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청소 #0. 논쟁적 시리즈의 서문

in #kr-series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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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갈등을 내재하고 있는 주제들을 다루기 위한 시리즈의 서문이다. '이슈'라는 말을 쓰는 대신에 '주제'라고 못박는다. 사실 영어 단어 issue라면 전혀 문제가 없겠지만, 외래어 '이슈'는 마치 뉴스거리로 부상하게 되어 그 중요성을 확인받는 그 무엇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는 스스로 못 지킬까봐 두려운 규칙을 정해놓고 시작하기로 한다.

규칙 1. 특정 사상가들의 글이나 특정 학파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전문용어는 쓰지 않기. (규칙 2는 아직 없음)

사실 학교에 있을 때는, 마땅히 알아야 될 개념들(곧 용어들)을 모르는 사람들을 동급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알아야 하는 신분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것들을 바깥 세상(?)에서까지 무슨 보편적인 지식처럼 이해받기를 고집하는 것은 웃긴 일이다. 물론 특정 학문 시리즈를 쓴다면야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이 시리즈는 '갈등을 내재하는 주제들'에 관한 것이다. 사회, 종교, 젠더 등...회차마다 포인트는 다를 것이다.

왜 '성전 청소'인가?

우선 '성전'은 Holy War 따위의 무서운 의미가 아니다. 물리적으로 청소할 수 있는 건물, 그 성전(Temple)이다.

누구든 자신의 글 안에서는 자신이 설정한 논리의 그물 안에서, 자신이 고른 용어로 표현한, 역시 자신이 고른 개념들을 배치한다. 그걸 너무 못하면 아전인수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아주 잘하면 실제 이상으로 대단한 논리를 편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어쨌든, 자신만의 세계관 속에서 자기모순을 최대한 피해가면서 펼쳐놓는 글이기 때문에, 심하게 미숙한 생각에서 출발하지 않은 이상에야, 자신의 글은 그 자체로는 나름대로의 '정합성'을 갖게 마련이다. 자신의 글 안에서는 왕이라는 얘기다.

우리는 남과 의견교환을 할 때에는, 적어도 초기에만큼은, 남의 입장보다 내 입장이 절대적이라고 믿지는 않는다는 제스처를 많이 취한다. 이성적이고 매너 있는 인간의 모습이 그것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여러 가지들을 주섬주섬 꺼내면서 설득을 하려 든다. 조금 더 정확하거나 더 많은 정보, 조금 더 빈틈없는 논리, 조금 더 짙은 호소력 등을 꺼내놓는다.

하지만 내 글에선 내가 왕이니까, 그런 겸허한 태도는 내려놓고 쓰자는 얘기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제목은 '성전 청소'다.

성서의 예수는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간다. 성전 앞에는 장터가 열려 있다. 이 장터는 율법이 명하는 성전과 제사의 근본과 절차 등을 망가뜨리고 있다. 통치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율법에 대한 '광의적 해석'을 하였건, 본격적으로 장사를 하려는 것이었건 간에, 이 장터는 예수의 눈에 가증스럽다. 그래서 그는 장터를 뒤엎는다.

내 글에서만큼은 내가 성전을 청소하겠다는 뜻이다.

락오페라를 영화화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성전 청소' 장면.
(깽판은 대략 1분 15초부터)

그럼 서문도 아닌 주절거림은 이만 하고, 서문으로 넘어가기로 한다.

성전 청소 시리즈의 서문

나의 문화 취향으로 미루어보면, 나는 당장의 트렌드나 흥미거리에 그치게 될 그 무엇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못한다. 오랜 세월을 거쳐서 내가 즐길 수 있는 형태로 살아남은 것들 중, 마음에 드는 것들을 주섬주섬 고르는 편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당장 무슨 일이나 현상(젠더 갈등, 난민 등)이 이슈가 된다고 해서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은 중요하다. 잠재적으로 내게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에...하지만 가능한한 부정하고 싶다.) 정확히 말하면, 당장 나를 크게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라면, 화제가 되는 사회 현상들에 대해서 별로 알고 싶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잠깐. 알고 싶지 않다고 했지, 알지 못한다고는 안 했다.

그런 일들 중 정말로 단발성인 이슈는 드물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현상들의 뿌리는 깊고 오래되었고, 심지어 인간이 존재해온 이래로 항상 있었던 것들이다. 이는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으로 보여지는 이유 중 하나이다.

한 개인이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은 상당부분 타고난다고 생각한다. 꼭 무슨 분류에 따른 유형, 무슨 뇌를 가진 유형 등의 라벨을 굳이 붙일 필요는 없다. 물론 한 개인이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에, 실제로는 경험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별로 중요하진 않다. 입증도 안 되거니와, 그것이 내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을 다르게 하진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태생적인 성향이 있었건, 어떤 과정을 거쳤건, 중요한 것은 내게 사물을 이해하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한 개인이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이란, 자유, 공정, 평등, 성과, 경쟁처럼 특히 갈등의 여지가 많은 가치들을 평가하고 인식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 평가와 인식을 하는 방식에 따라, 어떤 가치에 더 무게를 두게 될지,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면서 다른 어느 것에 불가피한 희생을 요구하게 될지가 달려 있다.

먹물을 좀 더 많이 먹었으면 표현을 완곡하게 할 수 있다. 소위 세련되게 주장을 펼칠 수 있고, 사물을 이해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이들을 설득할 수도 있다. 심지어 약간의 기만을 섞어가면서까지, 자신이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을 남들에게 추천할 수 있다. 그러나 일자무식꾼이라 해서 사물을 이해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없는 것은 아니며, 그 방식에 대한 자신감이나 고집이 덜한 것도 아니다.

개인이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은 전부 크고 작은 '스토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일명 세계관이라 할 수 있겠다.

어떤 현상을 보는 즉시, 개개인은 각자 그 현상 안에서 자신이 가장 높게 평가하는 가치의 승리나 유린을 본다. 또는 그 가치가 직면해 있는 딜레마를 보기도 한다. 조금만 자신이 행동하면, 그 스토리를 자신이 생각하는 해피 엔딩으로 밀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그 '스토리'는 그 현상의 총체나 실재와는 거리가 있다. 제 아무리 잘난 사상가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적 진리는 없다고 대부분 인정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있다 한들 인간의 인식 범위 바깥에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혹시나 이것을 인정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에 머무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는 아무런 대화도 가능하지 않기 떄문에 관심 밖에 두기로 한다.)

모두가 자신만의 스토리가 더 이성적이라거나, 더 정의롭다거나, 더 사물의 총체 또는 '진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손을 뻗어 잡을 수 없는 진리란 사실상 초자연적인 가치나 다름없고, 따라서 스스로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현대 인간도 믿음 또는 미신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나야 진리에 더 가까워진다는 오만한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데올로기건 사상이건 종교건, '혼'이나 '악령', '정신'등의 이름이 어울리는 형태로 우리의 인식 속에 머물러 있다. 우리 각자의 사물을 인식하는 틀인 '스토리'는 이성적이지만은 않다, 결코.

사실 그래서 이런 시리즈를 시작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자신만의 틀을 굳이 풀어놓는 것이란, 마치 너무 많은 사람들이 덤벼들어서 꼬아놓은 매듭진 밧줄의 작은 실타래 하나를 잡고 끌어당기는 것과 흡사한 일이기 때문이다. 학교의 장 속에서 하는 학술적인 주장이야 스트레스가 없지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글을 쓰면서 그들의 삶이나 생활과 밀접할 수도 있는 주제들을, 사물을 이해하는 나만의 방식으로 다룬다니!

그러나, 하긴 해야겠다. 아마도 초기 몇 회차는 이론적인 내용들이 조금씩은 들어갈 수밖에 없겠지만 앞에서 말한 규칙(쓸데없이 전문용어 쓰지 않기)은 유효하다.

그럼 이 서문과 딱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관련이 없지 않은 '스토리'에 대한 내 스팀잇 초기 글을 하나 오마주하고 서문을 끝내기로 한다.

세 가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2018년 3월 19일자 글)

이야기 1 (서기 70년 추정)

저자: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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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예수께 나아와 말했다.

“주여, 벙어리 귀신이 들린 제 아들을 데려왔습니다. 이 귀신이 아들을 여기저기 끌고 다니면서, 스스로 자해를 하고 입에 거품을 물며 이를 갈고, 시름시름 앓게끔 합니다.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달라고 요청했으나, 실패하였습니다.”

아이를 데려오자, 귀신이 아이를 잡아 뜯다시피 하였고, 아이는 입에 거품을 물고 땅에 쓰러졌다. 아이의 아버지에게 이러한 상태가 얼마나 되었나 묻자, 귀신이 아이를 매우 어린 시절부터 죽이려고, 불과 물에 몸을 던지게 하였다고 답하였다.

“하실 수 있거든 자비를 베풀어 도와주십시오.”

예수가 이에 답하시기를,

“‘할 수 있거든’이라니,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가 눈물로 외쳤다.

“주여, 제가 믿습니다. 제 믿음 없음을 도와주십시오.”

예수께서는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셨다.

“말을 못 하게 하고 안 들리게 하는 귀신아. 너에게 명하노니 아이에게서 나와서,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
그러자 귀신이 소리 지르면서 아이의 몸을 뒤흔들며 나왔다.

귀가하면서 예수의 제자들이 물었다.

“왜 우리는 귀신을 쫓지 못하였습니까?”

예수께서 답하셨다.

“이러한 류의 귀신은 기도와 금식으로만 쫓아낼 수 있다.”

이야기 2 (서기 150년)

저자: 루키아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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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키아데스는 나이든 친구 유크라테스의 병문안을 간다. 그리고는 유크라테스 본인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유크라테스에게는 이집트 주술사 친구가 있었다. 이시스 여신의 제사장이기도 했던 그 친구의 이름은 판크라테스였다.

판크라테스는 종종, 빗자루나 절구에다가 옷을 입혀놓고는 세 글자의 명령어를 내렸다. 그러면 그 빗자루나 절구통 등이 마치 사람처럼 움직여서, 물도 길어오고 심부름을 하는 것이었다.

유크라테스는 몰래 귀를 기울여서, 판크라테스가 외우는 세 글자의 마법의 단어를 외웠다. 그리고는 어느 날 판크라테스가 외출했을 때, 절구통에게 물을 길어 오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물을 이제 그만 길어오라고 할 방법이 없었다. 유크라테스는 당황해서 도끼를 들어 절구를 둘로 갈라 버렸다.

그러나 둘로 나뉜 절구통은 두 개가 되어 계속해서 물을 길어오는 것이었다.

결국 판크라테스가 돌아왔고, 그는 화를 내며 절구를 멈추게 한 뒤, 사라져버렸다.“

유크라테스의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질문을 한다.
“그럼 빗자루나 절구에게 일을 시키는 방법을 안다는 건가요?”
유크라테스는 답한다.
“물론, 일을 시키는 것 까지는 할 수 있어. 하지만 멈추게 하는 방법을 모르지.”
이 이야기를 듣던 투키아데스는 이렇게 외친다.
“이 영감탱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이야기 3 (1797년)
저자: 요한 볼프강 폰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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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는 조수에게 집안일을 시켜놓고는 외출한다.

양동이에 물을 길어오는 데 지친 마법사의 조수는 아직 어설프게 알고 있는 주문을 외워, 빗자루에게 일을 시킨다. 빗자루는 사람처럼 움직여서 물을 길어온다.

집안은 순식간에 물로 가득 차고, 바닥에 흘러넘치기까지 한다. 마법사의 조수는 허겁지겁 빗자루를 멈추게 하려고 하지만, 주문을 제대로 모르는 탓에 계속 실패한다.

급기야는 도끼로 빗자루를 쪼개 버린다. 그러나 두 개로 변한 빗자루는 배로 빠르게 물로 집안을 가득 채운다.

그때 마법사가 돌아온다. 마법사의 조수는 다급하게 외친다.

“선생님, 도와주십시오! 제가 불러낸 이 영령들로부터 구해주세요!”

마법사는 빗자루를 멈추게 하고, 조수를 타이른다.

“이렇게 강한 영령은 숙련된 마법사인 나만이 소환할 수 있는 것이다.”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신약성경의 여러 복음서에 그려진 귀신들린 아이의 일화가 마법사의 조수와 함께 거론되는 경우는 개인적으로 접하지 못했다. 그러나 경지에 오른 절대자와 그에 못 미치는 제자들의 대비에서 마법사의 조수 이야기가 떠올랐다.

절대자이자 유일한 신을 믿는 신앙의 시초가 된 예수에 관한 일화에서는 영령들을 악한 존재, 악령들로 표현한다. 그들은 인간에게 해만 끼치기 때문에 쫓아내야 하는 존재이다.

동일하게 신약 성경에 포함된 다른 책들에 의하면 마법사란 그러한 악령들을 소환하고 부리는 존재이다. 서기 140년 루키아노스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집트의 주술사의 묘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성경의 틀로부터 자유로운 루키아노스의 이야기 역시 영령들의 이야기이지만, 악령이라기보다는 유용하게 부릴 수 있는 존재들을 그리고 있다. 시리아의 루키아노스는 이 이야기를 거짓말쟁이라는 하나의 작품 속에 엮었다.

화자는 이성의 소유자이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조금도 믿지 않는다. 루키아노스의 작품 속에서 각자 자신이 겪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이야기하는 인물들은 순전히 허풍쟁이다. 주인공 투키아데스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듣는 자로 하여금 쓸데없는 불안과 두려움을 갖게 한다고 말한다.

괴테의 발라드 마법사의 조수는 루키아노스의 이야기를 이어 받는다. 괴테의 시는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시작한 어느 미숙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마법사 등 초자연적인 요소는 고딕 문학의 특징 중 하나로 유용할 뿐이다. 저자는 더 이상 이성의 대변자가 될 필요가 없다.

훗날 독어에서 “내가 불러낸 이 영령들”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 또는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정치적인 협상이나 연합을 한 사람이 스스로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를 빗대는 표현이 되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기록된 인간의 이야기 속에는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과 믿음이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어떤 패턴을 따라 바뀐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그 모든 형태는 우리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다. 우리와 동시대 속에서 항상 혼재하기 때문이다.

세 가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는 2018년 3월 19일자 글로, [오마주] 프로젝트로 재발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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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출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어쩌라고 .. ㅡ.ㅡ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첫 댓글을 못 달겠다는 피드백도 있었는데 이딴 댓글도 이렇게 쉬운걸...

풀보팅을 드리고 싶네요.ㅋㅋㅋㅋ
(실천으로 옮길 행동력은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댓글 장인.ㅋㅋㅋㅋ

마음 먹었으면 하셔야죠 ...잉잉잉

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엽습니다.ㅋㅋㅋㅋㅋ
잠이 와서 이만~~굿나잇!

....? 수정까지 하실 일이...

요즘, 이모티콘 실험 중...

끝까지 다 읽진 못 했지만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말한 이야기가 떠 오르네요.
근대 과학의 벌전은 카톨릭이 그리스 로마 철학을 오랜 기간 보존 시켜서 가능했지만 정작 과학의 발전은 신은 없다 라는 논쟁으로 이어졌죠.
앞으로 어떤 주제들을 다루실지 기대 됩니다.

음...과학 vs 종교는 (나중에 밝힐 수도 있을 어떤 이유로 인해) 고려하지 않았었지만, 이 댓글을 보니 소재들이 몇 개 떠오르네요. 감사합니다. ㅎㅎ

마법사라고 하니 고대의 철학자들이나 중세의 과학자들이 오늘 날 우리가 상상하는 연금술사 같은 느낌? 이어서요.
그래서 예수와 마법사라는 조합을 보니 그 책 내용이 떠올랐네요.

다 읽었어요.

ㄳㄳ ㅎㅎㅎ

밑밥이 길어서 의외였어요. 준비를 단단히 하고 글을 쓰는 인상이에요.

사실 '쓰기'에 대한 준비는 아니고, 살면서 맨날 하던 생각들을 펼쳐놓기 전에 일종의 셀프 저항이 있어서인듯요! ㅎㅎ

내가 도레나 그리고 있을때..이분은 이런글을...리얼 소설읽는 기분이었음
근데 타이틀 센스 크으 취한다

이 글엔 그림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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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백님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랏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문이 일단은 장대해서 지켜보는 걸로 해봅니다. 왠지 두려움!!! ㅎㅎ

ㅎㅎ 사실 많은 사람들과 의견이 분명히 다를텐데, 딱히 그게 두려운건 아니었거든요. 써놓고 보니 그냥 자체적인 두려움이었던 것 같네요. ㅎㅎ

헥헥 너무 길어요~^^;;;;

오마주 글도 있어서 글이 두 개인데, 사실 서문만 떼어놓고 보면 평소보다 짧습니다. ㅎㅎㅎ

예수의 몇 안되는 분노의 현장이었죠. 아마 가장 격하게 분노를 표출했던 장소인걸로 기억합니다. 어디서 약을 팔아? ㅎㅎㅎ

ㅎㅎ 기독교 교리를 한번은 다룰 생각이긴 하지만 종교적인 시리즈는 아닌데, 저 영화가 좋아서 굳이 저 장면에서 컨셉을 따온 면도 있습니다. ㅎㅎㅎ

음... 확실하네요.
성격 급하지 말자. 교훈을 얻어 갑니다.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정말 좋은 글인거 같은데... 글을 정말 잘 썻는데..
제가 브리핑을 자주 하는 편인데 우린 어렵게 말하면
혼납니다. 요약 없으면 혼나구요.
하기야 여긴 내맘음데로지.. 브리핑이 아닌데..
또 몇몇은 느끼는게 틀리니까?
암튼 제이미님글은 좋습니다. 이유없이.
결론 : 글 좋습니다. 그리고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후후 벌써 어제(?)쓴 글이 되었군요.

사실 서문은 세 줄 요약 이런거 안하는게 맞다 생각해서 안 했는데, 이 시리즈 다음 회차부턴 들어갈 예정입니다. 문학에 대한 글이나 표현에 기대는 글이 아니라 그냥 딱딱 논지로 정리될테니깐요.

이거 한번 할께요
어쩌라구요 ㅋㅋ
그 댓글에 빵.~~

여긴 아직 오늘입니다.
암튼 매력있습니다. 점점 빠져들고 있어요.^^
ㅋㅇㅇㄱ(맞추면 대박)

앞글과 연결을 해서 생각해야지요?? 실망

정말 댓글 금지

아 정말 그럴래요.. 앞에글과 연결을~~
암튼 매력있습니다. 점점 빠져들고 있어요.^^ ㅋㅇ이군

성격상 무시할것 같기도 하지만 잠 못잘까? 알려 드립니다. ㅋㅋ
정말 이젠 잠자리로~~ ㅋㅋㅋㅋㅋ
이것도 못맞추면 음~~ 내가 잘못봤어 ㅋㅋㅋㅋ

...전 나름 놀린건데 죄송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

좋은밤 되세요^^

댓글금지

네 전문용어는 안 쓰겠습니다. ㅎㅎ
예수가 청소한 것은 욕심과 탐심이라고 치고
기도로 귀신을 쫓아내는군요
세번째는 마술이야기인데...
다룰수 있는 것만 다루라는 뜻인지....
내용이 정리가 어렵네요 ^^....
뭔가 몽땅 밑밥인가요?ㅋㅋㅋㅋ

전문용어는 저만 조심하면 됩니다. ㅎ

오마주한 글은 '스토리'라는 키워드 땜에 붙은것인데 사실 본문과의 관계는 있죠.

본문: 사람은 스토리로 현상을 이해한다
오마주: 특정 시대의 이성이건 절대적 이성이건 간에 믿음(미신)과 혼합되어 있고, 역시 다 스토리로 전해져 내려온다.

귀신이나 탐심 이런건 그냥 이 글에선 안 중요한 액자식 구성들이라 파고들면 혼란이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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