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소설] 우아한 이별
기타를 가지러 온다는 K의 문자가 와 있었다. 그 기타는 먼지가 쌓인 상태로 늘 창가에 있었는데, 말하자면 K의 마지막 소유물이었다. S는 K가 기타를 잊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약간 놀랐다. 그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후 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하루에 수십 번 전화를 했던 날들이 있었다는 게 거짓말 같았다.
삼 년 전에 K는 그의 옷가지와 28인치 트렁크와 함께 사라졌다. S는 K를 무척 사랑했다. 그러나 늘 K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했고 K는 S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다가 지쳐서 나가떨어졌던 것이다. K는 점점 말수가 없어지고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S는 K와 많은 시간을 보내던 친구들이 한 명씩 정리될 때마다 안도감을 느꼈다. K는 모든 친구와 단절되는 수모를 감수했지만 S에 대한 분노를 감추느라 미치기 직전이었다는 것을 그 자신도 몰랐다.
K는 늘 사진 하나를 가지고 다녔다. S는 지갑 깊숙이 숨어 있는 낡은 흑백사진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한 여자의 뒷모습이 찍혀있었다. 그 사람이 K의 엄마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K는 다 커서도 분리불안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아빠에게 학대받는 엄마가 자신을 떠날까 봐 늘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S는 자신의 사진이 아니라 엄마의 사진이 있었다는 이유로 K를 궁지로 몰았다. K의 지갑에 엄마의 사진 대신 S의 사진이 자리잡았을 때 분리불안의 대상은 S로 바뀌었다.
처음에 K가 사라졌을 때 S는 그가 죽었을 것 같아서 무척 슬퍼했다. 크게 싸우는 도중에 찻길에 뛰어들거나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질 거라고 위협을 했던 적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이었다. 죽겠다고 위협할 때마다 그의 눈에서 살의를 느꼈다. S는 K가 같이 죽자고 할 때 왜 같이 죽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묻고 싶었다. 아직 하고 싶은 게 이렇게나 많은데!
그가 정말 죽어버렸다면 다른 사람이 그를 가지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그가 누군가와 결혼행진곡에 맞춰 입장하는 상상을 하면 기분이 몹시 나빠졌다. 크리스마스날이 되면 K의 결혼식 장면을 상상해보았다. 가끔 K와 함께 찍은 몇 장 안되는 사진을 보면서 그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K는 한 시간 후에 도착했다. 긴장했는지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있었지만 건강해 보였다. S는 그의 눈에서 반가운 빛이 돌다가 금세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삼 년의 세월이 흘렀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둘이서 나란히 구겨 앉아서 수많은 주말을 보내곤 했던 2인용 소파를 내려다보며 어색한 대화를 이어갔다.
몇 년 만에 한파가 몰아닥쳐서 서로의 입에서 연신 입김이 새어 나왔다. S는 6개월째 실직 상태였기 때문에 도시가스를 밸브를 잠가놓고 아예 사용하지 않았다. 내복 위에 스웨터를 두 개 겹쳐 입었는데도 몸이 덜덜 떨렸다.
S는 머그컵에 현미녹차를 우려낸 다음 K에게 내밀었다. 앉을 데라곤 2인용 소파 밖에 없었으므로 둘 다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었다. S는 말없이 K가 따뜻한 녹차를 마시는 것을 지켜보았다. S는 K와 다시 사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다시는 K와 키스하고 싶지 않았다.
K는 머플러를 두르고 나갈 채비를 마쳤다. S의 머릿속에 12년의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쉘부르의 우산에서 기다릴게, 안오면 죽을거야.]
S가 복한한 K에게 처음 건넨 쪽지에 그렇게 쓰여있었다.
[잘 있어, 갈게.]
K가 S에게 건넨 마지막 말이었다. 두 개의 문장이 천장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S는 그들이 함께 했던 시간이 두 문장 사이로 들어간 뒤 문을 잠그는 것을 지켜보았다.
문이 닫히자마자, K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낡은 기타도 사라졌다. S는 빈 방에 혼자 남겨졌다. 이제 K의 실존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사진 몇 장이 전부였다. S는 갑자기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슬퍼지기 시작했고 더 슬퍼지고 싶었기 때문에 사진을 태워버리기로 작정했다. 가스밸브를 열고 가스레인지 불로 사진을 한 장 씩 태웠다.
모든 일이 끝났을 때는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S는 화장을 지우고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며 생활비를 계산해 보았다. 그리고 K에게 장문의 메일을 보냈다. [안녕 내 사랑. 돌아올 때까지 영원히 기다릴게.] 라고 끝을 맺은 뒤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잠들었다.
S가 보낸 메일은 S가 죽을 때까지 [읽지않음] 상태를 유지했다. S는 어느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갑자기 K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충동은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에 시장에서 현금을 주고 식칼을 구입하고 나서야 조금 누그러졌다. S는 매년 크리스마스 날에 K의 부인, K의 자식을 생각해보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K의 손자도 생겨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K가 자신의 시간을 너무 많이 훔쳐간 것 같은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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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하네요.
불쌍한 S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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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맨 x 마나마인! 색연필과학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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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앤캘리에 이은 웹툰입니다
아이들이 보기에도 좋을꺼 같아요^^ 글작가님이 무려 스탠포드 물리학박사라고......
색연필로 그린 만화라 신선하게 느껴지네요^^
퀀텀 소설이라는 게 무슨뜻인가요??
요즘 단편소설도 집중해서 읽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쁜 사람도 일 분이면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고싶어서 퀀텀소설이라고 이름을 붙여봤어요:)
저도.. K의 기타와 비슷한 물건이, 그러니까 돌려주어야 할 물건이 아직도 집에 있습니다. 그 물건을 매개로 온갖 상상을 해보곤 했는데 .. 아무튼.. 소설 참 좋네요.
어머나 오쟁님, 그냥 확 태워버리는 건 어떨까요? :)
S는 결국 K만 생각하며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가요. 짧지만 강렬하네요. 잘 봤어요^^
쏠메님 간혹 불행해지기로 결심한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