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ck or Treat

in #kr-pen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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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첫 과제는 구분하는 일이었다. 나와 세상을 분리하는 일. 두 번째 과제는 손길을 구분하는 일이었다. 의도와 행동이 일치하는 손길과 의도와 행동이 미묘하게 엇나가는 손길. 첫 과제는 쉽사리 해냈다. 실패하는 쪽이 사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성공확률이 아주 높았다. 태어난 후 우리는 조금 더 어렵게 살도록 이미 고안된 존재였기 때문이다. 무심결에 선택하는 모든 사안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 과제는 훨씬 어려웠다. 그 차이를 구분하면 삶이 놀랄 만큼 수월해지기 때문에 그 일은 절대적으로 어려워야 했다. 그들은 똑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똑 닮은 웃음소리를 내고 비슷한 체온을 건네고 유사한 어조로 말하며 쌍둥이처럼 닮은 행동을 했다. 하나의 그림자처럼. 그 차이를 알아채고 구분하는 건 웬만한 눈썰미로 어림도 없었다. 둘의 차이를 구분하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혼동하고 종국엔 지쳐버렸다. 실패를 인정하자 사람들은 더 애쓰기보다는 에너지를 보존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둘을 하나로 취급하는 일을 선호했다. 어려운 과제를 풀지 못한다는 걸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기에 그 과제를 없던 것으로 만들었다. 삶의 한쪽에 치워두고 누군가 손을 뻗으면 아주 위험하고 쓸모없는 일이라 비난했다. 그 누구도 패배자가 되지 않았다. 간단했다.


눈을 감고 간단한 일로 치부한다면 삶에서 주어지는 선물을 하나도 받을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선물 없는 인생, 사람들은 어느덧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선물이 문 앞에 당도해도 그들은 아무도 포장지를 뜯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선물 없는 인생이 너무 많아졌기에 삶은 한층 더 복잡하고 어려워졌다는 걸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우리는 조금 더 어렵게 살도록 이미 고안된 존재였다.


-2021년 4월 3일, by 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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