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행기 2. 아기자기한 무이네

in #kr-travel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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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에서는 오래 있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쇼핑을 할 것도 아니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아니니 도시에 오래 머물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눈을 뜨자마자 무이네(Mui Ne)로 향하는 버스표를 끊고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카페에 가서 반미(Banh Mi)를 곁들여 커피를 마셨다. 반미는 바게트와 같이 길쭉한 빵에 속을 넣어서 먹는 베트남식 샌드위치라고 할 수 있다. 빵은 겉보기에는 거칠고 딱딱해 보이지만 표면만이고 속은 그렇지 않다. 샌드위치와 같은 메뉴가 으레 그렇듯 속재료는 다양하다. 여행객이 많이 찾는 카페들에서는 우리가 흔히 먹는 샌드위치와 다를 바 없는 속재료를 쓰기도 한다. 가장 자주 먹은건 길거리에서 파는 500원짜리 반미였는데 노점상들은 그냥 '칠리'라 부르곤 했다. 냄비에 소스와 재료들을 같이 끓이고 그 소스를 국자로 빵에 끼얹고 채소를 얹으면 끝인 메뉴였는데 보기에는 심심하지만 소스의 향과 맛이 강해서 꽤 자극적인 맛이다. 커피도 이에 뒤지지 않고 모든 면에서 강하다. 단맛도 아주 강하고, 쓴맛도 아주 강하다. 특유의 추출법이 쓴맛이 강한 커피를 뽑아내고, 거기에 설탕과 연유가 들어간게 베트남에서 가장 기본적인 커피다. 간혹 "Black!"이라고 주문을 하면 블랙 커피가 나오기도 하는데 거기에도 설탕은 빠지지 않는다.

커피를 마시고 시간이 되어 버스를 탔다. 베트남에 버스는 두종류인데 일반적인 버스와 슬리핑 버스라 불리는 종류의 버스가 있다. 슬리핑 버스에는 2층으로 된 좌석이 3개씩 나란히 줄지어 있는데 각 좌석은 다리를 뻗고 누울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이 있다. 안 그래도 오전 시간이고 내 자리가 마침 2층 정중앙이라서 잘 수는 없었다. 버스에서도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어서 4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진 않았다. 버스 안에도 승무원이 있는데 승무원이 승객들이 머물 호텔을 기록하고 승객들을 각각 호텔에 내려준다. 이것도 베트남 시외버스들의 특징 중 하나다.

호치민에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는데 대부분 메뉴가 볶음밥 아니면 볶음면이었다. 꼭 먹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먹어보았다. 볶음밥에서는 소금맛이 강하게 나고, 볶음면은 라면맛이 난다. 라면을 삶고 건져서 기름을 두른 팬에 라면스프와 함께 볶으면 딱 베트남 길거리에서 파는 볶음면과 비슷한 맛이다. 퀄리티가 식당에 따라 정말 제각각인 메뉴였다. 1500원에 고기와 채소를 듬뿍 얹어주는 곳이 있고, 2000원에 고기는 없이 정말 밥만 볶아서 고수와 간장을 얹어 먹어야 하는 곳도 있었다.

숙소 바로 옆이 Fairy Stream이었다. 다리 아래로 내려가면 발목까지 오는 시냇물이 나온다. 신발을 벗고 오렌지색의 진흙 위로 흐르는 시냇물을 느끼며 거슬러 올라가면 다양한 경치를 볼 수 있다. 처음 진입하면 좌우로 식물들이 빼곡하다. 그 식물들은 머리 위 높이에서 서로 가지가 얽혀있고 그래서 마치 터널과 같은 형태를 이룬다. 그 터널을 통과해서 걷다보면 어느새 협곡이 나타난다. 붉은 모래로 이루어진 절벽, 흰 모래로 이루어진 절벽들이 교차하며 나타나고 그 절벽들이 시냇물 아래에 깔린 오렌지색 진흙과 어우러져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절벽 외벽을 긁어내어 쓰여진 글씨들이 없었다면 더욱 멋졌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쉬웠다. 거슬러 오르다보니 어느새 물이 허벅지까지 오기에 더 이상 오르지 않고 돌아내려갔다.

Red Sand Dune을 걸어갈까, 아니면 차를 타고 갈까 조금 고민했다. 그리 멀지 않아서 걸을 거리긴 했지만, 많이 걷게 될 예정이라서 체력을 아끼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냥 보이는 택시를 탔는데 Red Sand Dune에 데려달라고 했더니 "렏샌 노 뷰~티풀! 화이샌 뷰~티풀!"이라며 꼭 White Sand Dune을 가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Fishing Village까지 묶어서 투어를 제안했다. 처음에는 조금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흔히 무이네에서 하는 지프 투어에 참가한다면 시간도 내 마음대로 분배할 수 없으니, 아주 나쁘진 않겠다 싶어서 알겠다고 했다. 국적을 묻기에 한국인이라고 했더니 한국인은 좋고 중국인은 싫다는데 내가 중국인이라고 했다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가는 길에 처음으로 공동묘지를 봤다. 베트남의 묘는 굉장히 독특하다. 성, 탑, 대문 등 다양한 건축물을 축소한 형태인데 크기도 제각각이고 양식도 제각각이다. 무채색의 묘도 있고 원색의 화려한 묘들도 있다. 규칙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중에 듣기로는 요즘은 베트남도 묘지가 포화상태라서 납골당에 안장하는 모양이다. 택시기사는 한손으로는 모바일 게임을 하면서 운전을 했는데, 거기다 틈틈히 아는 운전자가 지나가면 손을 흔들기까지 했다. 최소한 그들을 알아볼 정도로 전방을 주시한 모양이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각각의 사구는 이름 그대로 Fairy Stream에서 이미 보았던 붉은 모래, 흰 모래로 형성된 모래언덕이다. 붉은 모래는 부드러웠고 흰 모래는 발을 디디면 종아리까지 푹푹 빠졌다. 쑥 들어간 발을 뽑아내면 그 자리를 즉시 모래들이 흘러내려 메웠다. 그리고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내가 걸은 흔적은 사라진다. 붉은 모래에서는 썰매를 대여할 수 있고, 흰 사구에서는 4륜 바이크를 탈 수 있다. 가격은 비싼데, 택시기사와 협상한 투어비에는 이 서비스도 포함된 모양이었다. 경치를 둘러보고 돌아가는 길에는 경사가 아주 급한 언덕을 엄청난 속도로 내려간다. 비명을 지르는 승객들도 있었다. 나는 모자를 잘 지켰지만 경사로 여기저기에 승객들의 모자가 굴러다녔다. 마지막으로 Fishing Villege는 낚시배가 빼곡하게 떠있는 해안이었다. 가득 늘어선 천막 아래에서 어민들이 해산물을 손질하고 포장하고 옮기는 모습을 잠깐 보다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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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여행기 1. 호치민에서의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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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이 혼자 여행하기에는 안전한가 보군요.

오래간만에 피드에서 뵙니 반갑습니다. 여름에 더 더운 나라로 다녀오셨군요 ㅎㅎ 1편부터 느긋하게 읽어볼게요.

한반도가 훨씬 더워요...

저번에 어떤분이 대프리카라고 농담하셨던데... 정말 열기가 뜨거운 모양이네요

베트남 여행기!
잘 보고 있습니다^^
저도 곧 베트남으로 떠납니다 ㅎ

어느쪽으로 가시나요? ㅎㅎ

대천같이 한국사람이 많다는 여행지 다낭으로 갑니다 ㅎ
베트남 여행 시 팁 이런게 있을까요?ㅎ

교통은 택시를 잡기보다 Grab 어플을 이용하시는게 좋아요. 환전은 베트남동 말고 달러로 바꿔가서 현지에서 베트남동으로 바꾸는게 유리하구요.

다낭은 한국분들이 정말 많더라구요. 특히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거리는 물가가 엄청 비싸다보니 현지인은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 말고는 없어서, 한국인이 현지인보다 더 많기도 했어요.

여행 잘 다녀오셨군요~ 부럽습니다 ^^ 가즈앗!!! ㅋ

오랜만입니다. 요즘도 쉬지도 못 하고 바쁘신 모양이네요. 가즈앗!

모바일 게임을 하면서 운전하는 택시기사라니, 한 수 배워야 겠네요.

대단한 기사네요.
한동안 우리나라에서도 포켓몬 잡는다고 사고가 나고 그랬죠.

베트남 커피는 진한 커피에 연유를 넣어 먹는다는 말은 들어봤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주로 단 커피를 마시는가 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아이스커피를 마시는데 말이죠.ㅋ

빨간 모래와 흰모래... 이름만으로도 이국적이네요.
사진도 같이 보았으면 더 좋았을까요?
아니면 상상하며 볼 수 있으니 지금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베트남이 아주 길게 뻗은 국토를 가지고 있네요.
잘 몰라서 호치민과 다낭을 구글 검색기로 검색해 보니 그러네요.
하노이까지 가야 남북을 가로 질러 베트남을 여행할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는 것도 검색하고 알았습니다.^^

사진은 나중에 모아서 올리겠습니다.

오오... 돌아오셨군요! 베트남을 다녀오셨네요 ^^ 동남아시아, 중국 사람들 한국 드라마 때문에 한국사람들 오면 좋아하지요.

궁금해서 사진을 좀 찾아보았네요. 베트남은 덥고 습한 나라라고 생각해서인지 이런 모래언덕들이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져요.

한국에서도 언젠가는 우등을 넘어서 슬리핑 버스가 나올런지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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