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행기 7. 다낭에서 마음에 여유를 찾다

in #kr-travel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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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은 이상한 곳이다. 여행자라곤 볼 수 없는 현지인들만의 공간과 현지인이라고는 점원 밖에 없는 여행자들만의 공간이 아주 가깝게 붙어있다. 영어로 된 메뉴판도 갖추지 않은 카페와 입구부터 한글이 가득한 카페가 그리 떨어져 있지 않다. 길을 걷다보면 노점상에도 한글로 '테이크아웃 커피'가 적힌 모습도 볼 수 있다. 미꽝(Mi Quang)을 1500원에 파는 곳과 미꽝보다 비싼 도리토스 한봉지를 살 수 있는, 케이팝이 흘러나오는 마트도 가까이에 있다.

미꽝은 다낭에서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면요리다. 보편적으로 한국에서 만날 수 있는 쌀국수와는 다르게 면이 넓적하고, 국물이 흥건하지 않고 바닥에만 조금 고여있다. 면은 쫄깃하고 국물도 맑지 않고 무거워서 진득한 느낌을 주는데, 거기에 고소한 땅콩이 더해져서 깊고 다채로운 맛을 준다. 알새우칩 비슷한 과자를 하나 얹어주는 것도 특징적이다. 그러고보면 나는 베트남에서 한국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평범한 쌀국수를 먹은적이 한번도 없다.

숙소는 내가 베트남에서 지냈던 곳 중에 가장 쾌적한 곳이었다. 옆방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고 에어컨도 아주 조용했다. 이전에 묵었던 곳들에서는 TV 화질이 너무 안 좋아서 윔블던을 보는데 도저히 테니스 공이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화질이 선명해서 윔블던을 즐길 수 있었다. 유일한 단점은 불을 켜려면 침대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머리맡에서 멀지 않은 곳에 취침등 스위치가 있긴 했는데 팔을 뻗어서 켜기에는 약간 모자랐다. 침대에 누워있다가 떠오른 생각을 메모하려고 해도, 불을 켜려고 몸을 일으키는 사이에 자꾸 잊어버려서 팔을 뻗어 불을 켤 수 있도록 침대의 위치를 옮겨보았다. 하지만 모양새가 영 별로였다. 내가 메모장에서 몇번째 줄까지 메모를 했는지 기억을 해두고 불을 끈 채로 메모를 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 여기며 장난 삼아 메모를 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서 놀랐다. 리셉션 직원은 수염이 아주 매력적이었는데, 나갈 때나 들어올 때 인사를 하면 아주 밝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어서 기분이 좋았다.

내가 지내는 곳은 Yen Bai Street이었는데, 길을 잃었을 때 여러가지 발음으로 읽어보았지만 현지인들은 도저히 알아듣지를 못했다. 그러다 메모장을 꺼내 주소를 보여주면 그제서야 알겠다는듯 "옌 바이"라고 답을 했는데, 그들의 발음을 아무리 흉내내려고 해도 그들은 알아듣지 못 했다. 성조가 있는 언어라서 내 어설픈 발음은 알아듣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이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도로가 워낙 휘어지고 갈라지다 보니, 머릿속으로 아무리 위치를 정확하게 그리며 이동하려고 해도 어느새 틀어지곤 했다. 그래서 강을 지표로 삼았다. Yen Bai는 다낭 전체를 가로지르는 큰 강에서 가까웠다. 나는 어디를 이동하더라도 강을 거치고, 돌아올 때도 강을 거치는 방식으로 길을 더 이상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가령 남쪽에 있는 곳을 가더라도 일단 강을 따라 걷고, 미리 알아둔 지점에서 서쪽으로 이동해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방식이다. 강가에 있는 가게들이 눈에 익어감에 따라서 점점 더 능숙하게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여기저기 다닌 것 같지만, 사실 목적지가 있었던 날은 잘 없다. 며칠간 아무 목적지 없이 정처 없이 걷다가 방에서 테니스를 보고 이른 시간에 잠을 잤다. 그동안 쌓인 피로 때문일까, 일찍 자고도 늦게까지 자곤 했다. 그렇게 일어나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는 낮잠을 또 자기도 했다. 확실히 고행은 끝이 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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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여유가 생겨서인지 글을 쓰기에도 훨씬 수월했습니다. 읽는 여러분에게도 훨씬 잘 읽히는 글이길 바랍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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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글에 여유가 있어보입니다. kmlee님의 여행기라니 !!

그러게요. 저도 여행기를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잠을 잘 잘 수 있었다니 긴장이 풀렸고 베트남에 적응이 되었나봅니다.

처음 며칠도 잘 자기는 했었습니다. 휴대폰이 고장나고서는 몸도 마음도 불편해서 한동안 피로가 많이 쌓였지만요.

복귀를 하셨을 뿐 아니라 여행기를 쓰고 계셨네요 ㅎㅎ

네. 돌아와서 다 잊어버리기 전에 열심히 남기고 있습니다. 날씨도 많이 더운데 무탈하신가요?

신변에 변화가 많네요 ㅋㅋㅋㅋ 뭐 스팀잇도 다시 하고 있으니 무탈하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 카페이신가요?

집에 있어요.

글의 시점에서도 여유를 찾으셨고, 현재의 시점에서도 여유를 찾으셨군요!

네. 확실히 많이 나아졌어요.

다낭에서 한량으로 사시는 군요 허~~ 부럽습니다. ^^
패키지 파인 제가 겪은 베트남은 호텔마다 익숙한 쌀국수가 있었는데 .......역시 조작된 현실이었군요 ^^

옌바이!
곧 다낭을 갈거라 어디인지 구글 지도에서 찾아봤네요 ㅎㅎ

아휴~~~ 이제 좀 편해진건가요? 정말 여행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시간 지나면 즐거운 추억이겠지요?

그래야겠죠...

베트남에 다녀오셨군요? ㅎㅎ
저도 오랜만에 왔습니다. 이러저런 일로 스팀잇을 좀 쉬었네요. ^^
이런 여행기 좋습니다. 여행기라고 해서 꼭 여행지를 소개해야하는 건 아니니 말이죠.
제가 라오스에서 보냈던 시간과 비슷한 시간을 보내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 일기도 특별한 일을 한 날에만 써야하는게 아니듯, 여행기도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담을 수 있겠죠.

다낭은 숙면하기에 좋은 도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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