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의 일상기록 #17/Music Box #13.5

in #kr-diary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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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잠들고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1일 1포를 위해 한두 시간 정도 할애하는 걸 방해하는 유일한 요소는 갑작스레 찾아오는 잠이다. 항상 그렇지만 이번에도 설마 잠들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오디오북과 조명 하나를 켜둔 채 푹 잤다. 눈으로 읽는 것을 워낙 선호하기 때문에 오디오북으로 일부러 훈련을 하고 있고, 그게 벌써 몇 년째다. 아직까지는 추리물에만 익숙해진 상태.

새벽이든 아침이든, 자연히 눈을 뜨면 몬티가 내 머리맡에 붙어 있기 마련인데, 오늘은 막내 몽땅도 함께 있었다. 배가 고팠던 듯. 사실 밥이 없는 게 아닌데, 굳이 새로 꺼내서 바삭바삭한 사료를 먹고 싶어하는 것이다.

하루를 이제 시작했으니 아침을 일찍 먹을까. 어제 1식은 낮 1시쯤에 먹었기 때문에 아직 24시간이 경과하려면 멀었지만, 막상 자고 일어나니 배고프다. 이럴 때는 일단 물을 마셔서 진짜 허기인지, 갈증인지를 확인해본다. 어차피 뭔가 먹는다면 갈비찜과 계란말이를 먹을 거니까, 진짜 배가 고플 때가 좋겠지.

새벽에 일어나면 조용한 가곡을 듣는 일이 잦다. 오페라를 듣기엔 조금 엄두가 안 나기 때문인데,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 것 같지만 나는 평소에 오페라를 많이 좋아한다는 인식은 별로 없으면서도 심박수가 빨라진다거나 들으면서 가장 집중하게 되는 걸로 기준을 삼는다면, 오페라를 가장 선호한다고 할 수 있다. 아침부터 열받는 일을 원치 않듯이 음악 때문에 흥분하는 일을 원치 않으니, 가곡으로 타협. 물론 문화권은 독일로 잡음.

그렇다고 팝이나 재즈를 듣기엔 뭔가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음악을 어차피 들을거면서 고요함을 찾는다니 우습지만, 아무것도 듣지 않을 때보다 더 조용한 음악도 존재하니까.

가령 대표적인 게 슈베르트의 밤과 꿈(Nacht und Träume)인데, 나는 테너 이언 보스트릿지(Ian Bostridge)를 좋아하는 편이다. 성량 자체나 기량에 있어서는 취향이 상당히 많이 갈리는 테너로 생각이 되는데, 사실 이만큼 지적인 목소리도 드물다. 곡 자체와도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술을 마시지 않은지 꽤 오래 되어서 그런지 음악만으로도 위스키 한 잔 마신 것 같다.

이언 보스트릿지가 부르는 슈베르트의 밤과 꿈

대충 첫머리만 옮겨본 가사:

Heil'ge Nacht, du sinkest nieder
(거룩한 밤이여, 가라앉는구나)
Nieder wallen auch die Träume
(꿈도 흘러가고 있고)
...

또 비슷한 시간대에 듣기 좋은 가곡은 두어 번 올린 적이 있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내일(Morgen)이다. 그의 가곡 중에 가장 대중적이기도 한데, 사실 그만큼 객관적으로 아름답다는 뜻일 수 있다. 이 곡은 쟈넷 베이커(Janet Baker)가 부른 걸 가장 좋아하는 편이다.

쟈넷 베이커가 부르는 슈트라우스의 내일

Und morgen wird die Sonne wieder scheinen...
(그리고 내일의 해는 다시 빛날거야...)

가사 자체는 희망찬데, 내가 곡과 가사의 결합에서 받는 느낌은 어째 좀 비극적이다. 이를테면, 숭고의 관념에 사로잡힌 나치 소년의 성장기를 그리는 영화에 추천하고 싶다. 물론 비슷한 각도의 영화가 나올만큼 나왔으니 더는 없겠지, 아마도. 딱 떠오르는 것은 독일 0년이지만, 루시앙 라콤도 (비록 주인공이 독일 소년은 아니지만) 그 장르다. 루이 말 영화는 언제 봐도 정말 멋지다. 시간이 나는 즉시 한 편 때려야지.

사실 어떤 곡이든 내가 소프라노(베이커가 그나마 메조 소프라노...)를 선호하는 일은 아주 드물다. 생각해보니, 어릴 때 집에서 항상 틀어두던 명곡 위주의 음반 이외에 내가 직접 선택해서 음악을 듣게 된 계기도 발레 음악 아니면 테너들이었다. 심지어 재즈 스탠더드도 테너 마리오 란자가 부른 걸로 가장 먼저 들었고, 오페라를 좋아하는 것도 결국 그 연장선일 것이다.

그런데 가장 내 취향에 맞는 이상적인 테너를 찾은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워낙에 고전, 레퍼런스 급의 유명 테너라서 그냥 이름만 알고 있었는데, 찾아서 들어보고는 정말 놀랐다. 그 "나쁜" 음질 사이로 들려오는, 여성적이지 않은 미성의 충격이라니. 내 이 테너 이상형의 이름은 죠르주 틸(Georges Thill)이다. 워낙에 옛날 사람이지만,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으니 현재형으로 지칭하고 싶다.

평소에는 성량이 좋아서 듣기 즐거운 테너, 귀족적인 목소리와 적절한 감정선을 가진 테너가 나뉘어 있었다. 그냥 쉽게 표현해서 전자가 파바로티 류라면, 후자로는 개인적으로 더 선호하는 쥬세페 디 스테파노 류가 있다. 물론 테너의 목소리와 실제 사람의 목소리의 선호 기준이 아예 다르기는 하지만, 틸은 그냥 말하는 목소리도 멋졌을 것 같다.

죠르주 틸의 성량은 아마도 그 전성기가 짧았던 것 같지만, 딱 내가 찾던 목소리에다가 프랑스 오페라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걸로는 유일한 존재이다. 프랑스인이니 당연하겠지만, 어쨌든 이탈리아나 다른 나라 출신들은 프랑스어 오페라를 너무 엉망진창인 발음으로 부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아는 곡이 아니었다면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인 경우도 많다.)

거기다가 내 이상적인 테너는 너무 애쓰지 않고 자연스레 되는대로 부르는 티가 너무 나서 더 좋다. 노력은 당연히 모두가 하는거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재능이라고 생각하니까. 위에서 말한 루이 말 감독도 마찬가지고, 재능이 반감을 사는 경우도 의외로 많은데 내 경우는 대놓고 재능러인 사람이 낸 결과물이 가장 마음에 드는 것 같다. 머리를 싸매고 고치고 또 고친 결과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직관적인 번뜩임이 있으니까.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 아리아는 따로 있지만, 다른 훨씬 더 유명한 걸로 하나 올려봄.

죠르주 틸이 불어로 부른 푸치니의 라 보엠그대의 찬 손(Che gelida manina)

물론 라 보엠은 원래 이탈리아어로 부르는 게 맞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느낌의 캐릭터가 탄생한다.

이 노래는 가사의 중간 부분이 재미있다.

Chi son? Sono un poeta.
(내가 누구냐고요? 나는 시인이랍니다.)
Che cosa faccio? Scrivo.
(뭘 하냐고요? 글을 쓴답니다.)
E come vivo? Vivo.
(어떻게 사냐고요?살고 있어요.)
In povertà mia lieta
(내 자유로운 가난 속에서)
scialo da gran signore
(나는 물쓰듯 쓴답니다, 군주처럼)
rime ed inni damore.
(운율과 사랑의 노래를 말이죠.)

앗, 아침 일찍 독일 가곡으로 타협하려던 의지가 무너졌다. 가장 좋아하는 아리아를 비롯해서 더 이상의 이야기는 언제 음악 관련 시리즈에서 자세히 해보기로...

조금 전에 프로필 사진을 바꿨다. 뭐 계절이 이제 확연히 바뀌어서...라기보단 그냥 뭔가 오래 보면 지겨워서. 굳이 아이디와 맞추려고 한 건 아닌데 조명이 거의 없다시피 한 걸로 바꿔버렸다. 표정도 평소에 자주 짓는 건지 스스로 매우 익숙하기도 하고, 일단 이대로 감ㅋ

아, 그리고 #kr-pet 큐레이터로서의 임무가 엊그제인가, 드디어 종료되었다. 나와 함께 마지막까지 남은 두 분도 마찬가지고...이제 개인 큐레이터는 없다고 볼 수 있다.

명성도가 현재 65.5가 넘어서 비지에선 66으로 뜨는데, 큐레이터 때는 아예 하지 않았던 셀봇(0.07~8)을 하니 두 자리대 소수점이나마 오르는 게 느껴진다. 꼭 이걸 봐서 아는 건 아니고, 거의 셀프보팅 외에는 받는 보팅이 미미한 경우에도 명성도가 상당히 빨리 오르는 경우를 봤으니, 역시 (자기 자신 포함) 명성도가 같은 사람, 또는 더 높은 사람이 보팅을 줘야 빨리 오르는 게 분명하다. 그래서 명성도 올리는 게 재미가 있는 사람의 경우, 명성도가 더 높은 사람이 주는 보팅이 (설령 매우 적더라도) 중요하다.

물론 높아질수록 더 오래 걸리기 때문에(올라가려면 더 많은 보상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65는 유독 오래 걸린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물론 며칠씩 쉬어서이기도 하겠지- 2, 3일의 차이는 매우 크므로.

하드포크를 앞두고 스팀잇도 큰 과도기를 거치는 중인 것 같다. 펫 태그에 꾸준히 글 올려주시는 분들에게 기본 보상을 해드릴 수 없는 게 가장 아쉽고, 그 외에는 생겨난 시간적 여유로 다른 걸 더 쉽게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에 밖에서 이것저것 처리할 일이 많을 뿐...

읍, 벌써 날이 밝았다. 흐린 날인지 해는 안 보이지만, 대충 이런 정도의 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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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하고 싶지만, 일단 식사를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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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이란게 아끼면 추후 누리는데 도움이 분명되지만.. 하루 한끼는 쉽지않은 생활패턴일듯 합니다. 잘 읽었어요~

습관이 되니 어렵지 않네요. 물론 1식이지 소식이 아니라서이기도 한데...영영 안되는 분들도 많긴 합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연휴 잘 보내시길.

감사합니다. 펩시님도 잘 보내세요! ㅎㅎ

음악만으로 취기를 느끼신다니 이 아침 숙취도 있을까요? ㅎ 새 프사 좋습니다

금방 화들짝 깨는 게 좋습니다. ㅋㅋ 감사해요! 즐거운 추석 되시길...

수고하셨습니다. 요욤+도도잼양

ps. 가곡듣다 잠와서 포기, 잠에서 깰때 반려동물이 옆에 살을 대고 있는 그 촉감이 좋죠. 따스하면서 무한신뢰를 보이는 이종동물과의 교감이랄까? 특히 살갗에 닿고 그놈의 숨결율동이 전해질때 행복하지요.

감사합니다. ㅎㅎ 고양이들이라 그런지 제가 잘 때 직접 맞닿진 않고 머리카락을 갖고 놀거나 그러네요.

역시 취미가 고상하시군요. +.+
전 80-90 가요가 제일 잘 딱 맞네요. ㅎㅎ
말씀하신 것 처럼 재능을 노력이 못따라 가듯이 타고난 기질은 숨길 수가 없는 것 같네요.
새로운 프사 다크하니 좋습니다. ^0^
즐거운 추석 되세요~

저도 그 시대 팝은 많이 듣는 편이죠! 코브님?도 이번 추석에 맛난거 많이 드세요!

프사가 바꼈다고 되어 있는데, 못 느껴서 눌러 봤네요.
제 사파리는 아직 반영 전 이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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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관련해서 전 잠들어 있는 시간이 일정해서 일찍자면 일찍 일어납니다. 늦게자면 늦게...
그래서 새벽에 혼자 나와있는 경우가 많은데, 다들 자니 음악은 못 틀어놓네요. ㅋ
명성도가 중요할까? 라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합니다. 명성도 대비 떨어지는 무언가를 봤을땐... ㅎㅎ

아, 바로 반영이 안 되긴 하더라구요. 전 크롬 쓰는데...

명성도는 해외 커뮤니티처럼 너무 방대해서 묻히거나 다운보팅이 비일비재할 때 방어가 되는 것 외에는 음...게임화되어서 은연중에 재미를 붙일 가능성? 사실 보팅만으로 올라가는거라 한눈에 알 수 있는건 그 부분 뿐이죠. ㅎㅎ 근데 올라가면 떨어지는 다른 게 있었나요?!

올라가면 떨어지는거 보다는 명성도 대비 떨어지는 행동을 말 했던 겁니다.
명성도가 현실의 나이같은 느낌이라... ㅎㅎ
저 명성도인데 왜 저리 행동할까? 라는 느낌요.

아하ㅋㅋㅋ 하긴 이게 괄호 안에 있어서, 가입 초엔 실제 나이인가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더군요.

전 아직 환갑은 안 지났네요. 제이미 할머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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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괜시리 70 찍어보고 싶네요. 요즘 어르신들은 60대는 젊으셔서ㅋㅋ

70찍으면 잔치 한판 벌리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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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큐레이트분들이 이제 아무도 없군요. 너무 아쉽네요.

넵, 이제 smt 전의 과도기이니까 임대는 그런 스타트업 쪽에 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으시군요~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감사합니다. 추석 연휴 내내 좋은 시간 보내시길!

글을 읽자니 제이미님 일상을 들여다 보는 것 같습니다~
음악 때문에 흥분하는 일을 원치 않으니, 가곡으로 타협하는 마음에 공감이 갑니다~.
저는 백색소음을 즐기는 편이라 뭔지도 모르고 FM 라디오를 켜놓곤 하는데 가곡에 대한 소개도 흥미롭습니다~
행복한 추석 명절 되셔요~^^

라디오도 그 의외성 때문에 좋아하는데 들은지 오래 되었네요. 웹상으로 들을 수도 있으니 조만간 시도해봐야겠습니다. ㅎㅎ

미스티님께서도 추석 즐겁게 보내세요!

편안한 휴일 되세요. 제이미님.

감사합니다. 추석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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