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빳사나명상수행일지] 9일 차 - 전생이 있다면

소녀의 깊은 원한이 나를 계속 태어나고 태어나게 했다.



본 글은 진안에 위치한 '담마코리아 명상 센터'에서 위빳사나 10일 명상코스를 체험한 후 적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수행일지입니다. 담마 혹은 위빳사나 명상과는 다른 필자 개인의 의견이 첨부되어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위빳사나 명상을 앞두신 분께는 이 글을 통해 선입견이 생기지 않도록 명상이 끝날 때까지 이 글을 읽지 않으시길 권고 드립니다. 위빳사나 명상가분의 피드백과 체험 공유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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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오라! 완전한 수용의 마음으로 이틀밖에 남지 않는 명상에 진지하고 즐겁게 임했다.




그러다 문득 왜 내가 그렇게 공동체나 사람들에게 거절당할까 엄청난 두려움에 시달려 시도조차 꺼리며 살아왔는지, 도대체 왜 내가 그렇게 권위나 통제에 유독 민감하게 굴며 조금이라도 날 통제하려는 시도를 만나면 나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분노, 아니 격노에 시달리는지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번 생에서 굳이 이유를 찾아내라면 이유야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그다지 내게 트라우마를 남길만한 특별한 사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난 그렇게 타고났다는 설명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그건 환경이나 사건이 만든 게 아니라 이미 타고난 천성 같았다.




나는 단 한 번도 무리에서 내쫓기거나 따돌림받은 적이 없다. 오히려 아주 어렸을 땐 이유도 없이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좋은 대우를 받아 굳이 말하자면 인기가 있었다. 친한 사람 중에 나를 아프게 배신하거나 지우지 못할 상처를 남긴 사람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내내 왕따를 당하거나 무리에서 배척받은 이방인처럼 굴었다. 별로 마음에도 없던 사람이나 단체가 갑자기 나를 싫어한다거나 내친다는 느낌을 받으면 중요도와 상관없이 미친 듯이 괴로워서 어찌할 바 몰랐다. 나의 근원적인 두려움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해받고 싶어. 오해는 싫어. 나를 존재 그대로 이해해주세요.’였다.



어렸을 적 물론 가부장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가치관이 공유되는 시골에서 자라나서 반항심이 조금 일어날 만 하긴 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 내가 주로 속해 있는 사회에서 나는 딱히 차별을 받거나 누군가에게 강요를 당한 적 또한 없다. 엄마 아빠는 물론 내게 바라는 게 있긴 했지만, 잔소리를 한다거나 어릴 적 내가 하고 싶다는 일을 말리거나 못하게 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엄마 아빠는 어릴 적엔 나를 방임에 가깝게 자유롭게 놓아두는 편에 가까웠다. 어릴 적 나는 그런 격렬한 분노를 느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그 비슷한 이야기만 나와도 이미 나는 가르쳐 준 적 없는 격렬한 분노와 경멸과 증오를 내뿜었다.





나는 차분하고 곰곰이 생각하다 분명 그것이 나의 오랜 시간 축적된 마음속 깊은 곳을 어둡게 물들이고 있는 상카라가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아니 분명하다. 그것이 나를 태어나게 하고 계속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고 있다.



그렇게 명상을 하면서는 전생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적극적인 내면 탐색처럼 나의 몸의 감각을 이용해서 나의 전생을 재구성하게 되었다. 그건 나의 상상이기보다는 몸에게 하나씩 물으며 맞는 이야기를 찾아가는 발견 같았다. 물론 완전하진 않겠지만 내가 알게 된 지금 내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전생 중 하나는 대략 이런 이야기이다.






나는 유목민 부족의 한 소녀였다. 우리 부족은 자연에서 살면 자연의 지혜에 귀 기울이고 문명과는 동떨어진 삶을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나는 이동하는 환경을 잘 파악해서 부족에게 위험을 알리는 역할과 아이들을 돌보는 역할 그리고 우리가 배운 모든 것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의무가 있었다.



어느 날 어른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소위 문명이 발달된 도시 사람들이 우리 부족을 침공했다. 나는 그들에게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무력은 형편없었고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다. 나는 그들에게 노예로 팔려갔고 자연에서 떨어져 처음 도시와 문명의 삶에서 적응해야 했다. 우리 부족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말을 하지 못하는 나를 사람들은 멸시하고 천하게 여겼다.



그러나 그 부족 중 아주 다정하고 친절한 한 젊은 청년은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었다. 그는 나를 그의 집으로 데려가서 노예가 아닌 친구처럼 애인처럼 대해주었다. 그는 내게 언어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걸 가르쳐주고 진정 보호해주었다. 나는 모든 걸 빠르게 배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언뜻 보기에 나는 그들과 동화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항상 예전의 삶이 그리웠고, 사람들이 나를 노예로 비천하게 생각한다는 걸 잊지 않고 있었다. 나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딱 한 사람 나를 이해해주는 그 청년을 제외하곤 말이다. 나는 그를 깊이 사랑하고 그에겐 내 진심을 말했다. 나는 그들의 문명을 배우면서 그들이 아주 멍청하고 어리석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은 사실상 중요한 게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나보다도 못한 노예로 살고 있었고 그 사실을 모른 채 거들먹거렸다. 나는 그들을 깊이 경멸했다.



나는 노예였기에 그 청년의 집에 거의 머물러 있었지만 청년은 온갖 세상을 다 둘러보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는 여행과 모험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 특히 바다였다. 나는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그가 바다 이야기를 해줄 때면 바다를 거니는 느낌이었다. 청년은 언젠가 바다에 나를 데려가겠다고 약속했고 나는 그 약속을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불길한 어떤 일이 생겼다. 그 일은 나와 조금도 관련 없었지만 무지한 마을 사람들은 희생양을 찾아 내게 그 죄를 덮어 씌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고 침을 뱉었다. 나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청년만큼은 내 진실을 믿어 줄거라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이 두려웠던 건지 아니면 나와 엮이게 되면 자신의 위상이 흔들릴까 두려웠는지 그것도 아니면 평소 나를 전부 믿지 못했던 건지 그는 결국 내 손을 놓고 그들처럼 나를 외면했다.



너를 믿었는데, 너를 진심을 다해 사랑했는데. 어떻게 내게 그럴 수가 있어. 처형을 앞두고 죽어가면서 나는 내게 돌팔매 질을 하며 경멸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청년 하나만을 저주했다. 너를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 평생 네가 불행하길 바라겠다.



그 소녀의 원한이 그 깊고 진하고 아픈 상카라가 나를 계속 태어나고 태어나게 했다. 사람들을 믿지 마. 그렇지만 언젠가 우린 우리 만의 낙원을 만든 적이 있어. 되찾아야 해. 아이들을 구해야 해. 그러니 나도 낙원을 만들고 싶어.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그런 바보들이 없는 진짜를 알아보고 서로를 이해하는 그런 낙원 말이야. 그러나 조심해. 사람들을 믿진 마. 거들먹거리는 멍청이들은 상대도 하지 마. 그들은 그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자기들이 가진 알량한 권력과 부에 취해 진짜로 중요한 사람들을 깔보고 통제하려 해. 누구든 내게 그런다면 나는 더 이상 가만있지 않아. 나는 자유가 될 거야. 진짜 자유인 말이야. 그러니 제발 내 사람들은 날 오해하거나 내치지 마. 그건 내게 감당할 수 없는 너무 큰 상처야. 너무 두려워. 그러나 찾고 싶어. 내가 헤어졌던 나의 사람, 나의 부족…




이 전생을 재구성하면서 양쪽 옆구리가 딱딱하게 굳어서 아팠다. 분노와 격노가 몰아쳐 마치 내가 그 행위를 당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 생은 나만의 것이 아니야. 몇 번인지 어쩌면 몇 천 번, 몇 만 번일지 모를 수 없이 많은 삶을 살아온 나의 영혼 혹은 존재의 것이야. 내가 지금 여기 이렇게 살아가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야. 우린 이제까지 너무나 깊은 원한과 아픔 고통을 겪고 상카라를 해결하지 못한 채 그저 태어나고 잊고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지금 여기 내가 위빳사나를 하고 상카라와 대면하게 한 건 아마 이제껏 많은 ‘내’가 조금씩 공덕을 쌓고 조금씩 대면하고 지혜를 쌓으면서 여기까지 비로소 올 수 있었겠지. 고마워. 내 삶들. 이건 우리의 삶이야. 그리고 나는 이번 생에 반드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이 상카라를 용해시킬 거야. 더 이상 고통 속에 아픔 속에 어둠 속에 원한 속에 나를,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가장 좋은 마음과 상태로 가장 평온하게 죽음을 향해 가자. 최대한 가볍게 최대한 많은 상카라를 용해시켜서. 나를 믿어줘. 나는 너희를 모두 사랑해. 다음 생의 나에겐 가장 가볍고 평온한 나를 선물할게.



아직은 너무 깊어서 여전히 나는 조직화되거나 통제할 것 같은 시도나 권력 앞에선 몸이 딱딱하게 굳고 심장이 반응하지만, 최대한 평정심을 지니고 그저 바라볼게. 이 상카라가 나를 생에 묶지 않고 바람처럼 지나칠 수 있도록 말이야.





p.s. 스스로도 감당 못할 격렬한 분노를 대면하고 자각하게 해 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해 고마움을 전합니다. 당신들은 내게 그러한 자비를 베풀어 줄 이유가 없었는데도 그럼에도 기꺼이 제게 이것을 해주었어요. 그 모든 게 사랑이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고맙습니다.

2022년 5월 20일, 금요일, by 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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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많이 되신모양이에요.
벌써 전생을 구성하실 수 있으시니...
많이 많이 녹이시고 가벼워 지시길...

강렬하고 기억에 남을 경험이었어요.
감사합니다. 가볍게 가볍게 살아갈게요 : )

전생을 직접 떠올릴만큼 통찰이 되지는 않지만 저는 현생에서 조금씩 실마리가 보이는것같아요 ㅎㅎ
근데 유목민 스텔라님과 넘나 어울려요... 양갈래 머리땋고 붉은색 노란색끈을 장식하셨을것같은 느낌 ㅎㅎㅎ

어릴 때 혈액형 책 보면서도 B형은 유목민의 DNA가 흐른단 말에 오 이거다 했거든요. 인디언 같은 훟훟.. 현생에서도 역마살의 기운이 있지요.

전생보다 중요한 건 현생이죠. 현생을 이해하기 위해 전생을 재구성해보았어요.

어찌 되었든 마음이 절절하게 아플 만큼, 슬픈 이야기네요. 그냥 이 글을 보고 생각나는 이야기를 해볼께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걍 흘려 주십쇼) 영성계의 고전중에 하나인 '기적수업' 에서는 자신의 내면으로 부터 시작된 세상을 향한 투사를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용서'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방법이 지금내게 일어나고 있는 꿈 같은 현실의 악몽을 하나 씩 하나 씩 해결해 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 말씀처럼 내가 투사하고 있는 현실은 지금의 생애 뿐만 아니라 많은 생애로 부터 내가 극복하지 못했던 부분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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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생에 반드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이 상카라를 용해시킬 거야. 더 이상 고통 속에 아픔 속에 어둠 속에 원한 속에 나를,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가장 좋은 마음과 상태로 가장 평온하게 죽음을 향해 가자. 최대한 가볍게 최대한 많은 상카라를 용해시켜서. 나를 믿어줘. 나는 너희를 모두 사랑해. 다음 생의 나에겐 가장 가볍고 평온한 나를 선물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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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실체이고 본질인 '사랑'이 스텔라님을 언제나 따듯하게 안아주고 이번 생애 넘어야 할 과제들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넘을 수 있게 사랑으로 함께 해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

우주의 품 안에서 밝게 빛나는 '별' (스텔라)이 되시길 :)

톰님 다시 읽다가 이 댓글 보고 너무나 따뜻해졌어요. 감동적이에요 ㅠㅠ 감사드려요!!!

ㅎㅎ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도 매일 매일 노력 중입니다. 최근에 마이클 싱어 신간. 사서 보고 있는데. 참 좋네요.

와 저 다시 한 번 전율하고 있어요. 톰님이 와주시고 마이클 싱어 신간이 나왔다는 반가운 소식까지 알려주시다니 :) 매일 노력하는 게 너무 즐거운 일이라는 걸 이젠 알아요. 고마워요 또 봐요 톰님

네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 자주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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