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꽃 과몰입 드라마 리뷰

in #kr-drama3 years ago (edited)

image.png


스포범벅 주의

1 .

한드를 잘 안 본다. 펜트하우스, 스카이 캐슬도 보지 않았다. 그것도 멜로물이 아니라면 더더욱 잘 안 본다. 참으로 오랜만에 과몰입해서 2일만에 정주행하는 작품이 있을 줄이야. 수사물의 관점에서 재밌게 본 작품은 김은희 작가님의 작품 뿐이었다.(싸인, 시그널, 비밀의 숲1, 킹덤) 어쩌다 충동적으로 tvN 월정액을 신청했고, 어차피 한 달은 해지가 되지 않아 뭐 볼만한 거 없나 가볍게 검색하던 찰나 '악의 꽃'이라는 드라마가 눈에 보였다. 재밌다고? 요새 한국 드라마는 스릴러 장르가 어떤가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고 인생의 2일을 드라마에 내주었다.

2 .

1화부터 빨려들어가서 다음화 보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이준기 연기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진짜 후덜덜했다. 2화까지는 영화 '나를 찾아서'같은 잘 빠진 스릴러물인가 싶었다. 감정이 없는 싸이코패스가 굳이 경찰을 골라 결혼을 하고 정상인 코스프레를 하는구나. 연기 보면서 가장 감탄한 건 감정 연기를 할 때 자연스러운 감정 연기가 아니라 정상인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감정 연기를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사이코패스 연기를 한다는 점. (이후에도 놀랄 연기만 잔뜩 있었다.) 초반부터 아예 사이코패스가 주인공 관점에서 음모나 계략에 초첨을 둔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같은 건가. 헷갈렸다. 어찌나 주인공인 백희성이 섬뜩하던지

3 .

이 드라마의 특징은 엔딩맛집, 도저히 다음 화를 멈출 수 없다. 마지막 10~15분을 남겨두고 항상 예상치 못한 골때리는 극적 반전을 보여주는데(나만 또 당하는거지) 과하거나 낚았구나 실망한 적이 없다. 스토리 개연성이 충분하고 초반에는 이해가 안가는 지점도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납득이 간다. 중간 중간 던진 떡밥도 모든 회수하고 수미상관 구조도 완벽하고 시나리오가 너무 탄탄하고 재밌어서. 아 내가 못 본 사이, 드라마 수준이 이 정도까지 발전했구나 많이 반성했다. 너무 훌륭해서 작가님 검색해봤는데 심지어 이게 입봉작이시더라. (ㄷㄷㄷ)

4 .

스토리를 질질 끌지 않는 드라마 특성상, 3~4회쯤 되서 개인적으로 남자주인공인 백희성이 '싸이코패스'긴 커녕 마녀사냥 당하는 피해자구나란 생각을 했다. 백희성을 두려워하거나 백희성이 자신을 죽일 거라고 공포심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과거를 보자면, 그들이 가해자고 오히려 백희성은 항상 피해자였다. 백희성 아니 도현수는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친 적이 없었고 오히려 항상 모함을 당하고 손가락질 받고 두들겨 맞은 후에도 도망가고 누구하나 증오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역할이었다. 연기를 너무 잘하는 이준기가 가끔 사람을 헤칠 것만 같은 모멘트가 와도 내 마음 속에는 이미 저 사람은 절대 누구 죽일 사람이 아니다라는 믿음이 생겼다. (중간에 혹시..하면서 작가님께 이러면 작품 망가집니다. 제발 이 일관성을 지켜주십시오 기도했는데 기도를 들어주셨다!)

5 .

며칠 전 박지선 교수님 동영상을 보면서 요새 매스미디어에서 '사이코패스'에 관해 잘못된 상식을 전파하거나 사이코패스를 미화하는 콘텐츠가 있어서 우려가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아 이 드라마도 그런 것 중 하나에 포함 될 수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조종하고 침착하고 당황하지 않고 계획적이며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모습이 부럽거나 동경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 이 드라마에서 잘생긴 이준기 역의 도현수는 타인을 헤칠 의도는 없는 채 부인인 차지원만 바라보는 순정남이기도 하니까. 교수님 말씀과 우려가 어떤 모습인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물론 드라마의 전체적인 의도와 내가 보기엔 그닥 사이코패스가 아닌 도현수를 고려하자면 드라마 작가로서는 억울해지긴 하겠지만.

6 .

초반부 상징적인 에피소드와 복선이 참 좋았는데 뭐하나 허투로 의미없이 등장하는 사건이 없고 캐릭터 성격을 한 눈에 보여줘서. (아.. 멋지다 이런 이야기 대체 어떻게 쓰는 거지?)

만약 부모님이 연쇄살인마라면, 과연 자식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안 봐도 비디오다. 사람들의 마음과 편견에서 연좌제를 거둬내고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을까? 그들을 믿어줄 수 있을까? 대부분은 꺼림칙하고 소름돋고 멀리하고 싶을 것이다. 마을의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가 생길 때마다 사람들은 도현수를 몰아갔고, 그럴 줄 알았다고 단정지어 버린다. 기억까지 왜곡되고 자기 자신마저도 의심해서 사회가 씌어놓은 굴레를 철썩 같이 믿어버린다. (싸이코패스가 어떻게 그렇게 울보일 수 있어? 불가능함)

처음엔 왜 굳이 형사 차지원과 결혼했을까? 이상하다라고 생각했는데 차지원은 도현수의 구세주였다. 편견을 지니지 않고 결론을 단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보고 들은 구체적인 사례와 단서를 조합해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경험론자(?) 차지원을. 차지원은 유일하게 도현수를 직접 알아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얼빠(?)인 도현수는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눈빛으로 사랑을 전하는 차지원을 당연히 사랑하게 된다.

드라마 후반부로 갈수록 표정 연습을 하는 도현수를 보면서 안스러워졌는데 처음엔 그것이 차지원을 완벽히 속이고 조종하기 위한 목적인 줄 알았는데 뒤로 갈수록 도현수는 최선을 다해 실수하지 않도록 또 차지원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애쓰는 필사적인 노력이란 게 밝혀지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대사가 꽤 많은데 기억에 남는 건 이거다.

"변하지 마. 지금처럼 계속 이렇게 날 봐주면 돼. 너만 날 믿어주며 돼. 그럼 난. 평생 너를 위해서만 살꺼야."
-도현수-

굉장히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감정이 기반이 된 보통 사람들의 사랑이란 변덕적이지만 오히려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겪는 현수로서는 저 말이 1000% 진심이고 믿을만하니. 성실하고 신의를 다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7 .

아무리 연기라지만 사람을 이렇게 고생시켜놓고... 진짜 후반부에 하아 숨 못쉴 만큼 괴로움 다음에 더 큰 괴로움, 사건 뒤에 사건 또 터지며 배우들 엄청 괴롭히는 스토리. 나름 자극적인 폭력 묘사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만 과몰입충은 그걸 보는 자체 내내 괴로운데 다음이 궁금해서 멈출 수 없었다. 뒷 이야기는 빠지는 컷 없이 알고 싶고 지금 이 장면들은 보고 싶지 않다는 미친 모순이랄까.

8 .

다 보고나서 작가님 변태구나. 너무해라고 생각이 든 건 그 정도 고구마를 심어주고 고생시켰으면 감정의 카타르시스는 느끼게 해줄 수도 있는데 가차없는 작가님식 엔딩. 이건 마치 영화 추격자를 봤을 때 받은 충격과 비슷하다. ...작품의도와 작품 완성도를 위해 시청자와의 타협 따윈 없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꽤 멋진 결말이지만 나는 너무해 너무해 작가님 미워라는 소리를 숨길 수가 없었다. 사이다가 부족하다.

9 .

연기를 충격적으로 잘해서 너무 무서웠던 찐 싸이코패스 진짜 이상하고 무서운 찐희성 역에 김지훈님 인터뷰에 따르면 자신은 이 드라마가 완벽한 멜로 장르라고 생각한다던데 완전 공감간다. 최근 봤던(몇 개 안되지만) 한드 중에 이렇게 사랑을 절절히 표현한 드라마가 있었나? 개인적으로 사랑은 누군가를 구원한다고 믿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의 모습에 납득 과몰입해버렸다. 사랑의 화신인 은하 등장씬에서는 내내 엄마미소.

10 .

기억이 지워지면 감정도 지워질까? 개인적으로 기억상실 클리셰 정말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악의 꽃에서도 혼수상태까지는 한 번 넘어가주어도 기억상실이 두 번이나 등장했을 때는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그 전의 대사와 서사를 고려해 봤을 때는 나름 의미가 있는 장치니 뭐...어쩌겠나. 기억과 관련된 '이터널 션샤인'과 '첫키스만 50번째'가 생각나기도 하고.

11 .

당분간 영상 디톡스를 실시해야 한다. 과몰입은 심장에 좋지 않습니다.
악의 꽃 안 보신 분 있다면 부럽네요. 그 눈사서 다시 또 보고 싶..(아 아닙니다) 그러나 보는 내내 너무 괴로웠기에 두 번은 못 볼 듯합니다..


-2021년 4월 14일, by 고물

Coin Marketplace

STEEM 0.20
TRX 0.14
JST 0.030
BTC 64870.15
ETH 3489.66
USDT 1.00
SBD 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