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포스팅 공모전 참가] 훗날 부모가 될 것일 터인데 - 스물부터 스물셋

in #kr-moneyedu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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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ridasnail 님의 공모전, <돈에 대한 교육, 그 경험과 지혜를 알려주세요> 공모전 출품작입니다. 형식은 에세이입니다.


*어른이 되기 전, 제주

서울 공기를 맡으며 대학에 입학했을 때, 대학가에 울려 퍼졌던 아이유의 스물셋이 잊히지 않는다.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나이가 담긴 노래를 흥얼거리다, 4학년이 되어 이 글을 쓰자니 감회가 새롭다. 그간 많은 추억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남을 기억은 '돈'과 관련된 이야기다. 꿈을 안고 캐리어를 든 채 비행기에서 내리던 스물의 나로 돌아간다면, 상경하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없다. 서울은 제주에 살던 내게 꿈에 가까워질 기회를 주었지만, 덩달아 돈으로 많은 절망을 주기도 했으니까.

공모전을 참가할지 망설였다. 잊고 싶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을지 자문자답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내가 굳건해질 수 있도록 성장의 몫을 한 기억이며, 흐릿해진 열정에 초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아 마감이 가까워진 날 그간의 기억과 생각을 풀어보려 노트북을 켰다.

공모전을 주최하신 플로리다 달팽이님은, 젊으신 분들은 부모님들에게 돈에 대한 어떤 영향이나 교육을 받았는지, 좋은 가르침 혹은 아쉬웠던 이야기를 얘기하셨다. 나의 경우는 정말 아쉬운 얘기다. 돈에 대한 가르침이 없었다. 돈에 대해 무지했고, "너희 집은 잘사냐?"라고 묻는 친구에게 "중산층이야."라고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님은 무엇이든 사주셨다. 우리 집엔 피아노, 세계와 한국문학 전집들, 컴퓨터나 게임기까지 원하는 것은 없는 게 없었다. 학원이나 과외도 원하는 게 있으면 당장 내일모레 시작하기도 했다.

부모님께 감사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슬픈 점도 많다. 하루 만에 마주한 성인의 짐을 지혜 없이 고스란히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풍족해 보였던 부모님은, 찢어지게 가난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안고 맨몸으로 가정을 일구어내셨다. 엄마는 보험설계사부터 미용사 자격증, 모텔 청소, 24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시는 등 안 해본 일이 없으셨고, 아빠는 6개월 치 월급을 주지 않는 악덕 업주 밑에서 막노동을 하시며 포크레인을 사셨다. 죄송스럽게도 성인이 되기까지 몰랐다. 어떻게 모를 수 있냐고 묻는 이들이 있겠지만, 남부럽지 않게 많은 학원과 과외, 모든 물품을 사주시니 빚이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빨간 딱지도 없었고, 누군가 집에 멋대로 찾아와 부수지도 않았으니까 엄마가 하시는 일은 취미라고 생각했고, 아빠는 포크레인을 갖고 있으니 경제에는 신경을 껐다. 그렇게 아무런 경제관념이 없었던 열아홉의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믿기 힘든 집안의 경제 상황을 듣게 되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서울

2014년 12월 31일에서 2015년 1월 1일이 되던 날, 동갑내기들은 따끈따끈한 주민등록증을 들고 클럽이나 술집을 갔다면, 나는 스무 살 적 홀로 집에 있었다. 그리고 대학교 합격증을 들고도 대학교에 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부모님은 나를 불러 집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아이는 셋인데, 장녀에게 들어갈 서울에서의 생활비와 등록금은 너무 크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난 심한 충격을 받아 스무 살 기념으로 만나자는 친구들의 연락을 거절했다.

이후 다행히도 제주도 성적우수 장학금과 다자녀 장학금을 받아 어떻게 등록금을 내며 상경했다. 하지만 고시원에 살았다. 미안하지만 돈이 없다는 부모님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철이 없었지만, 용돈은 받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하기에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시원은 유독 외국인이 많았다. 중국어나, 영어, 일본어를 쓰지 않는 외국인. 내창이 더 싸다는 말에 복도를 향해 뚫려 있는 창문이 있는 방에 살았다. 문은 모든 집에 있을 만한 방문이었다. 똑딱이로 잠그고, 열쇠로 열 수 있는 문.

이후 보증금을 마련하고자 각종 아르바이트를 해냈다. 다행히 장학금은 계속 받았다. 일 년간 돈을 모아 보증금으로 들어갈 500만 원을 모았다. 처음으로 원룸에 들어갔고, 올해에는 보증금을 더 모아 조금 더 괜찮은 원룸을 구했다. 외풍으로 감기에 걸리는 일은 없어졌다. 이제 막 대학교에 입학한 여동생은 유년시절의 경제적 지원 때문인지 아직까지도 경제관념이 없다. 짧은 거리도 택시를 타고 다니며, 정말 쓸데없는 것들을 구매한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남동생은 아직 모르겠다. 이번에 인턴이 끝난 기념으로 제주에 내려가는데, 남동생의 경제관념을 테스트하고 잘 가르쳐 줄 생각이다.

돈이 없어 의식주를 포기해야 했던 나의 부모님은 자녀들도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길 바랐고, 돈과 관련한 얘기는 일절 하지 않으며 원하는 걸 할 수 있도록 지원하셨다. 어린 시절 들었던 아버지의 말이 떠오르는 밤이다. "길을 걸을 때도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배고프지 않아." 스치듯 넘겼던 그 말은, 슬픔이 담긴 아버지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결코 부모님을 미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생들과 내게 경제와 재테크를 가르쳐주셨다면 예금과 적금, 세금, 부동산을 더 쉽게 마주했을 것 같다. 나도 훗날 부모가 될 터인데, 그때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당황하지 않도록 천천히 경제와 친해지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2495자)


2500자 미만으로 하고 싶은 말을 최대한 압축하여 작성해보았습니다. 쓰고 나니 생각이 정리된 느낌이네요. 좋은 공모전을 여신 @floridasnail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긴 글을 읽어주신 스티미언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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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뭐라고 말하기 힘든 그런 경험이 녹아들어 있음을 느꼈어요...ㅠㅠ
집안의 맏이이기 때문에 그 짐이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을 것 같네요.
하지만 그래서 더 강인해지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Hi @hyunyoa! You have received 0.459 SBD tip from @floridasn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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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배움이 있는 글이로군요.

부모님 도움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배움이 있는 글이라니.. 과찬이십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공모전 수상 축하드립니다
저희 부모님도 하루 종일 쉬지않고 일하시면서도 저한테는 부족한 것 없이 다 지원해주셔서 힘드신줄 몰랐죠
그 덕에 마음 편히 자랐으니 감사하고 있어요

비슷한 환경이셨네요
어린 동생 경제관념은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안녕하세요, amukae88님 :) 좋은 글이라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랑 비슷한 가정환경을 보내셨네요. 어린 동생도 있으시고 ㅎㅎ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공모전 수상 축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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