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빳사나명상수행일지] 4일 차 - 사랑, 사랑 그리고 사랑

온몸 세포는 파동이야.



본 글은 진안에 위치한 '담마코리아 명상 센터'에서 위빳사나 10일 명상코스를 체험한 후 적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수행일지입니다. 담마 혹은 위빳사나 명상과는 다른 필자 개인의 의견이 첨부되어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위빳사나 명상을 앞두신 분께는 이 글을 통해 선입견이 생기지 않도록 명상이 끝날 때까지 이 글을 읽지 않으시길 권고 드립니다. 위빳사나 명상가분의 피드백과 체험 공유는 언제나 환영합니다.






Copyright 2022. @kamoverse






오후 2시가 되기 전까지는 평온하게 명상을 했다. 1시 45분쯤 미리 방으로 들어와 쉬기로 했다. 스트레칭을 하려던 차에 종이 울렸다. 일정표대로라면 2시 30분 단체 명상이 시작될 것이다. 잘못 들었거나 잘못 울렸나 의심하던 차에 아주 크고 명확하게 다시 한번 종소리가 들렸다. 문을 빼꼼 열어보니 매니저 선생님께서 힘차게 종을 치고 계셨다. 깜짝 놀라고 믿을 수가 없어서 매니저 선생님께 “지금 명상시간인가요?” 물어보니 “네. 지금이에요.”라는 짤막한 답변이 돌아왔다. 서둘러 짐을 챙겨 다시 명상홀에 들어가 앉았다.



약 10분 간의 짧은 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스케줄이 갑자기 왜 바뀐 건지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오늘만 바뀐 건가? 앞으로 계속 바뀌는 건가? 왜 몰랐지? 어디 공지가 되어 있었을까?' 호기심이 폭발하다 못해 불만이 머리를 쓱 내밀었다. 아까 점심 먹을 때 공지를 한 번 더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여긴 왜 설명을 자세히 해주지 않는 거지? 아니, 이렇게 규율을 강조하는 곳에서 변동 사항이 있으면 코스 시작할 때 미리 알려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무슨 일인지 저절로 알게 될 텐데 넌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거야? 넌 정말 성격이 급해. 몰라도 아무 문제없다고. 기다려. 기다리면 알게 돼.’ 맞다. 그걸 모르지 않는데 여전히 궁금해서 뛰쳐나가고 싶을 만큼 몸이 들썩들썩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그걸 다 아는데도 내가 그 답을 알 때까지 계속 이 상태라는 사실을 없앨 수도 말릴 수도 없었다. 와... 어떻게 살면서 내가 이러고 있다는 걸 몰랐지?



확실했다. 나는 성격이 급했다. 아주 급했다. 그런데 모든 면에서 모든 상황에서 그러는 것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는 인내심이 굉장히 강했다. 주변 환경과, 문맥과 사태를 파악하고 있을 때, 이성적으로 기다림의 이유가 합리적이고 납득했다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은행 창구 줄이나 병원 대기줄이 길어도 괜찮았고, 친구가 사정이 생겨 늦었다고 미리 연락해준다면 한 치의 불만 없이 평온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러나 돌발상황이 생기거나 미처 원인 파악이 되지 못했을 때면 지금처럼 참지 못하고 궁금해서 가슴이 타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걸 알아봤자 어차피 해결이 안 되거나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도 아는 것과 모르는 건 내게 천지 차이였다.



생활에 있어서,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나는 빨리 그곳에 적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재빨리 단숨에 파악하고 싶어 했다. 낯선 곳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면 내 몸은 불안하고 궁금해서 미쳐버릴 것 같다고 나를 채근했다. 이거 대체 왜 이러는 거지?



명상시간이 바뀐 답은 간단했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위빳사나 명상을 시작하는 첫날이기 때문에 오늘만 특별히 2시부터 4시까지 단체 명상이 있었다. 첫 날 명상에서 듣고 싶었던 그 명상법을 드디어 오늘 배우게 되는 뜻깊은 날인데, 30분 스케줄이 달라졌다고 좌불안석, 생각과 생각의 꼬리를 물고 있던 것이다. 나의 조급함에 혀를 내둘렀다.





그동안은 인중과 윗입술의 국소적인 부위에 집중해서 감각을 느꼈다. 오늘부터는 온몸 전체로 감각의 범위를 넓혀 어떤 감각이 느껴지든지,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수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부드럽게, 순서대로, 모든 몸의 감각을 감지한다.


눈을 감고 온 마음으로 집중해서 온몸의 미세한 감각을 느끼는 경험은 생소하고 경이로웠다. 어떻게 이런 감각이 있는데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니! 아니 어쩌면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평생 느끼지 못했을 감각일지도 모른다. 이건 정말 말로 경험을 해봐야 한다. (물론 모두가 다르겠지만)


나는 간지러움을 잘 탄다. 머리카락을 슬쩍슬쩍 만지거나 다른 사람이 팔이나 어깨, 목에 손만 올려도 간지러움을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떤다. 상대는 재밌어하거나 엄살이 심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진짜로 간지러워서 간지럽다고 반응했을 뿐이다. 어릴 땐 친구들이 간지러움을 태우는 장난을 쳤는데 너무 괴로워서 아픔이 느껴져서 엉엉 울어버리기도 했다. 친구들은 무척 당황했고 그 이후로는 그 장난을 내게 치지 않았다. 나름대로 꽤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나는 몸의 감각에 대해 반도 몰랐던 거다.



머리 꼭대기 정수리가 숨을 쉬었다. 숨구멍이 열렸다 닫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 부위가 하나도 빠짐없이 전기적 신호가 지나가는 듯한 찌릿함이 느껴졌다. 옆통수도 귀도 모든 피부 표면에서 전자기 신호가 끊임없이 흘러가는 게 느껴졌다. 착각이나 상상이 아니었다. 몸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파동에 가까웠다. 전기적 신호나 파동은 비유가 아닌 실제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미세하지만 진동에 몸이 떨렸다. 집중할수록 진동이 크고 명확해졌다.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책에서 읽었던 이론은 사실이었고, 그것을 실제 몸에서 관찰하고 체험하는 게 가능했다니! 왜 난 몰랐을까.


더 이상 다리가 아픈 건 중요하지 않았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경이로운 감각을 느끼며 즐거움을 느꼈다. 그제야 3일 내내 그저 호흡을 바라보고 단순하고 지루하게 국소적인 삼각형 부위의 감각을 느껴보라고 한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그 지루한 과정이 없었다면 이렇게 미세한 감각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명상을 끝나고 가는 길엔 만화 '슬램덩크'의 '강백호'를 떠올렸다. 매일 기초체력을 강조하는 주장 '채치수'에게 불만을 터트리던 강백호, 그래도 군말 없이 그 지루한 체력 훈련을 끝낸다. 그리고 고된 자유투 연습이 이어진다. 힘들 법도 한데 사실 그는 즐거웠다. 기초 체력에 비하면 자유투 연습은 너무나 재밌고 그가 원했던 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 강백호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지난 3일에 비하면 위빳사나 명상은 아무리 힘들어도 너무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건 지난 3일의 수행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며 걷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온몸 세포 하나하나는 이제껏 항상 거기서 모든 일을 다 하고 있었다. 내가 절망하며 울고 삶을 저주하고 누군가를 원망하며 실의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고 덩그러니 시체처럼 누워 있는 날조차. 온몸 세포들은 왜냐고 묻지도 않고 어떻게 하는지도 묻지도 않고 내게 원하는 것도 없고 바라는 것도 없었다. 그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묵묵히 해왔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당연한 듯이. 그들은 사는 방법밖에 모른다. 그들은 내게 자격을 묻지 않았고 보상도 인정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살았다. 그저 살뿐이다. 그저 매 순간 내가 울든 웃든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이 자신의 최선을 매 순간 다해 그저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 누구도 감히 이 삶을 하찮다거나 쓸모없다거나 말할 수는 없다. 살아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도 우리 몸은 매 순간 엄청난 일을 해내고 있다. 그걸 누구도 폄하할 수 없다.


몸에게 고마웠다. 기쁨에 눈물이 흘렀다. 나의 전율에도 몸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제 할 일을 계속할 뿐이었다.



저녁 명상을 하면서 깊고 안정적인 기쁨이 온몸을 휘감았다. 순간, 그 기쁨과 사랑을 모두와 나누고 싶어졌다. 내가 알고, 내가 기억하고, 내가 만난 모두와 말이다. 한 명씩 그들의 이름이나 닉네임, 얼굴, 존재를 떠올리며 진심으로 이 사랑과 평화가 그들에게 전해지길. 어디서도 행복하고 평화롭길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며 감사함을 전했다. 친구, 가족, 여행에서 스쳐간 사람, 인스타, 스팀잇, 브런치에서 알게 된 기억에 남는 모든 사람들, 직장 동료들, 심지어 과거 미워하고 원망했던 사람들에게도 진심으로 행복과 안녕을 빌 수 있었다.


그전까지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 게 나의 최선이었다. 그들을 원망하거나 탓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잘 지내거나 행복하길 굳이 빌어주고 싶은 마음은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로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이, 특히 내가 만났고 지금 여기까지 있게 해 준 스쳐간 모든 인연들에게 진심을 다해 행복과 안녕, 사랑을 빌어주고 싶었다.

오직 사랑만이 가득했다. 내가 걸어온 길에도, 앞으로 갈 길에도, 만나고 만날 모든 이들도, 그저 나는 온통 사랑, 사랑, 그리고 사랑만이 가득했다.



2022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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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나빠나는 괜찮았어서 위빠사나 시작할때부터 엄청 괴로웠는데,, 스텔라님은 다르셨군요..!

역시 사람마다 느끼는 게 확연히 다르군요.
카모님은 위빳사나 할 때 무엇때문에 괴로우셨을런지 ^^

저도 다리 고통때문에 괴로웠었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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