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구 <좀녜> : 한 사진가를 길러낸 어머니들의 이야기

in kr-pen •  last year  (edited)

<좀녜>는 해녀의 제주어다. 김흥구는 대학생 때부터 제주의 좀녜를 찾았다. 학교를 마치면 배를 타고 제주에 갔다. 김흥구에게 제주와 해녀는 어떤 의미였을까?

나와 제주도의 인연은 ‘어머니’로부터 시작됐다. 내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한국 여성들이 견뎌온 삶에 대한 의문을 떨치지 못했다. 그 의문에 눌려 어머니의 시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제주에서 해녀로 마주한 어머니들에 이끌려 그들의 길을 따라다녔다. 뭍에서 섬으로, 물속에서 물밖으로, 들숨에서 날숨으로, 그 경계들을 들고 나며 그들이 헤엄쳐온 시간과 길을 더듬어 갔다. - 좀녜의 바당, 한겨레

해녀는 실력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뉜다. 한 번 잠수로 2분 이상 바다에 머물면 상군인데, 주로 수심 15m 이상의 바다에서 작업한다. 해녀 박물관 통계에 따르면 2015년 12월 기준, 제주의 해녀는 약 4300여명이다. 그 중 70% 이상이 60~70대다. 그들을 위해 '할망바당'이 있다. 할망바당은 나이가 들거나 물질이 서툰 해녀들이 작업할 수 있게 남겨두는 얕은 바다 지대다.

제주 해녀들은 4.3사건을 피해 일본으로 가는 밀항선을 타기도 했다. 그런 질곡의 역사를 지나온 해녀들을 사진에 담는 건 순탄치 않은 작업이었다. 수십 번도 더 본 얼굴이었지만 '뭐 하러 사진을 찍노?' 반문하며 물을 끼얹는 해녀들도 있었다 한다. 여린 김흥구는 그때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어찌할 줄을 몰랐다 한다. 그럼에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한 걸음 더 다가가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자 했다. 숨을 참고 바다로 뛰어드는 '어망(어머니)'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스쿠버다이빙을 배웠다. 그렇게 함께 바다에 뛰어들었다.

<좀녜>에는 물때를 기다려 바다에 들어갔다가, 나와서는 다시 밭을 매러 나가는 제주 여인들의 무심한 하루가 담겨 있다. 수압을 견뎌내느라 삭신은 고장 나고, 이미 오래 전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한 기억 따위는 청승이라 넘겨 버리는 여인들이 선명한 주름으로 웃고 있을 뿐이다. - '숨비'처럼 긴 호흡으로 기록한 해녀들의 삶, 미디어투데이

2003년, 김흥구는 기라성같은 사진 작가들을 제치고 <제1회 GEO-OLYMPUS PHOTOGRAPHY AWARDS> 대상을 차지한다. 사진 기획자 송수정은 말한다. 김흥구의 <좀녜>는 '물질하는 어머니에 관한 기록이 아니라 작가의 길 앞에서 주저하려던 청년을 길러낸 어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녀가 있다. 매일 볼 때도 있고 한 달에 한 두번, 혹은 일년에 한 두번 볼 때도 있다. 있는 것은 온통 해녀뿐인데 어떤 날은 어머니였다가, 여자였다가, 때로는 아버지였다. 그리고 그것은 나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섬과 섬 사이에 있었다. 새벽 바다 (...) - 김흥구 <좀녜> 중

세월이 흘렀다. 김흥구는 제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살아 생전 비행기를 타보지 못한 어머니를 위해서였다. 일렁이는 제주 바다 위로 김흥구는 어머니의 재를 뿌렸다.

오늘도 물때가 오면 제주의 여인들은 작은 테왁에 의지해 바다로 들어간다. 한참만에 다시 물위로 올라와 숨을 내뱉는 그들의 주름에는 바다의 새로운 잔해가 켜켜이 쌓인다. 긴 호흡으로 삶을 살아가는 해녀들에게 수압과 세월은 익숙해질 수 없는 영원한 파도의 철썩임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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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길 앞에서 주저하려던 청년을 길러낸 어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이토록 찬란한 어머니들의 이야기군요..
한때 사진집 보는 걸 좋아했어요
주로 풍경을요
그런데 요즘은 이렇게 이야기를 담은 사진이 좋더라고요
감사합니다

때로는 풍경이 좋고 또 때로는 이야기가 좋은 거 같습니다. 저도 요즘엔 이야기가 좋더라구요.

오오 해녀에대해 좀더 알게되었습니다
제주어로는 참 발음하기 참 힘들군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그러게요 글쓸 땐 몰랐는데 막상 발음하려니 ㄴㅖ 발음을 어찌해야할지..

어머니이라는 이름은 그래서 위대합니다. 사진작가분 잘은 모르지만 사진에 대한 삶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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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집에 작가 에세이도 들어있나봐요. 마지막에 살짝 인용해주신 작가의 글이 참 좋아서 더 읽어보고 싶어요.

라운디님이라면 아마 좋아하실 거 같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