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집사람이 흐헤헿 친정에 흐헿헤 가서 흐헤헿 슬프다.

in #kr-pen6 years ago (edited)

집사람이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나는 너무 슬프지만 흐흐흐 흐헤헤헤헿 아내를 위해 잘 다녀오라고 다소 울먹거리며 흐헿헤헤헿 헤헤헿헿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갖는 혼자만의 시간이라 머릿속엔 흐헤헤헤 슬픔과 긴 시간에 대한 기대,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목록들이 날아다녔다.

결과부터 이야기하면... 엄지발가락으로 낡아빠진 컴퓨터를 켜서 시덥잖은 웹서핑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자정이다. 정말 아무것도 못했다. 아이가 먹다가 버려놓은 감자튀김을 곁들여 사리곰탕면에 밥 한 그릇 말아먹은 게 전부다. 갑자기 슬퍼졌다. 혼자 정말 잘 살았는데, 어느새 혼자서는 뭘 해야할지도 모르는 이런 상황이(2박3일 같으면 비행기를 탔을 것 같다. 다음에는 아내를 위해 친정에서 2박3일정도 푹 쉬고 오라고 권해봐야겠다) 서글펐다. 영화의 한 장면, '브룩스 여기 있었다'가 떠오를 정도로.

242.jpg

너무 오래 화면을 바라본 탓에 시큰해진 눈을 책꽂이로 향한다. 이것저것 정리하다가 오랜만에 '함수, 극한, 수열' 따위의 내용이 있는 책이 눈에 띄었다. 매번 '집합'만 폈다가 덮어서 그런지 앞부분을 새까만 색을, 뒷부분은 새것과 다름없는 색이었다. 어제 있었던 일과 맞물려 잡생각에 빠졌다.

사람들은 누구나 성장과정의 특정 작용에 의하여 고유의 알고리즘을 형성하는 것 같다. 사람의 행동이나 태도, 결정적인 순간의 선택 경향들은 놀랍도록 일관성이 있어서 항상 비슷한 선택을 한다. 대표적으로는 내가 코인 폭등 직전에 매도를 하고, 폭락 직전에 매수를 하는 그런 습관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사람들의 선택은 항상 비슷하지만 여러 환경적 변수가 있어 결과는 매번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알고리즘 실행값이 점점 쌓이게 되면, 달리 말해서 'lim f(x) = 어쩌고저쩌고'의 x값이 무한대에 가까워지면 하나의 수렴된 결과가 나오게 되지 않을까. 죽기 직전의 인생성찰 따위로 생각해도 되겠다.

  1. 회사에서 주구장창 욕 먹으면서도 절대 손해 안보고 남에게 민폐만 끼치는 동료가 있다. 본인이 유리할 때는 유도리니 효율성이니 융통성을 운운하면서 관례대로 하려하다가 본인이 불리한 경우에는 규정 운운하며 관례의 불합리를 외친다. 종종 정의로운 반대를 외치는데 말 내용은 정의롭지만 그 정의가 자기에게 유리할 때만 주장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누가 들어도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 대안이라고는 내 놓은적이 없다.

  2. 바보처럼 스스로 과도한 책임감을 느끼면서 남의 일을 홀랑 덮어쓰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듣는 동료도 있다. 너무 일을 잘 해내기 때문에 주변에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지 감사인사도 변변히 듣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러니 불만이 없을 수 있나. 수시로 나를 찾아와 궁시렁거리며 수다를 떤다. 그게 전부다. 길면 60분, 짧으면 10여분의 수다가 끝나면 다시 자리로 돌아가 미친듯이 일을 한다. 내가 봤을 때 절반은 남의 일이다. 대체로 애매한 일들은 본인이 처리하는게 더 속 편하다고 느끼는 탓이다.

위의 둘은 서로 다른 계산식을 갖고 세상을 살고 있는듯하다. 알고리즘의 반복실행이 지금은 음수와 양수, 유리수와 무리수를 전전하며 일관성 없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지만, 결국 한 지점으로 수렴될 것이다. 그게 빨리 오기를 원한다. 어제, 2번의 동료가 1번 동료 때문에 속이 많이 상했는지 울면서 날 찾아왔길래 해보는 생각이다.

나는 커피맛을 잘 모른다. 탄맛, 신맛, 과일향 정도를 구분할 수는 있지만 뭘 먹어도 '좋다, 나쁘다'는 느끼지 못하는 경제적으로 저렴한 혓바닥을 갖고있다. 지난달 말에 신용카드 혜택으로 스타벅스에서 3만원을 결제하면 2천원 가량을 할인해준대서 기프트카드를 하나 샀다. 사회초년생이 연말정산에서 세금환급을 좀 더 많이 받기 위해 더 많은돈을 써제끼듯이, 할인을 받기 위해 불필요한 지출을 한 것이다. 그날은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기프트카드는 한 달째 지갑에 아무렇게나 꽂혀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눈물이나 불행에 대처하는 법을 잘 모른다. 그런 메뉴얼이 있다면 상갓집에 가서도 꺼내서 볼 인간형이다. 상대의 눈물앞에서 내 손가락을 펴야하나 접어야하나. 팔은 혼자 팔짱을 껴야하나 차렷자세로 있어야 하나. 눈은 상대를 쳐다봐야하나 약간 아래를 내려다봐야하나. 이런 세세한 것들이 날 흔들어놓는다. 빨리 불편함을 모면하고 싶어서 커피 기프트카드를 꺼내주었다. '퇴근길에 좀 일찍 나서서 2층 창가 자리에서 커피 하나 시켜놓고 멍때리면 좀 나아질거'라고 말하며. 아, 더 난처해졌다. 그 순간부터 더 서럽게 울기 시작한 것이다.

으, 제발 누가 내게 메뉴얼 좀.

Sort:  

일교차가 큰 날씨에요 감기조심하세요^^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부네요^^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퇴근길에 좀 일찍 나서서 2층 창가 자리에서 커피 하나 시켜놓고 멍때리면 좀 나아질거'라고 말하며. 아, 더 난처해졌다. 그 순간부터 더 서럽게 울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잘하신 거 같은데요;; 야레야레...;;
잘해놓고도 잘한 줄을 모르는군.
역시 인간은 재밌어...크큭...

감사합니다. 칭찬들으려고 쓴 글입니다.ㅋㅋㅋ이런 댓글의 모범 대댓글은 '흐...흑화한다, 내 안의 흑염룡이...' 맞죠?

ㅋㅋㅋ 네 매우 모범적입니다ㅋㅋ

저도 저번주에 와이프가 친정갔었는데....시간이....총알 같이 ....오시기 전날은 대청소를 하고 ㅎㅎ

그렇게 빠르던 시간이.. 아내가 돌아오면 '시간과 정신의 방'에 들어간 것처럼..

어? 갑자기 사리곰탕면 땡깁니다. 한 10년은 안먹은거 같은데 갑자기...

예전 그 맛은 아니지만 물 조금 덜 넣고 끓이면 풍부한 조미료의 맛을 음미하실 수 있습니다ㅎㅎㅎ잊고 있던 게 보이면 갑자기 땡길 때가 있지요.

꾸욱.들렸다가요

감사합니다. 자주 뵐게요~

가족들이 갑자기 없으니 무언가 허전하셨을 것 같아요
저희 집도 오늘 사리곰탕 먹었습니다 ㅎㅎ

사리곰탕면 맛있죠? 오랜기간 단종되지 않은 라면에는 이유가 있습니다ㅎㅎㅎㅎ
그리고 가족들이 없는 느낌은 '허전함 약간, 해방감 많이, 귀중한 시간을 허송세월했다는 허무감 엄청 많이'더라고요.

님의 아이디 daegu를 보니 daegusa라는 회사가 생각나네요.

검색해보니 인쇄업체네요. 무언가를 연상시키는 이름은 기억에 오래 남던데 제 아이디도 kgb님의 뇌리에 깊게 남게 될 것 같아 기쁩니다ㅎㅎ

내 아이디도 ㅎㅎㅎ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회사는 인쇄업체가 아니어요. 상관 없어요.

아이가 먹다가 버려놓은 가자튀김을 곁들여

가자란 게 있는 줄 알았습니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은 아예 대처법을 열심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 안하는 사람보다 무조건 대처를 잘 합니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본래 사람이 처음 시간을 가지게 되면 아무 생각없이 스트레스를 마구잡이로 때려부수기 시작합니다. 그 일은 영원히 할 수 있을것 같지만, 실제로는 며칠쯤 가면 더 할 수 없어집니다. 그때부터 그 사람만의 무언가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역으로 스트레스 상태이고 시간이 없다면 그렇게 하는 것은 저 또한 마찬가지이며 누구나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대구님은 글을 잘 쓰십니다. 오늘 이 글을 보며 사무치게 느꼈습니다. 제가 이 말을 유의미하게 만들 정도의 권위가 있기를 바랍니다.

ㅋㅋ수정했습니다. 감자에서 어떻게 ㅁ이 빠진 오타를 냈을까요. 항상 감사합니다. '잡동사니 숨쉬는 글' 창고의 대표적 단골손님이십니다.

저는 어제 가지튀김으로 봤어요;;

갑자기 대구 모처에 있는 양꼬치 전문점에서 가지 속을 파내고 고기를 넣어 튀겨내는 '가지만두'가 떠오릅니다. 담번에 혹시 먹스팀으로 올리게 되면 토렉스님 덕분입니다ㅋㅋ

가지만두 가지만 드세요... 죄송합니다

난 '과자'의 오탄 줄 알았는데 '감자'의 오타라니, 이 인지 부조화를 어찌할꼬.

ㅋㅋ다들 본인이 보고 싶은 걸 보는군요.

저는 1번 유형의 사람을 대처하는 매뉴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ㅎㅎ
사리곰탕면과 맥날 감튀가 은근 조합이 괜찮아 보입니다~^^

1번 유형.. '너한테는 내가 손해보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지내는 것 외엔 대처법이 딱히 없는 것 같습니다. 희한하게 규칙과 유도리의 경계를 잘 타고 다니더라고요. 곰탕면에 감자튀김을 같이 먹으면 느끼합니다. 또 모르죠, 혹시 맥주나 소주가 있었다면 더 나았을지도.

항상 어떻게 하면 1번 유형의 만행을 퍼뜨릴 수 있을까에만 집중했었는데 그래서 더 스트레스 받았던 것 같네요. '적어도 손해보지 않겠다'는 심점으로 한번 대처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꿀팁 감사합니다!

꿀팁이랄것까지야... 경험상 1번 인물 같은 사람은 본인만 빼고 주변인 모두가 그의 만행과 평가를 암암리에 회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굳이 이를 언급하는 것은 필준님의 평판까지 깎아내릴 가능성이 크고요. 피하는 게 상책이라 생각합니다. 피할 수 없으면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는게 차선책이고요.

아내가 가출하면
앗싸!~~~
미리 작전을 세웠어야.....
팔로우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재미있고 유용한 이야기들로 자주 뵙고 싶습니다.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나는 커피맛을 잘 모른다

어쩐지 전 이 문장이 제일 마음에도 드네요 ㅎㅎ

ㅎㅎ감사합니다. 저하고 비슷하셔서 그런게 아닐까요.

ㅎㅎ 사실 전 커피맛을 약간 따지는 편이긴 합니다... 캐릭터로만 보면 '커피맛을 잘 모른다'가 맞을 수도 있지만...^^;

Coin Marketplace

STEEM 0.30
TRX 0.12
JST 0.032
BTC 59043.03
ETH 2983.41
USDT 1.00
SBD 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