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먼지다

in #kr-pen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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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먼지다


자고 일어난 사이 또 누군가의 삶이 철거당했다.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은 한 장소에서 20년 넘게 삶을 꾸려왔던 상인들의 삶이었다. 철거한 이유가 가관이다. 옆에 위치한 아파트 주민들이 통행 불편, 미관상의 이유와 함께 이웃의 삶에 불법과 합법의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민원은 신속하고 스펙타클하게 처리되었다. ‘이웃님의 삶은 불법입니다!’..... 삶이 삭제된 자리에는 꽃길이 들어섰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꽃을 보며 사람은 오열했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꽃 같은 경우가 있나.


깔끔하게 정돈된 사각의 건축물 속에 사는 사람들 눈에는 삶의 흔적이 먼지처럼 켜켜이 쌓인 이웃의 낡은 건축물이 어떤 풍경으로 다가왔을까. 오래된 피아노 위에 쌓인 먼지쯤으로 생각했던 것일까? 그래서 이 도시는 대청소를 감행한 것일까? 본인을 멸균된 깨끗한 존재라고 확신하고 타인을 쓸어내야 할 먼지로 정의하는 시선은 함께 살기를 거부하는 에티튜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아파트 주민의 탓은 아니다. 누구 말대로 악은 평범하지 않던가. 이 도시에서 대부분의 갈등은 사회 근저에 깔려있는 타인과 이웃에 대한 무관심이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서로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인사라도 나누는 사이였다면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사람이 도대체 먼지 아니 뭔지 회의가 든다. 사람은 먼지다. 서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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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근성 작가 개인전 'In-dust-real'




먼지를 혐오하는 먼지 유발자


8월의 불볕 무더위에 문래동의 어느 지하 전시장에서 먼지가 가득 쌓인 전시를 봤다. 천근성 작가의 개인전 'In dust real' 이었다. 작가는 모르는 이웃의 집에 찾아가 공짜로 청소를 해줬다. 그것도 모자라 그 집의 먼지까지 수거해갔다. 전시장에는 그가 정성스럽게 수집한 먼지가 바닥에 놓여 있었다. 아, 미세먼지로 스트레스 받는 요즘에 전시장에서까지 먼지 덩어리를 봐야 하나. 공기는 쾌쾌했고 기분은 불쾌했다. 통쾌하게 대형 청소기로 이 모든 먼지를 빨아들이고 깔끔한 화이트 큐브 갤러리로 만들고 싶었다. 마침 작가가 눈에 띄었다.


콧구멍에 먼지를 흡입하며 작가에게 물었다.“왜 하필 먼지입니까?” 역시 콧구멍에 먼지를 흡입하며 작가는 답했다. 문래동에 5년 동안 살면서 공장 지대의 먼지가 너무 싫었습니다. 공기 좋기로 소문난 곳에 이주했어도 먼지는 여전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먼지는 혐오 대상입니다. 우리는 이 먼지와 자신을 분리합니다. 먼지는 타인에게서 유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혐오합니다. 하지만 저도 개인 작업을 할 때 얼마나 많은 먼지를 생산해냈는가를 떠올려봤습니다. 먼지를 유발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먼지 유발자입니다. 이것을 인정한 채로 사람들이 조화롭게 사는 모습을 상상해봤습니다. 그게 이번 전시의 주제입니다.


작가는 단지 이웃집을 청소했지만, 동시에 먼지에 대해 불평만 늘어놓던 본인의 과거를 수거한 반성의 행위라고 했다. 또한 청소를 핑계로 인사 한번 하지 않았던 이웃과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먼지는 작가에게 직접적인 경험이자 사회를 바라보는 메타포였다. 언뜻 무작위로 배치된 것 같은 원 형태의 먼지는 자세히 보면 프렉탈 구조의 수학적 배열을 따르고 있었다. 조화로웠다. 쓸모없는 먼지조차 이렇게 조화로운 작품으로 탄생하는데, 한 사람의 인생이 송두리째 먼지 취급받아 하루아침에 쓸려버리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살면서 불편한 것은 대화의 대상이지 청소의 대상이 아니다.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곧바로 청소해서 없애버리고 싶은 자들의 옷깃을 한번 털어보고 싶다. 더러운 먼지가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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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천근성 작가의 개인전을 보고 썼던 전시 리뷰다. 당시 아현포차 상인들이 주변 아파트 주민으로부터 민원을 받아 신속하게 쫓겨나는 사건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전시와 엮어 글을 구성했다.




@thel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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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먼지에 비유하다니 기발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네요. 요즘 주변에 관심을 갖는 게 쉽지가 않은데 조금씩이라도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관심 갖기 정말 쉽지 않죠.. 나이가 들수록 나와 관계없는 일은 되도록 관여 안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저 자신도요. 너무 이기적으로 변하는 제 모습이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다 같은 먼지 아니 사람들끼리 너무 무정하네요... 요즘 이웃에 관심 갖기가 쉬운 구조는 아니지만 노력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는 것도 유분수죠 정말. 아파트 사는게 벼슬이라고 참. 용역 불러서 철거하는 구청도 그렇고요. 참 나쁜 사람들입니다.

꾸욱 들렸다가요

사람이 먼지다. 참 탁월한 글 잘 읽었습니다.

후후 불면 날라가는 사람들 생각보다 도시에 많더라구요.

털어서 먼지안나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먼지보다 가혹한 것이 사람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경계를 나누고 배척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죠. 그 가혹한 마음들을 조금이라도 흐뜨려놓고 싶어요.

작가의 생각이 대단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드네요!
흔하고 불쾌한 것이지만, 한 소재에 집중해서 삶을 표현한게 참 멋져요!

그렇죠? 작가의 작업 과정과 방식이 너무 흥미로웠어요.

철거되신 분들이 다른곳에서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먼지 는 우리에 단면을 보는것 같았습니다 ~~

철거 지역은 사람뿐 아니라 거기 거주했던 길고양이에게도 문제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참, 강제철거라는 단어가 없어지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한마을이 철거 될때마다 그곳에 살고있는 고양이 개 모두 문제가 되는것을 볼때마다
마음이 아팠어요 아직도 강제 철거가 되고 있다는 것은 참 문제인것 같아요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이 없어지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길러야 할것 같습니다 ..

온 도시를 뜯어고치는 그놈의 재개발 광풍 이제 멈췄으면 좋겠어요.

먼지로 만든 작품이고 실제로 이웃집에서 먼지들을 수집했다는 점에서 작품의 느낌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네요:)

한국이니까 이런 작업도 가능하지 싶습니다 ㅎㅎㅎ 뉴질랜드 사는 작가가 먼지에 관심을 가질까요? ㅎㅎ

앗! 그렇네요~ㅋㅋ 환경에 영향이 크군요:>

오늘도 늦었네요. 다음글은 언제 또 쓰실 예정입니까?
그리고 이렇게 글도 잘 쓰시고 그림도 잘그리시면... 부럽네요 ㅋㅋㅋ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은 다음에... 쓰겠죠? ㅎㅎ 사실 창고에 쌓아둔게 많아서 그냥 하나씩 개방하고 있는 중입니다. 밑천 떨어지면 큰일인데요ㅎ

작가의 생각이 정말 멋있네요.
새로운 관점 소개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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