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 Right Now, Wrong Then?

비극적인 종말은 그다지 얘기하고 싶진 않지만...


1886년, 루트비히 2세는 폐위 5일 후, 자신이 머무르고 있었던 뮌헨 소재 {베르크 성 Schloss Berg} 근처의 “어릴 적 추억의 호수”였던 “슈타른베르크 호수 Starnberger See(뷔름제 Würmsee)”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실제로 허리 정도 깊이밖에 되지 않던 얕은 부분의 호수에서 장신이었던 그가 익사했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으며, 여러가지 정황상 “암살”에 대한 많은 의혹을 남겼다.

그리고 그 의혹들과 함께, 루트비히 2세 Ludwig II(1845-1886)는 자신의 타고난 예술성이 가득 담긴 그 아름다운 성들을 고스란히 남긴 채 41세를 일기로 역사 속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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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적극적인 후원이 없었더라면, 바그너의 후기 걸작 오페라들은 작곡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게다가, 남다른 야망과 그로 인한 빚에 평생을 쫓기던 바그너에게 루트비히는 사실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1864년, 51세의 바그너(1813-1883)는 뮌헨 관저 München Residenz에서 19세의 루트비히 2세(1845-1886)와 처음 만났다.
바그너는 그와의 첫 만남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 아..! 그는 너무 잘생겼으며 현명하고, 또 그의 영혼은 충만하며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나는 그의 삶이 신들의 덧없는 꿈처럼 이 저속한 세상에서 녹아내릴까 두렵다..."


독일을 제외한 다른 나라 사람들은 보통 그를 “광인 왕 The Mad King / Mad King Ludwig”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내성적이고 은둔적이었지만 예술적 감성으로 가득했던 젊은 왕의 문학과 오페라, 미술과 건축에 대한 편중된 집착과 애정 그리고 그의 “광기”는, 한 나라의 왕으로서 사후에 “광인 왕”이라고 불리기까지 – 설령 살아생전에 그때는 옳지 못했던 틀린 왕이었을지라도 – 한 예술가에 대한 깊은 존경과 그의 작품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으로 베푼 후원과 지지, 그리고 그를 통해 이루어낸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Bayreuther Festspielhaus}과 {바이로이트 음악축제Bayreuther Festspiel}는, 그가 건설한 아름다운 성🏰들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높은 가치의 문화유산으로 후대에 영원히 전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2세에게 경의를 표하는 행진곡 March ih Homage to Ludwig II>


“ 총기와 광기 가득한, ‘빛나는’ 눈동자의 한 젊은 왕이... 영원한 안식 속에서... 한 노장 음악가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막연히 상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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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행복한 수요일 입니다^^

금요일에나 답을 느리니 죄송합니다;

수-목-금 계속 행복하셨지요 @appa396 님~? ^^;

@감사해요! 반갑구요~ :)


안녕하세요.
이 글은 SteemitKorea팀(@jungjunghoon)님께서 저자이신 @classicalondon님을 추천하는 글입니다.
소정의 보팅을 해드렸습니다 ^^ 항상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SteemitKorea팀에서는 보다 즐거운 steemit 생활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다음날 다시 한번 포스팅을 통해 소개 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추천과 응원 감사드립니다 @jungjunghoon 님~
요즘 좀 겨를이 없어서요ㅠ인사가 너무 늦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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