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의도 기록 1



그 당시 의식적인 열망은 오로지 잠시 학업을 중단 하고 싶다는 바람 뿐이었다. 가장 그럴 듯한 핑계는 어학연수였다. 미래나 효율을 생각하면 유학 쪽이 유리했겠지만, 그 복잡한 서류와 영어 점수 등등을 준비할 엄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행기를 타본 일도 주변 어른 들이 출장을 가거나 해외로 여행을 간다고 들은 적도 없던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기로 단 한 번도 세계 여행이나 어떤 다른 나라를 여행 가겠다는 꿈도 꿔본 적이 없었다. 당시까지도 나 같은 사람이 여행을 하거나 해외에서 산다고 상상도 해본 적 없다.

첫 번째 외부 의도의 작용은 그 당시 분위기상 대학시절 유학, 어학 연수, 워킹 홀리데이가 매우 흔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어학연수를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부모님도 아무렇지 않게 당연히 한 번쯤은 가야 하는 수순으로 받아들였을 따름이다.

당시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해서 나조차도 그게 좀 신기하단 사실을 몰랐다. 작년이나 재작년쯤 대학생이었으면 절대 이루어질리 없을 일이었다.


두 번째 외부 의도는 하필 딱 그 시기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외사촌 언니가 있었다는 점이다. 언니에게 호감은 있었지만 나이차이는 엄청 났고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엄마와 이모를 통해서나 드문드문 소식을 주고 받는 사이였고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결심할 때조차 나는 언니가 유학 중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 사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고민할 필요 없이 어디로 어학연수를 떠날 지 결정해주었고, 우리 부모님께는 외국으로 날 보내도 괜찮을 거라는 안심과 지지를 보태주었다.

그때 이후로 나의 가까운 사람 중 누구도 외국으로 유학을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쨌든 그 덕에 어학 연수를 계획한 지 채 2달이 되지 않아 모든 수속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고, 나는 진짜로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마치 온 세상이 내가 어학연수를 가길 바라고 떠미는 것만 같다. 어느 정도였냐면, 한 달 쯤 지나 너무도 놀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갈 수 없다고 두렵다고 마구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도 이 꽤 중대한 변화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고 반기를 들지 않자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어버린 것만 같다.


세 번째 외부 의도는 의모의 다정한 위로였다. 전화를 걸어 울면서 엄마에게 미국에 가지 않겠다고 말하자(상당히 겁에 질렸다) 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이모는 처음이고 두려워서 그런 거라며 아무 일 없고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나를 위로하고 회유했다. 난 울음을 그쳤고, 알겠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이 당시엔 그게 또 얼마나 이상한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이모야 원래 친절하고 다정한 말투의 분이지만 단 한 번도 내 인생에 무언가 조언을 해 준 일도 고민을 털어놓은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나 아빠 사촌언니도 아닌 이모라니. 그런 일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그 당시 이모의 말은 마치 미래의 모든 걸 알고 있는 내가 건넨 다정한 위로와 같았다. 난 바로 진정하고 미국에 가는 건 기정사실이란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어학연수를 갔다. 그러면서도 알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게 어학연수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거기 가면 난 그게 뭔지 비로소 알 수 있을 거란 걸. 그리고 그 모든 걸 의식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저 내게 좋을 거라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역시 표면적으로 타인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무언가를 내가 얻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긍정적인 의미로 내 세계를 박살내고 눈을 크게 만들었다. 나 역시 해외 여행도 하고 원하면 해외에서 살 수 있으며, 영어를 어설프게 구사해도 먹고 살고 여행하는 데 아무 문제 없으며, 조금 외로울 때도 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어떤 면에서 한국보다 어렵지 않고, 나는 어쩌면 한국보다는 외국에서의 삶이 더 잘 맞을지도 모른다는 것.

언제든지 원한다면 어디든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을 거고 그 정도 용기와 적응력이 내게 있다는 확신. 또 한국에서의 답답한 선과 규칙을 벗어던지면 꽤나 홀가분하단 사실도.


마지막 외부 의도는 브라질 여행이었다. 당시 환율은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금융위기로 인해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난 나름대로 최대한 돈을 아껴쓰려고 노력했다. 게다가 미국 뉴욕조차 여행하지 않은 처지에 갑자기 브라질 여행이라니. 사촌 언니의 권유와 설득이 아니었으면 절대로 브라질에 내가 갔을리는 없다. 브라질에 관심도 없었고 거기 뭐가 있는지도 몰랐다.

언니는 나보단 나이가 꽤 있었고 언제 다시 여기까지 올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미국에 온 김에 브라질에 꼭 가고 싶다고 말했다. 같이 가달라고 요청했다. 그 말은 내게도 일리가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내가 언제 브라질에 가겠나. 내가 조금 망설이자 우리 부모님께 자신도 얘기를 해주겠다고 했다. 부모님 입장에서도 언니와 추억도 쌓고 미국에 이렇게 나와 있는 게 그리 흔한 일은 아니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꼭 해보라고 등을 떠밀러 주셨다.

어쨌든 그래서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사촌 언니를 따라 브라질에 간 것이다. 브라질 여행은 패키지 여행이었는데 워낙 땅이 넓고 관광객이 많지 않아 우리끼리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고, 지역마다 가이드를 만나 여행하는 소규모 데이투어 같은 느낌이었다. 당시 포르투갈어도 스페인어도 하나도 몰랐지만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다. 아마 내가 해 본 패키지 여행 중에 가장 최고였던 것 같다. 브라질에서 홀로 했던 결심은 나중에 남미를 도보로 자유 여행해야지. 그땐 스페인어를 좀 배워서. 여긴 이유는 모르겠지만 느낌이 좋았고, 나와 어울렸고, 꼭 다시 여행을 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멕시코 땅을 밟는 건 약 6년 후의 일이다. 물론 그 다짐은 그다지 강렬하거나 우선순위는 아니어서 뒤로 잊히고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조차 잊고 산지 오래였다. 그러나 한 번 발아한 씨앗은 사라지지 않고 꽃을 피웠다. 어쨌든 그 미국행은 나를 여러 곳으로 떠나게 만들었다. 그땐 그저 내가 어학연수를 가기로 선택한 거라고 여겼는데 외부 의도를 읽고 잘 생각해보니 그만큼 돛에 순풍이 분 듯 스무스하고 당연하게 온 세상이 도와주는 것처럼 뜻이 이루어진 사례가 또 있었나 싶을만큼 강렬한 우연에 가까운 도움이 있었다.


p.s. 생각해보면 20대는 그 어느 때보다 외부의도가 강렬하게 도와줄 시기다. 그래서 다들 이 시기를 소중히 여기고 그리워하나보다.

2022년 10월 11일, by St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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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years ago 

이른 시기에 내면에 대해 생각하셨군요. 저는 20대 초반 해외에 처음 여행 갔다 왔는데, 여행이란게 뭔지 생각도 못했던거 같아요. 아무런 감흥도 없었던거 같구요. 내면을 좀 더 살필 수 있었다면 삶에 보탬이 되는 여행이 됐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20대는 외부의도가 강하게 동작하는 시기군요. 20대는 뭔가 정말 그냥 흘러가는 거 같았어요.

해석은 현재 시점에서 덧붙였답니다. 제게 중요한 테마 중 하나가 여행이라 의미를 부여했어요.

아마 이테인님께는 여행보다 더 중요한 테마가 있으시지 않았을까요? 완전 동감하는 건 저 역시 20대에 그더 흘러갔어요. 내면을 좀 더 살필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충만한 삶을 살았을텐데 그 점이 아쉬워요.

언젠가 이테인님의 내면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멋질 것 같아요 :)

 4 years ago 

저는 별거 없고 심플하게 살려고 해요.
service to others를 실천하는게 저는 내면을 수행하는 거라고 정했어요!

service to others라니! 저로서는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주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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