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여행기 1, 완벽한 날들의 동아서점

in #kr-travel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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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여행기 1

완  벽  한  날  들  의  동  아  서  점




하룻동안 혼자 다녀온 짧은 속초여행기.

1이라고 붙였지만 길어져봤자 3이고, 아니면 2에서 그칠 정도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속초는 몇달 전 부터 어쩌다보니 염두해두고 있었던 곳이다. 어렴풋하게. 어떤 글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shimss님 포스팅에서 속초를 보고 오랜만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을 담아둔 적이 있다. 그러다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서점들도 직접 보고싶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마침 불소소 팟캐스트에서 '혼자하는 여행'을 주제로 잡았는데, 정작 혼자 여행을 한 적이 없는 나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담아 속초행 버스에 올라탔다.

10시간 남짓을 속초에서 보내게 되었는데, 짧은 하루의 시간을 나름 밀도있게 나의 시간으로 가졌다. 오늘은 그 중 두 곳의 서점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해보고 싶다. 언젠가 부터 서점은 내게 여행지에서 꼭 선택하는 곳 중의 한 곳이 되었는데, 왜냐고 물어보면 뭔가 결정적인 이유를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동네의 서점이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지가 궁금하고, 어쩌면 서울에서 살 수도 있는 책인데도 그 큐레이션 속에서 고르는 행위를 즐기게 되었으며, 서점을 가는 자체가 나에게는 하나의 경험이 되어버렸다.






완벽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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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려 3km를 걸었다.

좀 걷고 싶다는 생각대문에 설악대교를 넘어 40분 정도를 걸었는데, 사실 풍경은 그럭저럭이었다. 속초가 더 이상 아주 시골은 아니라서 어딘가는 매우 도시같기도 하고, 선착장과 해수욕장이 보이기도 하는 묘한 조합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40분만에 또 다른 터미널을 만났다. 시외버스터미널 바로 뒤 구석에 숨겨진 서점 '완벽한 날들'. 이 조용하고 숨겨진 공간을 내가 왜 왔을까라는 생각을 문득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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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한명도 없어서 조금 당황하다가, 서점을 둘러보았고 음료를 주문했다. 정말 동네에 살면서 가끔 들릴법한 느낌이면 딱 좋을 것 같았다. 음료를 내어준 주인분께서 2층의 게스트하우스를 청소하러 올라가시는 바람에 난 한동안 그 서점에 완벽하게 혼자가 되었다. 조용하고 차분해지기도 하지만, 어딘가 썰렁해지기도 했다.

이왕 혼자가 된 김에 천천히 곱씹으며 서점의 책과 그 큐레이션을 둘러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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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작가들의 책을 모아놓은 섹션도 있었고, 사회적 메세지를 담은 책들만 모아놓기도 했다. 요즘 많은 독립서점들이 선호하는 출판사인 '유유미디어'의 책을 한쪽에 모아놓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간간히 북마크와 엽서같은 굿즈도 구경했다.

어떤 책을 살까. 뭐든 결정하는데 오래걸리는 편이라, 꽂히는 책이 있기를 바라며 책들을 바라봤다. 내심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안사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열열히 꽂힘을 바라며 서점을 한 바퀴 둘러보았는데, 딱히 고르지 못했다. 여행에 관련된 책을 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여행책을 모아놓은 곳에서 주저하다 자리에 앉았다. 핸드폰은 충전중이었고, 딱히 가만히 앉아있기도 뭐해서 서점을 한번 더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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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특별히 인상적이지 않은 제목을 가진 책을 발견했다.

'그림 여행을 권함'이라는 책이었는데, 그냥 무심코 한번 손이 갔는데, 뭔가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림체때문일까. '비수기의 전문가들'이란 책에서 봤던 느낌이 묘하게 이 책의 표지에서 묻어났다. 그리고 검색을 해보니, 역시 동일 저자. 김한민작가의 책이었다. 이 책은 따로 리뷰를 하겠지만, 팟캐스트에서 준비하던 '혼자하는 여행'의 내용과 교차점이 있는 책이었다. 숫자1의 혼자가 아닌 자기 호흡과 템포를 찾는 형태의 그림여행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1층에서 주인분을 불렀다. 죄송한데, 저 이 책 살건데 미리 자리에서 좀 읽고 있어도 될까요. 허락을 구하고 그 자리에 앉아서 4-50분 정도를 읽었다. 반이 좀 못되게 읽었다. 나의 취향을 저격하는 책이었기에 그랬는지 몰라도 여행길에 서점에 가서 여행에 관련된 책을 읽는 경험은 평범한 듯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동아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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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서점은 이제 속초의 상징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사실 동아서점때문에 속초를 왔다고 해도 된다. 이 곳을 직접 눈으로 들여다보고 싶었다. 동아서점은 동네서점이다. 동네서점은 시간의 흐름속에 살아남지 못했다. 대형서점이거나 새로 생기는 독립서점이 있을 뿐이다.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그저 남아있기만 한 경우가 많다. 시간이 멈춘 것 처럼. 그래서 '개점 1956'은 남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스스로 그 시간을 견뎌내고 또 계속 흘러서 자신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보였다.

오래 걸은 탓에 지쳐있었고, '완벽한 날들'에서 산 책은 어깨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 여행에서 짐은 짐이라더니,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누가 가져가든 말든 한쪽에 가방을 그냥 내려놓고 구경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서점의 규모는 작지 않았다. 대형서점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독립서점들에 비하면 네다섯배도 더 되어보였다. 아니다 열배쯤 될수도. 중고등학생 시절에 가던 서점이 생각났다. 문제집을 주로 사러가던 그 서점들의 규모가 이와 비슷했던 것 같다. 그런 서점들은 이제 많이 없어졌다. 나는 또 하나하나 큐레이션을 보려고 애썼다. 꽤 많은 종류와 양의 책이 있었다.

책들은 대형서점처럼 분야별로 나뉘어지기도 했고, 독립서점처럼 큐레이션이 군데군데 되어있기도 했다. 꽤 많고 다양하게. 잡지도 많았고, 요리, 영화, 자기계발, 소설 등의 분류와 함께 신간, 동아서점에서 추천하는 책들, 독립서점을 모아둔 공간 등 다채로웠다. 많지만 산만하지 않게 알알이 꽉 들어찬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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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꽂힘을 기다리며 책들을 열심히 훑어보았다.

이렇게 한번와서 골라야한다는 것은 너무 촉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나를 재촉한 걸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한바퀴를 돌고, 카운터 근처의 굿즈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한 켠에 이 곳 '동아서점'에 관련된 책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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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란을 펼쳐보았는데, 아 이 책을 사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백발의 주인분이 이 서점의 1956을 시작하신 분이었고, 그 아들이 이곳을 새롭게 단장하며 지금의 동아서점을 있게 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어쩐지.. 오래된 서점이라 하기엔 독립서적들의 새로운 큐레이션이 많았고, 새로운 서점이라 하기엔 그 밀도높음과 클래식함의 공존을 젊은 아들이 다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 책을 사지 않으면, 동아서점을 그저 스쳐지나가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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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인해드릴까요?? 책의 저자이자 주인이자, 원래 사장님의 아들분이 계산을 해주시며 말을 건네셨다. 네..라고 대답했고, 이름을 뭐라고 써드릴까요?? 라고 하셨는데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이름을 말할까 P라고 말할까 그 와중에 갑자기 갈등했다. P라고 써주세요.. 심쿵하는 도장까지 받아 서점을 나왔다.

이 서점이 주는 경험을 뭐라고 정의해야할까.

책을 고르는 경험, 주인의 큐레이션이라고만 말하기에는 더 풍성한 무언가가 있다. 지극히 동네적인 이느낌이 아주 드문 것이 된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kyunga님의 레이아웃을 제목으로 주구장창 쓰면서 언급 한번 안했네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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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가 홀로 여행도 하게 만들어주고.. 참 하길 잘하셨네요 :)

네 너무 좋은시간이었어요. 가끔은 혼자 다녀봐야겠어요 ㅎㅎ

서점 전문가 P님..!!ㅎㅎ 동아서점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자기개발 이라던지 인간관계가 아닌, '일과 사람'이라는 코너 이름도 좋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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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코너도 있었어요. 전 서점을 잘 모릅니다. 아직 배가 고프다는 ㅋㅋㅋ

싸인해드릴까요?? 책의 저자이자 주인이자, 원래 사장님의 아들분이

이 대목, 마치 소소한 유머 코드가 있는 일본 영화의 한 장면 같달까요 :D

그런가요 ㅎㅎ 이름이냐 닉네임이냐를 놓고 갈등한 저의 모습은 시트콤이었습니다만...ㅋㅋ

이번 포스팅에도 P님 특유의 감성이 느껴지네요.

이 감성 참 좋다...!

감사합니다:) 뭔가 뿌듯해지네요 ㅎㅎ

우와 속초에서의 서점여행이라니....
넘 매력적이네요.
맨날 대형서점들만 보다가
그 마을의 색을 담은 서점을 보니
넘 정겹고 멋져보여요.
저도 한번 다녀와봐야겠어요.:)

네 여행에서 서점을 들린다는게 점점 매력적인 경험이 되고 있어요. 다녀와보세요 :)

사진만봐도 뭔가 마음이 편안해져요ㅎㅎ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혼자 차분하게 돌아다닌 여정이라서 그런가봐요 ㅎㅎ

P 님께 좋네요. 실명을 썼다면 싸인을 못 볼 뻔 했어요^^

아마도 그 순간에 그 생각을 한 것 같아요 ㅋㅋ

서점 여행이라니 :) 컨텐츠 주제가 넘 서정적이네요 :) 헤헤
각 지역의 대표작가님들의 작품도 추천해주셔도 좋을거 같아요 :)
암튼 흥미로운 글 잘 읽고 갑니다 :) 데헷.

아직은 지역별 작가님들의 책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더 읽고 더 다니면서 하나씩 읽어봐야겠어요.:)

저도 가보고 싶어지는걸요 흠흠! P님의 사진과 글, 책을 <속초> 안에 담아서 전해주시니 속초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롸작가님의 감성으로 담은 속초도 궁금하네요. (자전거타고?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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