자거든요. 남들 다 보는 평창올림픽 나도 좀 보자 하고 티비를 켰는데 처음 본 경기에서 우리나라 여자 쇼트트랙 선수가 은메달.. 아니 실격을 당하네요. 제 탓인가 싶습니다.

사실 한국에 와서도 제가 스팀잇을 할 것인가,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젯밤 겨우 인터넷 연결을 하고 스팀잇에 들어와 보니 놀라운 선물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kr-art] 그림작가&글작가 이벤트 에 참가하시는 @illust 님은 천사에게 받는 위로 라는 작품으로, @cagecorn 님은 @springfield 님을 위해 라는 작품으로.. 무려 제 글과 저를 모티브로 삼아 그림을 그려주셨습니다. 그림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서 한참을 멈춰 있는데 글을 읽으면서도 많은 힘을 받았습니다. 스팀잇에서는 놀라운 선물이 끊이지가 않는데, 이번에는 제 상황때문인지 특히나 큰 의미로 다가와서, 오히려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알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려주신 분들이 어리둥절할 정도로 감동받았어요.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노트북을 열어 반가운 @megaspore 님의 신작 행복의 네가지 비결 을 읽었어요. 쓰신 분은 인정하지 않으시겠지만 딱 지금의 저를 위한 글이더라구요. 아닌 게 아니라, 메가님의 글은 누가 읽어도 ‘나에게 하는 이야기로구나’ 싶은 힘이 있지요. 정말이지 제겐 선물같은 글이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수많은 생각이 일었지만, ‘내가 그래서 스팀잇을 하며 행복했구나’ 하는 생각도 스치더랍니다.

그래서 또 글을 씁니다.

아르헨티나를 떠나는 김에, 35시간의 여정과 한국에서의 적응을 핑계삼아 잠시 발을 끊을까도 생각해 보았는데.. 제가 스팀잇을 아주 얕보았네요. 온라인이라고 해서 노트북 덮으면 끝인 줄 알았는데, 슬쩍 열어 보았더니 다들 그대로 여기에 있군요. 심지어 선물 한 바구니 가득 들고서 말이죠. 내가 있던 곳을 이렇게나 멀리 떠나 왔는데도.. 놀라운 일입니다. 이 곳을 통해 저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 크고 작은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요. 더 놀라운 것은 긴 비행을 끝내고 하룻밤 자고 일어났는데도 보팅파워가 아직도 회복이 안되었다는 것...

아무래도 가족이 있는 한국 집이라 신경쓸 것이 많다보니 의도치 않게 객관화가 되어 글이 잘 써지지가 않습니다. 할 일도 the love 게 많고요. 지금도 당장 점심상 차리고 분리수거 하러 나가야 합니다. 벌써 낮 12시인데 왜이리 어둡지 하고 창밖을 봐도 어쩐지 시원하게 밝지는 않군요. 아파트가 하늘을 다 가리고 있어서인지, 미세먼지 때문인지, 겨울이라서 그런 것인지 감이 오질 않습니다. 하늘을 나는 동안 댓글 남겨주시고 안부 물어주신 분들께 천천히 인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

그림 by @ill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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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 Up! 많은 사람들이 이 포스팅에 관심을 갖고 있나봐요!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35시간, 참으로 길고 힘든 여정입니다. 이리 저리 치이고, 이동하고, 쭈그러진 채 견디며 잘 오셨습니다.^^;

cagecorn님의 그림 너무 섹시한 거 아닌가요? ㅋㅋㅋ 스프링필드님 알고보니 팜프파탈이셨던 겁니꽈~~~보는 저도 감동입니다. illust님의 그림도 너무나 따스합니다.

저는 가서 100시간 된 밥이나 먹어야겠습니다.
ㅋㅋㅋㅋ

송블리님 ㅎㅎㅎ 케콘님이 저를 밋업에는 평생 발도 들이지 않도록 도와주셨어요 ㅋㅋㅋㅋㅋ 일러님 그림도 진짜 힐링 대박이죠 ;ㅁ; 이러니 어찌 스팀잇에 등을 돌릴 수 있겠어요 ;ㅁ; 이 사람들이 있는데.... 그나저나 송블리님 100시간 된 밥은 맛있게 드셨나요 ㅎㅎㅎ 100시간이라니...

수고하셨습니다. 그 38시간도 온전히 행복한 시간으로 바꿔 가는 내내 행복하셨을것으로 믿습니다. 언제나 응원합니다. 소식 더 많이 전해주세요^^

개털님 :-) 보내주시는 응원 언제나 감사히 잘 받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조금 정신이 없겠지만 개털님 소식도 금방 따라잡으러 가겠습니다 :-)

35시간... 인도네시아 24시간은 델것도 아니네요. ㅎㅎ
고생많으셨고 환영합니다.
스피밋... 저도 가끔 일주일씩 암 글도 안올리고 글도 안보고 멍때려보기도 하는데 묘한 중독 때문에 다시 돌아오게 되지요. ^^ 우야둥 웰컴백입니다.

노아님 :-) 저는 3일?4일? 안하고도 한참을 안한 것 같이 느껴지는데 일주일이라니 ㅎㅎㅎ 가능할까 싶습니다. 그래도 결국은 돌아오게 되어있군요 ㅎㅎㅎ 그만큼 준 게 많고 받은 게 많아서 그런게 아닐까요 :-) 저 정말로 LA에서 대기하는 동안 사관생도 되려고 와이파이 찾아다녔네요.. ㅎㅎ 다음주 월요일을 기약하며.. 환영 감사합니다! :-)

환영합니다~ ㅎㅎ 35시간이라니...휴~ 멀긴 하네요! 고생하셨구요^^
이제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명절 잘 보내세요~

독거님 :-) 아르헨티나에서 땅 계속 파면 한국 나온다는데 그걸 못하고 비행기 타고 왔네요. 비행기에서 자고 일어나니 계절이 바뀌어 있어 신기합니다. 독거님도 편안한 명절이 되시옵소서(왠지 독거님에겐 이런 말투가..)! 감사합니다 :-)

안그래도 스프링필드님이 도착하실때가 됬을텐데.... 바쁘신가?? 했네요.
35시간 오시느라 정말 수고 하셨어요.

외국에서도 통하던 대화가 한국에서는 전혀 되지 않는 신비로움을 느꼈습니다.

저도.... 미국에 있다가 한국에 오니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신랑이랑만 대화했었네요.

할 일도 the love 게 많고요.

아~ 이 표현 사랑합니다. ㅎㅎㅎ

반가워용~ 다시봐서~

리자님 ㅎㅎㅎ 같은 한국어 쓴다고 말이 통하는게 아니더라구요. 리자님께는 말하고 들어줄 신랑님이 계셔서 다행이었네요 :-) 원래 타지생활 하다가 집에 오면 좀 쉬고.. 남이 차려준 밥도 먹고 그런다는데 말이죠 ㅎㅎㅎ 벌써부터 쉬고 싶어요.. 나의 집은 어디인가~~ 스팀잇인가~~ㅋㅋㅋ 리자님 저두 반가워용 :-)

한국온지 5년이 되니 다시 말이 안통하고 있습니다. ㅋㅋㅋㅋ

스팀잇은 한국말을 쓰는 외국 같은 느낌?

이게 무슨 일이죠 ㅋㅋㅋ 다시 해외 한 번 나갔다 오셔야 겠어요 ㅋㅋㅋ

ㅋㅋㅋ 올해 말에 전역하고 나서 해외로 나갈 궁리를 좀 해봐야겠어요.

잘... 도착하셨네요. 캐리어는 대체 왜 부서졌답니까.

공항에서 김리님 찾았는데 어디 계신지 안보이시더라구요. 캐리어가 환승을 많이 한 탓인지 알헨티나 도착했을 때도 부서졌는데 한국와서도.. 공항에서 미안하다고 새 캐리어줘서 룰루랄라 받아왔네요 :-)

올~ 새캐리어~~~~~ㅎㅎ

언제 오시는지 몰라서...

먼 길 달려서 오셨군요!!
환영합니다 :)

@y4nga 님 안녕하세요 :-) 먼 길 달려서, 아니 날아서 왔습니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해요!

먼길에서 돌아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한국이 추워서 조금은 어색하시긴 하셨겠어요^^

@leesunmi 님 감사합니다 :-) 한국은 추웠지만 제 방은 따뜻하게 데펴져 있어서 행복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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