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대한 요즘의 생각

in #kr-pen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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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년 만에 친구를 만났다. 아무리 나라지만 정말이지, 너무 오랜만이었다. 게다가 친구는 못 본 사이 임신을 하고 출산이 가까워졌다. 얼굴은 홀쭉한데 배가 눈에 띄게 나와 있어 자꾸 시선이 갔다. 조심스레 배를 만져보았다. 아이는 자고 있다고 했고 태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친구를 만나면서 갑작스레 변화를 체감한 건 처음이었다. 나를 보지 않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던 것일까?

우리는 시간이 참 빨리 간다고 말했다. 특히 함께 있는 동안은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어쩐지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요즘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하다 보면 어찌나 시간이 쏜살처럼 흐르는지 나도 모르게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냐며 볼멘소리를 하게 된다.


어제는 나보다 조금 어린 친구와 시간의 이상함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늙어서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는 자극이나 특별한 이벤트가 생기지 않고 웬만한 일에 무감각해지고 감흥이 없어져서라고 하던데. 운을 띄웠다. 확실히 10대와 20대 초반에 비해 30대 이후로 시간은 체감상 너무 빨리 흘렀다. 반복적인 일상을 보내서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치면, 왜 무언가 몰두할 때 혹은 미친 듯이 집중력이 발휘될 때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이냐고 그가 되물었다. 그러게요. 무언가 자극이 없어도 무언가 너무 자극이 돼도 시간은 빨리 흐른다. 그럼 대체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아마도 그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결론을 내린다. 뭘 해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엄청나게 빨리 지나갔다.


나는 대체로 시간의 소중함을 모르고 산다. 시간을 마구 낭비해도 크게 죄책감이 없는 타입이다. 시간 때문에 자책하고 싶진 않다. 그거 말고도 자책할 거리는 널려 있으니.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건 시간이라고 하던데 시간의 희소성을 알지만 역시 시간에 쫓기고 싶진 않다.


최근 자각이 없이 시간을 보내면 하는 일 없이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 걸 발견했다. 그런 시간을 유령의 시간으로 명명하기로 했는데 아무리 나라도 유령의 시간은 조금 아깝게 느껴진다.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멍이라도 때리거나 잠이라도 푹 자면 나을 텐데. 마음에도 없이 어느 목적 없이 인터넷 브라우저 스크롤을 한없이 내리고 있던가, 보지도 않을 유튜브 넷플릭스 목록을 훑어보고 있던가, 목이 나갈 것처럼 불편한 자세로 무언가 하기 싫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는 행위들은 참 바보 같다. 깨어 있는 시간을 모두 자각 있게 쓰는 건 생각만 해도 너무 피곤한 일이지만, 무언가를 망설이거나 걱정하거나 귀찮아 하는 것에 시간을 내주고 싶지 않다.


어쩌다 보니 열심히 하던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또 클럽하우스를 끊었는데, 그것이 꽤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걸 발견했다. 특히 인스타그램의 경우, 나도 모르게 미친 듯이 피드를 타고 내려 현실로 돌아오는 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나도 모르게 광고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거나 갑자기 너무 멋진 사람이 멋진 일을 했다고 느껴지면 자신이 한심해지곤 했다. 나도 모르게 좋아요 숫자가 늘지 않았나 댓글이 달리지 않았나 확인하기도 하고. 물론 최근에는 꽤 스팀잇을 열심히 하고 있긴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스팀잇 이웃의 글을 읽는 건 그다지 오래 걸리지도 않고, 단순히 사진으로만 피드가 구성되어 있지 않아 인스타와 비교해 조금의 자각은 늘 하게 된다. 적어도 할 일 없이 미친듯이 스팀잇을 보고 있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내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건 빈틈없이 생산적인 계획표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쉴 땐 확실히 쉬고, 무언가를 할 땐 그것에만 집중해서 하는 것, 무언가를 할까 말까 망설이는 데 시간을 보내지 않는 것, 그 시간을 확실한 어떤 시간으로 특정 짓는 것, 그것이라면 이름이 뭐가 됐든 좋다. 어차피 뭘 해도 시간을 빨리 간다.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방법 같은 건 모르겠지만, 시간에 쫓기지 않으면서도 시간을 아쉬워하지 않을 수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2021년 3월 30일, by 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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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싫은 일을 하면 시간이 천천히 가죠. 예를 들면 군대를 간다던가...ㅋ
시간이란 본인의 기억을 정리하기위해 만든, 실체없는 개념이라고 (물리학자들이) 보기도 한다는군요. 기억이 안나서 유령의 시간인거지 무언가를 하긴 했겠죠. 그게 설사 그냥 멍때리기라 하더라도.

그때 그 친구도 그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오늘도 엄청 멍 때렸네요. 실체없는 개념이라는 그 말이 알 것 같으면서도 확 와닿진 않아요. 막 흘러가는 느낌이 드니까요.

저는 스팀잇 말고는 하는 게 없어서... ^^

그러시군요 :D

그 시간을 확실한 어떤 시간으로 특정 짓는 것,

그것이라면 이름이 뭐가 됐든 좋다는 말씀이 참 좋네요~~~~!!!

오늘 비록 유령의 시간을 많이 보냈지만 메가님의 오늘이 많은 이름의 시간이었기를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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