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중일기
요즘은 내가 뭘 하고 다니는지 잘 모르겠다. 아침 일찍 나가 돌아오면 늦은 밤이고, 그럼 딱히 특별한 일도 없이 새벽까지 뒹굴뒹굴한다. 그러고도 일어나는 시간은 예전과 같아서 요즘 정신이 맑지 않다.
요즘 내 생활은 무척 여유로운데 그러면서도 여유 하나 없이 바쁘다. 훌쩍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가도 금세 마음을 고쳐먹는다. 가끔은 미간을 찡그리고 못생긴 표정을 짓게도 된다.
오늘은 읽던 책을 끝까지 읽고 싶었다. 피곤한 몸으로 독서를 시작했다. 중간에 잠깐 잠들기도 했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 비몽사몽 끝까지 읽었다. 독후감은 피곤해서 못 쓰겠다 해놓고선 괜히 이상한 마음에 글을 쓴다.
오늘은 대학 동기를 만났다. 졸업 후에도 가끔 만나는 사이인데 뜬금없이 전화가 와선 지금 어디냐 물었다. 그 전화를 받았을 땐 먼 곳에 가던 중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어디'에 가고 있다고 말했는데, 동기는 벌써 그곳에 있었다. 거기서 다른 동기와 저녁에 공연이 있다는 이야기.
마침 저녁 시간엔 일정이 없어 공연장에 갔다. 공연장 1분 거리 카페에 앉아 책을 읽다가, 딴짓도 하면서 동기들을 기다렸다. 그들은 리허설을 하다가 잠깐잠깐 나와서 이야기를 하고, 다시 들어가고 또 나왔다. 나는 기다리다 심심해지면 공연장 로비로 가서 리허설 소리를 엿들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동기의 연주만 들렸다.
리허설이 전부 끝나고, 여유 있게 모였을 땐 셋이서 수다 한바탕이 열렸다. 잊고 있던 이름도 나오고, 걔네 아직도 사귀냐는 이야기도 역시 나왔다. 내가 가장 좋았던 말은 "이제 다시 앨범 내야지"라는 말이었다. 그 말이 '언제든 나랑 작업하자'라고 들려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 둘은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 과정이 순탄친 않아 보였다. 어찌나 공을 들이는지 한번 들려달라는 지나가는 말도 꺼내기 힘들었다. 발매 선배랍시고 조언을 몇 개 하려는 걸 겨우 참았다. 요즘은 이런 말을 안 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대학 때도 그렇게 친하지 않았던 우리가 이런 낯선 곳에서 우연히 만나 반가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 나는 운명을 믿진 않지만, 오늘 만난 우리 셋 만큼은 특별한 운명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300일이 기쁘다면 65일은 슬프다. 지금은 그 슬프고 쓸쓸한 65일 중 잠깐인 밤이다. 내 슬픔은 가벼워서 하루를 다 채우진 못하고 이 시간쯤 짧게 찾아온다. 토막 슬픔이다. 아까 책을 읽다 그대로 잠들었어야 해.
동기를 기다릴 때 카페에선 모아이가 나왔다. 원곡은 아니고 리메이크 버전 같았는데, 이게 무슨 노래인지 기억이 안 나 한참 들었다.
해맑게 웃을 때 나른한 걸까
라는 가사를 듣고 알게 되었다. 이 곡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
< 서태지 - 모아이 >
가끔 무력함을 느낄 때가 있다. 나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타인의 문제를 마주했을 때가 그렇다. 실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는데, 모르는 척 노력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볼 때가 그렇다. 그리고 내 삶을 우선으로 두게 될 때가 그렇다. 나의 여유를 덜어서라도 도와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그러지 못하는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저런 상념 때문인지 머리는 멍한데 잠이 안 온다. 뭐라도 해야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밤엔 괜히 누구에게라도 전화를 걸어보고 싶지만, 이젠 전화번호부를 애써 들춰보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 장기하와 얼굴들 - TV를 봤네 >
TV를 봤네 뮤비 봤을 때 '역시 장기하'를 외치던 때가 있었죠. 나이를 먹고 사람에 치이다 보니 이제는 사람을 만나는 게 회의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네요.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다시 나아지겠죠? 일요일도 잘 보내세요.
저도 작년까지만 해도 사람을 만나는게 무척 버겁고, 힘들게 느껴졌어요. 혼자만의 시간을 갖다 보니 조금 나아지더라고요. 도리안님도 조금은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벌써 주말이네요. 활기찬 한 주 되세요:)
감사합니다. 맛점 드세요.
65일의 슬픈밤이 올해는 모두 지나갔으면 하네요.
남은 날들은 모두 기쁜 날이 되었으면 ...
호돌박님의 다정한 말씀 때문일까요? 오늘은 참 기쁜 월요일이에요. 문득 슬픈 날들이 찾아오겠지만 그때마다 웃으면서, 의연히 넘겨야겠어요. 다정한 한 주 되셨으면 합니다:)
이런 저런 댓글 쓰다가... 그냥 지우고... 토닥토닥입니다.
토닥토닥. 제일 필요했던 말이에요. 감사합니다. 날씨가 많이 덥네요. 서울은 잘 다녀가셨나요? 활기찬 한 주 되셔요:)
네, 덕분에 잘 다녀갔습니다. ㅎㅎㅎ 나루님도 활기찬 한주 되세요~ ^^
보내주신 엽서 잘 받았습니다. :D
운명은 특별한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저 우리가 의미를 부여해서 그렇지 느껴지는 것일지도.
듣고 보니 그렇군요. 한손님과 제가 멀리서 이렇게 교류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운명이겠지요? 잘 도착했다니 기쁩니다!
힘내세요~~~ 금방 지나갈거에요 ^^ 그럼 300일 중 여러날이 다가오겠죠
감사합니다. 금방 지나가서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깔깔대고 있어요. 미술관님도 즐거운 한 주가 되셨으면 합니다. 너무 덥네요. 건강도 꼭 유의하시구요!
나루님 일기 읽고, 장얼 플레이 눌러놓고, 드러누워서 천장 쳐다보고 있다가 졸았는데 다시 깨어났어요. 이 시간이면 조는 게 아니라 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새가 지저귀기 시작해요.
ㅋㅋ 자고 있었는데 새들이 라운디님을 깨웠네요. 지금은 푹 자고 있겠죠? 예쁜 꿈 꾸셨으면 합니다:)
이정도면 아주 낙천적인 거에요. 나루님은 동년배에 비해서 겉늙었다고 보임, 좋게 말하면 요
조숙녀, 대개 365일중 100일은 잠을 자면서 퉁치고 나머지 100일은 먹고쉬고싸고멍때리며 퉁치고 나머지 100일 중에 잡생각으로 퉁치는 사람이 대부분의 인생살이지요. 그 100일중 증말 기쁠때는 10%도 안되는 거 같습니다. 기쁠때도 잡생각이 대부분이지요. 그 순간에 충실하지 못하지요. 사실 그게 강한 전희이고 오르가즘이라고도 표현하지요. (실재로 강한 오르가즘을 느낄정도의 쾌락을 느낄때는 아마 1%도 안될 걸요. 그래서 인생은 괴로움 즉 개고생이라고 하지요)따라서
장기하 이친구는 노래를 참 툭툭 던지면서 편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특히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가 가장 조아요. 같은 남자로서 질투의 맘으로 한대 쥐박고 싶을 정도로 잘난 놈같습니다.
피터님 말이 맞아요. 저는 아주 아주 잘살고 있어요.
인생을 이래저래 낭비하고 있는 건 같지만, 그래도 위안을 삼자면 저는 매일이 무척 즐겁습니다! 자기 최면일진 몰라도요.
나루는 날나리 :-)
저는 요즘 의식적으로라도 멍을 때리려고 노력합니다. 흐르는 대로 놓아두는 연습을 몸으로부터라도 먼저 시도하곤 합니다. (물론 잘 안됩니다...) 채우려하니 욕심이 생기고 욕심이 생기니 채우려하게 되더군요.
의식적으로 멍 때려야하는 사회라니... 이제 보니 멍 때리고 있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네요. 누워있어도 쉴 새 없이 생각해야 하는 날들이군요. 저도 조만간 멍때리는 시간을 가져봐야겠어요. 지금은 또, 할 게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